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MSPACE는 국내 최고의 건축 포털 매거진입니다. 회원가입을 하시면 보다 편리하게 정보를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Login 회원가입
Naver 로그인


한국에서 여성이 건축을 한다는 것

진행
김정은 편집장

좌담

김숙정(그라운드스케일 공동대표)

김정임(서로아키텍츠 대표)

이선영(서울시립대학교 교수) 

임미정(에스티피엠제이 공동대표) 

조재원(공일스튜디오 대표) 

한기영(간삼건축 부사장) 

그리고 「SPACE(공간)」

 

 

여성 건축가라는 호명과 자각

SPACE: 이번 좌담은 젠더 이슈가 건축계의 문제와 어떻게 맞닿아 있는지 학계와 실무 현장에 있는 여성 건축인들과 함께 이야기해보기 위해 마련되었다. 건축계에는 오랫동안 여성 건축가라는 호칭을 쓴다거나 젠더 문제를 공적인 자리에서 논하는 것을 꺼려하는 분위기가 있었다. 그런데 요즘은 분위기가 조금 달라졌다고 느낀다. 여성임을 드러내고 차이와 차별에 대해 목소리를 내고 시정하지 않으면 사회는 변화하지 않는다는 인식도 확산된 것 같다. 

 

김정임: ‘왜 건축계에서 여성이나 젠더 이슈에 대한 공론화가 늦어졌는가’, 그 이유를 생각해보면 여성으로서의 자의식이 없거나 불이익에 대한 두려움 때문일 수도 있다. 한참 미투 운동이 부상했을 때 건축계에서는 특별한 움직임이 없었다. 당시 ‘과연 실제로 없어서일까, 아님 다른 이유에서일까’라는 생각을 해봤다. 건축계가 여성에 대한 차별이 적어서일 수도 있고, 반대로 문제가 밖으로 표출되었을 때 그 사람이 배제될 수 있는 가능성이 더 많아서 표면으로 드러나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 

 

이선영: 극히 남성화된 문화에 동화된 것일 수 있다. 본인이 여성이라고 인식하지 않았거나 인식했더라도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김정임: 30대 후반 즈음 몇몇 건축가들과 함께 전시를 준비하면서 그동안 일해오던 방식에 대해 돌아보게 되었다. 늘 남자 소장과 일하며 상대적인 개념으로 나를 파악하며, 스스로 여성이라는 점을 많이 의식했던 것 같더라. 남자와 구별 없이, 또는 남자에 뒤지지 않고 일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생각이 있었다. 학교 다닐 때 학과에 여자가 10%도 안 됐었다. 그래서 남자들과 완전히 동화되어 작업실에서 모든 것을 똑같이 함께 해가면서 살지 않으면 그 문화에서 배제될 것 같은 느낌에 스스로 여성성을 거세하면서 살아오지 않았나 싶었다. 그런데 전시를 준비하면서 ‘스스로 여성성을 관찰하고 그걸 일이나 다른 분야에서 표현해볼 수 있을까’라는 고민이 들기 시작했다. 특히 언어가 굉장히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건축이 남성들 사이에서 이해되는 언어로만 표현되는 게 아닌가, 내가 생각하고 표현하고 싶은 것을 잘 설명해줄 수 있는 건축계 용어가 있기는 할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건축계에는 여성 비평가도 드물다. 본인의 건축을 설명할 수 있는 언어를 개발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것이 권위를 갖기 위해서는 비평가의 역할이 중요하지 않나. 

 

임미정: 80년대 생인 나는 “여자도 할 수 있다. 너희들의 자아를 실현할 수 있으니 걱정하지 말고 공부하라”라는 분위기 속에서 자란 세대에 속한다. 공부할 때에도 “여자가 건축을 해?”라는 이야기는 많이 듣지 않았다. 하버드 GSD를 다닐 때 절반이 검은 머리고 절반이 여자였다. 10년 뒤 내가 실무를 할 때쯤 이 많은 여성들이 그 현장에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지금 보면 그 많은 여성들이 실무 현장에 있진 않지만 상당히 달라졌다고 느낀 시기였다. 자연히 여성이라는 걸 머릿속에 넣고 살진 않았다. 내가 남자와 같은 수준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고, 건축은 스스로를 이겨내야 하는 학문이었다. 미국에서 실무를 했었는데, 내가 여자니까 무언가를 할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물론 그곳에도 육아를 하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남성 건축가와 여성 건축가를 구분 짓는 건 느끼지 못했다. 그런데 한국에 들어와서 내 역할을 다시 생각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육아에 직면했을 때다. 육아가 당면 과제가 되면서 여성으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한계가 있다고 느끼게 된 것이지, 건축계 안에서 여성의 역할이 작다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다. 

