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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건축가] 지구에 발을 디디는: 최봉국

사진
윤예림(별도표기 외)
진행
박지윤 기자

「SPACE(공간)」2023년 1월호 (통권 662호)  

 

‘오늘의 건축가’는 다양한 소재와 방식으로 저마다의 건축을 모색하는 젊은 건축가를 만나기 위해 기획됐다. 그들은 무엇을 좋아하고, 탐색하고, 고민하고 있을까? 「SPACE(공간)」는 젊은 건축가와 대화를 나누면서 그들을 하나의 카테고리로 묶기보다는 각자의 개별적인 특성을 발견하고자 한다. 인터뷰는 대화에 참여한 건축가가 다음 순서의 건축가를 지목하면서 이어진다.

 

 

아틴 마루 전경 / ©Choi Bongkuk 

 

인터뷰 최봉국 비케이 아키텍처 대표​ × 박지윤 기자 

 

빠져들고 깊어지는


박지윤(박): 사무소가 경기도 양평에 있어요. 

최봉국(최): 경기도에 자리 잡은 지는 10년이 조금 넘은 것 같아요. 서울에서 일하다 결혼하면서 경기도로 넘어왔죠. 

 

박: 연희동에서 출발하니 1시간 반 정도 걸리더라고요. 생각보다 멀던걸요? (웃음) 

최: 처음에는 동료 세 명이서 함께 서울에서 독립을 했었어요. 그때 사무소 위치가 정릉이었죠. 서울에 있어도 어디 가려면 1시간은 걸리잖아요. 정릉에서 여기까지 거리도 1시간 정도라 부담이 없었어요. 

 

박: 사무소 바로 앞에 논도 있잖아요. 마당에 강아지도 있고요. 

최: 땅부터 구매해서 제가 직접 설계해 지은 주택이자 사무소예요. 

 

박: 소장님의 여행기인 『사월』(2020)에서 주택을 직접 지었다는 내용을 본 것 같아요. 주택을 완공했는데 2개월 정도만 살고 유라시아 횡단을 떠났다고요. 

최: 그래서 집도 작고 사무실도 작아요. 여행에서 돌아오지 않을 가능성도 있었거든요. 

 

박: 다른 나라를 돌아다니다 마음에 드는 곳을 찾으면 정착할 생각이셨어요? 

최: 건축가라는 직업이 그렇잖아요. 언어만 되면 어느 나라에서든 건축 회사에 취업하면 되니까요. 그래서 혹시 기회가 닿으면 다른 나라에 정착할 수도 있을 거라 기대했었어요. 중간에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가 발생해 돌아오게 된 거죠. 안 그랬다면 1년, 2년 상관 없이 계속 돌아다녔을 거예요. 기간에 제한을 두지 않고 시작한 여행이거든요. 

 

박: 돈과 같은 여건이 한정되어 있지 않았나요? 

최: 돈이 떨어져서 돌아왔을 수도 있겠죠. 몸이 아파서 왔을 수도 있고요. 여러 가지 이유로 돌아올 수도 있었겠지만 예상한 것보다는 짧은 기간이었어요. 원래는 세계를 돌려고 했었는데요. 아시아와 유럽까지만 돌고, 미주로는 못 넘어갔으니까요. 

 

박: 『사월』에 들어간 사진들도 모두 직접 찍으신 거더라고요. 자동차, 오토바이 등 라이딩도 즐기시고요. 취미 부자이신 것 같아요. 

최: 어릴 때 제가 힘들게 살았어요. 돌파구를 찾다가 바이크를 접하게 된 거죠. 당시에는 유일한 인생의 낙이었어요. 그때 처음으로 한 가지에 집중하는 법을 배운 것 같아요. 

 

박: 덕후력을 가진 분들과 이야기하면 흥미롭더라고요. 제가 모르는 세상을 깊게 말해준다는 점에서요. 

최: 하나에 미치도록 빠져보는 건 좋은 것 같아요. 한 분야에 끝까지 빠져들어 보면 파고드는 습성이 생기거든요. 그런 사람이 어떤 직업이나 다른 취미를 가지면 집중력이 뛰어나게 발휘되는 것 같아요. 자전거든 바이크든, 바퀴가 달린 무언가를 타고 계속 어딘가로 이동하며 여행하는 것을 오버랜딩이라고 하는데요. 이것도 오토바이와 차를 타면서 경험한 거고, 그러면서 차를 타고 유라시아 횡단도 하게 된 거예요. 

