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MSPACE는 국내 최고의 건축 포털 매거진입니다. 회원가입을 하시면 보다 편리하게 정보를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Login 회원가입
Naver 로그인


[오늘의 건축가] 뿌리가 땅을 말할 때: 김기준

사진
아뜰리에 김기준(별도표기 외)
진행
윤예림 기자

thumbnail ©Changki Kim

 

「SPACE(공간)」 2023년 6월호 (통권 667호)

 

‘오늘의 건축가’는 다양한 소재와 방식으로 저마다의 건축을 모색하는 젊은 건축가를 만나기 위해 기획됐다. 그들은 무엇을 좋아하고, 탐색하고, 고민하고 있을까? 「SPACE(공간)」는 젊은 건축가와 대화를 나누면서 그들을 하나의 카테고리로 묶기보다는 각자의 개별적인 특성을 발견하고자 한다. 인터뷰는 대화에 참여한 건축가가 다음 순서의 건축가를 지목하면서 이어진다.

 

 

 

​인터뷰 김기준 아뜰리에 김기준 대표 × 윤예림 기자

 

창밖은 지금

윤예림(윤): 줌으로 진행하는 ‘오늘의 건축가’ 인터뷰는 처음이에요. 실은 최근의 국내 작업 내력을 보고 한국에 계실 수도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김기준(김): 프로젝트에 따라 종종 독일과 한국을 오가며 작업하고 있는데요. 작년에 이례적으로 한국에 머문 기간이 길었어요. 2016년부터 베를린을 본거지로 사무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윤: 간접적으로나마 여행하는 기분이 들어 조금 설레요. 주변 풍경을 보여주실 수 있나요? 

김: 지금 보이는 곳은 저희 집 거실이에요. 사무실은 공간이 하나라 팀원에게 방해가 될 것 같더라고요. 바깥도 보여드릴게요. 아침에 비가 살짝 내렸나 봐요. 맞은편에 보이는 건물은 유치원이에요. 매일 아침마다 아이들이 등원하는 소리가 들린답니다.

 

윤: 한국은 늦은 오후인데 화면에서는 아침의 싱그러움이 느껴지네요. 주변 건물들 외관이 독특해 보여요.

김: 독일이 1950년대부터 도시 개발 수단으로 개최해온, IBA라는 국제건축박람회에서 지어진 아파트에 살고 있어요. 박람회를 통해 건축가들이 다가오는 시대를 반영한 주거, 상업, 문화 등의 건물을 지으며 도시경관을 만들어왔거든요. 제가 살고 있는 곳 일대는 1990년대 초에 조성된 일종의 시범단지예요.

 

윤: 역사적인 장소에 살고 계시네요. 사무실도 가까이 있나요?

김: 사무실은 여기서 동쪽으로 꽤 떨어진 거리에 있어요. 이곳 서베를린은 통일 전에 자리 잡은 동네의 분위기가 아직까지 이어져오는 경우가 많은데, 동쪽은 느낌이 또 달라요. 소위 말하는 힙한 에너지를 발산하는 지역이 근 몇 년 사이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는 듯해요. 전부터 서쪽 지역에 계속 살았기 때문에 사무소는 동쪽에 마련했어요.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이니까요.

 

윤: 요즘 베를린 하면 힙스터 같은 키워드가 따라붙곤 하잖아요. 소장님이 10여 년간 살아본 베를린은 어떤 도시던가요? 

김: 일본의 소도시처럼 시간과 함께 나이 들어가는 도시가 있다면 베를린은 그런 도시는 아닌 것 같아요. 제가 베를린에 온 지가 어느덧 13년 전인데, 그때나 지금이나 그대로 젊은 느낌이에요. 한편으론 도시가 자본적으로 많이 풍요로워진 느낌도 있어요. 어쩌면 자본이 부족했던 그 시절이 힙함에는 더 가까웠는지도 모르겠지만요. 불확실한 시대가 젊은 예술가들과 만나면서 베를린 특유의 문화를 만들었다고 생각하거든요. 지금은 그중 많은 부분이 소비의 영역이 된 듯도 싶지만, 이런 변화를 바라보는 것이 흥미로워요.

 

 

©Changki Kim


고향이 둘인

윤: 페터 춤토르를 비롯한 여러 사무소에서 경험을 쌓다가 베를린에 정착하셨어요. 오랜 해외살이를 했더라도 타국에 사무소를 개소하기란 현실적으론 다른 이야기일 텐데, 정착을 결심한 계기가 무엇인가요?

