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이트 아방가르드의 유령>을 읽는 다섯 가지 방식
건축가 김수근은 알지만, 한국종합기술개발공사(이하 기공)는 모른다. 오늘날의 세운상가, 여의도, 엑스포70 한국관을 우리는 쉽게 떠올리지만, 실현되지 못하고 사라진 건축의 청사진은 알지 못한다.
2018년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의 전시는 이렇게 한국 현대건축 역사에서 비워둔 채 방치됐던 1960년대라는 시대와 기공이라는 주체로부터 출발한다. 예술감독 박성태(정림건축문화재단 상임이사)와 박정현(마티 편집장), 정다영(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최춘웅(서울대학교 교수)이 큐레이터로 구성된 한국관 기획팀은 당초 1960년대 한국 도시계획의 기초를 세운 기공의 작업들을 통해서 국가 계획 이데올로기와 건축가의 비전을 충실한 아카이브로 보여주고자 했다. 하지만 막상 반세기 동안 관심 받지 못한 자료들은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그래서 전시기획단은 이 상황 자체를 ‘유령’이라 호명하면서, ‘부재하는 아카이브’를 꾸림과 동시에 기공의 작업들을 기반으로 현대건축가들의 예술적 실천을 보여주기로 했다. 한편으로 ‘도래하는 아카이브’라는 새로운 형식의 아카이브를 구성하여 미래의 가능성을 모색하려 했다. 이것이 스테이트 아방가르드의 유령이 호출된 경위고, 이 전시의 지향점이다.
이렇듯 전시 <스테이트 아방가르드의 유령>의 내용 구성은 직관적이기보다 관념적이며, 간결한 구성이기보다 여러 레이어가 동시다발적으로 엮여 있다. 전시의 밀도가 높고, 뚜렷한 선언이 없는 만큼 관객들로 하여금 독해의 의지를 요구한다. 고전의 권위를 부여받은 책들이 그러하듯이, ‘쉽게 읽히지 않는다’는 이면에는 텍스트 속에 녹아 있는 사유의 함량이 높다는 속성이 있을 것이다. 의지를 가지고 독해에 성공한다면, 지적 포만감을 넘어 또 다른 사유가 생산될 가능성이 높다.
이 글은 몇 가지 코드를 통해 쉽게 손에 잡히지 않는 <스테이트 아방가르드의 유령>을 읽어내려는 시도다. 전시를 보는 동선이 될 수도, 현장에 최대한 밀착해 전시를 경험하는 방식일 수도 있다. 무엇보다 이 전시를 구성하는 기본적이고 주요한 요소들을 뜯어보려고 했다. 여러 방식으로 겹쳐 읽다 보면 문득 <스테이트 아방가르드의 유령>의 실체를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전시장 중앙에 위치한 ‘도래하는 아카이브’ 영역은 확장되고 반사되는 재질을 활용한 오픈 스페이스의 형태로 미래를 암시하며, 전체 전시 공간의 분위기를 주도하고, 전시의 첫인상을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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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노그래피를 통해 읽기: 관객을 환대하는 전시 공간
처음 한국관에 들어서면 눈에 들어오는 것은 전시장 중앙 천창에서 쏟아지는 빛, 그 사이에서 어른거리는 투명한 아크릴 커튼, 내려온 빛을 반사하는 스테인리스 바닥, 여기에 미니멀하게 드리워진 추들, 사이사이에 정체를 알 수 없는 돌 사진들이다. 전시장 중앙에 위치한 ‘도래하는 아카이브’ 영역이다. ‘아카이브’라는 이름이 붙여져 있긴 하지만, 경계가 없고 모호한 영역으로 전체 전시 공간의 분위기를 주도하고, 전시의 첫인상을 만들고 있다.
이는 전시에 있어 ‘시각기획’에 해당하는 ‘시노그래피’로 설명될 수 있다. 이번 한국관의 시노그래피를 맡은 김용주(국립현대미술관 기획관)는 “열린 무대처럼 초청하고 환대하는 분위기의 영역을 만들어주고 싶었다”고 말한다.
시노그래피가 어떻게 형성되어 있는가를 살펴보면 각 전시물 사이의 맥락과 관계, 공간 사이의 구성 논리를 읽을 수 있다. 이번 한국관 전시는 크게 세 가지의 키존을 설정하고 있다. 고전적인 아카이브 전시 방식을 취하여 사실적 증거물을 배치하는 ‘부재하는 아카이브’, 확장되고 반사되는 재질을 활용한 오픈 스페이스의 형태로 미래를 암시하는 ‘도래하는 아카이브’, 그리고 부재하는 아카이브를 근원으로 두고 빠져나온 네 개의 작품(최춘웅, 설계회사, 바래, 김성우)이 관계 맺는 바닥의 그래픽 그리드 영역이다.
