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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 힘을 가지고: 박솔하, 안광일

사진
윤예림
진행
박지윤 기자

「SPACE(공간)」2023년 2월호 (통권 663호) 

 

‘오늘의 건축가’는 다양한 소재와 방식으로 저마다의 건축을 모색하는 젊은 건축가를 만나기 위해 기획됐다. 그들은 무엇을 좋아하고, 탐색하고, 고민하고 있을까? 「SPACE(공간)」는 젊은 건축가와 대화를 나누면서 그들을 하나의 카테고리로 묶기보다는 각자의 개별적인 특성을 발견하고자 한다. 인터뷰는 대화에 참여한 건축가가 다음 순서의 건축가를 지목하면서 이어진다.

 

밀밀아 전경

 

​인터뷰 박솔하, 안광일 백에이 어소시에이츠 대표 × 박지윤 기자

 

최대 에너지, 중간 에너지 

 

박지윤: 박솔하 소장님은 출장 잘 다녀오셨나요? 해외 일정이 있었다고 들었어요

박솔하: 사실 여행을 다녀왔어요. 1년에 한 번씩은 2~3주 동안 외국으로 나가서 환기를 하려고 해요. 2년 동안은 팬데믹 때문에 나가지 못해서 3년 만에 다녀왔어요. 

 

박지윤: 어느 나라로 가셨나요? 

박솔하: 튀르키예로요. 저는 여행할 때 일 생각을 잠깐 내려놓아요. 정서의 환기를 위한 시간이거든요. 그래서 건축도 잘 안 보러 다녀요. 전통 문화나 자연을 탐닉하려고 하죠. 이번에는 이슬람 사원에 가서 무슨 말 하는지 모르는데도 가만히 앉아 종교 의식을 구경했어요. 자연환경도 우리나라와 완전히 달라서 자연도 구경하고요. 문화와 자연이 다른 장소에서 완벽한 이방인으로 놓여 있는 게 가끔은 좋아요. 

 

박지윤: 가만히 있는 걸 잘 하시는군요. 소장님들 작업에서 정적인 기운이 느껴져서 실제 성향은 어떠실까 궁금했어요. 

박솔하: 활기찬 성격은 아니에요. (웃음) 

 

박지윤: 안광일 소장님도 여행으로 환기를 하시나요? 

안광일: 저는 외국으로 여행을 가도 일이 계속 신경 쓰이더라고요. 나갈 생각을 못하고 있어요. 

박솔하: 저는 일을 할 때 저의 최대 에너지를 다 소진하면서 작업하는 스타일인데, 안 소장님은 중간중간 짧은 환기로 에너지를 채워내는 사람이에요. 성향이 다른 거죠. 저는 짧은 환기로 에너지를 채워내는 걸 못 해서 작업이 끝나면 방전 상태가 돼요. 그래서 단절하고 휴식하지 않으면 일을 이어가기 힘들더라고요. 일하는 중간에 가끔 도망가는 경우도 있는데요. (웃음) 그럴 때마다 안 소장님이 수습해주세요. 

 

시간이 흘러가는 동네 

 

박지윤: 사무소가 있는 위치를 국민대학교 학생들은 지하세계라고 부르잖아요. 학교와 대지 레벨 차이가 엄청나서요. 어떻게 정릉에 자리를 잡게 되셨나요? 

박솔하: 처음에는 최봉국(비케이 아키텍처 대표) 소장님과 함께 세 명이서 백아(현 백에이 어소시에이츠, 이하 백에이)라는 이름으로 시작했는데요. 저희 세 명의 출퇴근에 가장 적절한 위치가 이 동네였어요. 직원이 몇 명이 될지 등 운영의 측면을 고려했다기보다는, 우리가 앉아서 스터디를 할 수 있는 공간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이었거든요. 그러다 보니, 번화가의 빌딩 같은 공간은 저희 성향과 안 맞아 선택 사항에서 제외된 거죠. 이 공간에 와서 마음에 드는 점은 동네 사람들과 접점이 있다는 거예요. 지금은 없어졌는데 근처에 조그마한 슈퍼마켓이 있었어요. 우리가 사무실을 비워도 물건을 봐줄 동네 사람들도 있었고요. 일을 할 때도 날이 좋으면 그냥 문을 다 열어놓고 있거든요. 그러면 동네 분들이 들어오셔서 “어제는 늦게까지 일했던데” 하면서 말을 걸어주세요. 그런 정서가 저희랑 잘 맞았던 것 같아요. 