 

김숙정: 역시 80년대 생인 나는 남녀가 대략 반반인 건축학과를 다녔다. 여성이 남성화되었다고 느낀 적이 없고, 우리끼리는 “여성은 남성화되고 남성은 여성화되어서 우리는 모두 중성”이라고 이야기하곤 했다. 5년 동안 학교에서 밤샘 작업을 하고 남녀 모두 오랜 시간을 공유했기 때문에 여성성이나 남성성에 대해 특별히 생각해본 적이 없다. 오히려 졸업하고 보니 사회 전반에는 그 단어가 기저에 깔려 있더라. 우리가 배우고 버텨냈던 시간에는 성이 없었는데 왜 사회에 나왔더니 성을 붙이는 건지 의문이었다. 그래서인지 여성 건축가로 분류되어 호명되는 것이 오히려 불편하다. 

 

조재원: 세대마다 경험 차이가 있을 텐데, 대학을 다닐 때는 별로 그런 생각을 못했다. 졸업 후 공간건축에 입사했을 때 여자 직원이 채용된 세 번째 해였다고 들었다. 나는 여성 건축가로 불리는 자체보다는 그 의도에 민감하다. 나는 굉장히 다양한 이름으로 불린다. 삼십대 초반 독립한 이후 한동안은 프리랜서로 취급받을 때도 있었고 조 대리, 조 양, 조 교수, 조 선생 등으로 다양하게 불렸다. 여성으로서 작은 사무실을 일찍 차려 활동한 그 당시에는 드문 경우였기 때문에 일하면서 만나는 사람들이 나를 정의할 근거를 이전의 경험에서는 찾기 쉽지 않았던 때문인 것 같다. 많은 이름 중 하나가 여성 건축가인데, 여성이라고 부를 때의 의도가 중요하다. 좋은 의도로, 힘을 실어주고 싶은 마음에 여성이라고 부를 수도 있다. 힘을 실어주는 데에는 일에 주목해주고 일을 주는 것 만한 것은 없지만. 양성평등으로의 의미 있는 진전을 위해 내가 여성 건축가로 인지되는 경우라면 긍정적이지 않을 이유가 없다.

 

한기영: 김정임이 남자들의 세계에서 생존하기 위해 남자에게 동화되었다고 했는데, 인식하지는 않았지만 나도 그랬던 것 같다. 대형 사무소에 있어서 그런지 남들이 나를 여자로 바라보는 게 불편해지는 순간이 있다. 내가 상사인데 여자라는 이유로 아랫사람처럼 취급한다든지, 프레젠테이션을 하는데 건축주가 불편해한다는 느낌을 받는 일이 그렇다. 내가 프로젝트의 최고 책임자인데 술과 골프는 안 하고 밥을 먹거나 실무 이야기만 하고 끝내니까 친해질 수가 없어 불편한 거다. 하지만 할 수 없다. 대신에 ‘내 단어로 남자들을 이해시킬 수 있을까?’, ‘남자들의 말투를 잘 이해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했다. 직급이 올라갈수록 아래에 남자 직원들이 많아지지 않나. 그게 부담이 되었다. 상사인 여자 선배가 말도 안 통하면 곤란하지 않겠나. 내가 그 사람들을 편하게 해줄 수 있는 방법을 찾다 보니 남자 대화법을 연구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냉정하게 감정과 사실을 분리하는 법을 연습했다. 이제 남성 건축주나 직원들이 특별히 불편해하지 않는 것 같다. 

 

이선영: 나는 여학생이 없는 곳에서 혼자 고군분투했다. 평가자, 선생이 남성인 상황에서 생존해야 하는 절박한 심정에 지나치게 남성적으로 디자인을 했던 사람이다. 내가 원해서가 아니라, 젠더를 죽이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겠다는 생각에서 한 행동이었다. 졸업을 하고 취직을 하고 나서는 여성으로서 지나치게 많은 주목을 받는 게 부담스러웠고, ‘얼마나 잘하는 지 보자’는 식의 시선을 견디기 어려웠다. 그래서 일반적인 사람으로 수련을 받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는 여성들이 많이 유학을 가지 않을 시기였는데, 캘리포니아 대학교로 유학을 갔다. 아니나 다를까 여학생이 절반이었다. 방학 때 아이엠페이 사무실에서 일을 했는데, 거기도 여성이 절반이었다. 어떻게 보면 ‘더블 마이너리티’(여성이자 동양인)인데도 훨씬 더 자유롭게 받아들여지는 환경이었다. 당시 미국의 경우는 공공 프로젝트의 10%는 여성 기업에게 할당한다는 제도 때문에, 경우에 따라서는 여성 기업이 더 수월하게 수주할 수 있었다. 못하는 사람은 어차피 그 과정에서 걸러질 테니 이건 특혜가 아니라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 잡는 일이다. 「SPACE(공간)」에서 17년 전 '사이버 토크: 여성, 미래 건축문화의 중심에 있을 것인가?'를 할 때만 해도 여성 건축가라는 단어 중 ‘여성’에 방점을 찍던 시대였다.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여성할당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는데, 그에 대한 건축계 내 여성 사이에도 거부감이 있었다. 나도 여성할당제로 임용되었다. 서울시의원이 서울시립대학교 여성 교수 비율이 어떻게 한 자릿수냐고 이야기를 해서 임용된 경우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후에 임용된 교수들은 “왜 이선영 교수는 젠더 이슈에 그리 발 벗고 나서느냐” 하고 의문을 많이들 표했었다. 사실 여성친화도시 같은 개념/제도도 그에 공감하는 우리 분야 여성 전문가들이 주말에 시간을 쪼개어 자발적으로 만들어 제안한 것이다. 김대중 정부에서 각종 심의에 여성 비율을 늘리고자 했었는데 그 당시만 해도 여성 비율 30%를 못 채워서 비상이 걸려 사회 전반에서 여성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고, 꾸준히 일하던 여성 건축가들이 부상하면서 우리가 일상도 돌아보게 된 거다. 기념비적인 형태와 공간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일상을 좌지우지하는 환경에 관심을 가지는 (여성성의) 가치를 사람들이 다시 보게 된 것 같다. 이제 여성,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사실을 우리 사회가 알게 된 것 같다. 톱다운과 바텀업이 이런 현상을 같이 끌고 오지 않았나 싶다. 올해 처음으로 ‘젠더와 건축’이라는 대학원 세미나를 열 수 있었다. 이 세미나에 남학생들이 많이 참여하는 걸 보면 젠더 이슈가 포용적인 사회로 가는 데 있어서 중요하다고 인식하는 것 같다. 사회적 약자를 위한 포용적 공간을 만드는 것에 대해서 사회적 공감대가 많이 형성되었다. 결혼, 자녀 여부와 상관없이 돌봄에 많이 노출된 사람들이 경험하는 공간에 관심을 가진다는 의미에서 여성 건축가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건 괜찮은 것 같다. ‘여성’이 특별하다는 의미보다는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되는 걸 보니 세상이 많이 변했다. 이젠 오히려 보편성을 구현할 수 있는 사람으로 여성을 다시 보는 것 같아서 좋다.  

