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MSPACE는 국내 최고의 건축 포털 매거진입니다. 회원가입을 하시면 보다 편리하게 정보를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Login 회원가입
Naver 로그인


여성, 미래를 위한 언어

박세미 기자

성기고 더딘 와중에: 한국 건축 담론 안에서의 페미니즘

일부 단체나 전문가 테두리 안에서만 논의되던 페미니즘과 젠더 이슈들이 2015년 메갈리아의 미러링, 2016년 강남역 여성 살인사건이 기폭제가 되어 ‘문단_내_성폭력’, ‘#MeToo’ 운동을 거치면서 한국 예술계를 비롯해 사회전반으로 퍼져나갔다. 이제 ‘여성’, ‘젠더’, ‘퀴어’와 같은 용어들은 대중들의 일상어 속에 자리 잡았다. 트위터의 140자를 통해 폭로와 고백이 이어지고, 일간지와 잡지의 헤드라인을 통해 퍼져나갔으며, 이를 전면에 내세운 예술 작품과 책들이 생산되고, 일회성 행사나 포럼들도 곳곳에서 열렸다. 이제 사회적 공감대가 어느 정도 형성되었음을 쉽게 목격하게 된다. 얼마 전 개봉한 ‘82생 김지영’과 ‘벌새’와 같은 영화들도 이전에는 없던 시각과 해석들을 통해 각광받고 있다.

그런데 유독 이런 거센 페미니즘의 물결에서 격리된 듯 고요한 지대가 있으니, 바로 한국 건축계다. ‘여성 건축가’라는 키워드는 꽤 오래전부터 심심치 않게 거론되어왔지만, 이렇다 할 담론 형성이나 실천이 부재했던 것이 사실이다. 담론의 판을 만들고 끌고 가야 할 건축 매체들에게도 책임이 있을 것이다. 이실직고하는 마음으로 먼저 본지를 언급하자면, 월간 「SPACE(공간)」가 ‘여성’을 단순한 수식어로서가 아니라 어느 정도 페미니즘이라는 프레임을 가지고 마련한 지면은 1966년 창간 이래로, 단 네 번뿐이었다. 1967년 5월호에 독일 작가인 잉게보그 드류비츠가 “여류건축가의 고난: 균형과 함께 30여년”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썼고, 1976년 6월호에는 이신옥, 장양자, 조계순, 지순, 천병옥, 최의자가 “아기자기한 생활에 알맞은 건축공간”이라는 주제로 방담을 나누었다. 1990년 10월호에는 건축가 박연심이 “그리고, 페미니즘의 도래?: 여성에게 건축이라는 것”이라는 글을 통해 “여성 비평은 나름대로 정치성도 지니면서 현대 비평 이론을 여성의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것이다. 어느 비평가의 말처럼 서구 비평의 구조주의를 거쳐 해체론, 그리고 페미니즘의 시대에 와 있는 것인가?”를 묻기도 했다. 2002년 10월호에는 한국여성건축가협회 창립 20주년을 기념하며 “한국 건축문화와 여성: 여성, 미래 건축문화의 중심에 있을 것인가?”에 대한 좌담을 진행했다. 비슷한 시기인 2000년도에 「건축과 환경」(현재 「C3 Korea」)에서도 세 번에 걸쳐 논단 지면에 이강헌, 이선영, 김혜정, 이건섭이 ‘건축과 페미니즘’에 관하여 개괄했다. 대한건축사협회에서 발행하는 「건축사」에서는 1994년 “여성 회원이 보는 건축계 개혁방안”이라는 논의를 시작으로 2004년부터 2011년까지 전국여성건축사대회에 관한 소회들을 꾸준히 기록해왔다. 2013년에는 “우리 시대의 진정한 슈퍼우먼_ 여성건축사”를 다루기도 했다. 「건축문화」에서는 1986년 여성 건축가를 조명하는 특집을 마련했고, 2009년에는 “여성 + 건축가로서의 여성 건축가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건축인(poar)」은 2004년 대표적인 여성 건축인들을 커버스토리로 다뤘다. 이러한 목록은 페미니즘의 담론에 대한 건축계의 성기고 미약한 진척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페미니즘 이슈가 최근 몇 년 사이 갑자기 나타난 것이 아님을 반증해주기도 한다.

