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여성 건축가들: 여성들의 건축교육 환경과 여성 건축가 단체

1857년, 미국의 건축가들은 미국 내 최초의 건축가협회인 미국건축가협회(American Institute of Architects)를 설립했다. 당시 여성을 특별히 배제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동등하게 대우하지도 않았다. 건축은 기본적으로 여성에게 폐쇄적인 직업이었고, 그 배경에는 계급에 따라 후학을 양성하는 당시의 교육제도가 있었다. 19세기 후반 유명 건축가들이 이끄는 미국의 건축회사들은 ‘나이 많은 남성들의 리그’일 뿐이었다. 특출난 재능을 지닌 소수의 여성들은 견습생으로 일자리를 얻을 수 있었지만, 대부분은 제대로 된 직장을 갖지 못하고 그들을 대변하는 네트워크에도 접근하지 못했다. 사내 권위주의, 주먹구구식 승진제도, 고객의 요구 등이 뒤섞여 여성들의 출세가도에 보이지 않는 장벽을 만들었다. 

건축가를 꿈꾸는 여학생들 중 소수만이 간신히 설계사무소에 취업할 수 있었고, 남성들과 달리 여성들은 대학에서 학위를 취득하지 않는 이상 아예 업계에 발을 들일 수 없었다. 변화는 1870년대 말부터 시작됐다. 일리노이 대학교와 코넬 대학교가 연방정부의 지원을 받아 건축 교육과정에 여학생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메리 L. 페이지는 1878년 일리노이 대학교에서 건축 교육과정을 이수하고 남학생들과 업계에서 어깨를 나란히 한 최초의 여성이 된다. 마가렛 힉스 또한 1878년 코넬 대학교에서 문학과정 학사과정을 마친 뒤 같은 학교에서 1880년 이학과정 학위를 취득했다. 

다음으로 건축 교육과정을 여성에게도 개방한 학교는 MIT다. 첫 입학생인 앤 그레이엄 록펠로는 1887년에 건축교육 2년 과정을 이수했고, 세기가 바뀔 무렵에는 총 12명의 여성이 학교를 졸업했다.^▼1 20세기 초, 여성 건축가 선배들은 직접 후배 여성 건축가들을 고용하고, 그들만의 네트워크를 구축하여, 여성 건축가를 후원하는 여성 후원자들과 교류의 장을 가졌다. 여성 최초로 에콜 데 보자르를 졸업한 건축가 줄리아 모건은 여성 최초로 1904년 설계사무소를 열었다. (1927년에는 14명의 직원 중 여성이 여섯 명에 다다랐다.) 뒤이어 1907년 MIT 출신 아이다 애나 라이언과 플로렌스 루스콤이 설계사무소를 개업했고, 1913년 로이스 하위와 앨러노어 매닝이 또 다른 설계사무소를 시작하여 1926년 매리 앨미를 영입했다. 

여성에게 조경과 건축을 전문적으로 가르치던 케임브리지 대학교 건축 및 조경학과의 탄생에는 학생들의 지속적인 관심과 하버드 대학교 교수들의 노력이 있었다. 1915년 래드클리프 대학교 재학생인 캐서린 브룩스는 하버드 대학교 조경학과에 입학신청서를 제출했지만 학교 측에서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때 한 교수가 나타나 그녀를 직접 지도하겠다고 나섰다. 몇 달 후, 헨리 애터튼 프로스트 교수는 그의 사무실에서 브룩스와 다섯 명의 여학생들을 지도하고 있었다. 새 프로그램에 대한 소문은 빠르게 퍼졌고 1916~17년 케임브리지 대학교 학사일정에 정규 교육과정으로 자리잡았다. 학생들은 하버드 대학교 남학생들과 동등한 수준의 교육을 받았고, 프로스트 교수의 사무실에서 실무를 경험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비슷한 환경에 처한 다른 여학생들과도 연대할 수 있었다. 

