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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원화의 전시의 공간] 3. 스크린 속의 전시장

윤원화
진행
박세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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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단 이미지) 전시 〈흐름과 막힘〉 라이브스트리밍 사이트 캡쳐

 

 

전시가 스크린 속으로 들어온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디지털 미디어는 초창기부터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새로운 활동 공간을 표방했고 많은 사람들이 거기서 전시를 만들었다. 그렇지만 스크린으로 매개되는 가상적 공간이란 정확히 뭘까? 네트워크의 단말기로서 스크린은 언제나 눈앞에 보이는 것보다 더 방대한 공간이 저 너머에 펼쳐져 있다고 암시한다. 사용자는 전체를 조망할 수 없는 위치에서 각자 단편적으로 주어진 것들을 바탕으로 지금 자기가 접한 공간이 어떤 곳이며 거기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알게 된다. 이는 우리가 세계를 알아가는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현실이 설령 다 알 수 없다고 해도 객관적으로 확실히 거기 있다고 여겨지는 반면, 스크린 너머의 공간은 바로 그 현실을 좀 더 불확실하고 유령적인 모습으로 증식시키는 난해한 블랙박스로 나타난다. 

이 애매한 공간에 어떻게 접근하는가에 따라 그곳에 조성되는 전시장의 맥락이 결정된다. 몇 가지 패턴들을 식별해보자. 먼저 아무것도 없는, 중력도 없고 심지어 크기도 정해지지 않은 텅 빈 공간이 있다. 이는 딱히 초현실적인 것이 아니라 백지상태의 빈 문서가 가진 기본 속성이다. 기본적으로 디지털 미디어는 일정한 문법을 지켜야 하는 가상의 백지들을 제공하며, 이것이 삶의 터전이 된다는 것은 우리의 일상이 끝없는 문서들의 흐름 속으로 말려든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텍스트 기반의 초기 월드와이드웹에 처음으로 그래픽 웹 브라우저가 도입되었을 때, 이 백지는 지루한 문서가 아니라 감각적 자극과 시각적 질서로 충전될 수 있는 전도유망한 공유지로 재정의되었다. 사람들은 외계 행성의 개척민처럼 이 대지에 직접 집을 짓고 마을을 이루었고, 이런 경험은 디지털 미디어가 기성 질서를 우회하는 무제한의 신대륙을 열어준다는 집단적 상상에 불을 지폈다. 그 사이에서 예술가들이 만든 자치적 공간들은 새로운 정착지를 탐사하는 이주민들의 전진 기지에 가까웠다. 

그렇지만 스크린 속의 가상적 대지는 체계적으로 계획되고 규제되는 일종의 신도시로서 빠르게 개발되었다. 사람들은 더 이상 집을 직접 지을 필요가 없었고 점진적으로 집이라는 은유 자체가 쇠퇴했다. 디지털 미디어가 단순히 덧붙여진 공간이 아니라 순수한 통로들의 다발로서 도시와 그 거주자들의 집합적 신체를 변형할 수 있다는 것이 분명해지면서, 유동인구 또는 데이터 트래픽이 공간의 가치를 결정하는 핵심 척도로 떠올랐다. 이제 누구나 각자의 방을 가질 수 있을 만큼 충분히 넓다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거기서 무엇이든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다고 해도 그걸 봐 주는 사람이 없으면 무소용이라는 것이다. 디지털 미디어의 신도시는 누구나 자기를 전시할 수 있는 플랫폼으로, 더 나아가 모두가 자기의 전시 가치를 최대화하도록 동기를 부여하는 게임으로 진화했다. 온라인 쇼핑몰에서 소셜 네트워크까지, 사용자의 기호에 따라 각자의 스크린 속에서 재배열되는 통로들의 미궁이 새로운 번화가의 가변적 구조가 되었다. 

원래 도시 중심가는 고유한 전시 또는 과시의 기능이 있다. 눈에 보이는 것은 중요하며 많은 사람들의 눈에 보이는 것은 더욱 중요하다는 전시 가치의 논리는 본질적으로 세속화된 도시 문화를 반영한다. 무언가를 본다고 하는 무상하고 종잡을 수 없는 행위가 날카롭게 의식되고 그 자체로 하나의 목적이 되어 별도의 제도를 거느리게 된 데는 대도시라는 시각적 장치도 한몫 했을 것이다. 도시는 누구도 완전히 통제할 수 없는 방식으로 여러 가지를 드러내 보이고 또 숨긴다. 여기에 디지털 미디어가 가시성의 질서를 재편하는 도시의 새로운 층위로 자리 잡으면서, 스크린으로 접근 가능한 거점을 확보하는 것은 미술 기관들의 필수 요건이 되었다. 그러나 이런 공간들은 얼마 전까지도 실제 전시장을 홍보하는 가상적 대로변의 광고판이나 안내 센터 아니면 부대 행사를 위한 다목적 평면이었지 전시장의 대체물로 진지하게 고려되는 경우는 드물었다. 미술관들은 어디까지나 저기 바깥에 있는 도시의 일원으로, 디지털 미디어로 끊임없이 재현되고 합성되지만 스크린으로는 다 보일 수 없는 다면적이고 독자적인 전체로 자기를 소개했다. 

