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ACE(공간)」 2023년 12월호 (통권 673호)
[PROJECT] 하이테크와 로테크 사이 적정 기술
네이버 데이터센터 각 세종(이하 각 세종)의 건축 비전은 쉽게 표현해 ‘로봇이 관리·감독하고 서버장비가 살고 있는 건물’을 만드는 것이었다. 이러한 비전 아래, 설계 초기에 각 세종의 입면은 네 가지의 ‘제로(zero)’ 목표에서 출발했다. 첫째는 ‘넷제로(net zero)에너지’, 둘째는 ‘건축 재료 낭비의 제로화’, 셋째는 ‘인간 운영의 제로화’, 그리고 마지막은 장기적인 인간의 수고를 요구하는 ‘유지 및 관리의 제로화’였다. 이를 구현하기 위해 초기 계획안에서 우리는 제로 목표에 가장 근접하게 부합하는 공법, 재료, 그리고 폼파인딩 엔지니어링(form-finding engineering)에 집중했다.
우선 공법은 다기능의 단일 구조 유닛 형태인 파사드 블록으로 구성했다. 재료는 별도의 후가공 처리를 요구하지 않는 스테인리스스틸, 마린그레이드 알루미늄, PC 콘크리트 패널을 고려했다. 마지막으로 폼파인딩 엔지니어링은 환경 조건, 형상 기능, 그리고 형상 제어 로직를 이용하여 형상을 찾아내는 분석 과정으로, 각 세종만을 위한 커스텀 분석 툴을 따로 구성해 진행했다. 이는 인간의 감각에 의존하는 미적 측면을 최소화하고, 형태에서 기능과 구조적 성능을 도출하여 파사드를 극경량화하기 위해서다.
초기 계획안은 최소한의 가공을 요하면서 열 관리 기능을 극대화할 수 있는 키네틱 파사드 블록으로 디자인을 제안했다. 키네틱 파사드의 경우 바람 및 태양 각도의 변화, 파사드 유지관리를 위한 액세스 등 다양한 요인에 따라 각 루버는 개별적으로 반응할 수 있어야 하며, 루버의 형태는 최적화된 규격으로 모듈화된 블록 형태를 고려했다. 하지만 초기 계획안을 현실화하는 과정에서, 더욱 효율적인 공사 기간과 비용의 최적화를 위해 파사드 기능을 축소하게 됐다. 블록 형태의 3차원 입면에서 패널 형태의 2차원 입면으로 변경된 것이다. 2차원 입면이란 곧 표면(surface)에 집중한다는 뜻으로, 면 자체가 구조, 차양, 통풍, 차폐, 안전과 같은 여러 기능과 일체화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잘게 나뉜 블록 모듈에서 간소한 면의 형태가 되면서 디자인적으로도 ‘제로화’에 보다 부합한다고 판단됐다.
면으로 구성되는 파사드에 구조적 강성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면에 깊이가 필요하다. 종이를 접거나 종이를 동그랗게 말았을 때 생기는 강성을 이용하는 것과 동일한 원리다. 이에 대한 연구는 깊이를 만들어내는 형상, 깊이 값, 그리고 폭 너비의 상관관계 속에서 대상지가 가진 풍압을 견디는 조건을 찾는 것으로, 이 작업 또한 폼파인딩 엔지니어링에 의해 수행됐다. 한편, 차양 및 통풍 기능은 대상지의 태양 경로에 따른 계절별 열사량과 지형을 고려한 바람을 CFD(Computational Fluid Dynamic, 전산 유체역학) 분석, 그리고 MEP협력사들과의 코디네이션을 통해 5~30% 개방률로 최적화됐다. 위와 같은 방식으로 곡면 골 형태로 도출된 파사드는 구조적인 성능과 함께, 최대 30% 개방률을 가진 3mm 두께의 알루미늄 면으로 계획됐다. 단일 패널 하나의 높이인 2.7m 구간에서는 별도의 지지체를 요구하지 않고, 상단과 하단에서 건물 주구조와 연결되는 수평 브라켓에 의해서만 지지되며, 파사드 자체의 무게도 극소화됐다.
