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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인간 그리고 건축의 삶이라는 성좌

김동진(홍익대학교 교수)
사진
신경섭
자료제공
로디자인
진행
박세미 기자
background

가상성과 현실 사이에서 생성되는 또 다른 실재

성좌(星座)는 인류가 태곳적부터 하늘을 관찰하며 역사 속에서 끊임없이 서사를 만들어온 대상이다. 사실 성좌를 이루는 별들은 제각각 공간 속에서 자신의 질량과 중력과 궤도를 가지고 쉼 없이 운동하는 존재들이다. 뿐만 아니라 시간으로 봐도 수천 수억 년씩 떨어져 있어 그들 각자에서 나오는 빛도 같은 차원에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인간의 삶 속에서 그들은 어떤 강렬한 파장으로 다가와 물리적으로, 정서적으로 영향을 준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름다운 의미를 형성한다. 일종의 가상인 동시에 현실이다. 나는 사회 혹은 공동체를 이루고 사는 인간의 삶, 그리고 그것과 뗄 수 없는 장소(시간 속 공간이자 지각적 체험의 장)인 건축도 별자리와 같다는 생각을 한다.

구체적인 인간의 삶을 겪어내는 주택을 설계할 때 더욱 그렇다. 가족 구성원 하나하나의 잠재된 꿈들과 다중적 생활 패턴, 집에 대해 가지는 욕망들을 듣고 있자면, 제각기 다른 시간과 궤도를 갖는 별들과 겹친다. 어느새 나는 고대의 한 점성술사가 되어 별들을 관찰하는 느낌을 받는다. 큰 다이어그램 안에서 각각의 과정적 다이어그램들의 떨림이 울림의 징후를 보이며 커다란 나선을 그려나갈 즈음, 나는 어느 현명한 연금술사의 희열을 힐끗 본다. 가상성과 현실 사이에서 실재성이 깨어나는 현장이다. 물론 이때의 실재하는 일상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계속 생성되는 과정이므로 건축 또한 유기물과 같은 가소성을 가지며 진화되어야 한다. 그래서 건축적 과정이란, 사람들의 심연에 내재된 꿈과 사회 공공의 응축된 욕망들을 건축가의 실천적 다이어그램을 통해 프로그래밍하여 현실 세계에 ‘잠재적 가능성’이 내포되도록 새롭게 스토리텔링하는 일에 다름 아니다.

 

이야기를 생성하는 건축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1855년 루이스 캐럴이 처음 지은 이래 수많은 스토리 작가나 그림 작가들에게 영감을 주어 세상에서 가장 많은 버전으로 출판됐다. 여러 이유를 찾을 수 있겠지만 무엇보다 상상의 캐릭터들이 만드는 다양한 사건과 언어유희 가득한 스토리가 사람들의 인식과 감각 과정에서 어떤 원형을 형성하기 때문일 것이다. 150년이 지나는 동안 지치지 않고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사랑해온 그 이야기, 그림과 이야기가 보태지고 각색되면서 반복적으로 생성되는 이 멋진 고전은 나의 건축 짓기에서 생성의 원천이 되어준다. 내가 설계 과정을 ‘자기 조직하는 다이어그램으로서 앨리스의 비눗방울(Alice's Bubble as Self-Generating Diagram)’로 표현하는 이유다. 

이 표현은 우리가 사는 물리적 세상에 사람들의 생기 넘치는 새로운 이야기들을 계속적으로 불어넣고자 하는 고민에서 나왔다. 과정적 다이어그램으로서의 버블은 기존의 형식을 탈피하고 새로운 건축적 적응을 꾀할 수 있도록 좀더 유연한 그림 그리기를 시도한다. 가상 속에서 부유하는 버블들은 고정된 형태로 고착되기보다 상황에 따라 무한히 재-배치되면서 새로운 건축 유형을 발생시키는 유연한 유기체로 작동된다. 이 개념은 이 시대에 건축은 무엇을 담아야 하는가, 하는 고민에 대한 잠정적 답으로서 멀티버설 플레이싱(multiversal placing)의 과정과 접속(disjunction)한다. 

루이스 칸의 고유한 특성을 가진 ‘방들의 사회(Society of Rooms)’와 미스 반 데어 로에의 ‘보편적 공간(Universal Space)’에서 찾은 제3의 길이 ‘멀티버설 플레이싱’ 개념이다. 칸의 독립적인 하나의 결정체적 성역이 모인 공간 단위에서는 ‘다색적인 내밀성(Polychrome Intimacy)’이 확보되는 대신, 각각의 방들이 위계와 질서를 가지고 고정되기에 유연한 접속이 차단될 수 있다. 반면 미스가 제시한 자유평면(Plan Libre)은 오픈 스페이스로서 상호 공간 균질성과 가변성이 주어지는 이점이 있다. 하지만 여전히 이 중립적인 공간은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칫 획일적인 아파트문화와 무책임한 임대 관행의 희생물이 되기 십상이다. 멀티버설 플레이싱은 주택의 사용자들 각각의 다색적인 내밀성을 담는 가소성의 방들이 유연하게 상호 접속하고 관계를 생성함으로써 욕망하는 기계(machine de désir)로서 존재하게 된다.