 


달라진 노동 감각과 세대 문제

SPACE: 과거에는 건축계의 보수성(도제 시스템, 과중한 업무 등) 때문에 건축 분야가 여성이 진출하여 성장하기 어려운 전문 분야로 여겨졌다면, 최근에는 20대 남성들이 건축계와 맞지 않아 갈등한다는 관찰도 있다. 사회적으로 20~30대의 노동에 대한 감각이 달라지면서, 여성과 남성으로 이분화하기 어려운 현상이 생긴다. 

 

김숙정: 나는 BCHO 파트너스에서 6년 정도 일을 했었는데, 막내로 입사했을 때는 성비가 비슷했다. 그런데 내가 팀장이 되었을 때 최종 신입사원 포트폴리오를 보니 여성 지원자가 더 많았다. 남자 신입사원을 한 명도 못 뽑은 해도 있었다. 점점 좋은 포트폴리오 수도 줄어서, 왜 그럴까를 생각해봤다. 전반적으로 남녀 구분 없이 신입사원이 겪는 노동환경과 박봉을 버텨내려는 학생 수가 점점 줄고 있다는 의미로 다가왔다. 부차적으로 기성세대의 관습이 남아있어, 남학생들이 졸업을 하면 가정을 꾸려나가야 하는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부담감을 더 크게 느껴 박봉을 감수하기 위해 더 큰 용기가 필요한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선영: 큰 조직인 간삼건축은 어떠한가?

 

한기영: 얼마 전에 신입사원을 채용했는데, 지원자의 남녀 비율이 6대 4 정도 되었다. 다행이었다. 만약 이때 최종 면접자의 남녀 비율이 5대 5가 된다면 회사로서는 고민이 되는 것이 사실이다. 사소한 예를 들면 무거운 짐을 옮긴다거나 남자들이 잘 하는 업무가 상대적으로 많기 때문이기도 하고, 3~5년이 지나면 결혼이나 육아 등으로 여자 직원 수가 줄어들기도 하는데, 그러면 계속 다른 직원으로 교체해야 하기 때문이다. 회사 입장에서는 더 오래 있을 사람을 채용할 수밖에 없다. 이는 우리 여자들의 책임이다. 

 

김정임: 우리 회사는 규모가 작음에도 불구하고 여자들은 두 가지 경우로 나뉘는 것 같다. 일을 하다가 결혼을 해서 남편의 상황에 맞춰 유학을 가거나, 출산 때문에 일을 쉬거나 그만둔다. 결혼을 안 한 직원들은 나와 오래 근무한다.

 

조재원: 최근에 직원을 충원해야 해서 한 교수에게 졸업생 추천을 부탁했다. 그랬더니 “요새 학생들은 워낙 워라밸을 중시해서” 하며 말끝을 흐리셨다. 거기에는 소규모 사무실이 워라밸을 충족시킬 수 없다는 전제가 있을 것이다. 나도 워라밸을 중시하는데 말이다. 나와 2~3년 함께 일했던 친구도 사무실을 그만두는 이유가 집이 인천인데 출퇴근 시간이 너무 길어서 개인시간을 갖기 어렵기 때문이었다. 과거에는 2~3년차에 사무실을 그만두면 패배자처럼 치부되곤 했다. 건축이 근성과 인내심을 많이 필요로 하니까 그런 이야기가 있었을 것이다. 작년에 신입사원 채용 면접을 하면서 한 졸업생에게 우리 사무실을 선택한 이유를 물어봤다. “지하철로 한 번에 올 수 있어서”라고 답하더라. 면접에서 이렇게 솔직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는 걸 통해 달라진 노동 감각을 인식하게 됐다. 