 

박: 하나를 깊게 파고드는 것이 다양한 경험을 이끌어낼 수도 있겠어요. 

최: 바이크를 좋아한다고 하면 사람들은 ‘속도감을 즐기는가 보다’, ‘바람 맞는 게 좋은가 보다’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요. 빠져들기 시작하면 좋아할 만한 요소가 무궁무진해져요. 끝까지 파다 보면 모터사이클의 기술적인 부분, 문화가 생기게 된 역사적인 부분까지 거슬러 올라가죠. 이런 이야기들이 얽히면서 모터사이클을 더 깊게 이해하고 즐길 수 있어요. 

 

박: 유라시아 횡단은 아내, 딸과 함께한 장기 여행이라 행복도 두 배, 어려움도 두 배였을 것 같아요. 

최: 아이는 부모가 가니 어쩔 수 없이 따라가는 거였는데요. 그럼에도 잘 따라줬어요. 

 

박: 인터뷰를 준비하며 『사월』을 꼼꼼히 읽었거든요. 인터뷰어로서 건축적인 이야기를 기대했는데 언급이 거의 없더라고요. 가족들에게 보내는 러브레터 같은 느낌이었어요. (웃음) 

최: 창과 문에 관한 이야기는 썼던 것 같아요. 해외에 나가면 한국에서는 자주 보지 못하는 창의 개폐 방법, 창의 크기, 출입하는 방법 같은 것들이 눈에 보이더라고요. 바로 몸으로 접하는 요소라 그런가 봐요. 러시아에 가면 사람들은 키도 크고 덩치도 큰데, 문들은 되게 작아요. 두 가지 이유가 있는 것 같아요. 하나는 전쟁이 많은 나라였기 때문에 신속하게 보호하고 차단하기 위해서, 그리고 추운 나라라서요. 건축적 요소를 보며 나름대로 그 나라를 이해하게 되는 거죠.  

 

박: 소장님이 앉은 자리 뒤편에 열리지 않는, 성인 크기 만한 넓고 긴 창이 보이는데요. 이 창을 통해 소장님을 이해할 수 있을까요? (웃음) 

최: 창을 어떻게, 어디에, 어떤 크기로 내느냐에 따라 공간에 머무는 사람들의 시선을 결정하는 거잖아요. 어찌 보면 건축가의 권력이죠. 언급하신 창으로 볼 수 있는 건 사실 콘크리트 담벼락뿐이긴 한데요. 작은 공간 속에서 시선의 환기를 주려 의도한 부분이죠. 

 

박: 공기의 환기가 아닌, 시선의 환기를 위한 창이네요. 

최: 환기를 위한 창을 만들면 원하는 디테일을 만드는 데 한계가 생겨요. 기능을 위해 시스템 창호로 계획하면 프레임이나, 힌지, 손잡이부터 시작해서 여러 요소가 붙잖아요. 그렇게 되면 제가 원하는 입면을 만들 수가 없죠. 

 

 

 

사무실 전경

 

여독을 그러잡아 

 

박: 길고 먼 여행을 다녀오셨는데, 여독에 휘말리지는 않으셨나요? 

최: 저는 무언가를 계획하면 실행까지 해야 직성이 풀리는 타입이에요. 여행을 갔다 오면 여독도 심하고요. 그래서 유라시아 횡단을 다녀오고서도 국내 여행을 계속 다녔어요. 그러니까 주변에서 “이제 최봉국은 일을 안 하나 보다” 했죠. 

 

박: 그 공백기를 지나고 의뢰를 조금씩 받으신 건가요? 

최: 그러다 일을 시작하긴 했는데, 이상하게 프로젝트를 잘 못하겠더라고요. 클라이언트들의 시선이나 요구 조건들이 제가 일하고 싶은 방식과 안 맞더라고요. 그래서 실제로 일을 잘 해내지는 못했던 것 같아요. 

