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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겨진 풍경과 금지된 장소에 대한 지도

이성제
자료제공
백남준아트센터, 작가, 메트로 픽처스(뉴욕), 아트만 시겔(샌프란시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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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막 커튼 너머로 이미지를 처리하는 공정이 상연되고 있다. 꽃, 동물 조각상, 인간의 얼굴과 동작 사진이 쉼 없이 흘러나오다 해상도가 낮아진 것들이, 대상을 등고와 윤곽으로 보다 단순화한 것들이,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모자이크화한 이미지가 스크린에 일렁거린다. 흑백의 픽셀로만 되어있기에 입이 뻐금대는 듯한 동작은 인간의 것인지 금붕어의 것인지 그도 아닌 데이터 노이즈인지 인간의 눈으로는 식별되지 않는다. 공정은 그렇게 마무리되고, 별다른 설명 없이 기계음과 함께 다시 시작된다. “기계가 기계를 훈련시키기 위해 이미지를 생성하는 방식”을 탐구한 ‘이 영광스러운 순간들을 바라보라!’(2017)이다.

 

평등하고도 영광스러운 순간들

백남준아트센터에서 개최된 <기계비전>은 드론, 감시 위성, 인공지능 등 디지털 기술 체계가 작동하는 방식을 연구・조사하고 이를 미학적으로 드러내어온 트레버 페글렌의 개인전이다. 그는 오래된 위성과 폐우주선의 궤도를 추적하는 ‘또 다른 밤하늘 프로젝트’(2007), 무인 항공기로 세계를 보는 ‘드론 비전’(2010)을 만들었다. 또한 에드워드 스노든의 폭로로 국가 단위 감시 시스템의 존재가 밝혀진 2013년 이후에는 민간인의 접근이 차단된 시설들을 사진과 영상으로 담아내는 ‘89곳의 풍경’(2015)을 선보이기도 했다. 목가적이고 평온해 보이던 장소들은 그가 줌인하고 장시간 촬영한 결과물에서 감시 활동의 흔적을 드러냈다. 도청용 광케이블이 지나고 전파 탐지 망원경과 통신시설이 풍경을 이뤘다.

‘대량 감시’, ‘우주 감각’이라는 키워드로 갈무리되는 이 작업들에 이어 트레버 페글렌은 ‘기계비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번 전시 제목도 그의 최근 관심사를 따른 것이다. 이는 정보를 수집하고 해석하는 활동의 주체가 인간에서 인간이 아닌 것으로 전환되는 추세와 무관하지 않다. 이와 관련해 질문이 제기되는데, 그렇다면 그 인간이 아닌 것은 세상을 어떻게 보고 해석하는가? 트레버 페글렌의 언어로 표현하자면 “그 기술은 무엇을 달성하고자 하는가? 그리고 세계의 비전이 담긴 이 기술들은 세계를 다시 어떻게 구축해가는가?”

서두에서 묘사한 ‘이 영광스러운 순간들을 바라보라!’는 이러한 탐구의 흐름에서, 그리고 이번 전시에서 주목할 만한 작업이다. 작가는 마치 기계의 머릿속을 들어갔다 나오기라도 한 듯 기계의 사고 과정을 곁에서 지켜보는 듯한 경험을 제공한다. 암막 커튼과 밀폐된 상영 공간, 크레딧과 제목이 나오지 않은 채 반복되는 영상, 그 영상을 편히 감상하도록 의자나 소파를 (다른 영상 작업과 달리) 두지 않은 연출 때문만은 아니다.