 

이선영: 예전의 건축가는 ‘무언가 전문성을 갈고 닦아서 사회를 위해서 괜찮은 걸 해야지’ 라고 생각한 세대였다면, 이제는 커리어나 워라밸을 기준으로 결정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 

 

한기영: 이런 인식은 세대의 문제지, 남녀의 문제가 아니다. 40세를 넘긴 70년대 생까지는 건축을 잘하고 싶어서 밤새워 일했던 사람들이다. 본인들이 윗세대로부터 받은 게 있기 때문에 후배들을 챙겨주고 싶어 하기도 한다. 그런데 요즘 친구들은 밥을 안 사줘도 되니, 시간을 빼앗지 말라고 말한다. 

 

임미정: 미국에는 회식 개념이 없다. 금요일에 맥주를 함께 마시는 행사도 근무시간 내에 진행한다. 근무 시간이 끝나고 함께 밥 먹으러 가는 일은 절대 있을 수 없다. 개인 생활을 매우 존중하는 문화다. 나도 그러한 환경에서 아이 둘을 낳았는데, 낮 시간에 아이를 데리러 가는 일에 대해 양해를 해주었다. 나의 상사도 할로윈데이 행사를 위해 잠깐 외출하고 다시 일에 복귀하기도 했다. 그렇게 나름 가정생활에 충실한 분위기를 공유한다. 가족의 일로 회사 일에 영향을 미친다고 타박하지 않는 사회적 이해가 좋았다. 그런데 한국에 오니 그럴 수가 없었다. 아이를 보는 시간이 나한테 필요하니 밤이 되면 다시 소장 모드를 켜서 일을 해야 한다. 하지만 내가 보고 배운 문화가 있으니까, 우리 직원들에게는 그러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너무 늦게까지 일하지 말고, 만약 주말에 일을 하게 되면 그만큼 쉬도록 한다. 옛날처럼 추석과 설날만 쉬면서 일하거나, 제삿날 제사만 지내고 회사로 복귀하는 분위기가 아니다. 생산적으로 일한다면 주어진 휴식시간을 충분히 누려도 된다. 

 

이선영: 김숙정의 그라운드스케일은 여성 셋이서 운영하는 특별한 조직인데 직원들의 문화나 남녀 비율이 어떠한가?

 

김숙정: 우리는 여자 셋이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마음이 맞는 사람들이 시작하게 된 것 뿐이다. 특이하거나, 문제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 여자 셋이서 어떻게 사무소를 열 생각을 했겠는가. 아직 직원을 채용하지 않은 상황이지만 남녀를 구분하는 것은 의미가 없고 포트폴리오를 보고 직원을 뽑을 것이다. 우리가 각자 경력을 쌓아오면서 여자라서 하지 못한 일은 없기 때문에 성별에 차별을 두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요즘은 대리 직급을 구하기 어려워서 ‘금대리’라고 부른다. 대개 4년차에 대리를 다는데 신입사원 입장에서는 거기까지 가기가 너무 힘든 거다.

 

이선영: 그 기간이 바로 건축사 자격 획득을 위한 기간이다.

 

김숙정: 신입에서 만 3년이 되는 과정이 생각보다 힘든 거다. 대부분의 설계사무소의 환경이 52시간 근무를 유지하기 어렵다보니 소위 탈건축하는 사람도 많다. 그래도 건축을 이어가고 싶은 사람은 개소를 하거나 작은 작업을 하면서 다르게 살아보려고 하는 것 같다. ‘기성세대가 규정한 건축가와는 조금 다른 삶을 살면서도 좋은 건축가가 될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하면서 다양한 경로와 선수가 등장하는 것이다. 이런 세대가 건축가의 길을 이어받아야 하기 때문에, 이선영처럼 정책이나 사회적인 구조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사람이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선영: 일전에 중국계 여성이 미국건축가협회 AIA 회장이 되어 초청되어 왔을 때 공식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그녀는 아이 셋을 키우면서 7년 넘게 경력이 단절되었다고 한다. 남편과 함께 작업을 했었기 때문에 복귀가 가능했었는데, 경력단절의 이유를 생각해 보니 실무 현장에 있지 않으면 소프트웨어를 따라 잡지 못한다는 걸 깨달았다고 한다. 그녀는 회장이 되었을 때 제일 먼저 출산휴가 기간에 소프트웨어를 무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정책을 실행해서 박수를 받았다. 경력단절에 대해 치밀하고 정확하게 진단하지 않으면, 여성이 흩어지고 사라지는 결과를 반복할 것이다. 말로만 워라밸이라고 하지 말고 핵심을 짚어서 그걸 정책에 반영하는 게 필요하다. 정말 어렵게 만들어진 인력이지 않나.