물론 이렇게 짜인 공간구성 논리와 시각화된 개념은 고작 몇 분 둘러보는 관객들에게 충분히 인지되거나 설득되지는 않지만 관객을 감각적으로 전시 공간에 초대하고, 전시의 지향점를 읽어낼 수 있는 기회와 가능성을 부여한다.
발렌틴 본트여스 반 비크(AA스쿨 교수)는 “내용 이해에 앞서 공간적으로 느낌이 좋다”며, “독일관은 한국관만큼 전시 내용이 산적해 있지만 공간이 불친절하여 그 내용을 파악하고 싶지 않았다. 그에 비해 한국관은 전시 공간이 사람들에게 호의적이며, 구획된 서로 다른 영역이 있다는 것을 알게 한다. 전시의 주제와 내용을 모두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전체적인 경험으로 다가왔다”고 말했다.
한국관에 세 번이나 방문한 리투아니아 건축가 로주라이티티(KILD 아키텍츠 공동대표)는 “한국관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공간은 전시장 입구(도래하는 아카이브)다. 입구에 들어섰을 때 다양한 이미지가 중첩되면서 매우 감동적인 느낌을 받았다. 또한 생각지 못한 틈새 공간들이 흥미로웠는데, 그 점이 이 전시를 돋보이게 만들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말하자면 한국관 곳곳에 포진된 전시의 주제와 내용들을 단시간에 충분히 이해하기 어렵다 하더라도, 내용을 넘어선 경험이 가능한 것이다. 이 읽기 방식을 가능케 하는 또 하나의 지점은 ‘커미션 워크’라는 전시 방식 때문이다. 예컨대 김경태(EH)의 ‘참조점’은 계획 단계부터 시노그래퍼와의 협의를 통해 완성된 작품이다. 전시 공간 속에서 작품이 어떤 위치에 어떤 방식으로 존재할 것인지 큐레이터와 작가가 함께 논의하고, 제공된 환경적 틀에 적합한 방식으로 작품이 완성되는 것이다. 이렇게 설정된 관계 때문에 공간과 작품이 서로 의지하면서 전시의 주제와 의도가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건축가가 아닌 전문 전시 공간 디자이너가 시노그래피를 풀었다는 점, 큐레이터와 작가들의 커미션 워크가 진행되었다는 점은 기존 한국관의 건축 전시 방식과는 차별화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바래의 ‘꿈 세포’는 벌집 구조로 이루어진 새하얀 돔 형태로, 관람객은 이를 직접 열고 닫으며 작품을 체험한다.
최춘웅, ‘미래의 부검’ 설치 부분,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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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작품으로 바라보기: 과거와 미래, 아카이브와 작품 사이의 비약
이번 한국관 참여작가로는 건축가인 김성우(N.E.E.D.건축사사무소), 전진홍, 최윤희(바래), 최춘웅(서울대학교 교수), 강현석(설계회사), 김건호(설계회사), 미디어 아티스트 서현석, 소설가 정지돈, 사진작가 김경태(EH)로 총 일곱 팀이다. 건축뿐만 아니라 다양한 예술 분야의 작가들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이 전시장에서의 작품들은 건축적 재현물보다는 예술 작품과 위상을 같이한다. 또한 애초에 그들의 작품은 기공의 유산에서 출발하되, 단순히 과거를 해석하는 층위가 아니라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서 완결성을 주문받았다.
아카이브로 출발한 리서치와 최종 결과물 사이의 이러한 비약이 전시의 독해를 지연하기도 하지만, 아카이브의 부속물이 아님으로써 오히려 관객들에게 미학적인 감상 요소를 제공한다.
특히 1960년대 기공의 프로젝트였던 세운상가, 여의도 마스터플랜, 엑스포70 한국관, 구로공단을 기반으로 설치 작품 네 개는 각자의 위치에서 다른 스케일로 다른 풍경을 선보인다.
