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MSPACE는 국내 최고의 건축 포털 매거진입니다. 회원가입을 하시면 보다 편리하게 정보를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Login 회원가입
Naver 로그인


한국 사회에서 살아가는 여성 전문인

박귀천(이화여자대학교 교수)
진행
김예람 기자

전문직이니까, 하지만 전문직임에도 불구하고

이 글을 쓰기 위해 '여성 전문직', '법조인', '건축가', '법', '건축' 이라는 키워드들을 나열하다 보니 나의 선배들이 겪은 '화장실'에 관한 이야기들이 떠올랐다. 왜 하필 화장실인가.

첫 번째 이야기는 1970년대 한국의 여성 법조인 수가 다섯 명도 안되던 시절에 법조인이 된 선배가 사법시험을 보던 당시의 경험담이다. 여자 수험생이 워낙 적다 보니, 성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거리낌 없이 여자 화장실을 사용하는 남자 수험생이 많았다고 한다. 정작 여자 수험생들이 화장실에 들어가지 못하는 난처한 상황이 발생했고, 더는 기다릴 수 없었던 선배가 인파를 제치고 여자화장실에 들어가자 다른 여자 수험생들도 뒤따라 왔다고 한다. 

두 번째는 약 8년 전 지방 대학 로스쿨 교수인 선배가 들려준 이야기다. 로스쿨에 여성 교수가 워낙 적어서 여성 교수용 화장실이 없고, 여학생 화장실도 각 층마다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다른 층까지 가기가 번거로워 음료수 마시는 것을 자제하게 되었다는 것이다(당시 그 학교 로스쿨의 인원 구성은 모르겠지만, 2019년 현재는 전임교수 35명 중 여성 교수가 6명이다).

훨씬 오래전의 먼 나라 이야기도 있다. 미국 MIT 공대에는 1873년에 최초로 여학생이 입학했는데 당시 여학생 화장실을 교내에서 찾으려면 1마일(1.6km)을 가야 했다고 한다.▼1

선배들의 화장실 이야기는 남성 중심의 전문직 분야에서 여성 전문직들이 겪어야 했던, 혹은 지금도 겪고 있을지 모르는 일로 소소해 보이지만 사실은 심각한 애로 사항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화장실은 사람이 머무는 곳에 반드시 필요한 공간이고, 특히 공공시설 화장실은 그 사회의 위생, 안전, 인권의 수준을 보여준다. 장애인 화장실이나 가족 화장실이 증가하고, 최근에는 성중립 화장실이 이슈가 되는 현상으로도 알 수 있다. 우리나라의 '국가재정법'에 따르면 정부는 예산이 여성과 남성에게 미칠 영향을 미리 분석한 '성인지(性認知) 예산서'를 작성해야 하고, 국회에 제출하는 예산안에는 그 서류가 첨부되어야 한다. 예산서 작성에 대한 설명에서 나오는 대표적인 예가 "건물에 설치될 화장실 중 여성과 남성의 화장실 수를 분석하여 양성평등 관점에서 예산이 편성되었는지를 확인하고, 불평등한 경우 이를 조정하여 예산을 편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여성은 남성에 비해 직업생활에서 성차별, 성희롱 등의 어려움을 겪으며 경력유지도 힘들지만, 그래도 전문직 여성의 경우는 사정이 낫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전문직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전문직이기 때문에 여성들은 오랫동안 남성 중심적으로 구축되어온 경쟁의 틀 속에서 악전고투를 해야 한다. 전문직은 오직 실력에 의해 평가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여성에게는 실력을 온전히 발휘하기 어려운 장벽들이 여전히 존재한다. 

 

그 많던 여학생들의 꿈, 살아남은 여성 전문직의 현실

"종종 사람들은 대법관 중 여성이 몇 명이어야 하냐고 묻습니다. 나는 '9명 전원'이라고 답합니다. 사람들은 제 대답에 놀랍니다. 하지만 대법관 전원이 남성일 때는 아무도 이상하다고 여기지 않았습니다." 미국 역사상 두 번째 여성 대법관인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대법관의 말이다. 그동안 우리는 남성 지배적으로 구축되어온 체계를 당연한 전제로 받아들이면서 그 체계 안으로 소수의 특별한 여성들이 참여하여 활약하는 모습을 때로는 신기하게 바라보며 환호하고, 때로는 그저 놀라워하기만 했던 것은 아닐까. 