 

임미정: 내가 딱 그 시점에 있다. 첫째 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이다. 흔히 경력단절이 시작되는 시기라고 부른다.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든 3월이었다. 아이의 인생이 걸린 문제라고 생각하니 힘들었다. 여태까지 무언가를 성취하면서 나를 완성해나간 과정은 사라지고,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아이의 미래가 달라지는 상황이 나에게 부담이 되었다. 사회적인 분위기를 등지고 아이를 키울 수 있냐고 스스로에게 질문했을 때 그럴 수 없었다. 그래서 아직도 어떻게 균형을 맞춰야 하는지 저울질하고 있다. 뭔가를 성취하고 싶은 열정이 불타오를 때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게 된다. 나만 천천히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런데 얼마 전 누군가 지금은 아이에게 집중하더라도 언젠가는 돌아올 수 있다는 마음을 가지면 된다고 말한 것에 공감을 했다. 나 혼자만의 싸움이 아니다 싶었다. 하지만 너무 빨리 변하고 너무 치열해서 여전히 불안한 마음이 있다. 이건 여성 건축가만의 문제가 아니다. 아이를 키우는 방법에 대한 공동체적 문제의식이 있고 그걸 여러 분야에서 해결하려고 하지 않으면 경력단절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 

 

김숙정: 다른 신생 사무소도 마찬가지겠지만, 일 따기가 별 따기다. 그 와중에 어떻게든 꾸준히 작업을 해나가야 사무소에 대한 신뢰가 쌓이는데, 갑자기 결혼을 하거나 아이를 낳게 되어 공백이 생기게 된다면 이런 시대 상황에서 돌아올 자리가 있을지 확신이 쉽게 들지 않는다. 사무소를 연 지 얼마 되지 않은 입장에서는 유지가 첫 번째 목표다. 거기에 집중하다 보면 나머지 개인적인 인생의 선택들은 더 힘을 내서 노력하지 않으면 놓치기 쉽다.

 

조재원: 사회 변화에 따라, 일하는 환경에 맞춰서 나의 건축적 목표도 계속 조정하는 게 오래가는 방법일 것 같다. 물론 핵심가치는 계속 지켜가야 한다. 아틀리에는 일을 예측할 수 없고 의지대로만 되지 않는다. 누군가가 주는 커미션이 없다고 해도 계속 의미 있는 생산을 하는 게 중요한 동력이다. 건축을 가볍고 유연하게 실천하는 것이 오래 지속할 수 있는 방법이 될 수 있다. 건축을 떼어보지 않고 연결된 삶의 가치들을 함께 주목하는 것이 나의 여성성과 연결된 것인가 싶기도 하다.

 

이선영: 경험을 통해 내공이 쌓이는 것 같다. 조재원이 좋은 건축을 할 수 있는 것도, 임미정이 불안감을 느끼는 것도 그렇다. 그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시각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내가 보스턴에서 있을 때 주변에 계단이나 마당 같은 주제를 가지고도 독특한 걸 만드는 건축가들이 있었다. 그런 작업은 큰 스케일에서는 만들어질 수 없는 성격의 프로젝트이고, 속도를 늦춰서 일상을 보지 않으면 놓치기 쉬운 것이다. 점점 커뮤니티 아키텍트를 요구하는 사회로 나아가고 있다. 사람에게 좋은 환경을 만드는 건축가로 산다고 생각하면 하나하나가 소중할 것 같다. 

 

건축에서 여성성과 의미 

SPACE: 건축을 하는 데 소위 남성성과 구별되는 여성적 특성이 있다고 보는가?

 

김정임: 개인성이 우위에 있다고 생각하지만 내가 여자라는 점이 그 개성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 그런데 내가 여자이기 때문에 그런 특성이 있다고 해야 하는지, 아니면 나라는 사람이 그런 특성을 가지고 있는 건지를 명확하게 구별하기가 어렵다. 남자 건축가 중에도 소위 여성성이 많은 사람들이 있다. 근데 그것을 여성성으로 볼지, 아니면 그 사람의 개성으로 보아야 하는지 모호하지만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성별에 따른 보편적 특성 차이는 있는 것 같다. 예를 들어 여성들이 조금 더 관계에 중점을 둔다. 여성 건축가가 작품을 설명하는 걸 보면 훨씬 공감하기 쉽고, 소설이나 영화의 경우도 그렇다. 명확하게 규명하기는 어렵지만 쓰는 용어나 문장이 다르기 때문에 언어 문제의 중요성을 느낀다. 

