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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가지 건축 유형으로 바라본 서울

라파엘 루나(한양대학교 교수)
사진
라파엘 루나
자료제공
라파엘 루나
진행
최은화 기자

​세계가 걷잡을 수 없는 기세로 도시화됨에 따라 도시를 건축과 연관하여 논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더 이상 도시는 실체를 갖는 물리적 형태가 아니라, 인프라스트럭처에 의해 연결된, 지정학적 경계를 넘어서는 광활한 도시권역으로 이해되고 있다. 오늘날 ‘도시’라는 용어는 행정과 사무의 편의를 위해 가상의 선으로 경계 짓는 데이터 중심의 용어로 정의된다. 서울 수도권, 도쿄 대도시권, 중앙 멕시코 연방구역, 보스턴-워싱턴 대도시권, 그리고 실리콘밸리와 같은 ‘메가폴리탄’ 지역은 1960년대에 콘스탄티노 독시아데에 의해 이론화된 ‘에큐메노폴리스’가 예견하였듯이 행정경계를 초월한 거대한 경제 공동체로 통합되었다. 이런 환경 속에서 건축은 1928년 CIAM의 ‘라 사라 선언’ 이후 확립된 전통에 따라, 도시 건설 프로젝트에서 지속적으로 배척되어왔고, 그 자리는 도시계획이나 도시공학이 대신했다. 하지만 서울과 같은 메갈로폴리스의 성장 과정을 연구할 때, 현대 도시와 새로운 도시 조직 유형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은 다름 아닌 건축이다. 

서울은 서울만의 독특한 건축 유형으로 메가폴리탄의 조건에 관한 유일무이한 통찰을 제공한다. 이는 서울이 20세기 후반에 급속하게 성장했을 뿐만 아니라 지난 625년간 서울을 관할한 통치체제에도 급진적 변화가 있었기 때문이다. 서울은 마치 여러 개의 섬처럼 떠다니는 다양한 도시 유형과 도시 구조를 만들어냈다. 지난 수백 년 동안 서울에 일어난 변화를 살펴보면, 서울이 인프라스트럭처를 중심으로 어떻게 변화해왔는지 알 수 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도시의 여러 층위에 위치한 서로 다른 건축 유형 간의 강한 연관성이다. 

서울은 도시의 기틀을 닦았던 1394년부터 오늘날의 메가폴리스의 상태에 이르기까지 점진적으로 출현한 열 개의 주요 건축 유형으로 이해할 수 있다. 서울의 각 변화 단계는 당대의 정치적 상황과 경제체제 그리고 밀도의 변화에 직접적으로 연계된다. 이는 서로 다른 도시 구조와 그에 따른 유형들을 만들어내어, 서울을 읽는 도시 유형학의 토대가 된다. ​

 

 

연대기별 서울의 건축유형 (ⓒ라파엘 루나)

 

조선이 건국되고 얼마 지나지 않은 1394년, 왕국의 새로운 중심으로 수도 서울이 탄생했다. 서울의 초창기 모습은 의례를 위한 도시로 이해할 수 있다. 도시의 인프라스트럭처는 풍수지리의 가르침을 따라 설계되었고, 건축은 왕이 의식을 집행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이는 두 개의 유형을 만들어냈는데, ‘정치적 형태’의 조선왕실의 조정 건물과 서울 고유의 도시 구조인 단독 가구를 위한 ‘한옥’이다. 이들은 도성 곳곳에 촘촘히 파고들어 1만 7천 가구와 10만 명 인구의 도시를 만들었다. 

1897년, 당시 조선의 왕이었던 고종은 광무개혁을 통해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서방 신흥 세력에 나라의 문호를 개방한다. 서구와의 통상조약 체결 이후 서울에는 새로운 건축 유형으로 ‘상징적 형태’가 들어온다. 이들은 서양의 건축양식이자 근대화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단일 건물로, 기존의 도시 구조와 이질적인 모습으로 당시 20만 명 인구의 도시에 듬성듬성 들어섰다. 기존의 한옥이 인구 증가를 감당하지 못해 도성 내부의 인구는 일정하게 유지되고 도성 바깥으로 도시 규모가 확장됐다. 

