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은동 남녀하우스

전통적 성 역할 구분이 점점 희미해져 가는 현대사회의 흐름과 함께 프라이버시에 대한 감각과 주택 공간의 기본적 성격 또한 변화하고 있다. 과거의 가부장적 대가족 시대에서 당연하다는 듯이 간과되었던 가족 구성원 간의 프라이버시, 특히 부부 간의 프라이버시조차도 이제는 가장 기본적으로 지켜져야 하는 것이 되었으며, 여기에는 여성의 사회 진출에 따른 경제적 자립이 한 몫을 한다. 그에 따라 주방은 먹을 것을 생산하던 전통적 기능이 축소된 채 음식의 소비에 적합한 큰 식탁이 놓인 카페와 같은 공간으로 변모하였다. 홍은동 남녀하우스에서 1층에 위치한 주방 또한 신혼부부인 건축주가 퇴근 후 들르는 집안의 와인 바이다. 기존의 협소 주택들은 많은 기능을 수용하려다 보니 평단면이 복잡하고 공간적 개방감을 가지기 어려운 데 반해 홍은동 남녀하우스는 필수불가결한 건축 요소인 계단만을 통해 집의 기능과 구조, 실용성과 개방감, 단순함과 새로움을 동시에 확보한다. 각 층 중심에 위치하여 집 전체를 관통하는 계단은 남쪽으로 거주 영역, 북쪽으로는 세탁실 · 화장실 · 드레스 룸 등 서비스 영역으로 공간을 분리하며, 복도로 기능하는 서비스 영역과 함께 순환동선을 이루는데, 이러한 단순하면서도 기능적인 동선은 공간적 경험을 더욱 풍부하게 만든다. 2층의 거실과 3층의 침실은 같은 면적과 형식으로 구성되어 두 공간 간 프라이버시와 위계를 느슨하게 하지만 각 층에 독립적인 화장실을 가짐으로 인해 다시금 거실은 남성의 공간으로, 침실은 여성의 공간으로 암묵적으로 점유된다. 거실의 청록빛 대리석 벽과 침실의 붉은빛 나무 벽은 그러한 속성을 전형적으로, 그리고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재료이다. 내부 공간의 대칭적 형식이 그대로 드러난 입면은 남북 방향으로 다른 젠더의 얼굴을 드러내고, 마치 바로크 성당을 축소한 것과 같은 모습은 전형적인 ‘양식’과 스케일의 불일치로 인해 기념품 숍의 미니어처와 같은 귀여운 느낌을 자아낸다.

▲ SPACE, 스페이스,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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