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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생, 성장, 죽음의 반복에 대하여: <정원 만들기>

최은화 기자
자료제공
글린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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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크닉 <정원 만들기> 

 

 

팬데믹이 길어지면서 식물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네이버 데이터랩에 따르면, ‘식물’, ‘정원’의 검색량은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가 본격적으로 확산되기 전인 지난 2020년 1월에 비해 올해 5월 127%, 212%씩 증가했다. 반려동물처럼 곁에 두고 기르는 ‘반려식물’이라는 신조어가 등장했고, 공간의 주요 요소가 식물이 되는 ‘플랜테리어’, ‘홈가드닝’도 유행이다. 

특히 최근 주목할 만한 점은 식물을 사적 공간으로 끌고 들어오는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는 것이다. 집 근처 산에 오르거나 공원으로 산책을 가는 것과는 다르다. 대로변의 나무와 꽃을 감상하는 것과도 거리가 멀다. 사람들은 자신의 공간 일부를 기꺼이 화분에게 내어주고, 꾸준한 관심을 쏟고, 반복되는 노동을 감내하며 식물을 돌본다. 우리는 왜 식물을 가꾸는 일에 매달릴까? 그에 대한 실마리를 어쩌면 전시 <정원 만들기>에서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시간의 변화를 전시하는 방식

서울시 중구 남창동에 위치한 피크닉에서 <정원 만들기>전이 4월 24일부터 열리고 있다. 작년 <명상> (월간 「SPACE(공간)」 631호 참고)에 이은 피크닉의 두 번째 기획 전시다. 피크닉을 운영하는 전시기획자 김범상(글린트 대표)은 “지난 전시의 메시지가 ‘명상을 합시다’였다면 이번 전시에서는 ‘자신만의 한 뼘 정원을 만듭시다’를 말하고자 했다”며 기획의도를 명쾌하게 밝혔다. 이번 전시를 통해 정원이 무엇인지 정의하기 보다는 식물과 정원을 가꾸는 행위에 대해 이야기하고, 그 경험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의미와 감동을 나누고 싶다고 전했다. 공공을 위한 ‘공원’이 아닌 사적인 ‘정원’에 주목한 이유에 대해서는, 그저 관망하는 태도에 그치지 않고 직접 흙을 만지고 식물을 살필 때 비로소 가닿을 수 있는 아름다움이 존재한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이번 전시는 ‘흙을 만지는 사람’을 ‘정원가’라 칭한다. 정영선(조경설계 서안 대표), 김봉찬(더가든 대표), 피트 아우돌프 등 정원을 통해 건축과 도시를 변화시킨 조경가뿐만 아니라 박완서, 카렐 차페크, 에밀리 디킨슨, 헤르만 헤세, 데렉 저먼 등 자신만의 정원을 가꾸고 그 노동으로부터 얻은 사색과 영감을 자신의 문학, 영화 작품으로 승화시킨 예술가까지 정원가로 호명한다. 또한 설치미술가 최정화, 영화감독 정재은, 그래픽디자이너 박연주, 회화 작가 박미나 등도 아우른다. 정원을 포착한 사진과 영상, 문학에서 발췌한 문장, 조경가의 도면 등 다양한 작품과 더불어 전시장 1층과 4층에는 실제 정원까지 조성했다.

김범상은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정원 전시에서는 무엇을 해야 하나? 식물을 전시하나? 화분을 보여주나? 정원가를 소개하나? 예술가에게 의뢰해서 정원과 관련된 작품을 만들어달라고 하나? 그것보다는 정원 자체를 만들어서 본연의 의미를 들여다보고 싶었다.” 그는 서울 도심 속 전시장에 식물을 끌고 들어올 때, 실내에 가두거나 박제하지 않고 자연에 있을 때와 마찬가지로 햇빛과 바람과 비를 맞게 하며 전시 기간인 봄, 여름, 가을의 계절에 따라 변해갈 수 있도록 했다. 시간에 따른 변화에 방점을 찍는 태도는 이번 전시에서 주요하게 다루는 두 정원가인 피트 아우돌프와 정영선에게서도 동일하게 발견된다. 피트 아우돌프는 “식물이 변화하는 과정을 모두 지켜본다. 거기서 아름다움이 비롯되기 때문이다”라고 말하며 “디자인은 식물로만 되는 게 아니다. 분위기와 계절성도 중요하다”고 언급한 바 있다. 정영선 또한 조경이란 “그냥 흙이 아니라 살아있는 흙을 다루는 일이다. 그 흙은 물론 그로부터 자라날 식물 역시 아침 저녁, 봄부터 겨울, 올해와 10년 후가 또 다르다”고 말했다. 이를 토대로 총 네 개의 섹션 ‘땅’, ‘정원가들’, ‘정원 일의 기쁨과 슬픔’, ‘나의 정원’으로 구성된 이번 전시를 계절별로 재구성해 살펴보았다. 