 

박: 그래서 직접 건축주가 되신 건가요? 스테이인 아틴 마루(2021)와 아틴 해우(2022)는 직접 설계하고 운영까지 하시잖아요. 

최: 여행의 영향이 분명히 있죠. 제가 오랫동안 니드21(대표 유정한)에서만 일했었는데요. 거기에 마침 일손이 부족했고 제가 도와줄 여건이 돼서 간만에 월급을 받으며 일을 했어요. 저는 유 대표님을 선생님이라고 부르는데요. 선생님이랑 술자리를 하면서 꿈에 대한 이야기를 했어요. 건축가로서 마지막에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요. 그러다 제 이야기를 하게 됐어요. “노르웨이를 가 보니 산속에 집이 많더라. 그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는 모르겠는데 숲속에 사는 건 자신 없지만 가끔 한 번씩 가면 너무 좋을 것 같다. 한국에도 그런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 임야 몇 만 평 사서 차로도 아니고 걸어서 한참 들어가는데, 들어가면 오두막 밖에 없는 그런 공간을 만들고 싶다. 물이 좀 안 나오면 어떻고, 전기를 좀 못 쓰면 어떤가. 뜨거운 물이 안 나오면 끓여서 쓰면 되고….” 말을 내뱉고 나니 너무 짓고 싶더라고요. 

 

박: 좋아한다고 고백하는 순간 그 사람이 더 좋아지는 것과 비슷하네요. 공간에 대한 상상을 말하니 그 공간에 대한 애착이 더 생기신 거잖아요? 

최: 제 작업의 최고 멘토는 아내거든요. 직원이 없으니까 실컷 설계를 해도 괜찮은지 물어볼 사람이 아내밖에 없어요. 그런데 건축가인 선생님한테 이야기하다 보니,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게 된 거죠. 

 

박: 두 프로젝트 모두 한적한 숲속에 있어요. 

최: 본래는 물도 안 나오고, 전기도 안 되고, 태양광 충전해서 쓰고, 많이 쓰면 다시 충전해서 써야 하는 걸 계획했죠. 그런 오두막 형태를 원했는데 그러려면 대지가 더 넓어야 했어요. 자산도 한계가 있고 허가 조건도 맞춰야 하니 변경이 됐죠. 

 

박: 좋은 건축주가 좋은 건축을 만든다는 말이 있는데, 소장님은 좋은 건축주셨나요? 

최: 결국 사업이다 보니, 실패를 하면 안 되잖아요.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애초의 계획보다는 상업적인 방향으로 흘러가기는 했어요. 그래도 지킨 것들은 있죠. 아틴 마루에서는 각 동이 분리되어 있는데요. 각 매스들의 합이 부조화스럽지 않도록 신경 썼어요. 특히 각 동의 크기가 커질수록 콘셉트와 맞지 않아 거북스러울 것 같았거든요. 그리고 수영장, 주방과 같은 공간은 절대로 만들지 않을 생각이었는데, 그 부분도 구현됐죠. 

 

박: 주방을 만들지 않은 이유가 있나요? 

최: 여행가서 요리를 해보면 알잖아요. 요리를 하게 되면 일이 얼마나 많아지는지요. 쉬러 왔는데, 여기서 꼭 무언가를 해 먹어야 하나 싶었어요. 제가 여행 다닐 때 그런 마음이 들었거든요. 이 공간에서, 내가 머물고 있다는 것. 이것에 집중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죠. 비슷한 맥락으로 더블 베드도 없어요. 아무리 가족, 커플이라고 해도 한 침대에 한 이불을 덮고 자면 불편하거든요. 호흡이 다르고 심박수가 다르고 각자가 느끼는 열 온도가 다르니까요. 그래서 싱글 베드로 구성했고, 붙이지도 못하게 만들어놨어요. 둘이 오더라도 잘 때만은 자신만의 시간을 가져보라고요. 

 

박: 연인들은 자주 안 오겠어요. (웃음) 

최: 나중에 청소하러 가 보면, 연인들은 그 좁은 침대에서 같이 자기도 하더라고요. (웃음) 

 

박: 이야기를 들어 보니, 쉼보다는 집중을 위한 공간 같기도 하네요. 자신에게 집중하는 공간이요. 

