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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건축가] 가치를 가늠하고 향해 가는: 김영수

사진
김산(별도표기 외)
진행
윤예림 기자

​「SPACE(공간)」 2023년 8월호 (통권 669호) 

 

‘오늘의 건축가’는 다양한 소재와 방식으로 저마다의 건축을 모색하는 젊은 건축가를 만나기 위해 기획됐다. 그들은 무엇을 좋아하고, 탐색하고, 고민하고 있을까? 「SPACE(공간)」는 젊은 건축가와 대화를 나누면서 그들을 하나의 카테고리로 묶기보다는 각자의 개별적인 특성을 발견하고자 한다. 인터뷰는 대화에 참여한 건축가가 다음 순서의 건축가를 지목하면서 이어진다.

 

 

인터뷰 김영수 모어레스 건축사사무소 대표 × 윤예림 기자

 

어디쯤 와 있는지

윤예림(윤): 젊은건축가상 수상을 먼저 축하드려요. 요 며칠 많이 바쁘셨죠?

김영수(김): 감사합니다. 근 몇 주가 어떻게 지나갔나 모르겠어요. 얼마 전 서울시의 공공건축 프로젝트 설계공모에 당선이 돼서 온 신경을 쓰고 있거든요. 공공 프로젝트가 처음이라 잘 해보고 싶은 마음이 커서인지 그만큼 부담감도 크게 오는 것 같아요. 한편으로는 며칠 전 있었던 젊은건축가상 공개심사 발표 준비도 하고요. 이제 보니 크게 바쁜 일도 없으면서 공연히 마음만 분주했던 것 같네요. (웃음) 

 

윤: 요래조래 축하할 일들이네요. 이렇게 타이밍 좋게 만나 뵙게 되어 기뻐요. 수상 소감도 묻지 않을 수 없겠어요.

김: 실은 수상보다 새롭게 등장하는 좋은 작업, 건축가들과의 만남이 더 기대됐어요. 많은 건축가와 심사위원 앞에서 우리의 이야기를 꺼내고, 또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자리니까요. 작년에도 참여하면서 가장 좋았던 것은 심사 자리를 통해 다양한 소장님들과 새로운 인연을 맺은 점이에요. 이후에도 종종 만나며 건축적인 생각을 나누는 관계가 지속되고 있거든요. 그런 만남과 교류 자체가 정말 감사한 일이라 생각해요. 한편, 너 나 할 것 없이 열정이 넘치는 건축가들 사이에서 우리는 어느 정도에 와 있을까 궁금한 마음도 있었어요.

 

 

좋은 것을 좋게

윤: 그렇다면 모어레스 건축사사무소(이하 모어레스)의 첫 시작으로 자취를 되밟아 가보고 싶어요. 카페 우니쿠스(2017)는 제가 자주 가는 장소이기도 하거든요. (웃음) 

김: 정말요? 외진 골목에 숨어 있어 찾기 힘든 카페인데, 뜻밖의 소식을 듣네요. 카페 우니쿠스는 다른 소장님과 함께 진행한 프로젝트인지라 모어레스의 공식적인 첫 프로젝트라 말할 수는 없지만, 무척 아끼는 작업이에요.

 

윤: 특별히 아끼는 이유가 있나요? 진입부나 재료 등에서 건축가의 손길이 느껴진다고 생각했던 기억이 나요.

김: 작은 공간이지만, 기존 건물이 간직한 건축적 요소들 중에서 가치를 찾고 드러내 보인 것들이 지금의 모어레스가 추구하는 공간의 유형과도 많은 부분 겹쳐 있어요. 진입하면서 밟는 계단 몇 단과 입구의 살짝 낮은 천장, 그 공간을 지나 문을 열었을 때 맞닥뜨리는 높은 천장의 내부 공간, 그리고 천장에 자연스럽게 드러나 있는 기존의 목재 구조들. A라는 영역에서 B라는 영역으로 넘어갈 때 완전히 다른 성격의 공간이 펼쳐지고 각 공간의 특성을 오롯이 감각할 수 있게 만들죠. 요즘도 그런 공간에 가면 기분이 좋아요. 가령 지금 저희 사무실처럼요. 근현대 건축의 모던한 오피스 빌딩인데, 보다시피 홀과 계단 공간이 실에 비해 굉장히 큰 면적을 차지하고 있어요. 널따란 홀에서 사무실 안으로 들어올 때의 과정이 너무 매력적인 거예요. 처음 봤을 때부터 우리 사무실로 삼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윤: 그러고 보면 모어레스의 작업 대부분에서 방과 거실 사이의 공간 혹은 복도처럼 용도가 변화하는 경계 지점의 공간감이 두드러지는 것 같아요. 지정된 용도가 없어 누군가는 무신경하게 넘어갈 수 있는 공간이죠.

