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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인의 눈>과 <메가시티 네트워크>,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나

황두진 (황두진건축사사무소 대표)
자료제공
주헝가리 한국문화원, 황두진건축사사무소
진행
김정은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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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헝가리 수교 30주년을 기념하여 열린 <한국 현대건축, 세계인의 눈, 1989-2019>(이하 세계인의 눈) 전시의 총괄 큐레이터인 배형민(서울시립대학교 교수)은 얼마 전 연말을 맞아 전시 관계자들에게 보낸 메일에서 “<메가시티 네트워크> 이후 10년 만에 규모 있는 한국 현대 건축전을 해외에서 올리게 되었습니다”라고 적었다. <메가시티 네트워크>는 12년 전인 2007년 연말, 독일 프랑크푸르트 소재 독일건축박물관을 필두로 독일 베를린, 에스토니아 탈린, 스페인 바르셀로나를 거쳐 2009년 연말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 이르는 대장정을 거친, 또 다른 해외 한국 현대건축전의 이름이다. 이 두 전시에 모두 참가했던 입장에서, 12년 전의 기억을 더듬어 보며 이번에 열린 <세계인의 눈>을 역으로 조망하고자 한다. 

기억에 남는 가장 큰 차이는 참여 건축가의 역할이었다. <메가시티 네트워크>는 참여 건축가의 부담이 매우 큰 전시였다. 당시 총괄 큐레이터였던 김성홍(서울시립대학교 교수)은 참여 건축가들이 전시물의 제출은 물론이고 전시의 구현을 위한 여러 작업에 다각도로 동참해 줄 것을 호소했다. 다행히 사단법인 새건축사협의회가 주최 및 주관의 역할을 맡기는 했지만, 전시 디자인, 홍보, 기금 조성, 출판 등 구체적인 작업의 상당 부분을 참여 건축가들이 직접 맡아야 했다. 참고로 당시 나는 그 또한 참여 건축가였던 조남호(솔토지빈건축사사무소 대표)와 함께 ‘전시 코디네이터’라는 이름으로 전시 전체를 디자인하고 의견을 조율하는 역할을 부여받았다. 설치 작업도 두 사무실의 직원들과 함께 현지에 일주일 정도 미리 도착하여 직접 진행했다. 물론 우리 두 사무실의 전시물 역시 따로 제작해야 했다. 당시 이 전시를 최초로 제안하고 첫 전시를 유치했던 독일건축박물관(DAM)은 우리의 이런 상황을 쉽게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것이 당시의 현실이었다. 별도의 인적 인프라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세계인의 눈>은 사뭇 다른 상황이었다. 일단 전시 디자인 및 설치가 완전히 별도의 과정으로 진행되었다. 간단히 말해서 참여 건축가 입장에서는 자기 전시물만 신경 써서 준비하고 제출하면 되는 상황이었다. 참여 건축가와 별도로 이 전시의 기획과 진행에 수고한 수많은 관계자들의 명단을 보면, <메가시티 네트워크> 당시와 비교해서 한국 건축계의 저변과 외연이 그만큼 두터워졌음을 알 수 있다. 이미 한국은 베니스비엔날레를 비롯한 세계의 여러 건축 및 도시 관련 행사의 단골 참여국이며, 이번 전시를 공동주최한 목천김정식문화재단을 비롯한 건축 관련 재단도 여럿 생겨났고, 국립현대미술관 등에 건축 관련 큐레이터와 전시 디자인 전문 인력이 자리 잡은 지도 상당한 시간이 흘렀다. 2017년부터는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를 통해 전 세계 건축인들을 우리 안방으로 불러들이고 있는 상황이다. 전시의 경험이나 장소도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늘어났다. <세계인의 눈>은 이러한 축적의 과정이 총동원된 결과다. 물론 여기까지 어렵게 만들어온 이 기초 인프라가 앞으로 얼마나 더 성장하고 발전할지는 여전히 숙제라고 할 것이다. 

