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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차하는 흐름들: 사바틴과 한국 근대기의 건축 영향 관계 연구

이성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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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제국의 우크라이나 지역에서 태어난 아파나시 이바노비치 세레딘 사바틴(이하 사바틴)은 근대 조선과 대한제국에서 활동한 인물이다. 그는 스물세 살이 되던 1883년 인천 제물포로 입국한 뒤 한성(서울)과 제물포를 중심으로 활동했다. 1904년 러일전쟁 발발로 이 땅을 떠나기 전까지 독립문, 러시아공사관, 제물포 부두 축조 등 건축 및 토목 사업에 참여했으며, 영국신문의 극동 특파원, 동청해상기선회사의 지점장 등 다양한 직업군을 넘나들었다.

그에 대한 건축학계의 연구는 1990년대에 비로소 시작됐다. 김정동(목원대학교 명예교수)은 「한국 근대건축에 있어서 서양건축의 전이와 그 영향에 관한 연구」(1990)를 통해 한국의 근대건축이 일본만이 아니라 여러 세력에 의해 이루어졌음을 지적하며 사바틴의 존재를 학계에 알렸다. 김태중(경남대학교 명예교수)은 「개화기 궁정건축가 사바찐에 관한 연구」(1996)로 그의 행적을 추적하고 건축 작업을 조명했다. 이후 2009년 타치아나 심비르체바(러시아 국립인문과학대학교 박사), 스베틀라나 레보쉬코(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건축토목대학교 교수) 등이 사바틴의 생애와 건축 활동에 대한 논문을 발표했는데, 기존 연구가 제기한 질문들이 충분히 해소되지는 않았다.

 

문헌으로 추적한 사바틴의 행보

2020년 한-러 수교 30주년을 맞아 재개된 사바틴에 대한 연구는 그동안 추정으로 남은 부분들을 검증하며 한국 근대건축의 형성에서 러시아의 영향을 살피고 있다. 이와 관련해 2019년 11월 15일 국립고궁박물관에서 문화재청 주최로 심포지엄 ‘사바틴과 한국 근대기의 건축 영향 관계 연구’가 열려 최근 연구 성과들이 공개됐다. ‘사바틴의 인천에서의 활동: 문헌사료 분석을 중심으로’를 발표한 이연경(인천대학교 지역인문정보융합연구소 책임연구원)은 구한말 외교문서, 인천해관문서, 인천항관초 등을 기초 자료로 삼아 인천에서 사바틴의 행적을 밝혔다.

이연경에 따르면 사바틴은 1883년 중국 상하이에서 입국한 뒤 인천 해관에서 선박의 입출항을 감시하는 승감원(tidewaiter)으로 근무하며 1887년까지 인천에 머물렀다. 1888년 한성으로 파견돼 ‘건축 교사’로서 경복궁 관문각 공사에 참여하고, 1893년 한성 총세무청과 1894년 경복궁 시위대에서 근무하다가 을미사변 이후 출국해 1898년까지 중국에서 머물렀다. 1899년경 인천으로 돌아온 뒤에는 동청해상기선회사의 인천 지점장으로 근무하며 건축 작업을 병행했다.

이연경은 “사바틴은 러일전쟁 발발로 한반도를 떠나기 전까지 다수의 프로젝트에 참여한 것으로 추정되지만, 문헌으로 검증되는 것은 경복궁 관문각(1888년), 러시아 공사관(1890년), 독립문(1897년), 제물포구락부(1901년) 등이며, 그의 참여가 비교적 분명하다고 추정되는 것은 부두축조(1885년)와 대조선인천조계지도(1888년) 등”이라고 말했다. 그는 “해관청사(1883년)와 세창양행(1884년)의 경우 사바틴이 인천 해관에서 근무한 시기와 맞지 않으므로 보다 정확한 근거를 바탕으로 면밀한 연구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1905년 윌러드 스트레이트가 촬영한 덕수궁 중명전 / Courtesy of the Division of Rare and Manuscript Collections, Cornell University Library

 

2009년 복원 완료된 덕수궁 중명전 / Image courtesy of Deoksugung Palace Management Office​

 

개항기 건축 활동을 보는 다른 관점

박동민(서울대학교 공학연구원 연수연구원)은 ‘건축가가 된 기술자들: 존 다이, 사바틴 그리고 중명전’을 발표했다. 그는 중명전의 설계와 관련되는 두 인물인 존 다이와 사바틴을 비교하며 개항기 건축 활동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했다. 발표에 따르면, 중명전은 당시 2년여 전에 소실된 수옥헌을 재건한 건물로 수옥헌의 기단이 건물 형태에 영향을 줬을 것으로 추정된다. 중명전은 수옥헌과 비교했을 때 장식이 화려해지고, 전면과 측면의 칸 수도 2~3칸 늘어나는 등 위상도 한층 높아졌다. 박동민은 “중명전의 스타일은 중국 조계지에서 많이 발견된다”며 “이전까지 사바틴이 보여준 작업과 달리 상당히 안정적인 외관을 갖추고 있다”고 지적했다.