 

 

 

 

‘정원가들’​ 섹션의 정영선 

 

 

 

‘정원가들’​ 섹션의 피트 아우돌프

 

 


포스트스탠다즈가 디자인한 ‘정원가들’ 섹션의 평면도​ ​Post Standards

 

 


여름, 성장의 조건을 제공하다

 

식물을 ‘기르다’ 혹은 ‘키우다’라고 이야기할 때 결과가 가장 두드러지는 계절은 여름일 것이다. 여름은 생장의 계절이다. 잎이 자라고 꽃이 피며 녹음이 차오른다. 하루가 다르게 무성해지는 초록빛을 보면 절로 생명의 경이로움을 느끼게 된다. 이 놀라운 자연의 성장 과정은 인간의 영역을 벗어난 듯 보이지만, 정원에서는 이야기가 조금 다르다. 식물이 광합성과 호흡을 잘 할 수 있도록 사람이 환경을 조절해야 하기 때문이다. 흙을 고르고, 잡초를 뽑고, 물을 주는 등의 행위는 사실 정원의 일부인 셈이다. ‘정원가들’ 섹션은 이러한 육체노동을 서슴지 않은 여덟 명의 정원가를 소개한다.

‘정원가들’ 섹션은 체코의 극작가이자 소설가인 카렐 차페크의 말로부터 시작된다. “인간은 손바닥 만한 정원이라도 가져야 한다. 우리가 무엇을 딛고 있는지 알기 위해선 작은 화단 하나는 가꾸며 살아야 한다.” 이어서 영국과 미국에 400여 곳 이상의 정원을 설계하며 오늘날 정원 디자인 이론에 초석을 놓은 조경가 거트루드 지킬이 먼스테드 우드 정원을 돌보는 흑백사진, 『정원 가꾸기의 즐거움』(1952)을 집필할 정도로 정원에 대한 애정이 컸던 소설가 헤르만 헤세가 쪼그려 앉아 흙을 매만지는 모습, 소설가 박완서가 사용한 호미 등을 보여준다. 한국 조경가 정영선도 주요하게 소개된다. 올림픽공원, 국립중앙박물관, 선유도공원, 서울아산병원 공원 등의 사진과 스케치, 인터뷰를 통해 자연을 존중하고 자연과 인간 사이의 예술적 조화를 추구하는 그의 철학을 엿볼 수 있다. 지속가능한 정원, 곤충과 새들이 찾아오는 정원을 제시해 자연형 식재의 선구자로 불리는 네덜란드 출신의 조경가 피트 아우돌프의 작업 과정도 볼 수 있다. 하우저 앤 워스 아우돌프 필드, 루리가든, 더하이라인 등 그의 주요 작업이 전시됐다. 

마치 정원의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거닐며 식물 하나하나를 살펴보듯이, 전시장의 곡선 벽을 따라 이동하면서 정원가 한 사람 한 사람을 살펴볼 수 있다. 이 섹션의 공간을 디자인한 김민수(포스트스탠다즈 대표)는 “피트 아우돌프의 평면도를 전시 공간에 표현하듯, 곡면의 벽을 대입했다”고 설명했다. “참여 작가들이 전시장에 할당되는 면적, 공간 전체를 모두 사용하는 완성도 높은 동선, 적절한 조형과 기능성을 가진 벽의 형태, 이 세 가지가 조화롭게 어우러지도록 평면을 그리고, 이를 입체화했다”는 그의 설명은 조경가의 언어와 많이 닮아 있다. 

 

 

 

 

정재은, ‘정원의 방식’, 3채널 비디오, 컬러, 사운드, 각 30분, 2021
 

 

 

‘다섯 번의 계절: 피트 아우돌프의 정원’(2017)
 

 

가을 그리고 겨울, 이별의 광경을 목도하다

『정원의 쓸모』(2020)의 저자 수 스튜어트 스미스는 “정원을 돌보고 식물을 가꿀 때면 항상 이별과 재회를 맞닥뜨린다”고 했다. 움트는 생명들을 목격하는 즐거움을 이윽고 놓아주는 용기가 필요한 계절이 바로 가을과 겨울이다. 이번 전시의 시네마 프로그램으로 상영되는 ‘다섯 번의 계절: 피트 아우돌프의 정원’(2017)은 가을, 겨울, 봄, 여름, 다시 가을로 이어지는 시간을 담은 다큐멘터리다. 피트 아우돌프는 봄 동안 초록빛이 맴돌던 자신의 정원이 가을로 접어들며 갈색이 된 풍경을 바라본다. 겨울이 되어 잎을 다 떨구고 앙상해진 나뭇가지를 보고는 저문 생명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하는 대신 딱 이맘때에만 볼 수 있는 아름다운 형태라며 감탄한다. 그는 알록달록한 꽃에만 치중하지 않고 회색과 갈색을 띠는 씨송이, 나뭇가지까지 포섭하며 이 또한 정원의 중요 요소로 꼽는다. 심지어는 “어쩔 때는 꽃이 너무 많은 것 같기도 하다. 시들어 뼈대만 남은 모습이 그립기도 하다”고 하며 ‘죽음의 아름다움’, ‘쇠락의 아름다움’을 논한다. 