 

조재원: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여성은 결혼, 육아, 그로 인한 경력단절 등 개인적이 삶이 경력관리와 관련되는 경우가 많다. 일에 있어 사적 자아와 공적 자아를 완벽하게 구분하기 힘들다. 그래서 여성이 자연스럽게 삶과 생활을 작업으로 가져올 수 있다고도 생각하게 되었다. 그 외에 여성성이 건축계획에서 어떻게 발현되는가에 대해서 환기했던 경우는 2000년대 초에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설계수업을 진행할 때였다. 당시 학생들이 무얼 하던 항상 작은 것부터 시작하는 경향이 강하다고 느꼈다. 도시설계를 해도 벤치처럼 작은 것부터 만들어간다는 인상을 받았다. 자신과 가까운 것으로부터 키워나가는 거다. 그래서 “이렇게 하면 안 된다. 개념과 구조를 잡고 들어가야 한다”고 지도하다가, 어느 날 페미니즘을 표방하는 한 작가의 작업을 책으로 접했다. 그 작가는 의도를 앞세우지 않고 직관적으로 수집한 작은 사물들을 덧붙여 가다가 어느 순간 사물 스스로 의미를 갖게 되는 것을 보여주더라. 갑자기 그 작품과 학생들이 연결되면서, 추상적 개념으로부터 구조를 잡고 계획하는 방식만이 맞는 방법이라는 내 지도가 편협했음을 깨달았다. 남자 동기와 남자 교수들이 대다수인 남성 중심의 교육환경에서 교육받고, 실무에서도 역시 비슷한 환경에서 내 의견을 관철시키기 위해 그렇게 스스로 훈련하고 실행해온 방식을 옳다고 생각해왔음을 깨닫게 된 것이다. 여성성은 도시나 건축적으로 볼 때, 크고 추상적으로 접근해서는 담기 어려운 걸 담을 수 있는 방법이나 시각일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여성적 관점을 본인이 일하는 실무 안으로 들여오는 방법을 훈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본에 ‘기후 키타가타가든시티’라는 소셜하우징 프로젝트가 있다. 이소자키 아라타가 마스터플랜을 맡아 세지마, 엘리자베스 딜러를 포함한 다섯 명의 건축가, 조경가로 구성된 전원 여성 팀이 설계하도록 한 프로젝트다. 전체 블록, 집합된 전체에서부터 시작하지 않고 평면으로부터 시작해서 전체를 계획했다고 해서 인상에 깊이 남은 프로젝트다. 이렇게 작은 것으로부터 시작해 확장되는 과정 속에 만들어진 삶의 환경과 추상적인 대의명분에서 시작한 큰 틀에서 주조된 삶의 환경은 다르다. 건축과 도시의 계획에 있어 ‘여성성’은 어떤 의미로 작용할 수 있는지 여러 방면에서 생산적으로 논의될 여지가 많다고 생각한다. 생물학적인 차이, 개인적인 경험에 머물지 않고, 사적인 자아와 공적인 자아를 오가면서 만들어진, 건축과 도시를 읽을 때, 나아가 한 사회와 세계를 읽을 때, 약하고 작은 것을 지나치지 않는 관점으로서의 보편성을 가진다. 그런데 이를 너무 개인의 문제로 치부해온 것 아닌가 싶다. 건축에 있어 ‘여성’의 문제이기를 넘어서 사회나 도시에 들여와야 하는 새로운 관점이라고 생각한다. 

 

김정임: 15년 정도 전에 우연히 라디오에서 들은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18세기 후반에 영국에서 활동한 여성 조경가 거투르드 지킬에 관한 이야기였다. 이전에는 나무의 형태와 수종이 정원 식재 디자인의 주요한 이슈였다면, 지킬이 식재 디자인에 색채와 질감이라는 개념을 도입했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우리가 사는 환경에 여성들이 주체적인 관점으로 개입해서 같이 무언가를 만들어왔다면 우리의 도시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하는 상상을 해본다. 아마 다른 키워드를 가지고 바라봤을 것 같다. 지금 우리가 생활하는 환경의 대부분은 남성이 만든 것이고, 평가자나 의뢰인이 남성이었던 경우가 참 많았다. 그 사람한테 좋은 점수를 받아야 하니까 무의식적으로 스스로를 그런 방향으로 몰아가지 않았나 싶다. 우리 안에서 발현된 개념보다는 남성적 문화에 동화되어 무언가를 만들었던 것 같다. 사회 전반에 여성들이 최소한 절반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자리에 여성들이 많아져야 한다. 한 기업의 여성 부회장과 함께 일한 적이 있다. 그 부회장이 참석하는 회의가 있으면 현장소장이나 기업의 임원들이 나에게 꼭 참석해 달라고 부탁하더라. 이야기를 잘 알아듣고 같은 언어를 사용하니 회의가 부드럽게 진행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건축주가 여자면 이런 게 다르구나 싶었다.

 

한기영: 최근에 진행한 방배동 빌라 프로젝트의 컨소시엄 대표가 다 남자였다. 나만 여성이었는데, 컨소시엄을 구성한 대표가 프레젠테이션을 할 때 꼭 나를 부른다. 주택이니까 주부가 이걸 한다는 것을 건축주들에게 보여줘야 한다는 거다. 그럴 땐 또 반겨주더라.

 

임미정: 우리도 큰 프로젝트는 아니지만 주택을 의뢰받는다. 나중에 건축주가 우리를 선택한 이유를 들어보니 부부건축가이기 때문인 것도 있더라. 주거와 관련된 내용을 남녀가 함께 볼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고 온 것이다. 여성적 건축과 남성적 건축에 대해 깊이 생각해본 적은 없는데, 여성이 생활공간에 대해 조금 더 꼼꼼하게 봐주지 않을까 하는 사회적인 인식이 있는 것 같다.

