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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CE 학생기자] 예술가와 공명하는 설계: 미술관이 예술가를 담기까지 (1)

18기 SPACE 학생기자
진행
박지윤 기자

국립현대미술관(MMCA), 서울시립미술관(SeMA) 등 기획전시 중심의 종합 미술관은 전시마다 주제와 작가가 다양하게 바뀌는 형태로 대중에게 문화예술을 전달한다. 이와는 조금 다른 형태로, 일종의 ‘기념 미술관’으로서 한 개인을 집중하여 조명하는 미술관이 있다. 기념 미술관에서는 조명하는 예술가의 삶과 작품을 온전히 담아내고자 하는 다양한 방법들이 시도된다. 그 방법 중 하나가 미술관 설계다. 대표적 기념 미술관들은 어떤 방식과 요소를 통해 예술가를 담아내고 있을까? 「SPACE(공간)」 18기 학생기자(김보경, 박민정, 박재아, 조범희)가 자료 조사, 현장 조사, 건축가와의 인터뷰 등을 통해 이를 해석해 본다.


 

1. 숨겨진 겹겹의 방: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

 

장욱진(1917~1990)

장욱진, 1990, 밤과 노인, 캔버스에 유채, 41X32cm 자료제공 장욱진미술문화재단

장욱진은 손바닥만 한 화폭에 순수하고 정겨운 시골 생활을 주제로 집, 나무, 가축을 주로 그린 현대 화가다. 그의 작품은 어린아이의 그림같이 천진하며 향토적인 느낌을 주지만, 전쟁 속에서도 창작에 몰두하려는 굳은 의지와 삶에 대한 성찰 또한 엿볼 수 있다. 이러한 격동의 시대를 겪으며 그는 유일한 안식처이자 화실인 집에 대해 큰 애정을 가지게 됐으며 집을 옮길 때마다 작품 양상도 변화한다. 또한 그는 나는 심플하다를 외치며 자연 속에서 비움을 실천하는 삶을 지향했고 이 태도는 작품에서도 드러난다.

-페레이라 건축(공동대표 최성희, 로렌트 페레이)의 양주시립 장욱진미술관(2014)

사진 ©박완순

깊이를 숨긴 방과 몸체

양주시립 장욱진미술관은호작도속 호랑이를 모티브 삼아 지어졌다는 해석이 많다. 하지만 최페레이라 건축은 해석은 개인에게 맡긴다방과 몸체라는 개념으로 공간을 풀어나간다. 건축가는 장욱진 작품 속 소박한 집은 인간의 삶을 담는 근원적인 공간으로, 깊이를 가지지만, 방이 품고 있는 역사를 우리는 속속들이 알 수 없기에 그 깊이를 숨기고 있다 고 해석한다. 장욱진 미술관의 형태는 작은 방에서 시작되어 여러 단위공간들이 좁은 대지의 굴곡을 따라 예각과 둔각으로 연결되고 꺾여 하나의 유기적인 몸체, 즉 매스를 이룬다. 자유롭게 꺾인 각은 시야를 부분적으로 허용하여 내부를 한눈에 파악할 수 없다. 이로 인해 동선을 따라 걸으며 공간의 확장과 축소가 반복되어 관람객들은 매 걸음마다 예측할 수 없는 장면을 접한다. 여러 방향으로 뻗은 단순한 선들이 독특한 공간감을 만듦에 따라 관람객은 자신이 어디쯤 와있는지 모호함을 느끼고깊이를 숨긴 방을 공간적으로 경험할 수 있게 된다.

 

외장재의 심플함

건축가는 장욱진이 강조한심플함에 주목하여 대다수의 모뉴멘탈한 스케일의 미술관과는 차별되는 단순하고 모던한 형태로 구현하고자 백색의 폴리카보네이트를 지붕과 외벽 전체에 사용했다. 단일 외장재는 건물에 통일감을 주고, 투명성을 가진 재료의 특성은 미술관이 풍경 속에 녹아들길 바라는 건축가의 의도를 극대화한다.

 

장욱진의 자연관과 내부의 자연 산책

장욱진 미술관은 여느 미술관과는 다르게 외벽 곳곳에 큰 스케일의 창을 내어 풍경을 안으로 끌어들인다. 흰 벽과 대비되는 창 프레임 너머의 풍경은 관람자로 하여금 작품을 감상하는 와중에도 잠시나마 자연에 집중하게 만든다. 이러한 요소들은 공간 내부에서 시각적 산책을 가능하게 하며 자연과의 공명을 중시한 장욱진의 철학을 담고 있다. 