‘정원 일의 기쁨과 슬픔’ 섹션에서 상영되는 정재은의 ‘정원의 방식’(2021)은 겨울의 끝자락인 2월 말, 3월 초에 제주도에서 촬영된 영상이다. 30분간 이어지는 영상은 전반적으로 어슴푸레한 색감이다. 일반적으로 정원하면 떠오르는, 해가 쨍하게 내리쬐고 풀잎이 반짝이는 그런 장면과는 거리가 먼 풍경들이 이어진다. 카메라는 조용히 내려앉은 새벽녘, 작업 도구들을 챙겨 정원으로 향하는 사람을 비추며 흙을 다듬고 나무 줄기를 매만지는 모습을 따라간다. 조금씩 변해가는 정원의 모습과 이를 돌보는 정원가의 손길과 움직임을 보고 있노라면 돌봄, 노동, 헌신 등의 단어가 떠오른다. 정재은은 이 작품이 “정원가가 정원으로 나가기 전 거울 앞에 서서 작업을 위해 옷매무새를 단정하게 하고 작업 도구를 챙기는 시간과도 같기를 바랐다”고 했다. 

 

 

 

 

김봉찬·신준호, ‘어반 포레스트 가든’, 2021 

 

 

 

4층에 조성된 정영선의 정원
 

 

봄, 다시 땅에서 시작하다

계절이 다 돌고 난 다음에, 그리고 다시 새로운 생명이 솟아나는 출발점에 봄이 있다. 봄이 시작과 끝을 모두 품고 있다면, 이번 전시의 시작과 끝에는 땅이 있다. 1층에는 김봉찬과 신준호가 조성한 ‘어반 포레스트 가든’이, 4층 옥상에는 정영선의 정원이 있다. ‘어반 포레스트 가든’은 식물학과 생태학에 대한 연구와 오랜 현장 경험이 반영된 원시림 정원이다. 바닥 아래가 내려다보이는 철제 브리지를 따라 걸으면 관중, 블루호스타, 휴케라 등 여러해살이풀을 중심으로 한 정원을 볼 수 있다. 김봉찬은 “온대지역인 서울에서는 꽃이 20일 이상 가지 않기 때문에 꽃이 없어도 아름다움이 유지”될 수 있도록 계획했다고 설명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초록빛은 더 무성해지고 거친 자연의 느낌이 날 것이라고 전했다.

4층에는 사철패랭이, 작약, 자목련, 장미매발톱 등을 위주로 한 옥상정원이 마련됐다. 1층보다 꽃의 비율이 높아 계절마다 조금씩 변화가 있을 것이다. 정영선은 남산이 올려다보이는 이곳 옥상에 가능한 한 우리나라의 자생식물을 심으려고, 그중에서도 남산과 성북동 산에서 자생하는 종류를 심어서 한국 자연의 아름다움을 찾고자 했다. 또한 담을 낮추고 남산 풍경과 이어지듯 정원을 조성해 한국의 차경 효과를 냈다.

 

이번 <정원 만들기> 전시는 정원을 고정적인 대상이 아닌 변화의 과정으로 바라본다. 식물에게 생명의 경이로움뿐만 아니라 쇠락의 아름다움도 있다는 사실을 말하고, 항상 정원의 뒷면에 존재해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던 조경가들을 소개하며, 헌신과 돌봄이라는 인간의 본성을 다시금 되짚는다. 김범상은 “이번 전시를 본 관람객들에게 꽃이 조금은 달리 보이고, 화분 하나 사려는 마음이 생긴다면 이번 전시의 임무는 다한 것”이라며 “정원을 가꾸면서 사랑에 빠지고, 자신의 삶이 풍요로워지는 경험을 하기 바란다”고 했다. 

피크닉에 조성된 정원은 전시 기간 동안 조경가 이대길(아녜스너서리 대표)이 관리한다. 글린트는 전시가 종료된 이후에도 앞으로도 이 정원들을 보존하고 유지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내년에도, 그다음 해에도 피크닉에는 계속해서 봄이 돌아올 전망이다. 전시는 10월 24일까지. (글 최은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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