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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에서 공공성을 실현하는 방식

이영범(경기대학교 교수)
사진
이현준(별도표기 외)
진행
이성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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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신숭배로 인해 사물화되는 가치

대상을 사회적 관계 속에서 살펴보는 관점은 단순한 미학의 차원을 넘어 대상이 지닌 의미와 가치를 파악하는 데 매우 유용하다. 노들섬을 바라보는 시선 역시 그렇다. 건축의 상징성이나 형태의 미학에 대한 최근 논란을 떠나서 노들섬의 공적 개발의 본질은, 노들섬이라는 유보된 공유지를 공적 개발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두 가지 문제로 정의할 수 있다. 공유지에 대한 정부의 미성숙한 인식, 그리고 노들섬 조성 과정에 개입한 이해당사자들 간 의사결정과 합의의 비민주적인 행정 절차가 그것이다. 그리고 기존의 공모로 승인한 운영 권한의 취소, 시설이 존재하지 않는데 시설 운영자를 먼저 정하는 방식이 행정 절차상 불가능하게 됨으로써 다시 건축설계를 선 시행하는 방식으로의 회귀, 제한된 운영권을 부여하는 민간위탁 제도에의 의존 등 일련의 시행착오는 노들섬에 대한 시민들의 열망과 거리가 먼 경직된 제도에서 비롯된 현실의 단면이다. 그렇다면 노들섬을 문화화하여 시민의 영토로 재구축하는 바람직한 방향은 무엇이었을까? 대상을 바라보는 각기 다른 관점과 열망을 개인화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구성원 모두가 함께 키우고 나눌 수 있는 희망의 공유지를 확보하는 것이다. 이는 자본의 땅이 지배하는 거대도시 서울에서 모두를 위한 미래의 유보지로 노들섬을 지켜내는 일이기도 하다.

“왜 그 땅에 반영구적인 건축물을 지어야만 했을까?”라는 질문을 던져본다. 노들꿈섬이라는 초기 접근은 공간과 시간을 다루는 새로운 사용문법으로 보였다. 일, 놀이, 문화의 경계가 희미해지면서 등장한 자유롭고 새로운 삶의 방식을 노들꿈섬에서 담아보려는 노력은 구체적인 건축물의 구축 없이도 가능했다. 노들꿈섬은 공간과 장소, 경관과 환경,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 문화와 삶과 같은 도시의 공적 장소에서의 행위를 이해하는 전통적 방식에 이의를 제기하는 시도였다. 시민의 문화 향유 가능성을 키우면서 참신한 공간기획의 아이디어와 문화적 상상력이 더해졌다. 운영이 공간의 구축보다 앞서야 한다는 발상의 전환이 참신했다. 그런데 여기까지였다. 멈춰선 엔진은 익숙한 방식으로 되돌아가야만 했다. 그리고 우리 눈앞에는 자연이 쌓은 켜에 더해진 인공의 구축물이 익숙하지 않은 풍경처럼 펼쳐졌다. 노들섬에는 자연과 시간, 그리고 도시와 문화가 서로 얽힌 상황과 관계가 있었다. 구축 이전에 노들섬이 발신하던 고유의 장소성에 내재된 경계의 조건(boundary condition)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했다. 자연의 땅에 인간의 욕망을 문화화하기에 앞서 경계 허물기에 대한 타당성을 검증했어야만 했다. 또한 미학적 관점을 넘어서서 노들섬에 건축물을 구축하는 태도가 지닌 사회적 윤리에 대해 고민해야 했다.

현대사회에서 가치는 물신숭배(fetishism)로 인해 늘 사물화된다. 노들섬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다. 시민을 위한 공유지로서의 가치는 경직된 행정과 제도의 개입으로 일순간 사물화되었다. 노들섬 운영총감독인 김정빈(서울시립대학교 교수)의 인터뷰에 이런 구절이 있다. “단 하루의 자발적 표류. 일상을 벗어나 문득 표류하듯이 찾아와 예기치 않은 즐거움을 발견하는 곳, 그곳이 노들섬입니다.” 이 표현에서처럼 노들섬의 문화화에 개입한 구조의 핵심 키워드는 ‘시민’, ‘일상의 삶’, ‘문화예술’, ‘자발성과 민주성’이라고 할 수 있다. 노들섬에 건축물을 구축하는 의도는 문화예술을 즐기려는 시민의 욕망을 담는 공적인 판을 공간화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공간화된 구축의 방식은 문화의 생태섬을 향한 시민들의 열망과 거리가 먼 낯선 경관을 낳았다. 실재하면서 동시에 상상되는 공간이 아니었다. 일상을 벗어난 표류의 공간이기보다 목적을 갖고 방문하지 않으면 안 될 일회적 소비 공간으로 전락하여 결과적으로 시민들의 문화적 삶과 이를 담는 그릇인 공간 사이에 괴리가 생겼다.