 

박지윤: 슈퍼마켓은 편의점이랑 다르게 직원이 아니라 주인이 일을 하잖아요. 직원은 바뀌어도 주인이 바뀌는 경우는 드물고요. 일상에서 느슨하게 규칙적으로 누군가를 만나는 경험을 언제 한지 모르겠어요. 

안광일: 출퇴근하는 친구들 때문에 홍대 인근으로 옮겨볼까 고민도 했었는데요. 저희가 가진 성향이나 작업의 색과 잘 어울릴 만한 동네를 아직 찾지 못해서 계속 머물고 있어요. 저희 작업은 눈에 확 띄지는 않지만 우리를 아는 동료 디자이너나 예전 건축주분들이 발견한다면 “이거 백에이 것이네”라며 멈출 만한 힘은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 고요한 힘이 사무실에도, 작업에도 녹아 있는 것 같아요. 

박솔하: 저희가 작업한 의림여관(2021)에 초대받아 하루 묵었던 적이 있어요. 새벽 일찍 눈을 떠 창밖 밤나무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다 문득, 설계자로서 이 공간을 채운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걸 깨달았어요. 바람 소리, 새소리, 풀 내음, 빛의 일렁임과 같은 물리적이지 않은 요소들이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었거든요. 당시에는 슬프고 무기력했어요. 그런데 그 감정에 대해 곱씹다 보니 평범하고 당연해서 지나쳐버릴 수 있는 것들을 귀하게 담는 건축을 해볼 수도 있겠다고 정리가 되더라고요. 시간이 점점 지나면서 고요한 힘을 가진 공간을 만드는 게 작업의 지향점이 되는 것 같아요. 침묵하지는 않지만, 우리의 소리를 아무도 알아채지 않도록 점점 낮은 소리로 이야기하는 거죠. 

 

 

밀밀아 전경

 

취향을 위한 이야기 

 

박지윤: 두 분이 니드21(대표 유정한)에서 오랫동안 일했다고 들었어요. 

안광일: 둘 다 6~7년 정도 다니다가 독립했죠. 

 

박지윤: 니드21은 공간 디자이너가 건축설계를 하는 경우가 드물던 때부터 경계를 넘나들며 작업을 해왔잖아요. 

안광일: 지금은 공간 디자이너와 건축가의 경계가 많이 흐려지기는 했는데요. 저희가 독립할 때만 해도 업계에서 저희를 생소한 눈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그래도 공간 디자인에서부터 시작한 덕분에 건축을 할 때 저희만의 프로세스를 만들 수 있었던 것 같기는 해요. 

 

박지윤: 백에이만의 디자인 프로세스가 궁금하네요. 

안광일: 건물 외관 디자인을 제일 마지막 단계에 해요. 

 

박지윤: 내부부터 시작하시는군요. 

안광일: 건축주의 이야기에서 브랜딩을 시작해 그것이 공간이 되고, 그 공간이 외관이 돼요. 매스와 같은 형태는 뒤에 결정되는 거죠. 물론 법규에 따라 처음부터 외관이 어느 정도 정해지는 작업도 있고요. 

 

박지윤: 건축주의 ‘요구’가 아닌 ‘이야기’라고 표현하신 이유가 있을 것 같아요. 

안광일: 저희는 기업보다는 개인을 대상으로 하는 작업이 다수거든요. 그중에서도 주택이 대부분이고요. 상업 공간 같은 경우는 트렌드에 맞춘 디자인이 더 중요할 수도 있잖아요. 반면 개인의 경우에는 10년이고, 20년이고 그 공간을 지속해서 사용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먼저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려면 건축주의 이야기가 담겨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고요. 건축주의 이야기를 스토리텔링하고, 그것을 공간화하고 건축화해 가는 거죠. 그래서 주택을 작업할 때 ‘건축주를 닮은 집’이 제일 이상적이라고 생각해요.

