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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결에 길을 내는: 이병엽

사진
박지윤(별도표기 외)
진행
윤예림 기자

「SPACE(공간)」2023년 3월호 (통권 664호) 

 

‘오늘의 건축가’는 다양한 소재와 방식으로 저마다의 건축을 모색하는 젊은 건축가를 만나기 위해 기획됐다. 그들은 무엇을 좋아하고, 탐색하고, 고민하고 있을까? 「SPACE(공간)」는 젊은 건축가와 대화를 나누면서 그들을 하나의 카테고리로 묶기보다는 각자의 개별적인 특성을 발견하고자 한다. 인터뷰는 대화에 참여한 건축가가 다음 순서의 건축가를 지목하면서 이어진다.

 

빌라 C 내부 전경 

 

인터뷰 이병엽 바이아키텍쳐 대표 × 윤예림 기자

 

안개 속을 걸을지라도

 

윤예림(윤): 바이아키텍쳐의 시작이 궁금해요. 이전에 대학 동기인 박지현, 조성학 소장님과 함께 비유에스아키텍츠건축사사무소를 개소하셨잖아요.

이병엽(이): 대학 때 셋이 가장 친했거든요. 졸업 후 우연한 기회로 함께 작업한 프로젝트를 계기로 사무소를 열게 됐어요. 그리고 2년 남짓을 같이 운영하다가 바이아키텍쳐를 개소해 독립했죠.

 

윤: 이른 시기에 두 번의 독립을 하셨네요.

이: 겁이 없었어요. 건축사사무소라는 것이 저의 갈증을 해소해주지 못한다는 걸 느꼈거든요. 대부분의 사무소는 주어진 기획을 이행하는 방식으로 일을 하고, 건축물이 완성되면 역할이 끝나잖아요. 저는 물리적인 건축뿐만 아니라 기획부터 운영까지 온전히 관여해 매만지는 일에 관심이 있었어요.

 

윤: 건축가가 건물의 초기 기획 단계부터 참여하는 경우가 더러 있지만, 흔히 주어지는 기회는 아니니까요.

이: 아무래도 그렇죠. 한편으론 오래오래 재미있게 건축을 하고 싶은데 그러려면 지금의 건축사사무소 생태계에서는 힘들겠다고 판단했어요. 공간을 기반으로 한 비즈니스모델을 별도로 구축하고 클라이언트 기반의 건축에서는 좀 더 심도있게 작업하고 싶었달까요? 그러면 ‘나만의 생태계를 구축해보자’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누군가 짜놓은 판 위에서 움직이기보다, 희미하고 안개 속에 있더라도 즐겁게 일할 수 있는 판을 스스로 짜보자고요. 시행착오도 겪고요. 그러기 위해선 가벼운 상태로 시작하는 게 좋겠다 싶어 홀로서기를 했죠.



바이아키텍쳐 사무소


여정을 함께하는

 

윤: 바이아키텍쳐의 첫 프로젝트인 서울방학(2017)이 그 결심을 잘 보여주네요. 건축도 건축이지만 기획과 운영에 힘을 쏟은 프로젝트죠.

이: 다른 사람에게는 좋은 공간을 설계해주면서 정작 내가 살고 있는 공간은 좋은지 의문이 들었을 때 서울방학으로 실마리를 찾았어요. 2층짜리 양옥을 집이자 스테이로 리모델링해 저와 가족에게는 서울 도심의 마당 있는 집을, 여행자에게는 따뜻한 할머니 댁에서 보내는 방학 같은 시간을 선물한 프로젝트예요.

 

윤: 시간이 오래 지났지만 여전히 소장님에게 의미 있는 작업 같아요. 

이: 진한 흔적을 남겼어요. 굳이 표현하자면 저는 경험주의자인데요. 설계에 있어서 나를 위한 공간을 만들어본 경험이 있느냐 없느냐는 정말 크다고 생각해요. 서울방학 이후로 집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기능적인 이유를 넘어 본질적인 이유를 많이 돌아보게 됐어요. 그전에는 건축가로서 나의 생각과 개성을 어떻게 주택에서도 드러낼 수 있을까 고민했던 것 같은데, 생각이 많이 바뀌었죠.