이와 비슷한 시기에, 해리엇 메이 스타인메쉬는 여성들이 건축계에 자리 잡기 어려운 현실을 타파하고자 여성 건축가들만을 위한 새로운 단체를 설립했다. 스타인메쉬와 미주리주 세인트 루이스에 위치한 워싱턴 대학교 동문들은 여성 친목 단체 라 콩프레리 아롱기브(La Confrerie Alongiv)를 만들었다. 1916년 학교를 졸업하고, 스타인메쉬는 전국적 규모의 단체를 만드는 데 전념했다. 1922년에는 텍사스 대학교, 미네소타 대학교, 버클리 캘리포니아 주립대학교에 협회의 지부인 알파감마가 설치됐다. 1928년, 해당 단체의 여성 동문들은 여성건축가협회를 만드는 데 동참했다. 스타인메쉬는 미국 최초로 여성건축가들의 목소리를 대변한 여성건축가협회(Association for Women in Architecture)의 창립자이자 초대회장이었다. 

여성 건축가 지망생이 늘자, 그들을 지원하는 새로운 단체들이 잇따라 설립되었다. 스타인메쉬가 라 콩프레리 아롱기브를 출범시킨 해에는, 미시간 대학교 여학생들이 티스퀘어회(T-Square Society)를 조직했다. 1921년, 엘리자베스 마르티니는 시카고제도클럽(Chicago Drafting Club)을 설립했고, 이 클럽은 성장하여 7년 후 시카고여성건축가협회(Women’s Architectural Club of Chicago)로 자리 잡았다. 티스퀘어회의 회원인 베르타 예렉스 휘트먼과 줄리엣 페들은 창립 회원 아홉 명에 속했다. 당시 200명 이상의 미국 여성들이 건축업에 종사하고 있었으며 그중 여덟 명은 미국건축가협회의 회원이었다. 회원의 자격은 동료들의 투표를 통해 얻을 수 있었고, 회원이 되는 것은 학교와 건축계에서 전문성을 인정받는 영예로운 일이었다. 시카고여성건축가협회는 건축을 중심으로 네트워크를 펼친 1927년 여성세계박람회에서 영감을 받아 퍼킨스, 펠로, 해밀턴의 사교 공간에서 전시를 개최하기도 했다. 1940년대에는 미국건축가협회 시카고 지부로 흡수되며 등록 회원들의 아내를 위한 기구로 축소됐다. 1970년대에 여성운동은 여성 건축가들에게 그들의 업계에 은연중에 자리한 성 고정관념과 직장 내 차별에 저항할 수 있는 토대가 되었다. 

현재까지 명맥을 유지하는 여성건축가협회 로스앤젤레스 지부는 협회를 재구축하여 남성 회원들과 유사 직업군의 여성 노동자들을 포용할 수 있도록 하였다. 하버드 대학교 재학생 돌로레스 헤이든은 1970년대 초에 전문직 여성들의 작업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여성건축조경도시계획협회(Women Architects, Landscape Architects and Planners)를 설립했다. 이와 같은 시기에, 뉴욕에 기반을 둔 여성건축가연합(Alliance of Women in Architecture)은 미국건축가협회를 향해 여성 건축가들의 처우를 개선하지도, 성차별을 인정하지도 않는다며 비판을 가했다.^▼2 여성건축가연합은 여성들의 안정적 취업을 돕기 위해 ‘뉴욕 건축사무소 비밀안내서’를 제작했다. 전 직원이 여성인 오픈 디자인(Open Design)이 탄생했고, 여성 건축가들은 이곳에 자신의 프로젝트를 가지고 오거나 다른 구성원으로부터 소개받은 일을 맡게 되었다. 여성건축가연합 창립자인 레지 골드버그와 동료들은 비슷한 목적의 비영리 건축 대안 단체를 창립할 예정이었다.^▼3 

여성건축가연합의 창립 회원이자 「건축 포럼」의 편집장인 엘렌 페리 버클리의 노력에 감명받은 동료들은 1973년 캘리포니아 베이 지역에서 활동 중인 여성 건축가들을 위한 여성건축기구(Organization of Women Architects)를 설립했다.^▼4 여성건축기구는 회원들의 영향력을 높일 목적으로 그해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미국건축가협회 컨벤션에서 지역 여성 건축가 50명을 그린 벽화를 출품했다. 여성건축기구는 종종 새로운 시도를 선보였는데, 가령 건축사시험 합격을 돕기 위해 모의시험을 시행하기도 했다. 모의시험이 인기가 많아지자 이 제도를 미국건축가협회에 팔기도 했다. 