세운상가를 다룬 김성우는 “‘급진적 변화의 도시’는 주변을 점거하기 위해 등장한 세운상가가 오히려 젠트리피케이션의 방파제 역할을 해왔지만 재개발의 압력을 끊임없이 받고 있는 상황에서 두 가지 방식의 새로운 세운상가의 역할을 모색한다”고 작품을 설명한다. 한편, “건축 모형이 하나의 예술 작업으로 보여지길 바랐다. 많은 건축 모형들이 건축가의 언어로만 표현되어 일반인과의 소통에 실패하는 경우를 많이 봤다. 우리가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요소들을 정말 가치 있는 방법으로 표현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최춘웅은 ‘미래의 부검’에서 1968년도 여의도 마스터플랜을 통해 건축가들이 꿈꿨던 여의도의 모습들을 시작으로 기존의 생태 환경, 현재의 여의도 모습까지 현실과 상상 속에 있었던 여의도를 하나로 묶어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었다. 시간의 켜를 중첩시키면서, 여의도에 투영됐던 꿈과 욕망을 모두 집합시킨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입체 도시와 이미지 콜라주 앞에서 막 걷기 시작한 아이나 어른 할 것 없이 관객들은 각자만의 상상 속 세계와 접속한다.
엑스포70을 다룬 설계회사의 ‘빌딩 스테이츠’는 국가와 개인의 서로 다른 열망 사이에서 기이하게 절충된 엑스포70의 모형을 한국관 외부에 설치된 두 개의 오브젝트가 만들어내는 현상 사이에 둔다. 한쪽은 발산하는 방식의 오브제, 다른 한쪽은 수렴되는 방식의 오브제다. 하지만 이 역시 엑스포70의 역사적 배경을 차마 인지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모형을 의자 삼아 앉아 있으면, 양 켠의 오브젝트들과 외부 자연환경이 반응하여 하나의 온전한 시각적 경험을 이룬다.
바래의 ‘꿈 세포’는 새하얀 벌집 구조로 이루어진 흰색 돔이 과거 구로공단 노동자들의 처참한 벌집 생활과 대비되면서 환상적 이미지가 극대화되는 한편, 관객들이 커튼처럼 열고 닫는 체험이 가능한 설치 작품이다.
발렌틴 본트여스 반 비크는 “사람들이 이 작품을 열고 닫으며 안으로 들어가보기도 한다. 멋진 움직임이다. 관객들에게 행동하도록 만드는 즐거운 작품이다”라고 평했다. 또한 세계 미술시장의 큰 손으로 꼽히는 샤르자미술재단의 후르 알 카시미 공주가 관심을 보인 작품이기도 하다.
건축 전시에서 사회적, 인문적 배경을 배제한 채 미술 작품과 같은 감상법으로 건축적 작품을 바라보는 일은 종합적인 건축의 속성을 놓칠 수 있는 방식이긴 하지만, 일반 관객들의 시각적 경험을 자극해 최종적으로 전시의 주제에 이르게 하는 하나의 독법으로 본다면 유의미한 전시 방식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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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관이라는 형식을 통해 읽기: 장소의 재발견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은 1995년 자르디니에 마지막으로 지어진 국가관으로 기공 도시계획부의 일원이었던 건축가 김석철과 이탈리아 건축가 프랑코 만쿠조가 공동 설계했다. 한국관 큐레이터인 정다영이 기획글에서 밝힌 것처럼, “마감 재료가 다양하고, 창이 많고, 틈이 많은 한국관은 전시를 실행하기에 매우 어려운 조건을 갖추고 있다”. 하지만 이번 베니스비엔날레 기획팀은 이러한 한국관의 특이성을 숙제처럼 여기지 않고, 그 특성을 충분히 활용하려는 태도를 취한다.
이를 테면 여러 방향으로 열려 있는 창들에 대해서 투명성을 다시 해석했다. 최대한 투명하게 열어 두되, ‘급진적 변화의 도시’ 작품 위의 사선의 창에서는 모형을 조감할 수 있도록 반사시트를 사용했고, ‘빌딩 스테이츠’ 작품과 만나는 창에는 프레임을 만들면서 직사광선을 피하고 은은한 자연채광이 가능하도록 안개시트를 사용했다. 또한 ‘환상도시’ 영상이 재생되는 공간은 썬팅필름을 통해 안에서는 밖이 보이되, 밖에서는 영상 영역임을 직감하도록 했다. 구조물을 사용해 억지로 공간을 구획하지 않고, 오히려 열린 방식으로 시선의 교류가 가능하도록 했다. 구축물이 아닌 바닥과 창을 통해서만 영역이 구획되도록 한 것이다.
