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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건축가] 맥락과 근원을 파고드는: 서자민

사진
김산(별도표기 외)
진행
윤예림 기자

​「SPACE(공간)」 2023년 7월호 (통권 668호) 

 

‘오늘의 건축가’는 다양한 소재와 방식으로 저마다의 건축을 모색하는 젊은 건축가를 만나기 위해 기획됐다. 그들은 무엇을 좋아하고, 탐색하고, 고민하고 있을까? 「SPACE(공간)」는 젊은 건축가와 대화를 나누면서 그들을 하나의 카테고리로 묶기보다는 각자의 개별적인 특성을 발견하고자 한다. 인터뷰는 대화에 참여한 건축가가 다음 순서의 건축가를 지목하면서 이어진다.

 

 

 

인터뷰 서자민 아지트스튜디오 건축사사무소 대표 × 윤예림 기자 

 

​시간이 흐르는 곳

윤예림(윤): 사무소가 조용한 골목에 숨어 있네요. 이전에는 성수동에서 꽤 오랫동안 지내신 걸로 알고 있어요.

서자민(서): 이전 성수동 공간이 작업실로는 세 번째, 사무소로는 첫 번째 공간이었어요. 사회 초년 시절 퇴근 후에 모여들어 작업하던 아지트에서 제가 아지트스튜디오 건축사사무소(이하 아지트스튜디오)를 개소하면서 의미를 이어왔죠. 당시에는 서울숲 곁의 조그맣고 고요한 동네 정취가 좋아 자리했는데 급속도로 상업화가 진행되는 모습을 지켜보며 아쉬운 마음이 컸어요.


윤: 그래서 다시 작고 고요한 동네를 찾아오셨나 봐요.

서: 이화동에 왔을 때, 예전 성수동을 찾았을 때처럼 오래된 마을의 분위기가 느껴져 여기다 싶었어요. 특히 좋은 건 창밖의 풍경이에요. 건너편 건물의 담쟁이덩굴이 시간의 변화를 잘 나타내 주거든요. 사무실에서 작업을 하다 보면 저 친구가 계절을 먼저 알려주는 것 같아요.

 

질문하는 건축가

윤: 독립을 결정하신 계기가 궁금해요. 개소 직전 다녀온 남미 여행은 그간의 건축적 행보에 중요한 시간이 됐다고 말씀하시기도 했죠. 

서: 독립할 생각은 늘 품고 있었지만 상황과 의지를 살피며 타이밍이 언제냐를 고민했던 것 같아요. 남미 여행은 2017년 작업실 멤버이자 파트너였던 허근일 소장이 김태수장학재단에서 수상을 하게 되면서 함께 떠나게 됐어요. 한 달간 여행을 다녀온 뒤 혼자 개소를 했죠. 알맞은 때라는 생각을 했어요.

 

윤: 그 여행이 가지는 의미가 있었나요?

서: 여행의 목적지로 남미의 안데스 산맥 서쪽 지역을 선택한 건 근대건축의 영향권을 다소 비켜가 거친 상태 그대로 남아 있는 토양의 건축이 보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실무자로 연차가 제법 쌓이면서 그만큼 제 안에 많은 질문들이 생겨나고 있던 때 같아요. 생각해보면 오늘날 좋은 건축이라 말하는 대부분의 것들이 자본과 깊이 연관되어 있잖아요. 잘 갖춰진 시스템을 기반으로 정교함과 완성도의 끝을 보여주는 건축이 그렇죠. 하지만 자본이 부족하고 예리한 기술력이 발전하지 않은 나라에서도 충분히 좋은 건축 작업이 일어나고 있다는 걸 직접 확인하고 싶었어요. 그렇게 페루부터 칠레까지 4000km 넘는 거리를 육로로만 이동하는 여행을 했어요.

 

윤: 두 발과 눈으로 확인해 보니 어땠나요? 

서: 남아메리카 땅 특유의 러프함 그리고 거기에서 오는 아우라가 건축에서도 오롯이 느껴졌어요. 어쩌면 아지트스튜디오의 작업이 추구하는 방향과 같아요. 아지트스튜디오의 건축 기저에는 특별하고 값비싼 재료를 내세우기보다 매스로서 좋은 계획을 하고, 그 시대와 지역에서 가장 보편적인 재료로 좋은 작업을 만들어가겠다는 의도가 있거든요.

