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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CE 학생기자] 예술가와 공명하는 설계: 미술관이 예술가를 담기까지 (2)

18기 SPACE 학생기자
진행
박지윤 기자

국립현대미술관(MMCA), 서울시립미술관(SeMA) 등 기획전시 중심의 종합 미술관은 전시마다 주제와 작가가 다양하게 바뀌는 형태로 대중에게 문화예술을 전달한다. 이와는 조금 다른 형태로, 일종의 ‘기념 미술관’으로서 한 개인을 집중하여 조명하는 미술관이 있다. 기념 미술관에서는 조명하는 예술가의 삶과 작품을 온전히 담아내고자 하는 다양한 방법들이 시도된다. 그 방법 중 하나가 미술관 설계다. 대표적 기념 미술관들은 어떤 방식과 요소를 통해 예술가를 담아내고 있을까? 「SPACE(공간)」 18기 학생기자(김보경, 박민정, 박재아, 조범희)가 자료 조사, 현장 조사, 건축가와의 인터뷰 등을 통해 이를 해석해 본다.


4. 땅 위에 새기다: 양구군립 박수근미술관

 

박수근(1914~1965)

박수근은 한국 근현대 미술을 대표하는 화가 중 하나로, 일제강점기부터 한국전쟁까지의 현대사를 거치면서도 붓을 놓지 않았다. “나는 인간의 착함과 진실함을 그려야 한다는 예술에 대한 대단히 평범한 견해를 가지고 있다라는 그의 언급처럼, 박수근은 시골의 가난했던 농민들의 생활 정경을 주 소재로 택하였다. 그의 그림은 소박하면서도 간결하다. 물감을 두텁게 겹쳐 발라 툽툽하면서도 거칠게 표현하는 캔버스의 표면은 박수근의 특징적인 화법으로, 보통 질감이 비슷하다는 점에서 화강암과 많이 비교된다.

 

건축사사무소 메타(설립자 이종호)의 양구군립 박수근미술관(2021) 


작업을새기다

박수근미술관이 지어질 당시 건축가 이종호가 가장 유심하게 생각했던 점은 바로 박수근의 회화 기법, 그 중에서도새긴다라는 표현과 박수근의 마티에르▼1였다. 이종호는 박수근의 미술이 캔버스 위에 물감이 덧입혀지는 방식이 아닌 새겨지는 방식이라 이해했고, 자신의 건축 또한 박수근 생가 터의 자연과 호응해, 그저 건물이 얹혀지는 것이 아니라 그 지형에 새겨지기를 바랐다. 이 새긴다는 행위는 결코 인위적인 개입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이종호는 박수근의 생터를 지나던 하천과 지형의 굴곡, 산의 능선을 최대한 해치지 않으며 그곳에 건축이 녹아들기를 희망한다. 박수근 미술관이 도로와 마주 보는 면들은 모두 화강암 벽으로 둘러싸여 외부와 단절되지만 화강암 벽 아래로 기존에 지나던 하천이 원래의 굴곡을 유지한 채 흐를 수 있도록 벽에 홈을 팜으로써, 벽을 답답함이 아닌 집중을 위한 가림막의 역할로 전환한다. 육중한 화강암 매스와는 대조되게 조용히 미술관 아래를 관통하며 흐르는 하천은 전시장 내부에 조용히 소리를 흘린다.

 

유화 마티에르와 화강암

두 번째로 박수근의 유화를 매우 메마른 상태에서 덧대는 형태와 이종호의 화강암 벽이 주는 재료의 시각적 일치는 감상에 있어서 뛰어난 시너지를 가져다준다. 이종호는 이 시각적 일치감을 십분 활용하여, 건축의 입구를 관람객들에게 바로 보여주지 않고, 화강암 벽으로 두르는 선택을 한다. 미술관 입구까지 이어진 거대한 화강암 곡면은 관람객이 박수근의 작업을 맞이하기 전 박수근과 관람객을 이어주는 매개체로서 기능한다.
박수근미술관은 크게 두 전시 공간으로 나뉘며, 두 전시 공간 사이의 통로는 양 옆이 모두 통창으로 뚫려있는데, 이 창밖의 풍경 또한 외부로 향하는 것이 아닌 건물 안으로 굽어, 화강암의 벽 혹은 다른 쪽의 미술관을 볼 수 있도록 조정하였다. 박수근미술관은 전시를 관람하는 중간중간에 내부를 향하는 창문을 환하게 터, 박수근의 작업을 보던 시야를 옮겨 화강암 벽 또한 자연스럽게 감상의 대상이 되게끔 유도한다. 화강암의 면들과 돌 사이로 삐져나오는 풀들 그리고 그 화강암 사이를 유연하게 흐르는 시냇물은 이종호가 보여주고자 했던마티에르새기다의 개념을 마치 액자 안의 작품처럼 한 창틀 안에서 면밀하게 보여준다.
마티에르(matiere)란 질감(質感)을 뜻한다금속목재광물 따위의 물질이나 재료라는 뜻에서 물질이 지니고 있는 재질질감의 뜻으로 확대되었다흔히 유화물감의 다양한 기법에 의해 나타나는데물감의 겹침광택필촉의 흔적팔레트나이프의 효과 등에 의해 풍부한 표현력을 얻는다.
박재아 학생기자