 

윤: 서울방학의 경험을 발판 삼아 취향관(2018)도 운영하셨고요.

이: 서울방학을 통해 나의 주거환경을 개선했다면 그 이후, 여가의 질을 개선하는 쪽으로 관심이 옮겨갔던 것 같아요. 취향관에서는 집에 관한 워크숍을 여러 번 진행하며 깨달음을 많이 얻었어요.

 

윤: 최근 집을 주제로 새로 기획한 워크숍이 있다고 들었는데 비슷한 건가요?

이: 지금의 워크숍은 클라이언트를 위한 것이라 다른 방식이지만 기본적인 취지는 같았어요. 두 명씩 짝을 지어 서로의 집을 설계해보는 거예요. 처음에는 본인 집을 설계하는 것으로 기획했다가 열이면 다섯은 아파트 평면을 그리고 있는 모습을 보고 안 되겠다 싶어 방향을 틀었죠.

 

윤: 남의 집을 그린다고 생각해야 자유로워지는군요. 전혀 모르는 두 사람이 짝이 되나요?

이: 맞아요. 그래서 자신이 살아온 인생과 꿈꾸는 집을 서로 자연스럽게 이야기하게 돼요. 기능이나 돈 같은 현실적인 문제에서 벗어나 말랑말랑한 상태로요. 생각보다 창의적인 결과물이 많이 나와요. 바다 위에 집을 그리는 사람도 있고요. 그런데 그게 다 상대의 말로부터 나오는 거니까, 터무니없어 보여도 그 사람이 무엇을 중요시하고, 무엇을 선택하는지가 다 드러나요. 

 

윤: 어릴 때 스케치북에 그리던 집이 생각나요. 실제 클라이언트와 진행하는 워크숍은 더 현실적인 면이 필요하지 않나요?

이: 더 밀도 있는 질문이 필요하죠. 이를테면, 기자님은 어떤 집에서 살고 싶으세요?

 

윤: 집 옆으로 숲이 있으면 좋겠고… 잠깐만요, 소장님. 생각할 시간이 필요해요.

이: 많은 클라이언트가 그래요.(웃음) 본인의 취향을 말하기를 어려워하는 사람이 많아요. 그리고 막상 들어보면 아파트 중심적인 사고에서 비롯된 기능적인 이야기가 대부분이고 좋아 보이는 이미지를 가져와 소통하려 하죠. 저는 그들 입에서 나오지 않지만 그들 안에 있는 무언가를 끌어내려고 노력해요. 트렌드는 계속 바뀌고, 대중의 눈은 높아지는데 이미지로만 소통하면 중심을 잡기 어렵거든요. 보다 상위의 가치, 집을 둘러싼 이야기로 서로 공감대를 만들면 이미지는 자연스럽게 풀려요.

 

윤: 본인조차 인지하지 못하는 것을 어떻게 끌어낼 수 있을까요?

이: 제법 시행착오를 거치다 최근에 브랜딩 전문가와 함께 6개월 정도 연구해 질문지를 만들었어요. 하나의 툴이죠. 질문지를 통해 나온 단어들을 현미경 보듯이 봐요. 이 과정이 중요해요. 스스로는 인지하지 못했을지라도 그의 인생에서 핵심적인 키워드를 발견할 수 있거든요. 그렇게 소통하다 보면 클라이언트도 점점 자기 자신을 알아가고, 그런 순간을 지켜보는 우리는 그들을 닮은 집을 만드는 데 한발 가까워질 수 있죠. 

 

윤: 설명을 듣고 나니 워크숍에 대해 ‘자기다움을 찾는 여정으로서의 집’이라 쓰신 문구가 더 와닿네요.

이: 제가 꿈꾸는 건, 설령 현재는 빌라나 아파트에 살더라도 자신이 바라는 집에 대해 명확하고 재미있게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하는 거예요. 개개인의 색깔이 뚜렷한 세상이 됐으면 해요.

 

 

 

취향관에서 진행한 워크숍에서 참여자들이 그린 서로의 집

 

경계선을 그리지 않는

 

윤: 현대무용을 좋아하신다면서요?