 

 

윤: 어쩌면 지금의 아지트스튜디오에 많은 영향을 준 여행이겠네요.

서: 그 땅만의 압도적 스케일과 질감을 경험할 수 있었던 특별한 기행이었어요. 건축가로서 목말라 있던 부분을 채울 수 있었죠. 하지만 어떤 특별한 경험에 단번에 영향을 받거나 변화를 겪는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건축가로서 제가 가고 있는 하나의 길이 있다면, 새로운 세계의 경험이 자양분이 되어 준다고 해도 제가 추구하던 길에는 변함이 없다고 생각해요. 외부의 어느 곳에 있든 한국 건축가로서 저의 원동력과 문화적, 사회적 토대는 한국 사회에 깊숙하게 뿌리내리고 있어요. 그것이 자부심이 되기도, 때로는 어려움이나 문제 제기가 되기도 하는데 질문은 항상 제 안에 있죠. 그 때문에 어떤 곳에 가더라도 주체적인 시각으로 관찰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윤: 초점을 바깥이 아닌 안에 둔다는 것이 중요한 점이네요. 소장님 안에 항상 있는 질문은 어떤 것들인가요?

서: 한국의 도시, 특히 서울은 사람들의 인식과 유행이 세계 어느 도시보다 빠르게 변하는 곳이잖아요. 그 밀도와 복잡성이 시시각각으로 삶과 도시에 작용하고요. 그러니 우리나라 건축가들은 숙제가 많아요. 개개인의 건축가가 내놓는 문제 제기와 해결책의 다양성이 앞으로 우리 도시 환경을 더 좋게 만들 거라 생각하거든요. 바로 그 지점에서 아지트스튜디오가 고군분투하는 것이고요. 개인적이고 사회적인 맥락 모두에서 지속 가능한 해결을 위해 많이 질문하고 고민하고 있습니다.

 

윤: 콘크리트 도서관(2020)부터 프로젝트: 재해석(2021), 연희동 갤러리(2022) 등 도심에 위치한 리노베이션 작업들이 집요한 질문의 결과겠군요. 재료와 구축 방식부터 매스의 조형미까지 짧고 편한 길을 과감히 외면하고 나의 길을 가겠다는 의지가 보이는 작업이에요. 

서: 1970~1980년대에 속도와 효율에 치중돼 개발된 주택 유형에 대한 저의 태도를 드러내는 작업들이에요. 노후화된 도심 부지, 건물에 대한 저마다의 내러티브로 고유한 덩어리와 텍토닉을 제시했다는 점이 의미 있죠. 각 대지가 껴안은 문제를 똑같은 도시의 문제로 바라보지 않고 치열하게 질문하며 씨름했어요. 질문 없는 건축이 건축일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프로젝트: 재해석 / ⓒKyungsub Shin 

 

끝까지 하는 건축가

윤: 최근에는 양평의 프로젝트를 준공하셨죠. 

서: 프로젝트 양평(2023)은 과밀한 도시가 가진 문제를 투쟁적으로 풀어헤친 이전 작품과는 접근이 조금 달랐어요. 느슨한 밀도의 자연녹지 지역에서 개발의 선두를 점하는 땅에 위치하고 있거든요. 건폐율이 20%밖에 허용되지 않는 대지를 어떻게 하면 보다 장악력 있고 영속적으로 쓸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이 바탕이 됐죠.

 

윤: 원형의 코어부가 먼저 눈에 띄어요. 

서: 코어의 위치와 볼륨에 대해 많은 연구를 했어요. 이런 근생건물의 경우 대지의 제약과 기능적인 요구 사항들을 고려하다 보면 건축물의 정체성을 만드는 것이 결국 코어일 때가 많거든요. 또 자세히 보면 매스가 미세하게 세 부분으로 분절된 것을 알 수 있어요. 높이와 층수 제한 내에서 의도한 덩어리감을 표현하기 위해, 작은 건물임에도 불구하고 제안한 디자인이에요. 벽돌의 크기도 각 매스마다 아래부터 3분의 1, 2분의 1, 그리고 원래 크로 세 가지 크기 변화를 줘서 미묘한 질감을 만들었어요. 시공자와 협의하기 위한 디테일 모형도 따로 만들었는데요. 처음에는 정말 벽돌을 구워 만들어 보려다가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선회했어요. (웃음)

 

윤: 자세히 알수록 ‘이렇게까지?’ 싶은 의지가 느껴지는 건 이번 프로젝트에서도 예외가 없네요. (웃음) 처음의 의도를 끝까지 끌고 나가는 힘은 어디서 오나요? 

