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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조금 더 천천히, 조금 더 깊숙하게: <명상>

자료제공
글린트
진행
박세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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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5월 개관 이후 색다른 공간과 전시 기획으로 대중들의 사랑을 받았던 피크닉이 이번에는 <명상 Mindfulness>으로 우리를 찾아왔다. 피크닉을 운영하고 있는 글린트의 대표이자, 전시기획자인 김범상은 그간 과감하면서도 감각적인 전시를 선보여왔다. 특히 이번 전시는 명상이라는 주제에 맞게 속도를 줄이고 예술작품을 통해 깊은 경험을 하도록 기획됐다. 그에게 이번 전시에 켜켜이 쌓여있는 이야기들을 들어보았다.

 

​인터뷰 김범상 글린트 대표 × 박세미 기자

 

박세미(박): 피크닉이 개관 이후 <류이치 사카모토 Ryuichi Sakamoto: LIFE, LIFE>, <재스퍼 모리슨 Jasper Morrison: THINGNESS>, <페터 팝스트 Peter Pabst: WHITE RED PINK GREEN>까지 각 예술가의 고유한 작업세계를 색다른 방식으로 펼쳐 보였다면, 이번 전시는 ‘명상’을 주제로 다양한 예술가들과 작품을 한데 모았다. 그간의 전시들보다 기획성이 더 두드러진다. 어떤 계기로 이번 전시를 준비하게 되었는가?

김범상(김): 늘 작가와 작품보다 ‘무엇을 어떻게 보여줄까’ 하는 기획이 강조된 전시를 하고 싶었고, 그렇게 해왔다고 생각한다. 류이치 사카모토나 재스퍼 모리슨의 경우 고전적인 미술 작가가 아니었기에, 작가와 협의를 거쳐 그들의 작업과 생각들을 잘 보여줄 수 있는 다양한 구성을 만들곤 했다. 에서 알바 노토(Alva Noto)와의 협업이나 영화 음악에 대해 언급한 부분은 우리가 직접 구성해 제안했고, 에서는 런던 숍을 벤치마킹해 더 큰 규모로 재구성했다. 비트라의 후원을 받아 재스퍼 모리슨 가구를 직접 체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조성한 루프탑 라운지도 같은 경우이다. 나는 개별적인 작품보다 처음 전시에 입장해서 끝날 때까지, 사람들 마음속에 만들어내는 감정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명상 Mindfulness>은 그 연장선상에 있다. 명상은 30대 초반부터 줄곧 관심을 가져왔던 주제 중 하나였는데, 최근 몇 년 들어 사람들 사이에서 회자되고 유행하는 것을 느꼈다. 그러던 중 사우스 바이 사우스웨스트(SXSW) 부대 행사로 열린 웰니스 페어에서 사람들의 폭팔적인 관심을 보고, 어떤 거대한 흐름 같은 것을 느끼고 전시를 준비하게 됐다. 평소 앰비언트 뮤직이나 동양적 세계관을 서정적으로 표현한 작품들에 많은 관심을 두고 있었기에 충분히 가능할 것 같았다. 그리고 앞서 특정 인물을 조명하는 전시에 비해, 더 자유롭게 기획자의 선택과 배열을 통해 주제를 전달할 수 있는 경우라고 생각했다.

 

박: “기획 혹은 기획자가 중심이 되는 전시”라고 말한 부분이 인상적이다. 작가를 구성하는 방식, 전시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일반적인 방식과는 어떻게 다른가? 

김: 늘 고민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솔직히 말하면, 명확한 프로세스가 없다. (웃음) 일단 충분한 리서치를 한다. 장르와 작가를 가리지 않고 미술 작가, 음악가, 셰프들까지.. 그리고 어떤 희미한 윤곽이 떠오르면 그때부터 구체적인 전체 구성을 만든다. 연역적이기보다 귀납적으로, 나중에 만들어진다. 보통의 미술관이 주제와 작가 리스트에 따른 기획서를 먼저 만들고 커뮤니케이션하는 것과는 다른 방식이다. 그중에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을 제외하고 나면 작품이라는 몇 가지 점들이 말을 하고, 그것을 소재로 우리 역시 작품을 만들 듯이 작업한다. 작가 입장에서 볼 때는 불만이 있기도 하고, 또 완성된 전체 전시를 보며 스스로 놀라기도 한다. 엄청난 비효율을 가지고 있지만 훌륭한 직원들과 함께 아웅다웅하며 일하고 있다.

