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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장소가 될 순교지: 남양 성모성지 대성당

자료제공
HnSa 건축사사무소
진행
김예람 기자
background


ⓒKim Yongkwan 

 

 

이상각 천주교 수원교구 남양 성모성지 전담 신부, 한만원 남양 성모성지 총괄건축가 × 김정은 편집장 

 

 

김정은(김): 남양 성모성지는 병인박해(1866)로 유명을 달리한 ‘무명 순교자들의 순교지’라는 역사적 성격에, 1991년 국내 첫 성모성지로 봉헌됐다. 이상각 신부는 3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이곳을 성지화하는 데 매진해왔는데 그 배경이 궁금하다. 

이상각(이): 1983년 말, 향토 사학자와 역사 연구가의 논문을 통해 남양 성모성지가 병인박해의 순교지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나는 1989년 8월 이곳으로 발령을 받아 순교자를 현향하고 그들의 정신을 기리는 장소로 만들고자 했는데, 그때의 국제 정세는 베를린 장벽 붕괴로 아주 드라마틱한 상황이었다. 도저히 사라지지 않을 것만 같던 동독과 서독의 경계가 없어지는 것을 보니 혹시 다음에는 북한에서 변화가 일어나지 않을까 싶어, 당시 교구장 주교에게 남양 성모성지를 통일과 평화를 위한 묵주의 기도 장소로 봉헌하자고 제안했다.​

 

김: 이 성지를 대중적인 순례지로 만들고자 했던 것 같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장소로 만들기 위해 어디에 주안점을 두었는가? 

이: 그동안 국내 신도들은 관광버스를 대절해서 가톨릭 성지에 방문하는 방식에 익숙해져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이렇게 단체로 이동하며 순례하는 시대는 지나고 개별적으로 종교 공간에 방문하는 시대가 왔다고 느꼈다. 앞으로는 개인이 종교시설에서 받은 감동과 만족감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방식으로 순례가 이뤄지고 성지를 재방문하는 상황이 만들어질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소쇄원 같은 건축물을 롤모델 삼아 자연과 가까이에 있는 종교시설을 만들어 사람들이 편히 쉬어갈 수 있는 장소를 만들고자 했다. 

 

김: 많은 건축가와 소통하며 남양 성모성지의 마스터플랜을 만들어나갔다. 어떠한 순서로 계획안을 구상했는지 듣고 싶다. 

이: 건축물은 한번 짓고 나면 쉽게 부숴버릴 수 없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접근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좋은 건축물을 보고 느끼기 위해 1995년에 월간 「플러스」에서 모집하는 르 코르뷔지에 건축기행에 참여했다. 유럽의 여러 건축물을 탐방하는 일정 덕분에 마리오 보타의 국제결제은행(Bank for International Settlements)을 처음 봤다. 건축가가 건물은 물론이고 그 안에 들어가는 가구까지 설계한다는 것을 알고 감탄했다. 그 영향을 받아 심명섭(대림대학교 명예교수)과 함께 천장에서 빛이 들어오는 기도 장소 같은 원형 화장실을 만들었다. 마리오 보타의 건축물을 보지 않았다면 이런 건물을 성지에 짓지 못했을 것이다. 남양 성모성지의 첫 마스터플랜은 성당을 많이 지어본 경험이 있는 김영섭(김영섭건축문화건축사사무소 대표)에게 부탁했다. 그는 현재 대성당이 지어진 곳의 왼쪽 산꼭대기에 기념비적인 작은 성당을 계획했다. 돌이켜보면 롱샹성당 같은 모습이었다. 두 번째 마스터플랜은 김종규(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와 구상했다. 지금의 경당 자리에 성당을 설계했는데 디자인이 좋음에도 불구하고 성도를 수용하기에는 크기가 작아서 실현하지 못했다. 그다음에는 장 미셸 빌모트(빌모트 앤 어소시에이츠 대표)를 만났다. 조각 작품 때문에 알게 된 최종태(서울대학교 명예교수)로부터 소개받아 어떤 성당을 지으면 좋을지 제안해 달라고 부탁했는데, 그는 성지 전체를 모형으로 만들어서 나에게 프레젠테이션을 했다. 작은 종이에 스케치를 그려서 보여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엄청 부담스러웠다. (웃음) 성당은 라데팡스처럼 일직선으로 그려진 길에 직교하는 모양으로 디자인됐는데, 만약 이대로 지어지면 기존에 가꿔온 요소들이 이 건물의 정원으로 그칠 것 같아 정중히 거절했다. 그 후 2000년에 김광현(서울대학교 명예교수)과 기존 요소의 연속성을 중요하게 고려하며 네 번째 마스터플랜을 의논했다. 그때 대성당과 정문의 위치를 결정했다.