서: 건축은 정말 많은 조율과 협의, 타협의 연속 또 연속이에요. 현실과 부딪힐 수밖에 없는 지점은 오기 마련이고 버틴다고 해결되는 문제도 아니지만, 타협점을 최대한 뒤로 늦추려고 최선을 다하죠. 이 프로젝트의 경우 옅은 색의 벽돌을 사용해야 의도한 덩어리의 질감을 드러낼 수 있으리라 생각했어요. 원래 사용하고 싶었던 자재가 따로 있었지만 예산상 어려웠죠. 발품을 판 결과 중국에서 들여온 고벽돌을 가공해 사용했어요. 의도한 효과를 지키면서 대체할 수 있는 재료를 찾아냈죠.


윤: 많은 에너지를 쏟을 수밖에 없겠어요. 

서: 방법은 찾아나가야 하는 거니까요. 그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본질을 지키는 것에 최대한 집중하고 여타 방법적인 면의 타협과 도전은 무릅쓸 줄도 알아야 하는 것 같아요.

 

쓰는 건축가

윤: SNS에 프로젝트의 과정이나 여행기를 촘촘하게 남기고 계시더라고요.

서: 어렸을 때부터 글 쓰는 것을 좋아했어요. 저의 건축적 개념을 전달할 수 있는 좋은 도구 중 하나가 글이라고 생각해요. 어떤 형식이 될지,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중요한 건축적 생각들을 글로 정리하고 소통할 수 있는 작업을 하는 게 항상 품고 있는 목표예요.


윤: 지금이라도 이룰 수 있는 목표 같은걸요. 

서: 그러려면 더 열심히 써야 한다는 생각이 있는데, 시간을 못 들이고 있어요. 건축 작업에 몰입할 때의 날 선 저와 글을 집중해 쓸 때 저의 모드가 다른 것 같아요.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선 여유와 내공이 조금 더 필요하지 않나 생각해요.


윤: 소장님의 독서 취향이 궁금해져요.

서: 소설을 좋아해요. 작가 중엔 슈테판 츠바이크를 특히 좋아하고요. 한번 펼치기가 어렵긴 해도, 좋은 글은 책 하나 펼친 것만으로 다른 세계로 단숨에 데려가곤 하잖아요. 가장 간편하지만 강하게 지각과 정서를 환기시키는 힘이 독서에 있는 것 같아요.

 

프로젝트 양평 / ⓒPHSG  

 

발자국을 확인하는

윤: 지난 2021년에는 1년간 스위스에서 지내셨죠. 떠나게 된 이유와 출발할 때의 마음가짐이 어땠는지 궁금해요.

서: 국토교통부의 지원으로 해외에서 아지트스튜디오의 작업을 이어나갈 수 있는 기회가 생겼어요. 아지트스튜디오의 객원 파트너이기도 한 허근일 소장 현지 사무소에서 근무하는 형태로 지원을 받아 함께 가게 됐고요. 덕분에 스토커 리 아키테티(공동대표 멜라니 스토커, 이동준)와 무척 밀접한 시간을 보내다 왔죠. 하지만 스위스 건축에 동경이나 미화된 시선을 가지고 간 것은 아니었어요. 빡빡한 서울이라는 사회에서 건축가로서의 삶과 완전히 반대인 환경에 놓이게 된다면 무엇을 감각하게 될지 궁금했어요. 실제로 매우 다른 동력을 가진 두 사회와 그렇기에 다를 수밖에 없는 건축의 면모를 가까이 관찰한 시간이 됐죠. 

 

윤: 어쩐지 남미 여행이 오버랩 돼요. 우리와 다른 건축이 일어나고 있는 세계의 사회적 맥락을 유심히 본다는 점에서요. 