한편 해외 건축 매체와 단체들은 제3의 페미니즘 물결이라 일컬어지는 최근 시류에 합세하여 그 논의를 보다 첨예하게 다루고 있다. 「아키텍처럴 리뷰」는 2012년부터 ‘우먼 인 아키텍처 어워드’를 제정하고, 매해 그에 대한 특집호를 선보이고 있는데, 이는 ‘건축상은 누구의 것인가?’에 대한 문제제기로부터 지속적인 조명을 통해 건축상이라는 영역의 변혁을 꾀하고자 하는 의지로 보인다. 또한 『우리는 여성, 건축가입니다』의 저자인 데스피나 스트라티가코스는 여성 건축가의 존재를 더욱 명확하게 드러낼 수 있는 방법으로서, 그리고 적대적 정치 활동이 아닌 견고한 인식을 가볍게 부수는 유머의 역할로서 ‘건축가 바비’를 고안한다. 2002년부터 해마다 마테 사가 선보이는 ‘바비는 될 수 있어’ 시리즈의 2011년 모델로 ‘건축가 바비’가 탄생한 배경이다. 

비교적 최근에 한국 건축계에서도 『빌딩롤모델즈』처럼 여성 건축가들이 여성 건축인들의 이름을 호명하고 집합시키고 이를 기록했던 프로젝트도 있었고, 『SPACE of W-Architects』처럼 대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여성 건축가들을 인터뷰하고 책으로 엮기도 했다. 위의 두 책은 건축계의 다양한 영역에서의 성비 불균형을 통계로 보여주고, 여성 건축가들 개인의 서사들을 모았다는 데 의미가 있다. 

 

 

흩어지고 사라지고 나타나고 있는 와중에: 한국 건축 서사 안의 여성들 

우리는 그리 길지 않은 한국 건축의 서사가 남성 중심으로 서술되어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그 사이를 비집고 나와 개인의 서사를 이룩했던 여성 건축가의 이름들도 안다. 한국 최초의 여성 건축사인 지순을 시작으로 민선주, 박헬렌주현, 서혜림, 박연심, 김진애 등이다. 그들은 대학교에서 수업을 받을 때도, 사회에 나와 설계를 할 때도 남성 세계에 끼어든 홍일점의 자리에 있었다. 무시당하거나 주목받기 쉬운 자리였을 것이다. 현장에라도 나가는 날이면 “재수없다”(김인숙, 「SPACE」 2002년 10월호)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 그래서 그들은 “지금까지 우리 건축계에서 여성의 지위란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이제 여성 건축인들은 적극적으로 사회에 참여해서 나름대로의 영역과 지위를 확보해야 할 때”라고 외쳤다(천병옥, 「건축과 환경」 1990년 5월호). 그러나 그렇게 자신의 자리를 지켜왔던 그녀들 중 대부분은 아쉽게도 건축계에서 자주 볼 수 없게 되었다. 그들에게 바통을 이어받은 다음 세대는 “주니어 시절에 롤모델이 되어주셨던 세 분의 여성 건축가가 있다. (…) 가까이서 어려움들을 지켜봤기에 지금 일을 해나가면서 장애들을 미리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고 고백한다(김정임, 「건축문화」 2009년 4월호). 그들은 독자적으로 일을 수주하고 사무실을 운영하는 데 성공했다. 김정임, 정현아, 조재원, 신혜원, 정수진, 이은경 등으로 이어지는 이 명단은 이제 건축계의 어떤 자리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의 성취는 남성 위주의 논리로 구성된 건축의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 여성성을 억압하고 남성의 언어로 싸워온 결과일 가능성이 높다. 이제 그들은 기성 건축가로서 일련의 궤도에 오르면서 억압되었던 여성성을 탐구하고 발현하고자 다시 고군분투하며, 여성 후배들을 위해 여성적 관점의 새로운 건축 어휘를 발명하는 데 책임의식을 느낀다. 건축과에 입학하는 여학생 수가 꾸준히 늘었고, 이제는 여자이기 때문에 무언가를 할 수 없다고 느끼는 것 자체가 이상한 시대가 되었다. 이제 건축계에 발을 막 내디딘 그들은 학교에서, 건축사사무소에서 그리 큰 차별을 경험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최근에는 여성 듀오, 트리오로 결성된 건축사사무소도 등장하고 있다. 그래서 과거와는 또 다른 의미로 ‘여성’이라는 프레임을 거부하며, 과거에 여성들을 억압했던 장벽들이 이제 거의 거두어졌다고 여기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여전히 대다수 클라이언트의, 건축과 전임교수의, 건축사의, 협회 임원의, 수상자 목록의, 대형 프로젝트의 참여 건축가의 성비가 고장 난 시소처럼 한결같이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또한 주요 기관과 프로젝트의 최종 결정권이 여성의 손에는 잘 쥐어지지 않는다는 사실 말이다. 더 나아가 우리는 건축의 생산자가 아닌 사용자로서도 여성이 공간을 누리는 데 있어 얼마나 많은 미묘한 통제가 여전히 난무하고 있는지를 잘 안다.