 

김: 남양 성모성지 봉헌 20주년인 2011년에 대성당 건립 계획을 세웠다. 대지의 중심축 끝에 놓여진 이 건물을 마리오 보타가 설계하게 된 배경에 대해 설명해 달라. 

이: 그동안 해온 묵주기도보다 더 강한 기도가 필요하다고 느껴서 성금을 모아 대성당을 짓기로 했다. 예전에 테르메 발스 온천에 가서 목욕을 했는데 강렬한 빛과 고요한 곳에 떨어지는 물소리 때문에 마치 예식에 참여하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그 경험이 너무 인상적이어서 대성당 설계를 페터 춤토르에게 의뢰하려고 했다. 그런데 광화문 교보빌딩 설계에 참여한 전문가가 마리오 보타에게 설계를 맡기는 것은 어떻겠냐고 말하면서 그와 함께 작업한 한국 건축가를 소개해줬다. 그 사람이 바로 한만원(HnSa 건축사사무소 대표)이다. 그렇게 2011년 6월에 한만원을 만나 설계에 필요한 모든 자료를 전달했고, 마리오 보타로부터 설계 요청에 응하겠다는 연락을 받았다. 처음에는 그에게 3,000명을 수용하는 대성당을 의뢰했는데 입지와 지붕 구조에 관한 문제 때문에 건물 규모를 1,300명에 맞게 줄였다. 

 

 

벽돌 봉헌 중 마리오 보타 / 사진제공 HnSa 건축사사무소 

 

남양 성모성지 대성당 단면 모형 / 사진제공 HnSa 건축사사무소​

 

조각가 줄리아노 반지와 건축가 마리오 보타 / 사진제공 HnSa 건축사사무소​​

 

남양 성모성지 대성당의 대성전 천장 / 사진 제공 HnSa 건축사사무소​​

 

남양 성모성지 배치도

 

 

김: 대성당의 타워 두 개가 인상적이다. 이 탑은 빛을 내부로 들일 뿐만 아니라 공기의 순환을 돕는다고 들었다.

한만원(한): 건물과 지층 사이에 에어 터널을 설치하는 서멀 래버린스 시스템(Thermal Labyrinth System)을 통해 공기 흐름을 원활하게 만들었다. 일정한 지중 온도를 활용하기 때문에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한 바람이 들어오는 공간을 만들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대성당처럼 대규모 공간에서 냉난방을 조절하려면 엄청난 에너지가 드는데 이 시스템 덕분에 에너지 효율이 약 30~40% 좋아진다고 한다.

 

김: 남양 성모성지의 대성당은 미사와 전례뿐만 아니라 다양한 문화행사를 수용하기 때문에 세심하게 설계된 음환경을 필요로 했다. 높은 품질의 음향 환경을 만들기 위해 어떠한 디테일을 적용했는가?

한: 음향은 공간의 성격에 영향을 미치게 되는 또 다른 시각적 요소를 동반하게 된다. 음향 디자이너와 함께 건물 디자인을 바꾸지 않으면서 소리를 제어하려고 했는데 탑과 제실, 그리고 천장 볼트가 가장 문제였다. 타워에서 발생하는 소리 울림은 내부 벽체에 유공 흡음 석고보드를 덧대는 방법으로 해결했다. 측면에 위치한 반원형 측면 제실들의 형태로 인해 소리가 집중되는 현상은 지그재그로 쌓인 벽돌로 난반사를 일으켜서 처리했다. 대성전에 계획된 삼각형 천장 구조는 소리를 튕겨내면서 소리의 진행을 방해하는데, 그 현상을 개선하기 위해 가운데가 비어 있는 트러스 구조로 바꾸고 소리가 통과할 수 있도록 사이사이 틈이 있는 목재 루버로 마감했다.