 

물리적 형식이 지배적 내용이 된 현재

노들섬의 변화는 과연 좋은 변화인가? 이 물음에 답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질문을 제기하는 것이 오히려 유효할 것 같다. 노들섬이라는 공유지와 그 공간에 대한 배타적 사용권을 지닌 시민 사이에 성립하는 관계로서 ‘공간정의’가 실천되었는가? 노들섬은 끊임없이 휴식과 놀이라는 사회의 문화적 담론을 재생산하는 새로운 광장이며 그 광장은 도시민 누구나 주연배우가 될 수 있는 일상생활의 무대여야 한다. 공공성과 공동성의 의미를 구축한 일상의 광장을 통해 도시민의 문화적 빈곤화와 파편화를 치유하고 사라진 생활 축제의 전통과 의식에 내재된 문화 잠재성을 발굴하는 광장으로써 노들섬이 ‘단 하루의 자발적 표류’가 가능한 공유지로써 탈바꿈했는지 그 평가를 지금 내리기는 성급할 것이다. 하지만 노들섬이 변화의 가능성을 내포한 다양한 공간 언어를 갖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최근 건축물을 둘러싸고 논란이 야기된 것도 노들섬만이 갖는 고유의 장소의 본성, 즉 차이의 미학을 구축이란 구체적 방식을 통해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공공성이란 화두를 노들섬에서 구체적 경험의 실체로 구축하는 것은 장소성의 가치를 존중하고 재현하는 문화적 태도, 그리고 공간과 운영의 통합에 달려 있다. 하지만 우리가 마주한 노들섬의 현실은 건축물이라는 물리적 형식이 곧 지배적 내용이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시간과 장소, 공간과 구조, 힘과 이해관계 등을 읽고 문화의 영토로 해석해온 고민이 구축의 단계에 이르러서는 어느 순간 지나치게 단순화된 형상으로 치환됨으로써 문화적 해석의 다양성을 상실하게 된 것이다.

노들섬은 우리가 다 기억하지 못하는 시간성의 장소이다. 하지만 우리가 노들섬에서 꿈꾼 문화적 상상력이 재현된 건축물에는 우리가 노들섬에서 무엇을 끝까지 놓치지 말아야 하는지, 그리고 노들섬에 대한 인위적 개입이 그 장소가 갖는 기억들을 어떻게 현재화하여 존재의 가치를 살려 낼 수 있는지에 대한 공간적 상상력이 없다. 영토화되어 이제는 운영 단계로 넘어간 현 시점에서 노들섬을 문화적으로 재구축하는 과정은, 공간에 내재된 경직된 구조를 어떻게 운영을 통해 좀 더 느슨한 형태의 유연한 관계망으로 전환시켜 시민사회와 소통 가능한 문화적 공간 언어로 재구성할 수 있는지에 달려 있다.

 

©Yu Cheong O

 

도시 공유지에 대한 권리

정부는 공유지의 활용 가능성을 논의할 때마다 늘 시민과 함께하는 행정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정부는 정작 구체적인 행정력의 실천에서 시민사회가 납득하기 어려운 자신만의 잣대를 들이댄다. 시민들을 위한 가치는 그저 전면에 내세운 허울 좋은 명분이 되고, 그 명분 아래 도사린 행정 편의주의가 아마도 그 잣대가 될 것이다. 그래서 시민들은 늘 ‘우리는 같은 길을 걸어가고 있는 것일까?’라는 의문을 갖게 된다. 노들섬과 같이 정부가 소유한 공공자산은 엄밀히 말하면 시민자산이다. 과거에 비해 상대적으로 시민참여가 활발해진 것은 사실이지만, 실질적인 의사결정 단계에서는 참여가 이뤄지지 못한 채 공공자산을 공공, 즉 정부의 자산으로 여기며 정부가 일방적으로 용도를 결정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이러한 의사결정의 오류를 어떻게 시정할 수 활용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정부 주도의 권력 독점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이는 시민사회가 권력화되어서 생긴 불균형이 아니기에 행정의 환골탈태가 절실하다. 시민사회의 자율성을 강조하는 행정 시스템으로의 프레임 전환이 필요하다.