 

 

여성 (       ) 건축

그동안 여성이 배제되고 주변화되었던 건축 담론 안에서 여성 건축가 개인의 서사 조각을 모으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여성’이라는 이름으로 건축가를 호출했던 많은 시도들이 그 의도 여부를 떠나 지금에 와서는 귀중한 기록이 되었다. 그러나 그것이 첨예한 담론을 형성하거나 실천의 단계로 건너가지 못하는 까닭은 그 발판이 되는 다양한 시각의 논의들이 부족했기 때문이 아닐까 짐작했다. 개인의 서사를 조명하거나 여성의 지위 탈환을 위한 토로와 투쟁을 담는 일, 혹은 ‘한국 건축의 페미니즘’, ‘한국 건축의 여성성’과 같은 진단은 조금 미뤄두었다. 다만 이번 기회에는 ‘여성’과 ‘건축’을 병치시키고, 그 사이 관계를 다각도로 상정해보고 접합해보면서, 좀 더 넓은 지평으로 이 이슈를 펼쳐보려고 했다. 쉽게 깨질 것 같았던 얇은 얼음판 아래, 오랫동안 묵묵히 여성과 건축의 관계를 탐구해온 여러 전문가들이 있었다. 장미현(젠더공간연구소 소장)은 건축 공간 안에서, 정현주(서울대학교 교수)는 보다 넓은 도시 공간에서의 여성 지위에 대해 이야기를 풀어주었다. 사라 알라백(건축역사가)은 미국의 여성 건축단체의 역사와 활동, 그리고 교육을 개괄하여 우리에게 귀감이 될 만한 글을 보내주었다. 박귀천(이화여자대학교 교수)은 한국 사회에서 여성이 전문직에 종사하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법과 제도적 측면에서 짚어주었다. 마지막으로 양효실(미학자)은 건축 주변의 문화예술계의 페미니즘 활동 전개 양상을 조감하며, 앞으로의 향방을 조심스럽게 조언한다. 각 에세이에 붙은 ‘플러스’ 지면들은 각 이슈를 좀 더 다양한 시각으로 보완해주거나 혹은 연달아 나오는 글 사이사이에서 쉬어가는 역할을 해줄 것이다. 또한 맨끝에는 다양한 세대의 여성 건축가들이 한자리에 모여 나눈 여성으로서의 자의식에 대한 솔직한 이야기를 담았다. 이 기획을 준비하면서 ‘여성’이라는 프레임 자체에 불쾌함이나 거절 의사를 밝히는 분들이 실제로 많았다. 기획을 하는 입장에서도 이 프레임에 대해 계속해서 의심해야 했는데, ‘여성’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순간 포획되지 않는 개별성, 혹은 겨우 불식된 (것만 같은) 여성을 주변화하는 언어로 느껴지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이 이 기획이 갖는 한계이기도 하다. 하지만 남성 중심으로 선택되고 구성되는 것이 고착화된 건축의 세계에서 스스로 여성이라는 자의식과 언어를 끊임없이 갱신하지 않으면, 오랫동안 간과되고 매몰되었던 여성의 익명성은 미래에도 떠오르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여성과 남성의 주도권 싸움이 아니다. 여성과 여성성을 잃어버린 건축은 절뚝거릴 수밖에 없다. 미래에는 ‘여성’을 대신하는 다양하고 세밀한 언어들이 존재하길 바란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