 

김: 페터 춤토르의 대성당 설계는 불발됐지만, 그가 그 옆에 티 하우스를 디자인하고 있다. 8년 동안 한 건물을 설계하고 있는데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 마리오 보타에게 성지의 허리가 되는 부분에 작은 경당을 짓고 싶다고 말하면서 페터 춤토르를 소개해 달라고 했다. 춤토르는 성지가 천주교 테마파크처럼 될까봐 걱정하다가 2014년 8월 한국에 방문했다. 그때 그가 국립박물관에서 개최된 동양 산수화 전시를 감상했는데, 작품 속에 이상향으로 등장하는 다도 공간을 남양 성모성지에 계획한다면 이 프로젝트에 기꺼이 참여하겠다고 말했다. “가장 종교적인 체험이 반드시 종교적 장소에서만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는 그의 말에는 종교건축에 대한 그의 깊은 성찰이 담겨 있는 것 같다.

한: 춤토르는 설계하는 대지를 이해하기 위해 오랜 시간을 현장에 머무는데, 비 오는 날 질퍽한 철쭉밭을 헤치며 빨간 줄과 장대로 티 하우스의 크기를 가늠하던 그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김: 국내 건축가와 조경가의 작업도 연이어 완성될 예정이라고 들었다. 

이: 문화시설이 별로 없는 이 지역의 주민들을 위해 성지 입구에 극장, 전시장, 카페 등을 아우르는 평화나눔센터를 계획했다. 2017년 4월, 젊은 건축가 다섯 팀을 초청하여 건물 설계를 의뢰하는 지명공모를 진행했고, 스토커 리 건축(공동대표 멜라니 스토커, 이동준)과 건축사사무소 원오원아키텍스(대표 최욱)가 당선자로 선정됐다. 그들은 변화에 잘 적응하고 자연과 어우러지는 건축물을 제안했는데 아마 올해 가을에 공사를 시작하게 될 것 같다. 승효상(이로재 건축사사무소 대표)은 2만여 명의 국내 순교자를 추모하며 명상할 수 있는 ‘순교자의 언덕’을 만들고 있다. 그리고 남양 성모성지의 전체 조경을 맡은 정영선(조경설계 서안 대표)이 얼마 전에 대성당 전면의 조경 시공을 마쳤다. 

 

김: 조성될 공간이 많아 보이는데 앞으로 남양 성모성지를 어떻게 활용할 계획인가? 문화 프로그램을 개최할 의향이 있는지도 궁금하다.

이: 요즘 들어 특히 대성당을 공연 장소나 영상 촬영지로 사용하고 싶다는 연락이 많이 온다. 일단 하드웨어를 잘 구축한 다음, 운영위원회를 구성해 이곳을 의미 있게 활용할 수 있는 이벤트의 성격과 기준을 마련하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 파이프 오르간의 설치가 완료되는 2023년 7~8월 즈음에 대성당을 봉헌하고 나면 공간 활용계획이 지금보다는 뚜렷해지지 않을까 싶다. 


▲ SPACE, 스페이스, 공간


이상각
이상각은 충청북도 무극에서 태어나 1986년 사제품을 받았다. 그는 1989년 8월부터 남양 본당 및 남양 성모성지 주임신부로 재직했으며, 성지 전체의 조성 계획을 맡아 진행해왔다. 지금은 천주교 수원교구 남양 성모성지 전담 신부이다. 지은 책으로 『성지에 사는 어느 신부의 사랑이야기』(1997), 『아! 예수님, 좀 보태주십시오』(1999), 『오상의 비오 신부 이야기』(2011), 『요한과 함께하는 한 주간의 렉시오디비나』(2011) 등이 있고, 강론 CD로 『마리아의 손을 잡아라』(2008)가 있다.
한만원
한만원은 홍익대학교와 파리 라빌레트 건축대학교에서 건축을 공부했으며, 프랑스 페르난도 몬테스 사무실과 스위스의 마리오 보타 아키텍티에서 근무하였다. 1996년 이후에는 국내에서 활동하며 서울 건축학교, 경기대학교, 홍익대학교 등에서 강의를 진행했었다. 젊은건축가상, 서울건축문화제, 대한민국 건축문화제 등의 운영위원장과 파리 한국건축전(2014), 런던 한국건축전(2015) 커미셔너를 역임하기도 했다. 현재 HnSa 건축사사무소 대표이며 여러 해외 건축가들과의 협업 프로젝트도 수행해오고 있다. 대표작으로는 가나아트샵, 안중성당, 이촌동 동부 센트레빌, 유연제, M 하우스, 왈종 미술관, 한운사 기념관, 디어스 사옥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