김: 공간과 공간 사이의 관계를 중요한 개념으로 여겨요. 건축이 2차원적 표현과 이미지로 소비되는 경향이 커지고 있지만 실제 공간에 서 봤을 때 명확히 느껴지는 공간감이 있다고 믿거든요. 그런 공간감은 공간의 폭과 높이 등의 관계와 비례에서 만들어진다고 생각해요. 때로는 아주 넓고 높은 층고의 공간과 낮고 작은 공간에서 같은 위요감을 받기도 해요. 공간이 단순히 하나의 공간이 아니라 그 관계들 속에서 인식되기 때문이죠. 그러니 주어진 공간이 아주 작더라도, 공간과 공간 사이를 섬세하게 다루면 효과적인 공간감을 전개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작업하고 있어요.

 

윤: 예를 들면 어떤 감각인가요?

김: 그저 네모난 박스일지라도 쓰임에 알맞은 스케일의 공간이 있어요. 딱 적절한 스케일의 공간을 보면 참 좋더라고요. 가끔 주택을 설계하다 보면 천장은 높게, 창은 크게 해달라고 요구하곤 하시지만 아늑하고 편안한 공간에 중요한 건 적절한 천장의 보호와 적절한 창의 크기 같은 것들이죠.

 

윤: 평소 아끼고 좋아하는 공간의 특징이 소장님이 만드는 공간에도 녹아 나는 것 같아요. 

김: 좋은 공간에 대한 감흥은 계속 쌓여가는 것 같아요. 어렸을 때를 더듬어봐도, 공간에 관한 여러 기억들이 떠올라요. 한번은 어떤 교회를 갔는데, 높은 외벽과 담장 사이로 좁은 길을 한참 들어가 아주 무거운 문을 밀고 들어가야 했어요. 그 긴 길을 따라 돌아서 들어가는 시간과 무거운 문을 여는 과정, 그리고 문이 열리는 순간 밝았던 길이 그림자로 가득해졌던 빛의 변화를 생각해보면 특별히 마음의 준비를 하지 않았음에도 거룩한 공간에 들어선다고 자연스레 느꼈었죠. 이런 공간에 대한 기억들이 끊임없이 저에게 어떤 자국을 남겨왔고, 지금 하는 설계의 근거가 되어 주고 있지 않나 생각해요. 사실, 누구나 마음 어딘가에는 공간에 대한 기억과 감흥을 가지고 있을 거예요. 편리함과 기능에 익숙해지다 보니 어느새인가 감각이 무뎌지는 것이겠죠. 무용하게 여겨지며 사람들에게 잊혀진 감각들이 되살아나는 공간을 만들고 싶은 마음이 항상 있어요.

 

 


어떤 가치

윤: 무용함의 가치를 꾸준히 이야기하는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김: 현대사회가 추구하는 형태와 이미지, 실용과 기능의 이면에 건축이 가지는 다른 힘이 있다는 것을 보이고 싶어요. 그러기 위해 형태와 미지는 담백하게 정리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너무 지루한 것 아니야?” 하는 반응도 있지만, 오히려 그런 저희의 언어에 공감하고 찾아오는 클라이언트들이 있어서 힘을 얻는 것 같아요.

 

윤: 다르게 말하면 쓸모없는 것이니, 설득이 늘 쉽지는 않을 것 같아요.