김용주는 “이번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은 엑스포70 한국관의 오마주이기도 하다”며, “엑스포70에서 김수근은 파빌리온을 설계하면서 비물질적 현상을 활용하여 국가의 미래가치를 보여주고자 했다. 오사카 엑스포70에서 사용한 ‘반사, 확장, 경계 허물기’ 방식을 오마주하여 디자인 한 것”이라고 밝혔다.
정다영은 “한국관 자체가 국가적 개입을 통해서 탄생한 결과물이고, 그렇다면 이 전시장 또한 우리의 작업을 통해서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었다”며, “전시의 총합이 결국 한국관이라는 형식을 통해 드러나고, 그로 인해 이 장소의 새로움을 발견하게 되기를 바랐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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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대를 넘나드는 시그널 읽기: 응답하라 1968
한국관에서 감지할 수 있는 요소 중에 하나는 반세기라는 시간을 뛰어넘어 두 시대가 이 전시를 통해 교신하고 있다는 점이다. 부재하는 아카이브와 도래하는 아카이브, 이를 메우는 작가들의 작품이 관계 맺는 개념적 구성 이외에도 여러 시그널이 작동하고 있다.
서현석의 ‘환상도시’는 구현되지 않은 자유공간으로서 서울을 맥거핀으로 삼아 1960~70년대의 근대화 궤적을 추적하는 50분의 영상 작업이다. 영상 속에서 유토피아로서 서울과 현실의 서울은 마주 보고 있는 거울처럼 서로를 반영하며, 기공에 관련되었거나 이를 연구한 인물들의 육성을 통해 관객들을 이 교신의 장에 참여하도록 유도한다.
특히 5월 27일과 28일 양일에 진행되었던 건축가 김원과 소설가 정지돈의 낭독 퍼포먼스는 일시적이고 소박한 이벤트였지만, 하나의 상징적 사건이기도 했다. 엑스포70 한국관 설계에 참여한 김원이 설계회사의 작품인 엑스포70 한국관 모형에 앉아 「기공월보」 1968년 5월호에 기고했었던 에세이 ‘여의도의 감상적인 하루’를 먼저 낭독하고, 그보다 40살 어린 소설가 정지돈이 2018년 5월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에서 선보인 소설 ‘빛은 어디에서나 온다’를 이어 낭독했다. 화려한 퍼포먼스는 아니었지만 두 시대가 공명한 인상적인 순간이었다.
낭독이 끝난 후 강현석이 김원에게 “국가 건설의 시기에서부터 계속 아방가르드의 자세로 다음의 건축을 추구해 왔다. 아방가르드란 변화를 추구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 젊은 건축가들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선생님 세대가 만들어온 변화를 이어받아 다음의 변화를 고민하고 상상한다. 우리에게 하고 싶은 조언은 무엇인가”라고 물었을 때 김원은 “내가 20대 때 서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미래의 도시에 대해 확신이 없으면서도 그려나갔다. 그러면 그 다음날 실제로 지어졌다. 불안하고 무서운 상황이었다. 하지만 군사 독재 정권이었음에도 우리의 꿈을 어느 정도 밀어붙일 수 있었던, 건축가로서는 좋은 시절이었다. 지금은 아마 답답할 정도로 모든 게 다 있다. 그럼에도 뭔가를 끊임없이 도전해야 한다”고 답했다.
또한 전시에 참여한 소감을 물었을 때, 강현석은 “한국의 많은 젊은 건축가들이 제로에서 시작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이번 기회를 통해 딛고 일어날 토대가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이 시기에 대해 교육을 잘 받지 못했다. 개인적으로 이 전시를 하기 전과 지금은 너무 다르다. 학교에서 강의를 하고 있는데, 5년 후쯤에는 이번에 다뤘던 내용을 바탕으로 이론 수업을 하고 싶다”고 했다.
같은 맥락에서 정다영은 “과거를 인정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게 좋은지 나쁜지는 역사화를 하지 않고는 평가할 수 없다. 오늘날의 젊은 건축가들이 과거를 통해 자기 이야기를 하는 과정을 이번 전시를 통해 보여주고 싶었다. 1980년대생 건축가들에게 그런 의식이 보여 기대감이 크다. 그들이 역사를 냉정하게 보고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는 때가 됐다”고 이번 전시의 의미를 짚기도 했다.