 

SPACE: 실제 설계에서도 그런 부분이 있는가?

 

임미정: 있는 것 같은데, 우리는 대표성을 갖고 싶진 않다. 김정임이 이야기했듯이 개인의 성향일 수도 있고, 각자 실무를 했던 사무실의 영향을 받았을 수도 있다. 또 어떤 프로젝트를 해왔느냐에 따라서 둘의 관점이 다를 수 있다. 이승택(남편)보다 주거환경에 대한 부분은 내가 좀 더 들여다보는 성향이 있다.

 

조재원: 객관화하고 보편화하기보다는 스스로 누구의 눈치를 보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스스로가 편한 방식으로 건축주와 소통하는 데 익숙해졌고, 내가 여성이라서 그들에게 맞추지 못한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내 목소리로 이야기하는 거다. 건축계 안에서 오래 일했고, 건축주도 내가 어떤 작업을 해왔는지를 모르는 채 오는 경우는 거의 없다. 양성평등에 대한 감수성이 중시되면서 심사위원으로, 공기업이나 재단 이사회의 이사로 참여 요청을 받는 경우가 늘어났다. 처음에는 이질적인 자리인 것 같고 내가 별 도움이 되지 못할 것 같아서 거절을 했었다. 그러나 이제껏 구성원 중에 여성이 없었던 조직 안에 여성이 들어가서 첫 목소리를 내야 한다면 불편하더라도 나에게 주어진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자리가 없어지지 않고 양적, 질적으로 나아지기 위한 부담을 져야 하는 시기인 것 같다. 처음에는 서로 사용하는 언어가 너무 달라서 내 언어가 굉장히 튄다고 느꼈다. 내가 너무 이질적인 언어를 구사하고 있나 싶다가도, 그렇게라도 이야기하는 게 맞다는 결론을 내렸다. 경험상 서툴러도 내 언어로 말하는 게 낫지, 거기에 맞추려고 하면 에너지가 너무 많이 든다. 피로도를 최대한 낮춰 경력을 이어갈 수 있는 에너지를 유지하는 게 우선순위다. 

 

이선영: 본인이 다수를 대변하고 있다는 책임감으로 자리하는 경우가 있다. 나도 서울시의 도시계획위원회에 들어가서 활동을 하면서 보니까 나와 같은 시각으로 이야기하는 사람이 나밖에 없더라. 관행에 젖은 공무원들은 굉장히 불편해하는데 리더가 깨어있는 경우에는 “잠깐 주목해서 저 이야기를 듣자”고 한다. 그러면 본인이 사회를 더 괜찮게 만드는 목소리를 대변한다는 생각으로 성실하게 임하게 된다. 힘들더라도 그 다음 사람에게 바통을 넘겨줄 때까지 버텨야 한다는 부담감이 상당하다. 우리 사회는 아직도 여성성을 이야기함으로써 개선해야 할 여지가 너무 많다. 경력단절 여성이 되거나 돌봄의 네트워크가 와해되는 것은 사실 생활 인프라를 챙기는 사람의 목소리가 정책에 반영되지 않아서 생기는 현상이다. 새로운 단어를 써서 개념을 전달한 사람이 없어서일 뿐이지, 지금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거다.

 

조재원: 때로는 나와 맞지 않는 규칙이 잘못된 경우도 있다. 그런 규칙으로 불편한 게 나뿐만이 아니라면, 내가 새로 들이는 규칙에 다른 사람들도 익숙해져야 한다. ‘내가 첫 번째이지만, 마지막은 아닐 것이다’ 같은 태도로 과감해져야할 때가 있다. 앞으로 새로운 규칙을 가지고 들어오는 선수들이 점점 더 늘어날 텐데, ‘말 안 해도 알지?’ 같은 분위기를 유지할 수 없다. 우리 사회에는 ‘더블 스탠더드’, 즉 표면적인 언어와 실제로 그 기저에서 내용을 결정짓는 다양한 채널이 공존한다. 그게 많은 여성들이 어려워하는 지점이다. 표면적인 논의 속에 숨겨진 부조리가 있는 것이 직관적으로 느껴져도, 적시해서 말하기 어렵다. 부조리함에 대한 지적을 사소하게 만드는 보이지 않는 힘이 작동하는 것 같은 분위기 때문이다. 그런 경우 나는 수를 읽는 고수들이 있는 고스톱 판에서 아랑곳하지 않고 내가 내고 싶은 걸 막 내는 이미지 트레이닝을 한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판을 뒤집을 수 있는 방법이 없다. 경험상, 공허하고 무겁기 만한 판을 한번 뒤집고 나면 새로운 규칙을 만들고 새로운 게임을 할 수 있는 새로운 동료를 만나게 된다.