박민정 학생기자



2. 문자추상의 건축화: 이응노미술관


이응노(1904~1989)


이응노, 구성, 1972, 한지에 먹, 콜라주, 274x132cm 자료제공 이응노미술관

이응노는 전통적인 동양의 수묵화와 서양의 현대 미술을 접목시켜 새로운 동양적 추상화를 창작한 한국 현대미술사의 거장이다. 이응노 화백은 정치적 망명을 위해 1958년 프랑스로 건너가 파리에 거주하며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구축하는데, 파리에서 그는 그곳의 사실주의, 표현주의적 양식에 영향을 받아 자신만의 전통 문인화풍을 추상화적 화풍으로 발전시킨다. 이응노의 대표적인 추상 작업에는 문자추상 시리즈가 있다.

문자추상은 한글, 한자의 획과 점이 가진 패턴을 추상한 후 조합하는 방식으로 당대 입체주의 아래 시도된 콜라주 기법으로 제작됐다. 이응노는 한지, 신문지 조각, 솜뭉치 등을 찢고, 뭉치고, 오려 붙이고, 그 재료들이 화면에 골고루 덮이게 하여 콜라주 조각들의 조화를 꾀한다. 이러한 이응노의 콜라주 기법은 작품이 평면의 회화가 아닌 입체적인 반-조소로 느껴지도록 한다.


보두엥 아키텍츠(대표 로랑 보두엥)+정림건축종합건축사사무소(대표 김기한)의 이응노미술관(2007)



문자추상의 획이 담긴 평면

이응노 미술관은 문자추상의 추상적 조형과 반-조소적 입체감을 건축적으로 확장해 표현한다. 로랑 보두엥은 문자추상 작품 ()’의 조형적 요소에서 설계를 시작한다. ‘()’의 획 모양은 건물의 평면에 담겨있는데, 획이 이어진 형상은 동선을 통해, 획 사이 둘러진 빈 틈은 중정과 마당을 통해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다. 문자추상을 시각적으로 느낄 수 있는 건축적 요소는 지붕이다. ‘()’에서 반복되는 가로선은 지붕의 형상이되고 이는 실내의 빛을 조절하는 역할을 한다.

 

동양과 서양의 조화

문자추상을 건축 언어로 표현한 지붕 구조는 한국 전통 건축의 서까래를 연상시키는 한편 하얀 콘크리트를 사용함으로써 백색의 모더니즘을 동시에 떠오르게 한다. 또한 틈을 건축적으로 표현한 마당과 중정은 현대건축의 순수한 벽면과 램프를 통한 건축적 산책로 사이의 채나눔 마당의 모습으로 동양과 서양 건축의 요소가 조화된 모습을 보여준다. 이러한 조화는 프랑스 건축가 로랑 보두엥과 한국 건축사무소 정림건축종합건축사사무소의 협업 과정에서 도출된 것이겠지만, 서양 사조의 영향을 받으며 자신의 동양적 화풍을 나름의 방식으로 발전한 이응노의 작품 또한 연상케 한다.

김보경 학생기자


3.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환기미술관


김환기(1913∼1974)

김환기, Universe 5-IV-71 #200, 1971, 코튼에 유채, 254×254cm 자료제공 ()환기재단·환기미술관


김환기는 한국적 정서를 바탕으로 전통미를 선명하게 드러내면서도 국제적으로 공감되는 조형미와 색감 등으로 현대화하여 고유의 예술세계를 구축한 한국 추상미술 1세대 화가다. 그는 한국뿐만 아니라 뉴욕, 파리 등 국제적으로 활동했는데, 파리와 서울에서의 활동이 절제된 조형성 속에 한국 고유의 서정 세계를 캔버스에 구현한 시기였다면, 뉴욕에서는 점, , 면 등의 순수 조형 요소를 활용하여 한국 서정을 심화시켰다. 점화(點畵)는 그가 발전시켜 온 추상표현의 결실로 한국추상미술을 전세계에 알리는 대표적인 작품이 됐다.