도시는 일제 식민지기에도 계속 팽창했다. 일본은 도쿄와 오사카 지역에서 행해졌던 메이지 유신의 방식을 모델로 삼아 식민지 도시의 근대화에 적용했다. 상징성이 짙은 건축 유형은 일본 제국주의에 대한 동화정책에 근거했다. 그들의 위세는 식민지에 대한 위력을 과시하는 것이었으며, 도시에 새로운 기반시설을 설치하여 근대화할 수 있도록 빈민가 철거사업을 진행했다. 서울시청 옛 청사(구 경성부청사)는 제국주의 양식으로 1926년에 건설되었는데 당시의 건축 유형을 잘 보여주는 예다. 해당 건물은 현재 서울도서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1945년 해방을 맞았지만, 이내 한국전쟁이 발발해 1950~53년이 지나간다. 전쟁으로 서울은 황폐해졌고 궁핍해졌다. 휴전협정 이후, 사람들은 농촌에서 도시로 빠르게 이동했고 서울에는 빈민촌이 증가했다. 1963년 박정희 정권이 들어선 이후에는 경제구조가 수출주도형 구조로 변화하며 급격한 경제 성장을 이뤘다. 1960년대에 진행된 강력한 산업화 정책의 결과로 1970년대에는 서울시 전입자가 한 해에 30만 명에 달했다. 이에 따라 집단 주거에 대한 수요가 주요 안건으로 급부상했고 그 결과 서울에는 세 가지 건축 유형이 발생한다. 그 유형에는 기존 도시 구조에 저층 혹은 중간 높이의 상자형 건물 ‘빌라’, 중층 혹은 고층의 ‘판상형 아파트’, 그리고 ‘메가폼/메가스트럭처’가 있다. 판상형 아파트는 단일 필지에 여러 개의 슬래브를 수직적으로 쌓아 올려 1~2천 가구가 거주할 수 있는 건물로 손쉽게 도시 풍경을 장악했다. 이 스케일과 경쟁하던 주거용 건축개발은 세운상가, 낙원상가 유진상가와 같은 상징적 복합용도 건물의 메가폼/메가스트럭처의 형태를 만들어냈다. 

1988년에 개최된 서울올림픽은 ‘업무용 타워’와 ‘거대 블록’이라는 두 가지 건축 유형을 더하며 현대 대도시로서의 서울을 세계에 선보이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두 유형 모두 현대화, 세계화 된 자본을 상징적으로 나타냈다. 초창기 업무용 타워의 경우, 빈민가 정리를 위한 재개발 전략의 일환이었다. 대기업들은 해당 블록의 인프라스트럭처를 개발하는 조건하에 도심지에 필지를 선택하여 대기업 사옥을 건설할 권리를 얻었다. 1979년, 서울이 국제적 행사를 개최할 수 있는 세계적 수준의 상업도시임을 나타낼 수 있도록 강남의 모처에 거대 블록을 개발하여 컨벤션 센터와 전시공간을 아우르는 코엑스를 건설했다. 

20세기 말에는, 급속한 도시개발이 605km2 규모의 도시를 천만 인구의 도시로 바꾸어 놓았고, 도시 외곽에서도 생산이 이뤄졌으며, 거대 메갈로폴리스 내 단일 기능만을 담당하는 여러 섬과 같은 주거 블록을 발생시켰다. 이 현상은 널리 퍼졌고 20세기 말에는 서울이 성장을 위한 산업도시에서 문화 수도로 나아가는 데에 큰 영향을 끼쳤다. 도시가 인프라스트럭처와 건물을 대하는 태도에도 변화가 생겼고, 이는 다시 필지에 다양성을 제공하여 땅을 사용하는 최적화된 방안을 찾는 새로운 두 가지 유형을 탄생시켰다. 그중 하나는 ‘포디엄형 주거’이고 또 다른 하나는 최근 떠오르는 도시 인프라스트럭처와 건축의 혼합 유형인 ‘인프라-건축’이다. 우선 포디엄형 주거는 렘 콜하스의 ‘유폐된 지구 도시’에서 등장하는 1990년대와 2000년대 초반의 복합용도 건물을 위해 탄생한 포디엄과 흡사하다. 각각의 포디엄은 상업 공간과 사무 공간으로 구성된 건물로, 하나의 블록을 대표한다. 포디엄 상부에 위치한 판상형 주거 타워는 독립된 건물로 기능한다. 반면, 서울에서 인프라-건축은 이미 1970년대부터 지하철과 지하보행로로 구성된 지하도로에서 나타났다. 도시가 확장됨에 따라 지하 네트워크는 명동 지하쇼핑 구역과 영등포 지하쇼핑 구역과 같이 프로그램이 존재하는 상업공간으로 성장했다. 단순한 교통 인프라스트럭처를 넘어서 지하 건축물 안에서 작동하는 도시의 두 번째 층위로 기능한다. 인프라-건축이라는 문자 그대로의 의미를 뜻하게 되는 셈이다. 당대의 문화 공간의 일부분으로서 이러한 발전상은, 최근 진행된 두 번의 설계공모인 새로운 광화문광장 조성 설계공모와 강남권 광역복합환승센터 국제지명초청 설계공모의 당선안 각각에서 명확하게 나타난다. 