1970년대 이후에도 계속해서 새로운 여성 건축가 단체들이 등장했다. 1985년 밀카 빌츠나코프는 건축계에서 여성의 역할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는 국제여성건축아카이브(International Archive of Women in Architecture)를 설립했다. 여성 건축가에 대한 자료를 온라인 데이터로 축적하고 버지니아 공과대학교에 아카이브 컬렉션을 제공한다. 이 아카이브는 여성 건축가에 대한 연구를 지원하는 자금을 모으는 역할을 한다. 2003년 베벌리 윌리스는 여성 건축가의 작품을 알리고 지원하는 베벌리윌리스건축재단(Beverley Willis Architecture Foundation)을 설립했다. 여성 건축가들이 직면한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건축계 내 여성들의 기여를 인식시키고자 강연, 전시, 행사 등을 운영한다. 최근에는 ‘미국 건축의 여성 선구자’ 프로젝트에서 19세기와 20세기 초에 활동한 주요 여성 건축가들의 프로필을 모아 온라인 데이터로 정립했다. 국제여성건축아카이브와 베벌리윌리스건축재단 모두 여성 건축가들의 잊혀진 역사를 발굴하고 여성 건축가를 지원하는 일에 전념하고 있다. 

2000년대에 설립된 단체는 로리 브라운과 니나 프리드먼이 2013년에 설립한 아키텍스(ArchiteXX)가 있다. 이들의 목표는 학교와 실무의 관계를 긴밀하게 만들고, 건축계에서 여성의 역할을 변화시키는 것으로, 궁극적으로 성평등을 실현하고자 한다. 여성 리더가 출현할 수 있고 여성 건축가의 근무 환경이 지속가능하도록 실무 경험과 멘토링을 제공한다. 또한 다음 세대들이 자신을 변화의 주체로 인식하도록 뉴욕 전역에 있는 건축학교에서 강연 시리즈를 진행하고 다양한 단체를 지원하며 시의성 있는 주제로 전시를 펼치기도 한다. 2014년 뉴욕 파슨스 스쿨에서 열린 〈사적인 선택, 공적인 공간〉과 2015년 시작된 순회전시 〈지금, 무엇을?!〉은 단체가 그들만의 리그에서 벗어나 역량을 확장하는 데 큰 기여를 했다. 

지난 백 년간, 미국의 수많은 여성 건축가들과 여성 건축가 단체들은 서로를 지원하고, 연대하며, 건축계 내에서 여성들의 기회를 확장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우리의 다음 과제는 국제적 교류다. 건축이 세계를 무대로 하는 만큼 서로 다른 나라의 여성 건축가들이 함께 협력하고 국제적 사업을 진행할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사적인 선택, 공적인 공간〉 포스터, Image courtesy of ArchiteX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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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라 알라백, 『최초의 미국 여성 건축가』, 일리노이 대학교 출판사, 2008. 

2. 폴 골드버그, “98%가 남성으로 구성된 업계에서 여성 건축가의 영향력”, 뉴욕타임스, 1974. 5. 18. 

3. 리타 리프, “여성 건축가, 느리게 단합을 이루었지만, 남성 동료들을 따라잡고 있다”, 뉴욕타임스, 1973. 2. 26. 

4. 잉게 S. 호튼, “여성건축기구 40년”, 「여성건축기구+디자인프로페셔널 포럼 포스트」, 2013. 2.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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