초기 키네틱 파사드 디자인 스터디
이와 같은 설계 단계의 연구는 실제 파사드 제작으로도 이어졌다. 총 연장이 4km에 달하는 전면 파사드를 위해 당시 현실적으로 사용 가능한 방법은 알루미늄 시트를 수동으로 절곡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방법은 비용과 제작 기간이 늘어나 초기 프로젝트의 기본 목표에도 어긋나는 터라 적용이 불가능했다. 제작 단계에서도 사람의 운영을 최소화하고 제작 시간을 줄이는 다른 방식을 강구해야 했다.
해법은 실제로 차용할 수 있는 가까운 분야에서 찾았다. 바로 대규모 공장 건물에 일반적으로 많이 쓰이는 골강판을 제작하는 롤성형기였다. 국내에서는 건물의 외기를 견딜 수 있는 큰 스케일의 알루미늄 골강판을 제작한 사례가 아직 없기 때문에 롤의 개수, 롤라인의 개수와 위치, 롤압의 정도, 성형라인의 길이, 1차 롤성형 후 제작 오차, 평면과 롤성형의 타공 위치 관계, 그리고 제작 오차 교정기 개발에 대한 모든 스터디를 신속하게 진행했다. 약 4개월 간 이어진 테스트 끝에 목업 샘플을 생산하게 됐다. 목업 샘플의 최종 테스트에서 길이 2.7m, 폭 1m의 패널을 성형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3분 정도로 측정됐다. 이는 수동으로 절곡하는 시간의 약 1/200 수준으로, 제작 시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할 수 있는 방식이었다.
파사드 평면 디테일
알루미늄 골성형 파사드 외에도 매스를 덮는 하부의 MEP루버는 우선 서버를 위한 기능으로 통풍과 방수가 동시에 가능한 내폭풍(stormproof) 루버 형태로, 상부 배기구에서 나온 열이 하부의 흡기구로 들어가지 않도록 하는 역기류 방지 기능도 포함됐다. 또한 관리자들이 외부 점검로(캣워크)를 지나갈 때 최대한 물리적, 심리적 안전을 줄 수 있는 기능도 요구됐다. 위 기능들을 충족하기 위해 이중으로 구성된 핀 구조가 수평적으로 최대한 길게 이어진 면으로 읽힐 수 있는 커스텀 제작 루버를 제안했다.
파사드 설계 및 제작에 이어 유지관리 등의 사후 측면에서도 네이버 프로젝트는 다른 프로젝트들과 차별된다. 네이버는 초기 비전, 계획 제안, 실시 제안, 그리고 시공 제작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을 디지털 데이터로 기록하는 독특한 디자인 프로세스를 가지고 있다. 프로젝트 전반에 걸쳐 수집되고 형성된 데이터와 입면 디자인 로직들이 지속적으로 사용·개발될 수 있도록 오픈 소스 기반의 비주얼 스크립트로 작성됐다.
파사드 단면 디테일
어떤 프로젝트이든 큰 비전 아래 세웠던 초기의 목표와 계획은 현실화되면서 많은 조정을 거치게 된다. 따라서 프로젝트 후반에 초기 목표와 계획에 더욱 가깝게 다가가기 위한 발판 또는 장치가 필요한데, 그것이 데이터와 데이터를 운용하는 로직이다. 오픈 소스 기반을 이용하면 특정 기간이나 개발자에 의해 그 프로세스가 영향을 받지 않고, 지속적으로 사용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 바탕이 된다. 비주얼 스크립트로 작성하는 이유는 전문 프로그래머가 아닌, 직접 설계를 수행하는 디자이너가 손쉽게 작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이 비주얼 스크립트는 최대한 쉽게 접근 및 개발 가능한 플랫폼을 사용함으로써 특정 기간, 소프트웨어 업체, 개발자 등의 구애를 받지 않고 지속 가능한 각 세종만의 디자인 툴로써 장기적으로 발전될 수 있다. 더 나아가 완공된 각 세종을 운영하면서 도출되는 데이터는 계속 수집돼, 계획 당시의 데이터와 비교, 분석될 것이다. 이러한 비교 및 분석 결과를 근거로 추후에 반영할 디자인 로직을 정비하고 발전시켜 장기적으로는 ‘제로’ 목표를 실현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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