개별 건축 유형은 각각의 고유한 효과를 일으키고, 일반적으로 이러한 유형들은 도시 블록에서 다른 것들로부터 두드러지는 경향이 있다. 슬래브형 주거를 통해 주거지역을, 여러 채의 한옥으로 문화지역을, 업무용 타워로 금융지역을 쉽게 알아볼 수 있다. 서로 다른 유형의 섬들은 각각의 섬마다 사용 조건을 분석할 수 있는 여지를 주기 때문에 서울의 다른 지역에 거듭 적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준다. 예를 들어 홍대의 상권은 빌라 사이사이에 존재하는 건물을 이용해 조직되는데, 이는 또 신사동의 상권이 사이 공간에 자리 잡은 소규모 가게들과 흡사한 방식이다. 이것은 서울을 패트릭 애버크롬비의 런던 ‘포테이토 플랜’과 비슷한 방식으로 지도를 재구성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두지만, 그 유형이 어떤 효과를 낼 것인지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건축 유형에 따라 구역을 나눈다. 각각의 건축 유형이 만들어내는 보편적 특성을 기반으로 메갈로폴리스인 서울을 보게 되면 도시를 새롭게 이해하고 관리할 수 있을 것이다.

 

서울 포테이토 플랜 (ⓒ라파엘 루나)

 

서울의 열 가지 건축 유형(ⓒ라파엘 루나)

 

 

서울 건축 유형별 정의​

1. 한옥은 통일된 조형 언어를 통해 고밀도・저층으로 도시에 카펫을 형성한다. 이는 서양의 교외에 위치한 단독주택과는 다른 유형이며, 한옥의 유기적 도시 구성은 마키 후미히코의 ‘그룹 형태’로 볼 수 있다.

2. 정치적 형태는 대지의 정치체제를 다룬다. 담으로 둘러싸인 왕궁처럼 나머지 도시 조직과 분리된 폐쇄적 장소를 만든다.

3. 상징적 형태는 자율적 랜드마크 건물로서 종종 도시의 바다에 빈터를 조성한다.

4. 빌라는 촘촘한 현대적 도시 구조를 저층과 중층으로 이루어진 복합용도의 밀도로 채운다. 

5. 판상형 아파트는 빠르고 효율적인 복제를 위해 슬래브와 기둥 체계를 채택한다.

6. 메가폼과 메가스트럭처는 함께 등장하면서도 다른 조건을 나타낸다. 메가폼은 기존의 인프라 내에서 작동하는 대규모의 수평적 도시 형태인 반면, 메가스트럭처는 인프라스트럭처를 조성하는 수평적 도시의 틀이다. 보행용 데크와 차로 같은 인프라 요소와 주거 및 상업 시설과 같은 도시 조직 요소를 단일 형태로 혼합한다. 케네스 프램튼은 메가폼을 ‘도시경관’이라고 정의한 반면, 마키 후미히코는 메가스트럭처를 ‘거대 프레임’으로 정의한 바 있다.

7. 업무용 타워는 필지를 수직적으로 증식할 수 있는 상업용 혼합용도의 고층 건물로서 자본주의적 체제를 상징한다.

8. 거대 블록은 한 개의 도시 블록 전체를 장악하는 단일 건물이다. 이것은 렘 콜하스가 ‘거대함’의 조건으로 설명했던 좋은 본보기이다.

9. 포디엄형 주거는 종종 상부에 고층 주택을 포함하면서 다른 유형으로 도시조직을 정의하는 기단으로 구성된 수직적 혼합건물로 볼 수 있다. 루드비히 힐버자이머의 ‘수직도시’ 혹은 렘 콜하스의 ‘유폐된 지구 도시’에서 이와 같은 유형을 이론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10. 인프라-건축은 인프라스트럭처와 건축물의 혼합으로 나타난다. 서울에서는 지하철과 공공 공간의 혼합물로서 주로 지하에 존재하며 공공과 민간 영역 사이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든다.​ 


라파엘 루나
라파엘 루나는 한양대학교의 조교수이자 프라우드의 공동 설립자다. 그는 매사추세츠 공과대학교에서 건축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도시 효율성을 증대시키는 시스템으로서 인프라-건축의 하이브리드 유형을 연구하고 있다. 2013년 건축리그 건축대상 수상자이며, 뉴욕현대미술관, 베니스비엔날레,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에 참가했다. 도요 이토 앤 어소시에이츠 아키텍츠, 케이피에프, 아뜰리에 장 누벨, 마샤 슈왈츠 파트너스 등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다. 그는 현재 스위스 멘드리지오의 건축학교에서 인프라 건축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아이 원트 투 비 메트로폴리탄』 (2012)의 공동 저자이며 『북한도시읽기』(2014)의 편집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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