이: 20대부터 현대무용을 좋아해서 댄스컴퍼니의 단원으로 들어갔다가 비전공 무용수로 몇 년간 활동했어요. 영상에 찍힌 저의 모습을 본 뒤로 재능이 없음을 인정하고 기획이나 무대 디자인 쪽으로 살짝 물러났지만요.(웃음)

 

윤: 겸손하게 말씀하시지만 여러 갈래를 오가는 소장님의 이력을 보며 놀랐어요. 연출에 참여한 공연으로 영국에도 다녀오셨고, 일상에 필요한 스마트폰 앱을 직접 만들기도 하셨잖아요. 

이: 저의 몇 안되는 장점 중 하나예요. 생각에 행정적 틀이나 제한을 두지 않아요. 저를 표현하거나 아이디어를 구현하는 매체가 공간이었다가, 소프트웨어였다가, 워크숍이었다가, 영화였다가 하는 것뿐이지 활동 간에 경계를 지어 생각한 적은 없어요. 

 

윤: 영화도 만드시는 거예요?

이: 가끔요. 건축물을 기록하는 데 있어서 저만의 생각이 있는데요, 이상하게 공간이 주인공이 되는 멋진 영상에는 관심이 없어요. 오히려 공간이 뮤직비디오나 영화의 배경이 되는 게 자연스럽다고 생각해요. 작업한 주택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를 단편영화로 촬영한 적이 있고, 흔커피바(2019)에서는 현대무용 필름을 시도해봤어요. 시간과 비용에 여유만 있다면 모든 프로젝트를 배경으로 이렇게 영화나 아트필름을 촬영하고 싶어요.

 

꿈꾸는 방향으로 흐르는

 

윤: 목욕을 좋아하신다고 들었어요. 

이: 개인적인 일상에서 제일 중요한 게 목욕이에요. 일주일에 한두 번은 목욕탕에 꼭 가요. 매일 갈 때도 있고요.

 

윤: 그토록 목욕 시간을 사수하는 이유가 뭔가요? 

이: 물에 들어가는 순간 모든 필름이 딱 멈춰요. 유일하게 자유로운 순간인 것 같아요. 잘 때 빼고 머리가 비워질 틈이 거의 없거든요. 

 

윤: 대중목욕탕에 가시는 거예요?

이: 애용하는 곳이 두 군데 있어요. 하지만 사실 대중목욕탕에 아쉬운 점이 많아요. 시각적, 청각적으로 자유롭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어요. 그렇다고 호텔의 스파가 대안이 되기는 어렵죠. 일상 가까운 곳에서 온전하게 한 시간, 두 시간이고 목욕에 집중할 수 있는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고 꿈꿔온 지는 꽤 됐어요. 그래서 올해는 가벼운 형태지만 목욕탕 브랜드를 하나 준비하고 있어요.

 

윤: 기대되는데요. 저도 집에서 종종 목욕을 즐기지만 욕조가 작아서 다리를 한참 구부려야 하거든요. 대중목욕탕은 선뜻 가게 되지 않고요. 

이: 바로 그 포인트예요. 대부분이 욕조가 작거나 없는 집에서 살고 있죠. 하지만 집에서 느낄 수 없는 목욕탕만의 매력이 있거든요. 제가 기획하는 목욕탕은 대중목욕탕보다 훨씬 작은 스케일의 개인적인 공간이에요. 도시에 위치하면서도 자연 속에서 휴식할 수 있고요. 평상시 꿈꾸던 방향으로 기획해나가고 있어요. 예전에는 사용자 입장에서 생각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는데 이제 시대가 바뀐 것 같아요. 스스로 갈증을 느끼는 무언가를 만들었을 때, 공감하는 소수의 사람만 있다면 힘 있는 기획이 될 수 있다고 믿어요.

 

윤: 소장님은 목욕탕에 한번 들어가시면 얼마나 있으세요?

이: 어제는 인터뷰 생각한다고 물속에서 두 시간을 있었어요.

 

윤: 머리를 비우려고 목욕하신다면서요? 