우리의 현실은 어떠할까. 우선 공식적 수치로만 본다면 여성들의 경제활동 상황은 점진적으로 개선되어가고 있다고 보인다. 2019년 7월 통계청이 발표한 '2019 통계로 보는 여성의 삶'에 따르면, 2018년 전체 고용률은 60.7%, 이 중 여성 고용률은 50.9%, 남성 고용률은 70.8%로, 남녀 간 고용률 격차는 해마다 줄어들고 있다. 공공기관 및 500인 이상 기업의 관리자 중 여성 비율은 20.6%였고 이 비율도 증가되는 추세다. 전체 법조인 중 여성 법조인 비율은 28.7%(판사 29.7%, 검사 30.4%, 변호사 28.5%)로 2008년에 비하면 18.3% 증가했다. 의료분야의 여성 비율은 의사 26.0%, 치과의사 27.3%, 한의사 21.9%, 약사 64.6%로, 의료분야 여성전문직 역시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그러나 구체적 현실에서 여성의 상황은 결코 녹록지 않다. 남성 근로자 중 비정규직 비율은 26.3%인데 비해 여성은 41.5%로 남성 비정규직의 경우, 10년 전에 비해 줄어들었지만 여성의 경우 오히려 증가했다. 여성 고용의 양은 증가했지만 일자리의 질이 나아졌다고 보기는 어려운 것이다. 여성의 현실을 보다 극적으로 보여주는 통계는 연령대별 여성 고용률이다. 2018년 여성 고용률은 20대 후반이 70.9%로 가장 높고, 40대 후반(68.7%), 50대 초반(66.8%) 순으로 높다. 30대 초반은 62.5%, 30대 후반은 59.2%이다. 여성 고용률은 30대에 결혼·출산·육아 등으로 인한 경력단절 때문에 감소한 후 40대에 재취업으로 증가하는 M자형의 모양을 보이는데, OECD 회원국 중 30대 여성 고용률이 급격히 하락하는 국가는 한국과 일본뿐이라고 한다.▼2 

여성 법조인의 경우, 결혼, 출산, 육아 등으로 인한 경력단절 문제는 여성 노동자 전반의 상황에 비해서는 나을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젊은 여성 변호사들로부터 로펌 입사면접 시 결혼·출산 여부에 대한 질문을 받았거나 육아휴직은 곧 퇴직을 의미한다는 이야기를 자주 들었다. 최근 언론에도 열 번의 변호사 채용면접에서 매번 결혼·임신·출산 계획에 대한 질문을 받았다는 변호사의 사례가 보도된 바 있다.▼3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에서는 "차별이란 사업주가 근로자에게 성별, 혼인, 가족 안에서의 지위, 임신 또는 출산 등의 사유로 합리적인 이유 없이 채용 또는 근로의 조건을 다르게 하거나 그 밖의 불리한 조치를 하는 경우"라고 규정하고, 모집·채용·근로조건·해고에서의 성차별을 금지하고 있다. 이러한 법을 잘 알고 있는 변호사들이 정작 자신의 문제에서는 목소리를 내기 어렵다.▼4 이제 막 업계에 들어서는 젊은 변호사들에게 낙인을 감수하면서 문제제기를 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무리다.

비단 출산과 육아만이 문제는 아니다. 오랫동안 굳어져온 남성 중심 문화와 술·골프 등의 접대문화로 인해 여성 변호사는 영업을 못할 것이라는 편견, 실제로 많은 여성이 그러한 문화에 쉽게 적응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인한 취업상의 불리함, 젊은 여성 변호사들이 취업에서 불리함을 악용하여 이른바 '접견변호사'로만 고용하는 위법적 행태▼5 등은 여성에 대한 차별과 배제로 이어진다. 로펌의 임원에 해당되는 파트너 변호사는 10명 중 1명 정도에 불과하고,▼6 검찰의 고위간부인 여성 검사장은 단 3명일 정도로 법조계의 유리천장은 여전히 두껍고도 견고하다. 