서: 건축은 건축이 놓이는 사회와 태생적으로 운명을 같이하잖아요. 서로 다른 역사적, 사회적 배경에 대한 고려 없이 건축의 우열을 가릴 것이 아니라 그 차이가 어디서 왔는가를 이해하자는 거죠. 그래야 다시 돌아왔을 때 한국의 도시에서는 어떻게 의미 있는 건축을 만들어낼 것인가 제대로 고민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스위스 건축은 우리나라처럼 높은 밀도와 복잡한 시스템에서 발생한 현대건축과 결이 무척 달라요. 유럽에서 제2차 세계대전을 겪지 않은 중립국이라는 것도 중요한 차이를 만들었고요. 인근의 독일, 프랑스 등 제국주의 역사를 지닌 도시들이 가지는 웅장함을 스위스 도시에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어요. 대신 아주 작은 규모의 지방마다 특색 있는 행정과 법, 수공예 등의 요소들이 각 지역 건축의 토대가 됐고 여전히 살아 움직이고 있죠.

 

윤: 소장님이 지냈던 지역은 마리오 보타의 터전이었다고 들었어요.

서: 이탈리아 북부와 닿아 있는 티치노주의 멘드리지오라는 지역에서 살았어요. 마리오 보타의 사무실과 그의 작업들, 그가 세운 학교까지 있는, 말 그대로 마리오 보타의 동네였죠. 마리오 보타와 그 밑에서 일했던 건축가, 그리고 줄줄이 이어지는 지역 건축가의 계보가 인상 깊었어요. 그 연속 위에 스토커 리 아키테티가 있었고, 그들과 함께 일했던 허근일 소장과 저, 즉 아지트스튜디오가 있었고, 또 저보다 반 세대 뒤에 있는 젊은 후배들이 있었죠. 이렇게 4~5세대가 넘는 삶의 서사들이 뒤섞이면서 함께 움직이는 듯한 느낌을 받았던 시간이었어요.

 

윤: 계보 있는 지역 건축가 사이에 이방인으로 자연스럽게 스며들 수 있었던 것이 신기해요. 

서: 그동안 쌓아온 경험 덕분에 정곡으로 찔러 들어가 밀도 있게, 그리고 주도적으로 즐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전문가 대 전문가로 그들과 솔직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던 거죠. 서로의 작업에 대해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고 논쟁을 벌이기도 했어요. 무엇보다 스토커 리 아키테티의 모두가 진심으로 가족의 자리를 내어줘 감사했어요. 돌아올 무렵, 가볍게 떠나기엔 몸도 마음도 쉽지 않은 ‘이방인 로컬’이 되어 있더라고요.

 

윤: 새로운 입장과 환경 속에서, 내가 얼마만큼 자랐는지가 온몸으로 체감되셨겠어요.

서: 특별히 좋았던 점은 20대에 배낭여행을 하며 봤던 도시와 건축을, 나의 건축을 하는 지금 시점에서 다시 볼 수 있었다는 것이었어요. 새로운 관찰과 깨달음이 되더라고요. 그 과정에서 내 작업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얻기도 했고 확장된 저변을 확인하면서 자신감과 힘이 생겼죠. 돌이켜보면 스스로 만들어 낸 여러 기회와 도전들이 좋은 자극과 양분이 되어온 것 같아요. 그 여정 속에서 새로운 경험들이 당장 소화될 때도 있는가 하면, 시간이 조금 흐른 후에 소화되는 경우도 있었죠. 어찌 됐든 끊임없이 추구하던 나만의 발자취와 질문들이 외부 자극으로부터 원동력을 확인하며 더 견고해졌다고 말하고 싶어요.

 

윤: 지금은 원래의 자리에서 견고함에 견고함을 더해 나가고 계신 때인 것 같아요. 

서: 새로운 도전도 너무 좋지만, 일상을 단단히 지탱하는 것은 성실하게 작업을 일구어 가는 하루들이잖아요. 한 발 한 발 비루하고 치열하게, 그러나 충만한 매일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아지트스튜디오의 확장과 발전을 꿈꾸면서요. (웃음)

 

서자민은 2023년 8월호에서 김영수(모어레스 건축사사무소 대표)의 오늘을 듣고 싶어 했다.

 

 

 

 

월간 「SPACE(공간)」 668호(2023년 07월호) 지면에서 더 많은 자료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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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자민
서자민은 연세대학교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삼우종합건축사사무소에서 일한 후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건축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이후 원오원아키텍스에서 실무를 쌓았다. 2013년 아지트스튜디오 작업실을 공동설립했으며, 2017년부터 아지트스튜디오 건축사사무소의 대표 건축가로 건축 작업을 지속하고 있다. 2021년 국토교통부 건축설계 인재육성사업에 선정돼 한국과 스위스를 오가며 활동했다. 현재 고려대학교 건축학과 겸임교수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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