또 다른 차이는 한국 건축에 대한 대내외적 인식의 차이다. <메가시티 네트워크> 당시만 해도 한국 건축에 대한 내향적 시선, 즉 ‘한국성’에 대한 논의가 여전히 저변에 깔려있었다. 예를 들자면, 금속판과 투명 아크릴로 구성된 전시 패널의 물성이 어떻게 한국성을 반영하고 있냐는 불만 섞인 질문이 몇몇 참여 건축가들로부터 나오기도 했다. 개방적이고 중첩적인 공간구성을 통해 한국 현대도시의 공간적 체험을 전시장에 구현하려고 했던 조남호와 나로서는 설득의 노력을 기울여야 했던 부분이었다. 결국 ‘한국성’을 포함, 개별 건축가가 추구하는 건축적 내용은 각자의 전시물에 녹여내는 것으로 방향을 잡았다. 이번 <세계인의 눈>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적어도 내가 알기에 그런 논쟁은 없었다. 보도 자료의 내용을 인용하자면 <세계인의 눈>은 “초국가적인 관점에서, 도시와 주거, 산업과 인구의 변화, 건축의 근본 원리에 주목하는” 전시가 되고자 했고, 각각의 참여 건축가들은 그러한 구도 속에서 일정한 주제를 대변하는 역할을 맡고 있었다. 

 

<메가시티 네트워크> 베를린 전시 전경 / Image courtesy of DAZ (Deutsches Architektur Zentrum​)​

<한국현대건축, 세계인의 눈, 1989-2019> 전시 전경 ©Laczkó Péter ​

 

 

전시의 미학적 측면으로 볼 때, <메가시티 네트워크>의 경우 전체적인 전시 디자인은 균질하고 매끄러운 반면, 개별 참여 건축가들의 전시물은 각자의 선택과 경향에 따라 다양성을 드러내는 전략을 갖고 있었다. 이에 반해 <세계인의 눈>은 전시 디자인에서 개별 전시물에 이르기까지 의도적으로 역동성과 다양성을 추구했다. 전시장 입구에 설치된 바래(BARE)의 설치물이 시계장치 같은 정교함을 보여주고 있었다면, 전시장 내부에 적층된 목재 팔레트들은 거친 현장의 물성을 드러내는 듯했다. 전시물들은 전체적으로 어두운 실내에서 마치 부유하는 것처럼 3차원적으로 배열되었다. 벽면 곳곳에는 1989년 이후의 연표와 함께 당시 한국에서 일어난 중요한 역사적 사건들이 적혀있었는데, 이러한 정보는 바로 그 옆의 전시물을 구체적인 역사의 한 지점으로 소환했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이었던 점은 건물의 구조 및 설비가 전시물과 이루는 관계였다. 그 경계를 의도적으로 지워버린 느낌이라고나 할까, 어떤 전시물은 문자 그대로 점차 희박해지면서 그대로 건물의 일부가 되는 느낌이었다. 마치 지구 반대편에서 건너온 이 전시물들이 건물에 녹아들어가고 있는 것 같았다. 어느 전시 공간에서든 건물과 전시물의 경계를 엄격하게 구별하고자 했던 <메가시티 네트워크>와는 완전히 다른 개념이었다. 다만 개별 전시물 간의 경계를 두지 않고 마치 실제 도시 공간에서처럼 교차, 중첩되는 시선 속에 배치한 것은 두 전시가 같았다.             

<세계인의 눈>이 <메가시티 네트워크>와 구별되는 또 다른 지점은 현지 건축가들과의 교류 방식이었다. <메가시티 네트워크>도 세미나 등 부대 행사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한국 건축을 소개한다’는 일방향성이 강했다. 반면 <세계인의 눈>은 한국과 헝가리 건축가들이 서로를 들여다볼 수 있는 별도의 행사가 진행되어 오프닝, 두 번의 세미나, 도시 답사, 페차쿠차를 포함, 공식행사만 무려 3일간 진행되었다. 이 과정에서 기억에 남는 것은, 한국 건축가들이 사회적 프로그램에 깊게 관여하고 특히 기술과 건축의 접목에 있어서 주목할 만한 결과물들을 보여주었다면, 헝가리 건축가들은 역사적 맥락을 해석하고 건축을 공예적으로 접근하는 것에 대단한 강점을 갖고 있다는 것이었다. 헝가리가 축적해온 다양한 방면에서의 문화적 성과와 지위에 비해 헝가리 현대건축이 강렬하게 개화되고 있다는 인상을 받지 못한 것은 다소 뜻밖이었다. 이것은 오프닝 다음 날 오전에 진행된 도시 답사에서 어느 정도 예견되었다. 우리가 접한 것이 물론 제한적이었겠지만, 유럽의 다른 나라, 심지어 같은 동구권인 체코와 비교하더라도 부다페스트가 보여준 근현대 건축의 정신은 그리 강렬하지 않았다.   