김: 개소를 한 때가 스위스와 독일에서 생활한 지 10년을 채운 시점이었어요. 디너 앤 디너 아키텍텐, 바코우 라이빙어 등의 사무소에서 경험을 쌓으면서 가능성을 본 것 같아요. 팀 안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공모전들의 성과가 좋았거든요. 그러다 보니 “여기 공모전에서 내가 통하나 보다. 여기서 뭔가 시작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착각을 했죠. (웃음) 되돌아보면 개소를 한 것 자체는 한국의 시대 분위기에서 영향을 받은 것 같아요. 가령 “내 이름을 건 작업을 해야겠다”는 목표 의식 같은 거요. 독일에서는 건축을 좋아하고 잘하는 친구들도 자기 사무실을 열겠다는 생각을 많이 안 하더라고요. 독일의 건축 생태계에서 작은 규모의 아틀리에는 성장이 어렵기도 하고요. 하지만 저는 학업과 실무라는 배움의 단계 이후에도 이곳의 건축 환경을 더 경험하면서 저의 관점을 다듬어가고 싶었어요.

 

윤: 그렇다면 독일에는 소규모 아틀리에가 드물겠네요. 그런 어려움 속에서 어떻게 생존하고 계신지 궁금해요.

김: 유럽의 도시들은 도시 계획과 설계가 이미 명확하게 되어 있는 편이라 도심 내 건물들의 최소 스케일이 상대적으로 커요. 커다란 도시 조직 뒤로 다가구주택 등 휴먼 스케일 건물의 설계 기회가 있는 한국과 달리 대규모의 집합 주거, 업무 시설 등을 필요로 하니 경험 없는 작은 사무소에게는 수주의 진입장벽이 높죠. 감사하게도 첫 프로젝트로 베를린 벡스슈트라세의 한국 레스토랑을 설계한 이후 알음알음으로 작업의 기회들이 연결되고 있어요. 다른 한편으로 한국의 여러 기업들이 유럽에 진출하기 시작하면서 저의 강점을 활용할 기회가 생기기도 했어요. 독일 건축사이면서 한국어 소통이 가능한 건축가가 필요할 테니까요.


윤: 그런 기회로 현대 크래들 베를린 사무소(2020)를 설계하게 되셨군요. 말씀하신 소통이라는 게, 언어의 문제만은 아닐 것 같아요. 겪어보지 않으면 모르는 미묘한 문화의 차이가 있잖아요.

김: 정말 그래요. 저도 실무 경험이 없었다면 이곳 문화를 이해하지 못한 채 훨씬 오랫동안 우당탕탕했을 거예요. 독일은 형식적인 절차가 중요하고, 건조해요. 건축주와 미팅을 한다면 오늘 날씨가 어떠니 따위를 딱 두 마디 하고 세 번째 문장부터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는 식이에요. 또 한번 계획과 협의를 끝내면, 변수 없이 그대로 실현하는 미덕을 중시해요. 그러기 위해 세세한 것 하나하나까지 미리 정하기 때문에 계획 과정에 시간을 몇 배로 많이 들이고요. 가끔 예측 못한 상황으로 무언가 틀어져도 원래 계획대로 끌고 나가려는 의지가 강해서 문제가 생기는 경우도 종종 있죠. 한국은 이보다 확실히 유연한 것 같아요. 작년에 하동을 여행하는데 농촌 풍경이 참 아름다웠어요. 집 위에 가벼운 철제 구조를 올려 고추를 말린다거나 하는 의외성이 쌓이면서 전체의 아름다움을 만들어내더라고요. 수원 성곽 옆 주택(2023) 프로젝트로 한국에서는 처음 설계부터 시공의 전 과정을 맡아 했는데, 현장에서 많은 걸 배웠어요. 시시각각으로 많은 것이 바뀌는 상황이 계속되더라고요. 현장의 분들과 끝없는 ‘딜’을 해야 한달까요? 어쩔 때는 이런 과정이 더 나은 결과를 만들어내기도 하지만, 설계안과 실제가 너무 멀어져버리거나 에너지가 많이 소모되기도 하는 것 같아요.

 

윤: 두 문화를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다는 것이 아뜰리에 김기준만의 특별한 지점이네요. 