김: 설명을 잘 해야겠지만 아무런 설명을 보태지 않을 때도 많아요. 클라이언트와의 초기 프레젠테이션 자료를 보면, 공간이나 기술적인 이야기보다 추상적인 이야기가 대부분이에요. 모형도 건물의 직접적인 형태보다는 개념을 드러내는 부분 모형이나 입면 모형을 주로 만들고요. 노랫말, 고전문학, 현대미술, 영화의 한 장면같이 감성적인 요소를 끌어와 개념을 전달하기도 해요. 간혹 건축가를 기술자나 엔지니어 정도로만 생각하고 찾아오는 분들은 그제야 비로소 저희가 어디에서부터 얼마만큼 고민하고, 또 어떻게 공간을 꾸려나가려는지 한결 이해하고 다가오시는 것 같아요.

 

윤: 소장님 본래 성향도 그만큼 감성적인가요? 

김: 그렇지만은 않지만 고전소설을 좋아하기는 해요. 언뜻 딱딱해 보이고 표현은 이성적이지만 그 안에 감성이라고 할 만한 나름의 철학과 생각이 은근히 스며 있잖아요. 

 

윤: 어쩐지 소장님 작업 방식과 닮아 있네요. (웃음) 소장님이 실제 설계에서 감성과 이성의 균형을 찾아나가시는 방식이 궁금해요.

김: 제주도의 수리움(2022, 본지 10쪽 참고)의 경우, 클라이언트가 제주답지 않은 이국적인 분위기를 원했어요. 아마도 ‘제주도 스테이’ 하면 으레 떠올리는 제주 돌을 쌓아 지은 건축물들과 다른 모습이기를 바란 것 같아요. 그래도 저는 제주의 건축은 제주의 맥락을 담아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대신 쉽게 접하지 않은 방식으로 재료의 물성을 다뤄보고자 했죠. 그렇게 찾은 료가 제주의 화산송이석이에요. 화산송이석과 컬러콘크리트의 외관이 달리 보면 이국적으로도 느껴지거든요. 그 밖의 에너지는 내부 공간의 단면적 건축에 쏟았어요. 공간마다 풍요로운 장면과 공간감을 만들어내려고 노력했죠. 나지요네(2018)에 이어 제주에 두 번째 스테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건축의 형태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느꼈거든요. 근래에 들어 스테이에 큰 비용을 지불하고, 바깥의 여행지가 아닌 숙소에 오래 머물며 공간을 충분히 즐기고 활용하는 여행자들의 모습을 많이 봤어요. 기존에 알던 여행의 방식과 사뭇 다르죠. 건축에 관심이 크지 않은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에게도 우리가 생각하는 건축 공간의 풍부함을 누리게 할 기회가 생긴 것이라고 생각해요. 

 


ⓒMoreless Architects

 

윤: 하지만 단면적 건축을 펼칠 기회가 많지 않다고 하셨죠. 상업 건축물에서는 입면에 두께를 주는 방식으로 그 아쉬움을 표현하고 계시다고요. 

김: 바닥 면적이나 용적률에 개의치 않는, 좋은 건축 공간에 대한 요구를 늘 기다리고 있죠. 하지만 표피에 대한 설계에서 그치는 프로젝트가 다수인게 현실인 듯해요. 날이 갈수록 가장 간단하고 최소한의 비용을 들이는 방법으로 건축의 표피를 정리할 수 있는 방식과 값싼 재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어요. 어쩌면 언제까지 표피를 다루는 건축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니 답답하더라고요. 얇아지고 가벼워지고 있는 표피들 속에서 단면적인 내부 공간을 다룰 수 없는 것이 현실이라면 우리는 어떤 다른 가치와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됐죠. 이를테면 유럽의 옛 건축물의 깊이감 있는 입면에, 빛과 자연적 요소로 인해 드리워지는 다양한 표정을 상상해요. 그런 것도 건축의 중요한 가치 중 하나라고 생각하거든요. 그것이 커튼월 파사드에서는 사라 한남(2021)처럼 사출된 멀리언의 길이와 형태로, 건식 공법의 파사드에서는 알로하 도산(2022)처럼 입체적이고 깊이감 있는 두께의 외피로 표현되기도 하죠.

 

윤: 무용함과는 가장 극단에 있는 상업 건축에서조차 그 가치를 지키려고 노력하시는 모습이 보여요. 소장님의 꿋꿋하고 일관된 작업 방식은 언제부터 시작된 걸까 궁금해지네요. 