 

디아스포라 커뮤니티 다이어그램

 

내밀한 우주를 담지한 자기 조직의 장

‘멀티버설 플레이싱’으로 제시된 집에서 가족들은 주어진 캐릭터와 에피소드가 만드는 사건을 겪으며 새로운 나날을 맞는다. 집은 시트콤이 펼쳐지는 무대이며 배경이다. 배경은 사용자들 스스로 무한한 콘텐츠의 생산과 유통이 가능한 곳으로, 각각의 이야기를 가지고 서로 충돌하며 새로운 이야기를 발생시킬 수 있는 영원한 미완의 장소(Story Becoming Place)다. 다양한 개체들이 능동적으로 욕망하며 상호침투적으로 지속적 접속을 이끌어내는 장(Connecting Field)이다. 이로써 건축은 물리적 시설로서의 수용 개념을 넘어서게 된다. 건축은 인간의 다양한 프로그램을 중첩적으로 담으며 대지를 새롭게 조직하는 되기(becoming)의 한 방식으로서 작동한다. 건축가는 주택의 사용자인 구성원들의 삶의 배경을 짓는다. 배경은 잠재성을 가지고 가족들의 삶을 직조하면서 매순간 새로운 이야기로 현실화시키고 시간을 쌓아가며 꿈꾼다. 

얼마 전 연천 디아스포라 프로젝트로 지어진 집에 초대되어 다녀왔다. 사용자가 그 집에 처음 입주했을 때 보여주었던 구조나 쓰임새와 사뭇 달라진 분위기였다. 가족은 낯선 공간 쓰임새를 자발적으로 맞닥뜨리고 새로운 이야기를 쌓으며 자신만의 다양한 풍경들을 생성하고 있었다.  이 프로젝트에서 유전자처럼 제시한 기본 틀과 수많은 여지들이 꿈틀꿈틀 저만의 색깔과 리듬을 띠며 나선운동을 한다. 수서 유유자적에 사는 가족은 자신들의 고유한 내밀우주 안에서 머물면서 구성원들의 다양성과 유연하게 카테고리를 형성하는 큐레이터로서 살아간다. 행당 거꾸로 된 파테마에 사는 주민들은 시장통 사람들과 생기를 나누며 자신들의 내밀우주를 수렴진화해 나갈 것이다. 공간은 그렇게 사람의 삶을 직조하며 제 삶을 자기 조직한다. 

이제 건축은 도시의 이질적인 상황들의 다중적 충돌을 통해, 건축의 내부적 자기 지시성이 담긴 유연한 자율적 형식 체계로서의 건축(Flexible Auto-poiesis Forming)으로 나아갈 것이다. 일상에서 다양성과 차이를 만들어내는 개체들의 자기 생성은 다양한 형태의 진공 에너지를 지닌 채 이야기 다중체로서의 버블들을 통해 충돌-결합-소멸-생성을 반복한다. 그렇게 현실 속에서 유연한 지형을 그려갈 것이다. 가상성을 실재화로 이끄는 이 과정에서 프로젝트마다 생성되는 이야기들이 에피소드가 된다. 공중에서 흩어지고 합쳐지는 가볍고 유연한 버블로 존재하지만, 끊임없이 시대가 요구하는 생성적 형식으로 다시 태어나길 욕망한다. 버블들은 다양한 스토리들의 함축과정을 겪어내면서 하나의 유전형질이 되고, 여러 유전자들과 관계하면서 또 다른 형질로 태어남을 반복한다. 이러한 생성 과정은 실재하는 세상을 일상이 담긴 색깔 있는 장소로 만들 것이다. 우리는 이 부유하는 버블들을 통해 ‘새로운 건축 형식’의 끊임없는 제안과 더불어 우리가 사는 도시를 이야기가 담긴 살아있는 일상의 장소로 바꾸어 나가고자 한다.

 

수서 유유자적 스케치

수서 유유자적 다이어그램 

수서 유유자적 디자인 프로세스 다이어그램

 


김동진
김동진은 홍익대학교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서울건축에서 실무를 익혔으며, 프랑스 파리-벨빌 국립건축대학에서 수학하였다. 2000년부터 현재까지 ㈜로디자인 도시환경건축연구소 대표로 활동하고 있으며, 2005년부터 홍익대학교 건축공학부 건축디자인전공 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요 작으로는 공주 파크애드호크라시, 수서 유유자적, 논현 마트료시카, 청담 마치래빗, 제주 베이힐 풀앤빌라, 청담 바티-리을 등이 있으며, 31•38•42회 한국건축가협회상, 25,33회 서울특별시건축상, 1회 젊은건축가상, 미국 The Architecture Master Prize 2019, 독일 Iconic Award 2015, 7•9회 강남구 아름다운 건축상 ‘대상’, 등 다수의 건축상을 수상하였고, 2016 제15회 베니스비엔날레 건축전 「The Far Game」, 2014 독일 베를린 국제전시회「Seoul, Towards a Meta-City」 , 2010,11 한국 현대건축가 아시아순회전 「MEGACITY NETWORK 일본, 중국」 등의 국내외 건축 전시회에 초청되어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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