김: 단순히 언어와 법을 떠나 독일의 문화와 실무의 노하우를 이해하는 건축가인 동시에 한국에서도 프로젝트를 수행할 수 있는 건축가니까, 저 스스로를 두 나라의 로컬 건축가라고 생각하려 해요.

 

 

벡스슈트라세의 한국 레스토랑 쿡스콕헨(2018) / ©Hanju Kim


계속하는 이유

윤: 지금까지 참여해온 설계공모 작품들을 보면, 적은 인원으로 지속한 것이 놀라울 정도예요. 

김: 프로젝트가 없었던 초기에는 1년에 여덟 개까지도 했어요. 타율은 1할의 반도 안 됐지만요. (웃음) 지금의 사무소는 그때에 비할 에너지는 못 지니지만 그만큼 쌓아온 경험이 대신해 채워주고 있는 것 같아요. 하지만 여전히 목마름이 있고, 힘이 허락하는 한 계속하고 있어요. 공모전에서 개인과 사회가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 읽을 수 있기 때문이에요. 건축은 예술적으로만 의미 있는 행위가 아니잖아요. 그 이상을 읽어내는 능력을 예리하게 유지할 수 있는 가장 좋은 훈련이자 기회의 총체가 공모전이에요. 유럽과 한국의 다양한 공모전에 참여하면서 양쪽 모두에 대한 감수성을 잃지 않기 위해 꾸준히 노력하고 있어요.


윤: 그중 애착이 가는 공모 작품이 있나요? 

김: 이번에 캐나다 퀘벡의 정원인 쟈뎅 드 메티스에서 열리는 국제 정원 페스티벌에 작품이 선정돼 전시를 하게 됐어요. 정원을 설계하는 공모로, 이번 주제는 ‘뿌리’였어요. 사람도 식물처럼 뿌리를 내린다는 말을 하잖아요. 캐나다는 유럽의 식민 지배를 받은 역사가 있고 많은 이주민이 정착해 살아가고 있거든요. 그런 과정을 토착 토양에 외래 식물이 뿌리내리는 것에 빗대어 이야기했어요. 

 

윤: 그와 동시에 소장님의 이야기이기도 하네요. 

김: 현대미술 작가이자 아내인 지니 유와 협업으로 참여했는데, 두 사람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기도 했어요. 저와 아내의 삶과 맞닿은 주제를 직접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라 의미가 있었죠. 한국에서 떠나 산 지 벌써 17년 정도가 됐고 이곳이 20대 이후의 삶에서는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낸 도시지만 여전히 외부인으로 살아가는 느낌이 없지 않아요. 그런데 때로는 이런 모호한 신분으로 산다는 것이 즐거워요. 하나의 문화에 완전히 흡수되고 나면 그 안에서 모두가 절대적이라 생각하는 것에 대해 깊게 고민하지 않잖아요. 하지만 외부인인 저에겐 절대적이지 않은 것들이죠. 여러 방향으로 생각해볼 수 있는 위치에 있어서 좋아요.


 

복스하게너 플라츠 


잘 머문다는 의미

윤: 19세기 도시계획가 카밀로 지테가 쓴 『예술적 원칙에 따른 도시설계』의 국내판이 4월에 출간됐어요(본지 20쪽 참고). 번역을 맡으셨다고요.

김: 베를린에 살면서 도시의 광장과 공원 등의 외부 공용 공간에 관심이 생겼고, 좀 더 알아보고 싶다고 생각했을 때 이 책을 만났어요. 그런데 130년 전에 쓰인 데다가 이해가 쉽지 않아 시간 날 때마다 한 장 한 장 번역을 하다 보니 출판까지 하게 됐어요. 마침 팬데믹으로 일상이 단조로웠던 때거든요.

 

윤: 소장님의 학구적인 취미 덕에 저도 읽어볼 수 있게 됐네요. (웃음)

김: 19세기 유럽의 모습이 한국과 비슷했거든요. 당시 유럽이 기술적으로 빠르게 성장하다 보니 기존 도시의 문화를 잃어버리고 있다고 판단했나봐요. 지테는 도시 공간의 설계가 위생과 기능의 수준에서 끝나면 안 되고, 예술과 균형을 이뤄야 한다고 주장해요. 때마침 한국도 성장 위주의 관점에서 가치관이 많이 바뀌었고 보행자 중심의 도시 등이 화두가 되기 시작하니까 함께 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개인적으로는 도시와 건축에서 좋다고 느낀 공간들에 대해, 두루뭉술하게밖에 말하지 못했던 이유들을 명확히 할 수 있게 된 기회였어요. 