영상에서 이미지가 처리되는 속도는 인간의 동체 시력에 맞춰져 있다. 개별 이미지가 식별되긴 하지만 세부 정보를 파악하기에는 상당히 빠르고 버거운 속도다. 판단하고 공감할 틈을 주지 않는다. 그 결과 관람객들은 쉴 새 없이 쏟아지는 이미지들에 압도된 채 처리 공정에 빨려 들게 된다. 그 공정에서 이미지는 누군가 웃는 표정이든 테이블에 올려 놓은 조각상이든 점, 선, 면, 흑, 백으로 단순화된다. 이미지가 발산하는 감정, 분위기, 느낌 등 주관적 요소들은 자연스럽게 누락된다. 그래서 기계가 처리하려는 대상이 이미지가 아니라 그 안에 담긴 감정 또는 이미지에 공감하려는 관람객의 감정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처럼 인간적인 것의 배제, 인간-동물-사물의 위계를 고려하지 않는 무차별적 평등함이 섬뜩한 인상을 남긴다. 영상과 함께 송출되는 기계음도 이러한 느낌을 강화한다. 기계음은 작품이 설치된 블랙박스에서 흘러 나와 전시장의 배음을 형성하는데, 그래서인지 다른 작품을 감상할 때에도 이 소리와 소리가 나오는 공간을 의식하게 된다.

 

보는 기계, 그리고 그 뒤에서 보는

단채널 컬러 비디오 ‘이미지 오퍼레이션. Op.10’(2018)은 앞선 작업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며 ‘기계비전’이 지닌 사회적 의미를 묻는다. 클로드 드뷔시의 ‘현악 4중주, G 단조, Op.10’을 연주하는 크로노스 콰르텟을 촬영한 영상에는 기계가 알고리즘으로 연주자들을 분석・파악하는 과정, 그 결과값들이 입혀져 있다. 이를테면 인간의 시선으로 설정된 듯한 고화질 영상이 나오다가 인공지능이 개입했다는 듯 영상은 흑백, 단색 이미지로 변형되고 이후 연주자들의 얼굴엔 얼굴의 등고점을 연결한 듯한 도형과 패턴들이 덧입혀진다. 그런 다음 연주자들의 나이, 감정, 성별 등 기계가 산출한 정보가 화면에 등장한다.

분석 값은 시시각각 변한다. 어떤 연주자는 5~8세로 추정되기도 하고, 여성이지만 남성으로 분석되기도 한다. 결과값은 계속 변하고 보정, 조정, 재수정이 이뤄진다. 끊임없는 분석과 판단을 보고 있노라면 이러한 작업을 지속하는 강박과 집착 뒤에 무엇이 자리하는 것인지 의문이 떠오른다. 무엇을 위해 이렇게 읽어내려고 하는 것일까? 클래식 음악이 연주되는, 어쩌면 감정과 에너지로 충만한 현장을 납작한 도형과 이미지로 단순화하는 공정은 도대체 무엇을 위한 것인가?

작가는 여기에 직접적인 대답을 내놓지 않는다. 다만 사회에서 하나둘 나타나는 현상들을 떠올려 본다면, 스마트폰 잠금 해제를 푸는 생체 인식에, 자율주행 자동차가 무단횡단하는 보행자를 감지하는 시스템에, 반정부 인사의 신원을 파악하고 행동을 포착하는 감시 체계에, 이 기술은 이미 적용되어 일상을 변화시키고 있는지도 모른다. 생활의 편의를 도모하는 상황의 다른 편에서 국가의 감시 체계 강화가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기계가 사물을 보는 체계에 대한 이해는 그렇기에 체계를 발생시킨 사회에 대한 질문으로 나아가게 한다. 작가의 말처럼 “이미지는 우리가 무언가를 부여할 때에만 비로소 의미를 가지기 때문”이며, “새로운 세상에서는 이미지를 바라보는 기계에 어떠한 가치와 정치성과 편향을 프로그래밍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남을 것이다.”

트레버 페글렌은 그에게 인상을 남긴 구체적 사건에서 작업의 실마리를 찾고, 수 년간의 리서치를 통해 사건이 벌어진 조건들을 탐구하며 기저의 구조에 다가간다. 그가 선보이는 사진과 영상은 일견 단순해 보이지만 그 이면을 생각하게 한다. 전시는 2020년 2월 2일까지.

 


(위) 트레버 페글렌, ‘그들은 달을 바라본다’, C-프린트, 91.44×121.92cm, 2010​​​

(상단 이미지) 트레버 페글렌, ‘이미지 오퍼레이션. Op.10’, 단채널 4K UHD 컬러 비디오 프로젝션, 5.0 돌비 서라운드 사운드, 23분,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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