김: 학부와 대학원, 대형 사무소와 아틀리에, 그리고 독립 후 여러 프로젝트까지 다양한 성향의 프로세스를 경험하면서 내가 하고자 하는 건축의 갈래를 정리하는 과정을 겪은 것 같아요. 특히 원오원 아키텍스에서 여러 프로젝트를 경험하면서 좋은 건축이란 무엇인지 고민을 많이 했어요. 독립을 한다면 어떤 건축을 해야 할지에 대한 생각이 자리를 잡은 시기죠. 언제나 좋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만 나아가고 있지는 못해도, 가능한 한 저의 색깔과 가치관을 한 방향으로 구축해가려고 해요. 이번 젊은건축가상 심사 중에 스스로가 구축한 개념에 너무 얽매이지 않아도 좋겠다는 평을 듣기도 했는데, 그 말씀에도 공감하지만 아직은 준비 단계인 것 같아요. 제가 추구하는 가치와 공간이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는지, 사용자에게 어떤 피드백이 돌아오는지, 충분히 살피고 검증하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봐요.

 

윤: 그럼, 지금은 몇 퍼센트 정도 검증이 됐을까요? 

김: 한 60%쯤 아닐까요? (웃음)

 

 

 

디테일과 디테일

윤: 이번 젊은건축가상 심사에서 소장님 작업의 완성도 높은 디테일에 대한 이야기가 여러 차례 언급되어서 기억에 많이 남았어요. 

김: 디테일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에는 현장 소장님과 공동의 가치관을 공유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우리가 함께 좋은 건축을 추구해가고 있다는 자부심을 공유하고 더 효과적인 방법을 함께 고민하는 과정에서 좋은 디테일이 만들어지는 것이죠.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저는 그런 디테일을 ‘디테일’이라 말하지 않아요. 진짜 디테일은 보이지 않는 곳에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공간에 의도한 본질적 요소들이 적재적소에서 공감각적으로 느껴지기 위해, 나머지 것들을 어떻게 다듬느냐가 제가 생각하는 디테일의 의미인 것 같아요.

 

윤: 그게 평면일 수도 있고, 재료일 수도 있겠네요.

김: 재료와 재료의 마감일 수도 있고, 배치일 수도 있고, 입구의 형식일 수도 있죠. 이전에는 세세한 디테일에 몰두해서 현장을 들볶고 재시공을 하는 일도 사실 빈번했어요. (웃음) 하지만 공간에서 정말 중요한 본질이 무엇인지 고민하면서 가치관이 조금씩 변해온 것 같아요.

 

윤: 보편적으로 말하는 디테일보다 넓은 관점에서 바라보시는군요.

김: 그래서인지 “디테일이 좋다”는 이야기를 듣다 보면 되레 나의 건축에서 마감의 완성도만 돋보이고 있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되기도 해요. 마감에 애를 쓰느라 정말 드러내고자 했던 공간의 성격들이 가려지고 있는 것인가 하고요. 그런 관점에서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작업을 발전시켜나가야 할까 고민을 하고 있어요. 제가 건축에서 찾고 싶은 본질을 더 드러나게 작업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죠. 좋아하는 소장님 중에 마감의 디테일을 하나도 신경 쓰지 않는 분도 계시거든요. “그건 중요한 게 아니야, 정말 중요한 건축 공간과 개념과 다른 가치들이 있어”라고 말하듯이요. 저희도 나름의 방법을 찾아나가보려고요.

 

 

김영수는 2023년 9월호에서 박형우, 고민재, 신동한(비에이티 파트너스)의 오늘을 듣고 싶어 했다.

 

 

 

 

 

월간 「SPACE(공간)」 669호(2023년 08월호) 지면에서 더 많은 자료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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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수
김영수는 인하대학교 건축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였고, 프랑스건축사회가 주는 11회 장프루베-김중업 건축 장학생으로 선발되었다. 해안종합건축사사무소, 원오원 아키텍스, 파리의 도미니크 페로 아키텍처 등에서 다양한 규모의 프로젝트로 실무를 쌓았다. 현재 모어레스 건축사사무소의 대표이며 인하대학교 겸임교수로 출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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