벽돌방에 배치된 ‘부재하는 아카이브’에서 기공의 건축가들이 실제로 그려냈던 청사진, 그들의 욕망과 실패를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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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이브를 참조하며 읽기: 그리고 다시 아카이브
사실 아카이브는 이 전시의 시작이다. 아카이브를 참조하며 읽는 것이 정면으로 이 전시를 경험하는 방식일 것이다. 벽돌 방에 배치된 ‘부재하는 아카이브’를 통해 우리는 기공의 건축가들이 실제로 그려냈던 청사진, 그들의 욕망과 실패를 엿볼 수 있다. 제도적으로 기록되지 못한 아카이브는 건축의 역사, 사회적 역할, 예술적 의미, 나아가 일곱 팀의 작품이 표상하는 가치들에 대한 맥락과 이야기를 제공한다.
터키관 큐레이터인 칸수 쿠르겐은 “아카이브가 없음을 드러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이를 통해 편향된 아카이브에 대한 비판적인 도전이 가능하게 됐다. 또한 역사적 유령으로부터 현대의 건축가들 그리고 우리의 상상력은 더욱 강화된다”고 평했다. 아카이브를 경유하여 전시 공간을 읽고, 아카이브를 경유하여 작가의 작품을 읽고, 아카이브를 경유하여 한국관의 형식을 보고, 아카이브를 경유하여 세대 간의 시그널에 동참한다면 이 전시를 성공적으로 경험 수 있을 것이다.
한편으로 1960년대라는 미지의 시기를 환기하고 부재하는 기록을 가시화한 이번 전시 과정은 그 자체로 또 다른 아카이브다. 사실 이 방대하고 내밀한 아카이브 작업은 전시를 매개로 한 기획자, 연구자, 큐레이터라는 전문가들의 구성이 아니었다면, 연구자 개인의 차원으로는 매우 힘든 일이다. 하지만 전시는 한시적이고 도록 역시 파편화된 산물이므로 전시를 만든 사람들과 역할, 기획 과정, 작품의 물리적 구현, 전시 공간의 구성 방식, 전시와 관람객의 소통 결과 등 또한 기록으로 남길 필요가 있다.
한 권의 책을 훨씬 의미 있게 읽는 방법 중 하나는 더 큰 맥락 안에서 그 책의 위치와 특수성을 짚어보는 일일 것이다. 이런 점에서 2018 베니스비엔날레의 ‘자유공간’이라는 전체 주제의 맥락 안에서 한국관 전시 읽기는 어쩐지 불충분해 보인다. 1960년대 국가 개발 체제에서 태어날 수 없었던 시민 공간, 환대의 공간을 상상력을 통해 재점유한다는 관점에서 ‘자유공간’에 이르는 단서를 찾을 수는 있지만, 이에 대해 적극적으로 해석하고 있지는 않다.
불행 중 다행이라는 표현이 적절할지는 모르겠지만, 이미 주요 외신에서 이번 비엔날레의 주제가 국가관들의 시의적인 담론들을 응집하는데 실패했다는 비판이 일고 있는 가운데, 한국관이 전체 주제에 얼마나 부응했느냐의 유무를 따지는 일은 무의미해져 버렸다.
또한 이번 한국관이 애초에 겨냥한 과녁은 자못 분명하다. 한국의 특수성을 보편적 언어로 세계에 인지시킴으로 전체 주제에 응답하기보다는 한국 건축계 내에서 미처 대면하지 못한 시기와 주체를 수면 위로 끌어올림으로써 역사화하겠다는 것이다. 현재의 서울 도시 구조, 한국의 여러 제도와 체제의 가까운 기원이 되는 1960년대 말, 사회 혹은 산업과 맞물려 있었던 건축에 대한 역사적 토대를 마련하기 위한 그야말로 작정한 전시였다. 이 지향점에 다다르기 위해서는 베니스비엔날레의 한국관이라는 맥락이 제거된 귀국전을 통해 이 전시는 한국 건축계 현장에서 공유되고 담론화되어야 할 것이다.
이번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에서의 전시가 복제되든 변주되든 귀국전으로 적확히 안착시키는 방식은 기획팀의 남은 과제이겠지만, 한국 건축계 또한 의지를 가지고 이 전시를 취득하길 바란다. 2018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을 통해 1960년대의 유령은 호명됐고 정체를 드러냈다. 그러니 도래한, 도래하고 있는 건축의 다음 세대들이여, 응답하라.
▲ SPACE, 스페이스,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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