사실 사바틴이 건축과 관련해 정규교육을 받은 기록은 발견되지 않았다. 그의 학력도 전문학교나 고등교육기관 졸업이 아니라 항해사양성강습소 수료로 추정되며, 스물세 살에 조선으로 넘어왔기에 경력을 쌓을 시간도 부족했다. 실제 그가 설계한 경복궁 관문각은 기둥 배열이 불규칙하고 구성 면에서도 전문가의 솜씨로 보기 어렵다. 또한 명동성당에서 벽돌 공사 중 사고가 나자 당시 천주교 제8대 교구장이던 귀스타브 뮈텔이 사바틴에게 자문을 구한 일화가 있는데, 귀스타브 뮈텔은 당시 사바틴의 의견서에 대해 “좋은 의견이 적혀 있긴 하지만, 그 사고 자체에 대해서는 본인도 원인을 파악하지 못하는 모양이다”라고 했다. 여러 정황상 사바틴을 전문적인 건축가 혹은 건축 기술자로 보기 어렵다는 게 박동민의 견해다.

논의의 연장선상에서 박동민은 앞으로 사바틴 연구에 있어 그가 특정 건축물을 설계했는지의 여부보다 그가 프로젝트에서 어떤 일을 담당했는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바틴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러시아 공사관을 그의 직업적 특성이 잘 드러나는 작업으로 거론하며, 그가 처음부터 건축가로서 설계에 참여한 것이 아니라 기존 도면을 수정하고 재료를 구해 시공하는 역할을 맡았음을 강조했다. 이는 수옥헌을 설계한 존 다이가 이후 미국에서 건축가가 아닌 토목공학 교수가 된 것과도 연관된다. 다시 말해 ‘임시 건축가’를 필요로 한 시대적 상황이 이들의 활동과 행보에 영향을 준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박동민은 그동안 건축 역사학계에서 사바틴 작업의 추정 근거로 건물 간 장식적 유사성을 거론해왔는데, 이러한 유사성은 건축가가 아니라 건축 재료를 공급하는 업자나 시공 기술자의 관여 때문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역사의 흐름과 문화의 변용

이번 심포지엄에서는 이연경과 박동민의 연구 이외에도 사바틴이 활동하던 시대상에 대해 홍웅호(동국대학교 교수)와 김제정(경상대학교 교수)의 강연, ‘초기 설계안과 비교를 통한 구 러시아 공사관의 특징과 보존 방향’에 대한 송석기(군산대학교 교수)의 발표가 있었다. 또한 스베틀라나 레보쉬코는 ‘1890~1930년대의 중국과 한국의 러시아 건축가들과 그들의 유산에 대한 새로운 접근’에서 러시아 근대건축과 중국 전통건축의 혼용 사례를 소개해 주목을 받았다.

스베틀라나 레보쉬코에 따르면, 19세기 말부터 러시아에서는 동청철도 건설 및 관련 도시계획이 적극 추진됐다. 이 과정에서 러시아 기술자들과 건축가 수십 명이 중국 북동부의 만주지역으로 유입됐다. 이들에 의해 하얼빈, 다롄, 뤼순, 만주 등과 같은 도시가 건설됐고, 동청 철도 노변 30km 이내에 수십 개의 기차역과 마을이 조성됐다. 스베틀라나 레보쉬코는 “러시아 건축가들은 당시 유럽에서 유행하던 아르누보 양식, 전원도시 이론 등을 건축과 도시계획에 적용하면서도 중국의 전통건축 기법과 자재, 기술 등을 활용해 동서양 건축이 혼합된 독특한 구조물들을 만들어냈다”고 말했다. 그는 “이처럼 20세기 초 러시아 건축가들이 중국에 진출한 사례는 많이 발굴되고 연구됐는데, 한국에서 활동한 사바틴의 사례는 러시아에서도 충분히 조명되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주제 발표에 이어 마지막 순서로 토론이 진행됐다. 우동선(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이 좌장을 맡고, 김선명(뿌쉬낀하우스 원장), 김정신(단국대학교 명예교수), 박준형(서울시립대학교 교수), 신안준(충청대학교 교수), 이강민(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최덕규(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 등이 참여해 사바틴 연구에 대해 여러 제안을 했다. 우선 신안준은 “중국 상하이에 체류하던 사바틴이 묄렌도르프의 권유로 조선에 들어왔을 때 입국 목적이 건축 활동이었다”며 “상하이에서의 활동, 묄렌도르프와의 관계에 대한 연구가 진행된다면 사바틴의 활동에 대해 좀 더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덕규는 사바틴이라는 인물의 등장을 보다 넓은 역사적 맥락에서 볼 것을 주문했다. 그는 “사바틴이 건축, 언론, 철도, 해운 등 다양한 분야의 일을 수행한 배경에는, 러시아 제국이 17세기부터 남하정책을 꾸준히 추진해오며 18세기 말에 이르러 시베리아 횡단철도 건설, 전신선 가설 등 여러 프로젝트를 펼친 흐름이 존재한다”고 말했다.

끝으로 박준형은 사바틴의 건축 활동, 스베틀라나 레보쉬코의 발표 등을 언급하며, “문화변용이 어떠한 계기들을 통해서, 어떤 양식으로 나타나고, 이후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지 질문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대한제국 시기의 건물들을 보면, 고종의 즉위식이 치러진 환구단은 중화 계승 의식이 반영된 건물이고, 그 반대편에는 양식 건물이 세워졌다”며 “그 가운데에 정관헌처럼 두 양식이 조화를 이룬 건물도 세워졌는데, 이러한 건물들에 대한 연구를 통해 대한제국의 성격을 논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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