 

박지윤: 무명(2021)은 분홍 스터코로 외부마감을 한 주택이잖아요. 말씀을 듣고 보니 건축주가 어떤 이야기를 가지고 있었을지 궁금하네요. 

박솔하: 건축주와 소통할 때 대화뿐만 아니라 다양한 방법으로 소통하려고 시도해요. 무명의 건축주는 소설가이신데요. 처음부터 저희에게 자신의 성격에 관한 장문의 글을 주셨어요. 자신을 ‘호기심이 넘치지만 조심스러운, 계획적이지만 걱정이 많은 아이’라고 소개했죠. 작업을 할 때는 편지를 서로 주고받으면서 의견과 이야기를 나눴고요. 그 과정을 지나면서 서로를 이해하게 됐고, ‘조금은 동화적인 작은 성’을 완성하게 된 거죠. 건축주를 위한 프레젠테이션도 거의 글로 되어 있었고요. 그림이나 도면은 약식이었어요. 렌더링 이미지가 한두 컷 정도만 들어갔던 걸로 기억해요. 

 

박지윤: 대화를 포함한 다양한 방식으로 건축주와 소통하는 점이 흥미로워요. 

박솔하: 우주재(2017)는 가족을 위한 집이었는데 자매가 디자인을 전공했어요. 그래서 본인들의 생각을 이미지 스크랩북으로 만들어 오셨어요. 본인들이 좋아하는 그림을 보면서 이야기를 나눴죠. 대화를 할 때도 공간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취향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는 편이에요. “이사를 할 때 꼭 가지고 가고 싶은 물건은 뭐예요? 무슨 색깔을 좋아하세요? 어떤 음악 좋아하세요?” 같은 질문들이죠. 그리고 원하는 공간에 대한 단편적인 정보보다는 원하는 삶에 대해 질문하려고 해요. 건축주가 옥상에 의자가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하면, 그곳에 앉아 별을 보는 경치를 바라는지, 바람을 느끼는 정취를 좋아하는지, 낮에 해를 쬐는 환경을 원하는 건지, 구체적으로 물어요. 실제로 옥상에 의자를 놓지 못하더라도 그것이 어떤 욕구에서 발현된 생각인지 알게 되면 해소할 수 있는 다른 장치를 구현할 수 있으니까요. 

 

박지윤: 소장님들이 건축주에게 질문하는 방식대로 인터뷰를 해보고 싶어지는데요? (웃음) 사무소를 이전한다면 꼭 챙겨가고 싶은 물건이 있나요? 

안광일: 일단 저희 사옥 앞에 걸린 간판을 꼭 가져가고 싶고요. 지금 인터뷰를 하고 있는 책상도 가져가고 싶어요. 저희가 독립한 지 10년이 다 되어 가는데요. 이 책상을 직접 만들기도 했고, 지내는 동안 손이 가장 많이 닿은 가구라서요. 

박솔하: 직원들이 준 편지요. 저는 독립하기 전에 후배들이 줬던 포스트잇도 보관하고 있거든요. 그런 건 안 버리고 다 모아두고 있어요. 노트도 가져가야겠네요. 제가 정리를 잘하는 편이 아니라서 노트도 엉망진창으로 써요. 전화를 하면서 메모를 하기도 하고요. 그럼에도 다시 훑어보면 당시에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내가 무엇 때문에 지쳐서 이런 글을 적었는지 느껴지더라고요. 

 

박지윤: 소장님들이 좋아하는 색은 뭔가요? 

박솔하: 저는 노란색이요. 

 

박지윤: 의외의 색인데요? 

박솔하: 예전에는 ‘나를 이런 분위기의 사람으로 봐줬으면 좋겠다’ 하는 마음으로 좋아하는 색을 말하던 때도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정말 원초적으로 생각하면 저는 어렸을 때부터 노란색을 좋아했어요. 빛깔이 주는 낙천적이고 황홀한 분위기를 좋아하는 것 같아요. 

 

박지윤: 안 소장님은요? 

안광일: 저는 짐작하시듯, 검은색이요. 검은색은 명확해요. 검은색 옷은 패턴 선을 명확하게 드러내잖아요. 그것처럼 검은색의 공간도 형태를 각각 명확하게 드러내주거든요. 