 

박: ‘바르도’(차웨이 차이), ‘다섯 개의 마주하는 원’(미야지마 타츠오)와 같은 기존 작품들도 있지만, ‘원 오브 제로’(박서보+원 오브 제로), ‘느리게 걷기’(오마 스페이스)처럼 이번 전시를 위해 새롭게 선보이는 작업들도 있다. 전시 공간 속에 작품이 어떤 위치에 어떤 방식으로 존재할 것인지 기획자와 작가가 함께 논의해 만들어가는 부분이 중요했을 것 같다. 

김: 기존의 작품들의 경우 기획 과정에서 전시 의도에 맞게 재구성되는 것들이 많다. 예를 들어 ‘느리게 걷기’는 구글의 자카드(Jacquard) 기술과 아티스트가 협업한 큰 규모의 인터랙티브 작업이었다. <명상>에서는 작가와 논의를 통해 감각에 집중하는 경험에 더 초점을 맞추어 비교적 단순하게 재구성했다. ‘원 오브 제로’는 박서보와 원 오브 제로가 짝을 이뤄 완성한 작품이다. 처음 기획 단계에서는 마크 로스코와 필립 존슨의 ‘로스코 예배당’을 상상했는데, 박서보 선생님의 작품을 어떻게 더 새롭게 보여줄까를 고민하며 오히려 더 재미있는 결과물이 나온 것 같다.

 

차웨이 차이, '바르도', HD 비디오, 컬러, 사운드, 5분 30초, 2016

 

박: 큰 질문일 수는 있지만, 명상의 힘, 예술의 힘, 그리고 명상과 예술의 접점에 대한 생각을 듣고 싶다.

김: 두려움이나 분노 앞에서 창의적이고 생산적인 활동이란 불가능하다. 거기에 모든 주의를 빼앗겨 버리기 때문이다. 그 대부분은 과거의 후회와 미래의 걱정, 타인에 대한 서운함으로 이루어져 있는 허상들인데도 말이다. 명상은 여기에서 벗어나서 현재의 나를 바라보는 데 도움을 준다. 또한 이 부분이 창의성의 출발점이라고 봤다. 영감과 직관은 이런 투명한 의식 속에서 더 잘 구현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예술가들은 그 잠재된 창의성을 명료하게 인지하고 활용할 줄 아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작품을 통해 관객 역시 명상이 추구하는 순수 인식의 세계에 조금이나마 다가갈 수 있기를 바랐다.

 

박: 최근 관객의 참여를 유도하거나 직접 작품을 경험하게 하는 전시들이 많이 보인다. 그런데 이번 <명상>의 경우 그 강도가 높은 것 같다. (웃음) 비약하자면, 전시장에 첫 발을 내딛자 마자 관객은 향냄새를 맡게 되며, ‘느리게 걷기’에서는 신발을 벗어야 하고, ‘숨쉬는 공간’(플라스티크 판타스티+마르코 바로티)에서는 온 몸이 풍선에 짓눌리며, ‘空簡’(패브리커)에서는 절대암흑을 경험해야 한다. 적정 시간 머무르면서 어떤 작품도 그냥 지나치게 놔두지 않고, 시각, 후각, 촉각을 사용하며, 순차적으로 전시를 경험하게 한다. 심지어 사진촬영도 금지되어 있다. (웃음)

김: 지난 피나 바우쉬 무대 미술에 관한 전시를 할 때는 ‘공연 예술이 가지고 있는 한정된 시간 예술의 속성을 전시라는 형태로 해방시키고 싶었다’라고 말하곤 했다. 공간과 시간은 상호작용하지만, 한계를 뛰어넘으려는 시도 속에서 새로운 예술, 새로운 감각이 탄생한다고 생각한다. 마치 칸딘스키가 재즈를 그리려고 했던 것처럼 말이다. 그것은 영상과 공연의 결합과 같은 단선적인 개념이 아니라, 오히려 각 분야가 가진 원래의 속성을 깊이 경험할 때 탄생하는 새로운 무언가라고 생각한다. 