이: 목욕이 골똘하게 생각에 잠기기에도 좋아요.(웃음)

 

윤: 오늘 인터뷰가 소장님의 소중한 목욕 의식을 방해했네요. 이제 답사를 출발해볼까요?

 

 

 

흔커피바를 배경으로 촬영한 현대무용 필름, ‘a clean well lighted place’(2019) 스틸이미지

 

서로의 성장을 목격하는

 

윤: 청라에 주택을 여럿 하셨죠? 이 길을 수없이 오갔겠어요.

이: 청라 단독주택 단지에만 여섯 채 정도 작업했어요. 감리를 셀 수 없이 갔죠. 특히 마감 공사할 때 정말 자주 가는데, 그때 완성도가 다 정해지거든요. 여기, 빌라 C(2021)에 도착했네요. 건축주가 곧 나오실 거예요.

 

윤: 방문을 허락해 주셔서 감사해요. 이렇게 환대를 받아도 되나 모르겠어요. 

이: 저도 덕분에 같이 대접받네요. (웃음) 

 

윤: 주택끼리의 간격이 제법 좁아 보여요.

이: 사적인 마당을 만들기가 어려운 동네죠. 집이라는 공간에서 프라이버시는 너무 당연한 요소잖아요. 그래서 되레 사생활을 지키면서 어떻게 개방성을 가질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편이에요. 빌라 C의 담장은 각도에 따라 완벽한 솔리드로 보이기도 하고, 담 너머를 투시해 보여주기도 해요. 옆집에서 보면 완전히 벽이죠. 

 

윤: 여러 클라이언트와 해를 지나며 집에 대한 관점에 변화가 있었을 것 같아요.

이: 초기에는 감각적인 것에 몰두했다면 지금은 정서적인 켜를 촘촘하고 세밀하게 만드는 데 중점을 둬요. 나의 색깔을 클라이언트에게 입히기보다 서로에 대한 반응으로 함께 만들어간다고 생각해요. 많은 젊은 건축가에게 집이라는 프로그램은 다음 단계를 위한 초석으로 여겨지기도 하는데, 저는 3년 전쯤부터 아예 집에 집중하고 있어요. 그러고 나니 집에 나의 건축 어휘를 드러내야 한다는 욕심으로부터 자유로워져서 오히려 더 즐겁더라고요.

 

윤: 집에 집중하기로 한 이유가 궁금해요.

이: 예전에는 규모가 있는 건축물을 하고 싶어서 근린생활시설이나 6~7층짜리 다세대주택도 해봤어요. 그런데 재미가 없었어요. 그런 건축물은 본질이 결국 자본에 있거든요. 더 명확하긴 하죠. 면적과 이윤을 최대화하면 되니까요. 하지만 집의 본질은 그게 아니라서 좋아요. 규모로 인한 만족보다 사람이 사는 모습을 보고 그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보는 편이 좋아요. 

 

윤: 성장하는 모습을 바라본다는 말이 따뜻해요. 

이: 거꾸로 제가 그들로부터 양분을 많이 얻었어요. 개인이 브랜드가 되어가는 사회에서, 집을 짓는다는 건 나라는 사람을 가장 온전히 드러낼 수 있는 수단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처음부터 그런 의도를 가지고 집을 의뢰해오는 건 아니거든요. 클라이언트들이 집을 짓고 난 후 SNS 활동을 활발히 하면서 자기 정체성을 구축해나가는 모습, 그리고 그들을 통해 집에 대한 꿈을 가지게 된 사람들을 보면서 확신이 생겼어요. 집을 짓는 과정이 자기다움을 찾는 여정이 된다는 걸요.

 


▲ SPACE, 스페이스,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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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엽
이병엽은 2010년부터 공간을 기반으로 한 다수의 브랜드에서 기획자 및 디렉터로 일하며 교육과 예술 분야에서 활발하게 활동해왔다. 2016년 개소한 바이아키텍쳐는 경계 없이 다양한 작업을 소화하지만, 특히 주거와 여가의 시공간에 대해 넓은 시야와 깊이 있는 자세로 작업에 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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