최: 스테이를 보통 힐링을 위한 공간이라고 홍보하잖아요. 사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스테이에 가서 뭘 할 수 있는지부터 생각해요. 준비된 비품이나 서비스의 목록을 보고서요. 바비큐도 되고 방도 하나 더 있으면, 그것에 맞춰 계획을 하는 거죠. 아틴 마루의 경우, 체크인 후 방을 보고는 그대로 돌아가신 분들도 계셨어요. 워낙 단출하니까요. 아틴 마루에서 잘 지내시는 분들은 계획을 세우지 않고 오신 분들이죠. 

 

박: 아틴 마루가 더 궁금해지는데요. 그럼 이동해볼까요? 



아틴 마루 전경 / ©Choi Bongkuk 

 

여행가의 자세로 

 

박: 산꼭대기를 향해 구불구불 올라가는데 아틴 마루 근처에 다다르니, 진입하는 길에 전나무가 줄지어 있더라고요. 마치 일주문을 지나는 것처럼 마음이 정돈됐어요. 

최: 동네 어르신들 말로는 아틴 마루 대지에도 전나무가 있었대요. 단지를 개발하면서 땅을 다 밀었던 거고요. 

 

박: 관리동을 제외하고는 모두 아연 골강판으로 외부 마감을 하셨어요. 캠핑카 같은 느낌도 나요. 

최: 골강판 주름이 전나무 주름과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어요. 또 녹이 슬면 이렇게 갈색을 띠잖아요. 시간이 지날수록 나무 껍질처럼 되기를 바랐죠. 녹슬기 전에는 지금 보이는 것처럼 하늘도 비치고 땅도 비치는 재료이기도 하고요. 

 

박: 각 동에도 시선을 위한 창과 환기를 위한 창이 구분되어 있네요. 그런데 방에서 소음이 하나도 안 나요. 

최: 작은 냉장고도 무소음으로 구비해, 기계 소음을 최소화했어요. 

 

박: 여기는 향이 어떻게 되나요? 

최: 지금이 12시죠? 왼편에 그림자가 생겼으니 남쪽이 어디겠어요? 

 

박: 오른편이 남쪽이네요. (웃음) 로빈슨 크루소 같아요. 

최: 건축하는 사람들끼리 향을 물어보면 되나요? (웃음) 

 

박: 소장님은 가장 기억에 남는 여행지가 어디예요? 

최: 아이슬란드요. 한 시야에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다 들어오는, 그런 경치를 가지고 있거든요. 

 

박: 아틴 마루의 각 동들 이름도 봄, 여름, 가을, 겨울이잖아요. 소장님의 마음이나 생각, 작품 곳곳에 여행의 흔적이 묻어나는 것 같아요. 소장님을 뵈니 저도 여행이 가고 싶어졌어요. 

최: 외국을 가신다고 하면, 그 나라에서도 시골을 가보셨으면 좋겠어요. 프랑스 가서 왜 파리를 안 가고 남부를 가냐고 사람들이 묻고는 하는데요. 시골에 가면 내가 지구에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박: 사람들은 다양한 정체성을 가지고 살잖아요. 소장님은 그중에서도 여행가의 정체성이 가장 강해 보여요. 관성적인 생활을 멈춰버리는 것에 두려움이 없다는 점도 그렇고요. 

최: 아내랑 서로 약속한 것이 있어요. 아이를 다 키워놓고 나면 계속 여행을 다니자고요. 그렇게 여행을 다니다 길에서 죽자고요. (웃음) 

 

 

 

 

최봉국은 2023년 2월호에서 백에이 어소시에이츠(공동대표 박솔하, 안광일)의 오늘을 듣고 싶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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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봉국
최봉국은 건국대학교 졸업 후, 6년간 니드21에서 근무했다. 2013년 백에이 어소시에이츠를 공동 개소한 후 2016년
현재의 비케이 아키텍처를 혼자서 개소했다. 2019년 4월, 한국에서 타던 차를 그대로 가져가 1년간 아내, 딸과 함께 유럽 전역을 여행했다. 여행이 끝난 후 여행 에세이 『사월』(2020)을 출간했고 오랫동안 꿈꿔오던 작은 공간을 실현하는 작업에 집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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