5. ()로의 회귀 : 제주도립 김창열미술관

김창열(1929~2021)
김창열은 한국의 현대화가로 작품활동 초기에는 추상화 작업이 주를 이루었으나, 이후 물방울이라는 소재를 다루면서물방울 작가로 불리기 시작하였다. 작품 초기, 1950~1960년대에는 즉흥성과 격정적 표현을 중시한 앵포르멜▼2에 참여하여 그가 겪은 한국전쟁의 상흔을 추상화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이후 약 50여년 동안은 지속적으로 물방울을 캔버스, 신문지, 나무판, 천자문 등 다양한 배경 위에 그려오며 한국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작가로 자리매김했다.

 

물방울 : 존재와 회귀

김창열과 물방울의 인연은 작업 도중 뒤집어 놓은 캔버스 뒷면에 튄 물방울이 햇빛을 받아 영롱하게 빛나는 장면을 목격하면서 시작된다. 그에게 물방울은 빛과 그림자에 의해 비로소 존재가 정의된다. 물방울의 음영 속에는 빛과 그림자가 공존하며 변화의 잠재성을 품고 있다. 이러한 물방울이 지니는 특성과 형체, 빛에 주목하면서도 그는물방울은 물방울일 뿐이다라고 이야기한다. 음과 양을 통한 물방울의 존재 인식에서 더 나아가 그가 더욱 주목한 점은 무엇인가. 그는 물방울을 그리는 행위는 모든 것을 물방울 속에 용해시키고 투명하게 무()로 되돌려 보내기 위한 회귀의 과정이라고 말한다. 물방울의 투명성을 강조하며 모든 것을 환원하기 위해 역설적으로 배경에 변화를 주는 그의 작업 과정을 살펴보면, 김창열 화백 작품 세계의 본질은 물방울의 이미지적 표현에 있는 것이 아니라, 물방울을 그리는 행위와 관념적 세계관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앵포르멜은 비정형’, ‘부정형이라는 뜻을 가지며앵포르멜 운동은 제 2차 세계 대전 이후 정형화된 기하학적 추상미술에 대한 반발로 일어난 미술 표현 경향을 말하며 격정적이고 주관적인 특징을 가진다.

플랫/폼 아키텍츠(대표 홍재승)의 김창열미술관(2016)

사진제공 제주도립 김창열미술관

땅으로의 회귀
홍재승은 김창열의 물방울 작업에서 나타나는 물방울의 관념적 의미와 음양이 공존하는 물방울의 특성 모두를 담아낸 미술관을 설계했다. 물방울을 그리는 행위에 담긴 회귀 개념은 미술관이 제주시 한림읍 대지에 배치되어 있는 모습을 통해 드러난다. 미술관은 건축물로서의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아닌 경사진 땅에 스며들어 터를 이루고 있다. 이는 물방울의 관념적 의미를 미술관에 적용하여 미술관이 땅으로 회귀한다는 개념을 건축 어휘를 통해 형상화한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미술관의 매스는 제주도 지역의 자연 경관을 드러내며 대지의 맥락 또한 담아낸다.

 

빛과 그림자의 공존

다음으로 김창열미술관의 가장 중심이 되는 빛의 중정과 미술관 건물의 관계는 물방울에 동시에 존재하는 빛과 그림자의 건축적 포착이다. 빛의 중정은 미술관의 9×9 큐브형 배치 중앙을 비워놓은 야외공간이다. 미술관 밖의 예술인 마을길부터 전시실 관람 동선, 중정의 회랑까지의 시퀀스는 빛과 어둠을 연속적으로 경험할 수 있게 하는 건축적 산책 어휘다. 시퀀스의 종착지인 빛의 중정에는 김창열의 설치 작품삼인이 배치되어 있다. 삼인을 통한 환상적인 하이라이트로 마무리하는 이 경험을 통해 관람객은 자연스럽게 물방울의 빛과 그림자 그 자체를 그리고 그들이 가진 변화의 잠재성을 경험할 수 있다.
김보경, 조범희 학생기자

[SPACE 학생기자] 예술가와 공명하는 설계: 미술관이 예술가를 담기까지 (1)

[SPACE 학생기자] 예술가와 공명하는 설계: 미술관이 예술가를 담기까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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