공유자산의 사용과 처분에 관한 의사결정권을 독점하려는 정부와, 공유지에 대한 권리 주장과 자율적 운영권을 확보하려는 시민사회의 대립은 궁극적으로 도시 인권의 신장을 통해 해결돼야 한다. 공유지에 대한 시민사회의 자율성 확보는 도시 공간에 대한 권리가 인권이라는 생각에 닿아 있다. 공유지에 대한 자율성 확보는 도시에서 인권을 신장해나가기 위한 기본 사항에 해당한다. 시민사회가 공유자산에 대한 자율적 운영을 통해 공유지를 확보해나가는 것은 한순간에, 아니면 노들섬을 둘러싼 논의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시민사회의 자율성의 영역을 제도화된 행정력의 틀 안에서 확장해나가려면 가장 먼저 시민들이 자신의 권리를 인식하고 정부로부터 시민공동체의 가치가 우선하는 의사소통의 자유를 얻어내는 것이 필요하다.

 

로컬리티의 인문학적 공간 가치와 차이의 미학

문화를 매개로 삶과 장소, 지역과 사회, 그리고 도시와 경제가 지속적으로 순환되며 끊임없이 재활용될 수 있는 문화 재생산의 순환 공간체계를 구성하는 전략은 크게 세 단계로 나뉠 수 있다. 문화 공간의 1차적 순환은 문화 공간에 공공 부문의 개입에 의한 제도적 문화 공간의 생산단계이며, 문화 공간의 2차적 순환은 로컬 거버넌스에 의한 문화 공간의 탈제도화 및 탈정치화 단계이며, 문화 공간의 3차적 순환은 시민사회의 다양한 문화 주체 간 협의체에 의한 문화 공간의 사회적 재생산이 가능한 단계로 볼 수 있다. 노들섬은 이제 1차적 순환에서 2차적 순환으로의 전이에 들어섰다. 이 과정에서 흔히 발생하는 오류는 문화라는 좋은 의도로 시작하지만 개념화, 제도화, 사업화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문화 공권력’이 형성되고 그 권력으로 인해 사업에 경직성이 생긴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시민이 주체가 되어 도시의 일상생활문화의 풍부한 콘텐츠를 끊임없이 재생산해낼 수 있는 민간의 자생적 문화판을 형성하기 어렵게 된다. 이는 곧 공유지를 통한 문화주권의 문제로 연결된다. 자연섬의 생성과 인공섬으로의 변이 과정에서 문화적으로 재영토화된 노들섬이 하나의 영토로서 규정된 개별적 정체성과 문화적 다양성을 확보하여 문화주권을 획득할 수 있으려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노들섬의 경우, 공유지에 대한 정부의 왜곡된 인식과 개념화가 사업이란 형식과 결합되면서 문화의 무한한 잠재력이 축소되고 왜곡되는 위기를 드러냈다. 여기에는 문화를 하나의 대상이나 사물의 세계로 인식하고 이를 제한하고 싶은 욕망이 내재해 있다. 

통상 우리가 이런 태도를 취하는 것은 이렇게 함으로써 문화를 하나의 조작 가능한 세계로 구성하기 용이하기 때문이다. 그 욕망은 결국 이데올로기로서 문화지상주의를 만들어낸다. 결과적으로 문화가 대상에 내포된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거라는 맹목에 가까운 정치적 낙관주의가 지금의 노들섬이라는 비문화적 처방전을 발행한 셈이다. 문화로 또 다른 미래를 꿈꾸고 있는가, 아니면 과거를 되풀이할 것인가는 바로 시민사회를 문화 주체로서 어떻게 키워내느냐에 달려 있다. 시민사회의 감수성, 즉 자유로운 정신의 에너지를 문화를 통해 어떻게 극대화할 것인가는 시민사회를 대표하는 제3의 주체인 공적인 민간에게 노들섬이란 공간의 지속적 운영과 운영 주체의 자율성을 얼마만큼 허용할 것인지에 달려 있다. 공간을 지배하는 관 주도의 일방적인 문화 공권력을 탈피할 때 비로소 공간이 자유로울 수 있다. 제도로서의 노들섬이나 기획된 문화가 아니라 개별로서의 시민 개개인이 노들섬에서 다른 도시의 장소성과 구분되는 차이의 미학과 일상의 생활문화를 즐기며 활동할 때 노들섬은 도시의 새로운 미래가 될 수 있다.

 

 


이영범
이영범은 서울대학교 건축학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영국 AA스쿨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현재 경기대학교 건축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도시 공공성과 디자인의 사회적 역할을 실천하기 위해 시민단체인 도시연대에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 『도시의 죽음을 기억하라』, 『건축과 도시 공공성으로 읽다』, 『창조도시를 넘어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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