그는 정체성 탐구를 위해 자신이 살았던 한국을 돌아보았고, 한국의 자연과 소재를 선택하였다. 그는 산과 강, , 구름과 같은 자연요소와 백자, 목가구 등의 소재에서 관찰할 수 있는 조형요소를 서양재료 및 기법을 활용하여 추상화한다. 자연과 전통 요소에서 영감을 얻은 김환기의 창작과정은 더욱 근본적인 보편성을 향해 나아갔으며, 이는 원초적인 조형 요소만으로 캔버스를 채우는 점선면 추상에 이르렀다. ‘전면점화(全面點畵)’라 불리는, 점들로 채워진 화면은 김환기가 끊임없이 발전시켜 온 추상표현의 정점인 동시에 그의 숭고한 추상세계로 남았다.


규승우 아키텍츠(대표 우규승)의 환기미술관(1992)

촬영협조 환기미술관

자연과 전통에 둘러싸인 추상의 공간

건축가 우규승이 주목한 것은 공간과 김환기의 정서·예술 사이의 조화였다. 그는 김환기 정체성 형성의 시작점이자 작품의 주제로 자주 나타난 자연과 어울리고 한국의 정취가 있으며, 거기에 현대적 세련됨을 더해 조화를 실현시키고자 했다. 이를 위해 미술관에 자연을 끌어들이고 내외부에 전통과 현대적 요소를 간접적으로 표현해, 미술관을 거니는 동선 속에서 느끼게끔 의도했다.

조화를 위한 시도는 미술관의 위치와 외관에서부터 확인할 수 있다. 동쪽으로는 산성과 서쪽으로는 인왕산의 바위가 보이는, 서울 부암동 좁은 골목에 위치한 미술관은 김환기가 영감의 근원으로 삼을 만한 수많은 자연과 전통요소로 둘러싸여 있다. 상당한 경사에 자리잡고 있어, 진입구의 계단을 올라섰을 때 비로소 두 볼트(vault) 형태의 지붕이 얹혀진 본관 입구가 멀리 나타난다. 미술관 외관은 한국적 풍토에 적합한 화강암을 주 재료로 하고, 지붕은 동판을 사용해 어둡게 표현했다. 화강석과 동판의 색채 대비는 마치 전통 한옥의 느낌을 자아내는데, 이는 본관 앞의 서정적인 마당과 조화롭게 어우러지며 한국적 분위기를 풍긴다.

본관에 들어가 처음 마주하게 되는 8m 입방체의 중앙 전시실은 모두 백색으로 마감된 공간으로, 그 안에 담긴 수화의 추상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한다. 현대적 분위기를 자아내는 전시공간 속에서도 자연과 전통의 요소를 담아낸 곳들을 지속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지면에 맞닿은 부분은 화강암을 사용해 땅에서 띄워진 것처럼 인식되는데, 이는 한옥 바닥이 지면에서 떨어져 있는 전통적 구조를 표현한 것이다. 또한 전시 관람 동안 외부 경사를 확인할 수 있게 창과 문을 두고, 전시실에 간접일광을 들여 외부 자연과의 주기적 연계를 꾀하여 곳곳에 김환기 의 예술과 정서를 담아내고자 했다.

 

자기 탐색의 여정

중앙 전시공간 주위를 둘러 올라가는 수직계단은 전시실 내부의 동선, 외부 자연과의 연계 동선을 끊임없이 형성하는데, 이 환형체계 동선의 시작과 끝은 정의되지 않는다. 이러한 시퀀스는 관람객 스스로가 환기미술관 공간을 포함하여 작품··자연 요소를 엮고 재구성하여 개별 동선을 조직하는 경험을 제공한다.

김환기가 작고 전까지 치열하게 성찰한 것은 나는 누구인가?’ 라는 철학적 물음이었다. ‘나는 누구이고, 어디서 왔고, 무엇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가에 대한 대답을 찾기 위해 그는 고국의 자연과 전통을 근본 삼아 예술과 마주했고, 이를 통해 구축된 자신의 정체성을 바탕으로조형적 시()’를 표현했다. 미술관 전층을 수직적으로 오르내리고, 수평적으로 이어지며 끊임없이 형성되는 개개인의 여정, 거기에서 파생되는 새로운 경험과 성찰을 할 수 있는 환기미술관은 미술관의 기능과 역할 너머 그가 끊임없이 추구하였던 철학을 온전히 담아내고자 한 것이다.

조범희 학생기자


[SPACE 학생기자] 예술가와 공명하는 설계: 미술관이 예술가를 담기까지 (1)

[SPACE 학생기자] 예술가와 공명하는 설계: 미술관이 예술가를 담기까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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