윤: 소장님이 좋다고 느낀 것들에 대해 듣고 싶어요.

김: 마당과 길, 광장과 공원 등의 외부 공간과 풍부한 반응을 만들어내는 건축과 도시가 좋다고 생각해요. 사무실에서 남쪽으로 15분 걸어가면 복스하게너 플라츠라는 공원을 낀 광장이 있어요. 6~7층짜리 건물들에 둘러싸여서 3분의 1정도는 풀밭이 깔려 있고, 작은 놀이터가 조성된 특별할 것 없는 공원이에요. 사람들이 나와 앉아서 점심을 먹기도 하고, 분수에서 물이 나오면 꼬마들이 와서 놀고, 주말에는 장이 서고요. 베를린의 명소라고 말할 순 없지만 이런 별것 아닌 공간이 일상의 만족감을 높여준다고 생각해요.


윤: 도시에 대해 더 이야기하자면, 현대자동차그룹 제로원의 프로젝트로 서울과 베를린에서 진행한 전시 <이동이 머무는 곳(Where the movement stays)>(2021)을 빼놓을 수 없어요. 광화문, 브란덴부르크 문 등 유사한 성격의 서울과 베를린 도시 공간이 나란히 흐르는 영상 작품이 인상 깊었어요. 

김: 서울과 베를린 거주자들의 일상과 도시가로 공간 속 모빌리티 양상을 관찰한 프로젝트예요. 서울과 베를린은 모두 모빌리티 분야에서 고도로 발달한 도시예요. 베를린은 넉넉한 도시 공공 공간 덕에 새로운 교통수단을 유연하게 흡수하면서 체계적인 교통 시스템을 갖추었다면, 서울은 IT 등의 발달된 시스템을 중심으로 모빌리티 기기 분야의 트렌드를 주도하고 있죠. 두 도시는 다르면서도 어떤 요소들에서는 유사한 점이 있기 때문에 그 차이가 더 강하게 느껴진다고 생각해요. 실제로 두 도시를 다니다 보니 비슷한 얼굴을 한 공간들이 눈에 보이더라고요. 예를 들어 프렌츨라우어베르크 지구의 쇤하우저 알레 일대와 서울의 성수역 부근은 과거 생산시설이 있던 동네인데 현재는 젊은 세대를 끌어들이고 있죠. 그 안의 이동 양상이 어떻게 같고 다른지 분석하거나 구태여 말을 보태기보다 그저 보여주는 식으로 함께 공감하고 싶었어요.

 

윤: 전시 설명 가운데 “잘 머물기 위해 이동한다”는 문장이 기억에 남아요. 다른 시간과 환경 사이를 이동하며 머물고 있는 소장님이 생각나기도 했어요.

김: 어딘가에 안락하게 머문다는 것, 한 지점에서 편안히 살 수 있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그만큼 다른 장소로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가능성이 많은 상태라고 생각해요. 우리가 효율성을 추구하는 이유와 같아요. 효율의 측면에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친구와 만나 수다 떨고, 가족과 함께하는 등의 시간을 위해 애써 효율적으로 일하고 여백을 만들어내는 것이잖아요. 일과 자유, 효율과 여백은 대립되는 말 같지만 어찌 보면 상보적인 관계 같아요. 다시 말해 우리가 잘하려 애쓰는 일들이, 결국은 한곳에 오래도록 머물기 위한 것 아닐까요?

 

 

김기준은 2023년 7월호에서 서자민(아지트스튜디오 건축사사무소 대표)의 오늘을 듣고 싶어 했다.​

 

​ 

 

월간 「SPACE(공간)」 667호(2023년 06월호) 지면에서 더 많은 자료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 SPACE, 스페이스, 공간
ⓒ VMSPAC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김기준
김기준은 고려대학교 건축학과에서 학사를, 베를린 예술대학 건축학과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했고 취리히연방공대 건축학과에서 수학했다. 이손건축과 페터 춤토르, 바코우 라이빙어, 디너 앤 디너 아키텍텐에서 실무 경험을 쌓았으며 브라운슈바이크 공대와 고려대 건축학과 등에 출강했다. 2016년, 베를린 기반의 건축사무소 아뜰리에 김기준을 설립한 후 독일과 한국을 중심으로 다양한 성격의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