 

이선영: 게임 체인저다. 사회가 점점 돌봄을 해결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그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뒤쳐질 거다. 어딜 가든지 인구절벽, 경력단절 등이 아젠다다. 투자를 이렇게 많이 했는데 그 사람들이 일을 하지 못하면 국가적 손실이고, 어떻게 이들을 현장에 머무르게 할 것인지, 고령사회에서 어떻게 여성들을 인적자원으로 쓸 수 있느냐가 중요해졌다. 알고 보면 유럽에도 여성이 일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 너무 많은데, 그나마 정치적인 자리에 여성이 있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나아졌다. 우리 사회의 젠더 이슈를 말하다 보면 그동안 우리가 놓쳤던 성중립 화장실 같은 문제를 발견하면서 다변화되는 사회에 대응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김숙정
그라운드스케일의 공동대표로 중앙대학교 건축학과를 졸업했다. 재학 중 폴란드 크라코우 공대에서 교환 프로그램을 수료하기도 했다. BCHO 파트너스에서 사용자의 경험과 인식, 재료의 물성, 구조적 합리성을 바탕으로 공간을 만들어가는 다양한 경험을 쌓았다. 건축을 바탕으로 한 전시, 출판 등의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건축 관련 분야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자 했다. 2017년 그라운드스케일 건축사사무소를 개소하며 일상적 건축의 영역과 의미를 확장해 나가고자 한다.
김정임
서로아키텍츠의 대표로 마스터플랜과 건축설계, 인테리어 디자인, 공간 디스플레이 등 다양한 스케일의 작업을 해오고 있다. 현대사회에서 변화하는 구성 요소들 간의 상호작용과 관계성을 고찰하고 건축 공간에 반영하는 것에 흥미가 있다. 대표작으로는 NEW 논현사옥, 선정릉 근린빌딩, 삼성전자 우면R&D 디자인센터 내부 공간 설계, 서울스퀘어(구 대우빌딩) 리모델링, 제일기획 본사 리뉴얼, 배재대학교 하워드관과 한남동 라테라스 등이 있다. 연세대학교 건축공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으며, 2011년 배재대학교 하워드관으로, 2013년 한남 라테라스로 건축문화대상 우수상을 수상한 바 있다.
이선영
한국과 미국의 건축사이며 현재 서울시립대학교 건축학부에 재직 중이다. 서울대학교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UC 버클리에서 석사 학위를 하와이 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리서치 기반 설계에 집중하고 있으며 고령사회 커뮤니티 공유학교와 젠더혁신에 관한 연구를 진행 중이다. 풀브라이트 방문교수(2007), 델프트 공대 방문연구원(2017), 서울시 공공건축가를 역임하고, 현재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 작업으로는 원주주택 콤플렉스, 서울대학교 핵재료실험동, 중곡동주민센터 리모델링 등이 있으며 저서로 『Global Planning Innovations for Urban Sustainability』(공저), 『2030 서울도시기본계획(안) 성 분석』(공저), 『강남 빌딩 붐 이후 테헤란로의 미래: Boom or Bust』(에디터) 등이 있다.
임미정
에스티피엠제이의 공동대표로 ‘도발적 현실주의’라는 비전 아래 일상에서의 근본적인 아이디어를 새로운 시각으로 해석하여 주거, 문화, 상업 시설 등에 적용하고 있다. 연세대학교에서 주거환경학을 전공하고, 로드아일랜드 디자인 스쿨에서 건축학사와 하버드 대학교에서 건축학 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에스티피엠제이의 공동대표 이승택과 함께 뉴욕건축가연맹에서 수여하는 젊은건축가상(2012), 뉴욕건축사협회에서 수여하는 신진건축가상(2016), 대한민국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수여하는 젊은건축가상(2016)을 수상했다. 주요 작품으로는 2016 김수근 프리뷰상 및 AIANY 디자인어워드 2017을 수상한 경북 예천의 시어하우스, 아모레퍼시픽 신사옥의 연결통로 꽃빛, 오층집 등이 있다.
조재원
공일스튜디오 대표다. 개인과 공동체의 삶에 적정하고 지속가능한 가치를 더하는 사회적 공간을 탐구하고 실현하는 데 관심을 두고 일하고 있다. 근작으로는 (구)샘터사옥을 리노베이션한 공공그라운드 공공일호, 한화생명 강남사옥 15개 층을 리노베이션한 코워킹오피스 드림플러스 강남이 있다. 2010년 제주 돌집 플로팅L로 제주건축문화대상 본상, 2011년 대구 어울림극장으로 공공디자인대상 그리고 2016년 코워킹플랫폼 카우앤독으로 서울시건축상을 수상한 바 있다.
한기영
간삼건축의 부사장으로 건축, 인테리어, 조경, 조명 등 전체와 부분을 조화시키는 토털 디자인에 관심이 많다. 또한 사람과 예술의 배경으로서의 건축과 미술관에 대한 생각을 지속적으로 디자인에 담아내고 있다. 대표작으로는 파라다이스시티 호텔, 한화 거제 벨버디어 호텔, 제주 휘닉스아일랜드 리조트, 제주도립미술관, 울산박물관, 명지대방목학술정보관, 백양로 재창조프로젝트 등이 있다. 서울대학교 건축공학과와 동 대학원 및 컬럼비아 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하였으며, 명지대방목학술정보관(2010)으로 건축문화대상 본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