 

박지윤: 좋은 대답을 들으니 꽤 괜찮은 질문이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웃음) 그럼 밀밀아(2020)로 이동해볼까요? 박 소장님과는 여기서 인사를 해야겠네요. 

박솔하: 네, 반가웠습니다. 잘 다녀오세요. 

 

 

사무실 전경

 

사무실 전경

 

양과 질 사이 

 

박지윤: 백에이의 몇몇 작업에서 돌이 중심을 강하게 잡아준다는 인상을 받았는데요. 밀밀아에서도 비슷한 방식이 보이네요. 

안광일: 이렇게 큰 돌을 어떻게 옮기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어요. 무거운 돌과 같은 경우는 어떻게 활용하고 발주를 해야 하는지 모르는 분이 많아요. 저희가 니드21에 있었을 당시에는 스타 디자이너가 몇 없었고, 디자인 비용이 정말 높았거든요. 덕분에 다양한 재료를 정말 많이 써봤어요. 그때 여러 가지 돌들도 많이 써본 거죠. 체격이 좋은 열 명 정도가 팀으로 움직이며 돌을 운반하거든요. 사람이 직접 옮기는 건데 대개 돌을 드는 작업자가 있다는 사실도 잘 몰라요. 저희는 경험이 있다 보니 제약 없이 돌을 좀 더 자유롭게 쓰고요. 

 

박지윤: 세면대 아래에 있는 이끼 낀 돌은 소장님께서 찾으신 건가요? 

안광일: 원하는 이미지에 적합한 돌을 찾으려면 직접 돌아다녀야죠. 그 공간은 정적이어야 했어요. 성질이 강하지는 않으면서 구심점 역할을 할 수 있는 요소를 원해서 가공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돌을 찾았어요. 그렇게 석산들을 돌아다니다 이끼가 무척이나 아름답게 낀 돌을 발견하게 된 거죠. 

 

박지윤: 소품이나 분위기에서 백에이 사무실과 비슷한 느낌이 나네요. 

안광일: 저희가 브랜딩부터 작업한 공간이라 그런가 봐요. 실제로 몇 가지 소품들은 직접 제안했어요. 건축주와 저희의 취향에 접점이 있었던 것도 이유가 될 수 있겠네요. 

 

박지윤: 서울에 위치한 작업은 밀밀아가 유일했던 것 같아요. 백에이 작업은 주로 지방에 있더라고요. 

안광일: 도시에서의 작업은 재미가 없어요. 박 소장과도 우리가 돈을 벌려면 도심의 작업을 해야 한다는 말을 해요. 자연스레 홍보도 되니까요. 그런데 저희가 산과 들과 바다로 나가고 싶어하는 마음이 워낙 커서, 계속 지방의 작업들을 하게 되더라고요. 

 

박지윤: 특히 박 소장님은 여유 있는 삶을 선호하실 것 같아요. 

안광일: 현실과 이상에 괴리가 항상 있죠. 저는 가정이 있고 책임질 사람이 있어 일을 많이 해야 하는데, 박 소장은 비교적 자유로워요. 또 성향상 박 소장이 프로젝트의 질적인 면을 더 고민하는 사람이고요. 여유 있는 삶을 추구한다기 보다는 작업의 질을 높이기 위해 환기가 필요한 사람이에요. 그래서 일의 양과 작업의 질을 어떻게 조절할지에 대한 이야기를 종종 나눠요. 

 

박지윤: 양과 질 사이에서 중심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직원 수도 달라지잖아요. 그래서 몇몇 소장님들이 직원 수를 늘리지 않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드네요.




박솔하, 안광일은 2023년 3월호에서 이병엽(바이아키텍쳐 대표)의 오늘을 듣고 싶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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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솔하, 안광일
박솔하, 안광일은 2016년 백에이 어소시에이츠를 공동 개소해 운영하고 있다. 건축, 공간 디자인부터 브랜딩과 제품 디자인까지 포괄적인 작업을 하며, 주거 공간과 상업 공간을 포함한 다양한 용도를 다룬다. 백에이 어소시에이츠는 작업을 통해 기억의 표상을 기록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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