현실의 모든 것을 흡수하고 분해해서 더욱 최적화된 방식으로 재배치할 수 있다는 디지털 미디어 업계의 호언이 정말로 실현된다면 어떻게 될까? 실제로 이 막연한 질문은 갑작스러운 전염병의 유행으로 미술관을 비롯한 다수의 공공 기관들이 폐쇄되고 디지털 미디어가 긴급 피난처로 가동되면서 예기치 않게 현실로 밀어닥쳤다. 결과적으로 그것은 스크린으로 접근 가능한 공통의 도시가 개방되는 것이 아니라 개개인의 생활공간이 임시방편의 미디어센터로 재조직되는 것으로 경험되었다. 도시 전역에 물리적으로 분절되었던 기능들이 한 집 또는 하나의 스크린에 집중되면서 모든 것이 서로 겹쳐지고 간섭하고 경쟁했다. 그것은 하나의 장소가 동시에 어린이집이자 학교이자 사무실이자 침실이자 식당이자 미술관이자 마트이자 관공서가 되는 고밀도의 특이점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 같은 시공간적 혼돈 속에서 어떻게든 전시를 성립시키려고 애썼다. 그렇지만 이 혼란은 우리의 고해상도 스크린 속 공간이 24/7시간을 전부 감쌀 만큼 확장될 때 무엇이 보이고 또 보이지 않게 되는지 확인하는 기회이기도 했다. 

결국 전시가 요청되는 것은 자연 상태로 잘 보이지 않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초점을 맞추기 위해 가늘게 뜬 눈에서 시작된 전시들이 어디서 자기 자리를 구하고 다른 눈들을 만날 수 있을까 했을 때, 스크린은 계속해서 하나의 선택지가 될 것이다. 그러나 스크린은 눈꺼풀이나 물리적 전시장의 벽체와 마찬가지로 시야를 제한함으로써 강화하는 장치다. 무엇이든 눈앞으로 가져올 수 있다고, 또는 더 정확히 말해 당신의 시선을 끄는 것들만 모아 당신의 시야를 가득 채울 수 있다고 약속하면서 스크린은 점점 더 눈에 가까이 달라붙는다. 그것이 보여주는 파노라마적 세계는 어느 정도 허상이지만, 그 허상을 대담하게 찢어 보인다는 것도 대개는 착시이다. 무언가를 보이게 하는 데는 눈에 보이지 않는 노고가 든다. 겹겹이 인공적으로 구축된 우리의 가시적 세계에서 당신의 눈을 두드리는 것들을 잘 보고 또 보여주는 일은 정말로 쉽지 않다.

 

 

배드 뉴 데이즈(김나영, 안준형, 이민성, 장영민, 주현욱), <흐름과 막힘>, 2020. / Image courtesy Bad New Days

“배드 뉴 데이즈의 <흐름과 막힘> 퍼포먼스는 화물연대가 2002년부터 진행해온 선전전의 기록을 참조한다. 11월 한 달간 진행되었던 모든 선전전 기록을 조사한 후, 같은 일자, 같은 시간에 그들의 루트를 반복해서 달린다. 선전전의 출발지에서 시작된 라이브 스트리밍은 해당 기록이 끝난 위치에 도착한 시점에서 종료된다. 과거 11월 모일의 화물 트럭과 현재 2020년 11월 모일의 화물 트럭, 두 대의 트럭이 10여 년의 간격을 두고 같은 날 같은 시간에 같은 궤적을 그리게 된다.” ​ 



▲ SPACE, 스페이스, 공간


윤원화
윤원화는 시각문화 연구자다. 저서로 『그림 창문 거울: 미술 전시장의 사진들』, 『1002번째 밤: 2010년대 서울의 미술들』 등이 있다. <다음 문장을 읽으시오>(일민미술관, 2014)를 공동 기획했고,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2018에서 ‘부드러운 지점들’을 공동 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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