통계상 드러나는 건설업계 여성 전문직의 상황은 더욱 암울하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이 통계청 자료를 분석한 결과, 2018년 6월 기준 건설업 전체 취업자 중 여성은 11%에 불과하며 특히 기술 수준이 높아질수록 더욱 취약하다(2017년 말 기준 등록 기술인 중 여성 건축사 9.8%, 여성 기능사 10.55%, 여성 기술사 1.88%에 불과하다). 2015년 교육 관련 통계에 의하면 공학계열 입학생 중 여학생 수는 해마다 증가하고 있고, 건축학 전공 여학생 비율은 약 37%로 공학계열 중 여학생 비율이 세 번째로 높은 순위다. 건축 관련 전공은 공대에서 상대적으로 여학생들에게 인기가 높다고 알려져 있다. 그 많던 건축학과 여학생들은 어디로 갔을까. 업계 내 성차별과 편견, 일·가정 양립의 어려움은 여타 분야와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7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필자의 전공은 노동법이다. 현재 전국 노동법 전임교수는 약 60명이고 그중 여성은 6명뿐이다. 여교수가 적은 법학계에서도 특히 소수자의 위치에 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여성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깨닫게 된 생각과 경험을 토대로 간략하게나마 우리가 할 일들에 대해 말해보고자 한다. 

먼저, 여성 스스로 문제를 인식하고, 이를 드러내며 함께 논의해야 한다. 나의 문제는 나 스스로, 여성의 문제는 여성 스스로 관심을 갖지 않으면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는다. 여성들의 공동체를 만들고 여성들이 함께 발전하며 특히 후속 세대 여성들이 성장하고 발전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야 한다. 흔히 여성들은 협력하지 못한다거나 서로 시기한다는 편견이 많다. 그러나 시기와 질투는 인간 본성의 한 단면일 뿐 여성만의 특징은 아니다. 전문직 여성들은 이른바 '명예남성'이 되어야 하는 압박을 받기도 한다. 여검사가 들을 수 있는 최고의 칭찬은 "남자 같다"라는 말이라는 얘기를 듣고 씁쓸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여성 전문직들은 단지 남성처럼 성공하기 위해 직업을 택한 것이 아니다. 여성의 장점과 개성, 능력이 발휘될 수 있도록 서로 격려하며 함께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또한 같은 분야의 남성들과 교류하고 소통하며 그들의 지지를 확보해야 한다. 성평등을 추구하는 궁극적 이유는 누구나 차별과 편견 없이 행복하게 살아가는 사회를 만들고자 함이다. 이를 위해 일상에서 만나는 남성 동료들과의 소통을 통한 신뢰를 바탕으로 여성 문제 해결을 위한 공감대를 형성해가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자신이 속한 분야와 관련하여 소외 계층이나 소수자들의 아픔에 공감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전문직 여성들은 기회에서 혜택을 받은 사람들이라고도 할 수 있다. 전문직 여성들이 단지 직업적 이해관계에만 천착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책임감을 가지고 사회 전체에 선한 영향력을 준다면 그 위상은 자연스럽게 힘을 얻게 될 것이다.​

 

-

1. 김혜정, 『차이와 차별: 건축의 존재와 희망』, 공간사, 2006, 48. 
2. 박진희 외,『 2017 KEIS 노동시장분석』, 한국고용정보원, 2017, 141.
3. "대형로펌 '여성 파트너 변호사'는 10명 중 1명…그 마저도 어쩔 수 없어 뽑는다(여성변호사 합격률 50% 시대의 그늘)", 경향신문, 2019. 8. 13.
4. 대법원은 법무법인에 고용된 변호사도 노동법의 적용을 받는 근로자에 해당될 수 있다고 본다(대법원 2012.12.13. 선고, 2012다77006 판결).
5. 변호사가 변호 목적이 아닌 목적으로 구치소의 수감자를 접견하는 것은 변호사법 위반에 해당되는데 일부 부유한 수감자들이 젊은 여성 변호사들을 접견 목적으로만 선임하여 말벗 상대로 삼은 것이 변호사법 위반이자 여성의 성적 대상화, 성차별이라는 문제가 제기된 바 있다.
6. '대형로펌 여성 파트너 변호사는 10명 중 1명…그 마저도 어쩔 수 없어 뽑는다(여성변호사 합격률 50% 시대의 그늘)', 경향신문, 2019. 8. 13.
7. 데스피나 스트라티가코스, 김다은 옮김, 『우리는 여성, 건축가입니다』, 눌와, 2018, 36.

 


박귀천
이화여자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로, 독일 프랑크푸르트 대학교에서 법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주로 근로관계에서의 근로자 보호, 근로관계상의 성차별 문제 등에 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현재 한국노동법학회 상임이사, 한국젠더법학회 상임이사, 경기지방노동위원회 공익위원, 국가인권위원회 사회권전문위원회 위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