기억할 만한 또 다른 사실은 참여 건축가들의 넓은 연령대다. <메가시티 네트워크>에 참여했던 16명 건축가들에 비해, <세계인의 눈>에 참여했던 30여 명 건축가들의 연령 분포는 어림짐작으로도 훨씬 더 넓었다. 그만큼 이번 전시에는 원로에서부터 중견을 거쳐 신예에 이르는 다양한 스펙트럼이 확보되어 있었다. 아마도 그것은 주제의 차이에서 온 결과일 것이다. <메가시티 네트워크>가 거대도시 내부에서 서로 간의 연결망을 구성하는 다종다양한 건축물을 비교적 당대적 관점에서 소개하는 것이었다면, <세계인의 눈>은 동구권이 해체되면서 한국과 헝가리가 수교를 맺은 저 역사적인 1989년 이후 한국 건축계에 일어난 누적적 변화를 폭넓은 시선으로 아우르고자 하는 전시다. 그만큼 시기적으로나 건축가의 구성에 있어서 폭과 다양성은 필연적이었다. 

 

한국-헝가리 건축가 심포지엄 전경 / Image courtesy of Doojin Hwang Architects

 

<세계인의 눈>은 헝가리 한국문화원이 새 건물에서 맞는 최초의 전시 중 하나였다고 들었다. 규모로는 해외의 한국문화원 중에서 3위권이라고 하며, 위치 또한 구도심의 편리한 곳이어서 참가자들을 뿌듯하게 했다. 한국의 국력이 그만큼 성장한 결과겠지만, 1989년 당시 선제적 북방외교의 물꼬를 튼 상대국 헝가리의 무게감 또한 작용했을 것이다. 훌륭한 하드웨어를 확보한 만큼 앞으로 소프트웨어를 계속 보강해나간다면 중부 유럽에서 한국을 알리는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이제 <세계인의 눈>에게 남아 있는 숙제가 있다면, 2020년 2월 말 헝가리 한국문화원에서의 전시 종료 이후에 또 다른 장소로의 순회 전시를 추진하는 것이다. 이번 전시는 헝가리, 그리고 한국문화원이라는 태생적 조건에서 시작되었지만, 그 기획이나 디자인은 이미 상당한 범용성을 내포하고 있다. 예를 들어 전시장 전체를 관통하는 ‘거리’를 따라 시간과 공간, 그리고 주제를 다중적으로 교직해나가는 전시 기법은 한국문화원의 주어진 공간적 특성을 반영한 것이지만, 동시에 전혀 다른 상황에서도 재구성할 수 있는 유연성과 시각적 스펙터클을 갖는다. 이왕이면 유럽은 물론 세계의 다른 곳에도 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 전시에 들어간 통합적 노력과 재능을 고려할 때, 충분히 그런 시나리오를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이미 남미 등 몇몇 지역이 고려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10여 년 전 <메가시티 네트워크>가 전 세계를 강타한 금융위기 속에서도 유럽 4개 도시를 순회할 수 있었던 데에는, 새롭게 부상하는 한국 건축에 대한 관심이 무엇보다 큰 힘이 되었다. 이제 발견의 단계를 넘어 세계 건축계의 중요한 플레이어로서 본격적으로 도약하고 있는 한국 건축의 생생한 증언으로서 <세계인의 눈>이 새롭게 선도적 역할을 확장해나가기를 기대한다.

 

©Laczkó Péter 


황두진
황두진은 서울대학교와 예일 대학교 대학원에서 건축을 공부했다. 김종성, 김태수 등의 사무소에서 실무를 한 후 2000년에 황두진건축사사무소를 설립했다. 그에게 건축이란 기하학을 매개로 하는 프로그램과 장소 간의 역동적인 대화의 과정이다. 이 접근 방식을 통해 그는 현대 건축과 전통적인 프로젝트를 동시에 다룬다. 의 건축은 단순한 형식주의를 넘어서고자 한다. 그는 '무지개떡 건축', '가장 도시적인 삶' 등 건축과 도시에 관한 책들을 써왔으며 국내외에서 광범위하게 강의하고 전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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