이번 전시의 작품들은 개별적으로도 좋은 작품이고, 맥락상 순차적으로 경험하는 것이 중요했기 때문에, 전시 동선을 많이 고민했다. 백화점이나 쇼핑몰과 같은 공간은 방대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사람들의 동선이나 행동을 연구하고 계산한 결과다. 그 정도는 아닐지라도 시간과 공간에 대한 최소한의 인식을 가지고 작업했다.

사진 촬영에 대한 고민도 많다. 2000년대까지만 해도 전시장 안에서 작품을 사진 찍는다는 것은 금지되어 있는  일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전시 자체가 사진 찍기를 종용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상황이 됐다. 솔직히 말하자면, 페터 팝스트 전시에서 소위 ‘인스타그래머블’한 장면을 전혀 의식하지 않았다. 의도와 다르게 피나 바우쉬를 모욕했다느니, 거대한 사진관을 만들었다느니 하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인스타그래머블한가’로 전시의 성공 여부를 가늠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반대로 가야 차별성이 생긴다는 생각을 했다. 이런 것들은 차치하고서라도 이번 전시가 명상을 주제로 삼은 이상 온전히 전시를 경험하는 데 집중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사진 촬영에 제한을 두었다. 

 

박서보 + 원 오브 제로, ‘원 오브 제로’, 공간 설치, 2020 

 

플라스티크 판타스티크 + 마르코 바로티, ‘숨쉬는 공간’, 설치, 플라스틱 시트, 환풍기와 스피커, 250×1440cm, 2015

 

오마 스페이스, ‘느리게 걷기’, 설치, 혼합 재료(삼베 800조각, 흙, 자갈, 산호모래, 닥지, 야자섬유 등), 1000×1000×250cm, 2020

 

박: 공간을 기반으로 한 작품들이 눈에 띈다. ‘원 오브 제로’, ‘숨쉬는 공간’, ‘空間’ 등과 같은 작품뿐 아니라, 옥상에 사무소효자동에서 작업한 다실과 수공간이 마련됐다. 이 공간은 관람객들이 전시를 반추하거나, 일상으로 천천히 복귀하도록 돕는다. 전시장 안에서의 과감하고 적극적인 공간 기획이 관람객들로 하여금 다른 차원에서 전시를 감각하게 하는 것 같다.

김: 이제 미술관은 매우 다양한 시도들이 벌어지며 종합적인 기능을 하는 장소이다. 이전에는 잘 이루어지지 않았던, 다양한 장르와 넓은 스펙트럼의 전시 형태를 과감하게 시도해 보고자 한다. 공간을 통한 경험 역시 그중에 하나다. 우리가 좋은 건축물에 가면 ‘여기서 바람 소리가 잘 들리네, 여기선 하늘의 결이 다양하게 보이는구나’ 느낀다. 그 자체로 여타 설치미술 이상으로 감동을 줄 수 있는 예술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명상>이 전체적으로 어두운 공간에서 작품에 집중할 수 있도록 계획됐기 때문에, 옥상에 이른 관객에게 탁 트인 풍경과 고요한 시간을 선사하고 싶었다. 그래서 마지막 순서로 남산이 보이는 다도 공간을 기획했고, 서승모 소장이 좋은 마무리 공간을 만들어 주었다.​ 

 

박: <명상 Mindfulness>은 주제와 형식 면에서 코로나19 시기를 전면적으로 통과하는 전시다. 현대에서 질병(감염병)은 계속 안고 가야할 숙제이니만큼 코로나 이후의 전시 방식, 혹은 질병에 대응하는 전시 방식에 대한 고민이 있을 것 같다.  

김:  깊이 고민해 보지는 못했다. 하지만 비대면 방식의 예술과 그 가능성을 논하기 전에, 좋은 공간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대화를 나누는 일, 자연을 느끼며 산책하는 일, 좋은 예술 작품을 보고 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일이 인류가 만들어낸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시간이라 생각하기에 이런 것을 어떻게 지켜 낼 수 있을까를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유튜브에서 쉽게 콘텐츠를 볼 수 있다는 점은 좋다고 생각하지만, 라이브 공연에서 현장의 공기를 느끼며 내가 그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데 참여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다.​ 

 



 


김범상
김범상은 문화예술 기획자이자, 피크닉을 운영하고 있는 글린트 대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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