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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ries] 도시재생세미나: 인공지능 시대의 건축과 도시

김성아(성균관대학교 건축학과 교수)
자료제공
김성아
진행
오주연

지난 9월 26일, 문화역 서울 284 RTO에서는 ‘도시재생세미나: 인공지능 시대의 건축과 도시’가 열렸다. 

한국건축가협회 도시재생위원회가 주최한 이번 세미나는 ‘건축과 도시의 경계, 협업의 모색’이라는 주제를 통해 건축과 도시 분야의 전문가가 각기 다른 시각에서 바라본 도시재생에 대한 의견을 나누고 새로운 의제를 제시하고자 마련된 도시재생세미나 시리즈의 일환이다. 

 


항법을 통해 본 인공지능의 기능과 한계

전쟁사, 특히 공중전의 역사에 관심이 있다면 한스 요아힘 말세예를 모르는 이가 없을 것이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북아프리카 전선에서 맹활약한 에이스로서, 그 유명한 황색 14번기를 몰고 올린 전설적인 전적으로 ‘아프리카의 별’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말세예가 몰던 황색 14번기는 당대 최강의 전투기 중의 하나였던 메셔슈미트 Bf109이다. 당시 이러한 전투기의 기체 설계 개념은 ‘양성 정적 안정성’의 확보이다. 즉 어떤 외력이 가해졌을 때 기체의 자세가 바로 원상태로 복원되는 구조로 설계되었다. 그러한 기체는 마치 물 위에 떠있는 오리와 같아서 어떤 한계 이상의 과도한 움직임을 불허한다. 말세예는 이러한 특성의 전투기를 몰고 기체를 자신의 몸처럼 자유롭게 다루는 조종술을 터득했다. 

현재 공군 주력 전투기 중의 하나인 F-16은 ‘음성 정적 안정성’이라는 역학 개념을 채용한 첫 번째 주요 항공기 중 하나이다. 이는 양적 정적 안정성과는 반대의 개념으로 항공기의 동체에 힘이 가해졌을 때 기체가 제자리로 복원하기보다는 오히려 안정성을 잃게끔 설계된 것을 말한다. 이유는 단순하다. 공중전에서의 기동성을 극대화하기 위해서이다. 문제는 이러한 기체를 인간 조종사가 통제하기 극도로 어렵다는 것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개발된 기술이 ‘디지털 플라이-바이-와이어(Digital Fly-By-Wire)’이다. 

이러한 최신 항공기의 조종 시스템에서 조종사는 기계를 직접 통제한다는 착각을 한다. 그러나 그것은 과거 말세예가 자신의 황색 14번기를 조종하면서 가졌던 상호작용과는 다르다. 조종사는 물리적 피드백을 느끼면서 항공기를 제어하는 것이 아니라 컴퓨터가 만들어낸 가공의 세계와 상호작용한다. “기계는 위대한 자연의 문제로부터 인간을 격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문제를 더욱 깊이 다루게 한다”는 생텍쥐페리의 경구는 이제 “기계가 인간을 자연으로부터 격리하여 가상의 유리 감옥에 가둔다”고 변용할 수 있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최신형 보잉 737기 연쇄 추락사건의 원인은 자동항법장치의 소프트웨어 결함으로 밝혀졌다. 몇몇 항공기는 노련한 기장이 자동항법장치를 끔으로써 다행히 추락의 참사를 면할 수 있었다. 인공지능이 지배하는 자동화된 유리 감옥에서 인간의 사유, 상황에 대한 노련한 대응과 삶의 이치에 대한 우연한 발견은 여전히 중요한 요소이며, 우리 인간에게 남은 마지막 숙제이다. 

 

인공지능 시대 건축의 구성, 생산방식의 변화

건축의 생산, 혹은 현대 도시의 구현에서 인공지능은 어떠한 역할을 하고 있는가? 이 문제를 진지하게 바라보기엔 우리의 건축환경이 척박하고 당장 먹고살기에 바빠서 그다지 현실감이 없다. 대부분의 건축가들에게 인공지능과 건축은 별로 관계가 없어 보인다. 한편 일부 건축 관련 기업의 경영자들은 이 분야의 비효율성과 전근대성의 해결사로서 인공지능과 디지털 패브리케이션 등의 새로운 기술에 대한 강렬한 희망을 피력한다. 이들 기업에서 설계 자동화 프로그램 개발에 관한 컨설팅을 해보면 다음과 같은 입장 차이를 읽을 수 있다. 일선의 엔지니어들은 이런저런 기능을 넣어달라고 하소연하면서 현장의 상황, 임기응변적 관행 때문에 결국 컴퓨터가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다며 불평하거나 비관적인 태도를 보인다. 그러나 경영자들의 관점은 완전히 다르다. 엔지니어들이 비법처럼 큰소리치는 기술을 가지고 어느 날 홀연 딴 회사로 떠나더라도 그 기술이 회사의 자산으로 온전히 작동할 수 있기를 원한다. 즉 전통적으로 개인의 소유였던 지식을, 조직의 지식으로 관리하고자 하는 열망을 읽을 수 있다.

건축가라는 직업이 확립되지 않은 르네상스 이전의 건축 장인은 주로 재료를 다루는 범위에 따라 조직된 길드의 일원이었다. 따라서 건축설계는 생산 공정과 재료의 특성과 깊게 관련되어 있었다. 건축설계의 규범과 표현이 정립되면서 건축가의 영역은 기호화된 설계문서를 만드는 일로 축소되었고 점점 건축의 생산과정과 괴리되었다고 할 수 있다. 강철이 발명되면서부터 철제품의 생산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되어버렸다고 한다. 예측 가능한 균질의 강철은 재료를 다루기 위한 장인의 직관과 솜씨를 더는 필요로 하지 않게 되었고, 결국 산업화 이후 장인 또는 엔지니어의 역할은 단순직으로 축소되었다. 오히려 표준화된 산업사회에서는 경영자나 기획자의 중요성이 커지게 된 것이다. 

건축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로 철근콘크리트의 예측 가능한 품질을 담보로 하는 설계는 언제부턴가 재료와 구법에 대해 고민을 하지 않게 되었다. 단조롭고 판에 박힌 설계 행위로 공간을 나누고 뼈대를 계획하여 도면으로 제시하면 표준화된 시공 과정을 통해서 건물로 구현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생산 과정에서 건축가의 역할은 단순한 도면 기술자의 역할로 전락하게 된다. 재미있는 것은 4차 산업혁명 시대 특히 인공지능에 의해 조만간 대체 가능한 영역은 바로 이 규범화된 지식과 기능이라는 것이다. 재료와 상황에 직관과 경험으로 대응하는 암묵지는 여전히 인공지능에 의해 대체하기 어려운 마지막 영역이다.

인간과 자연 사이의 인터페이스로서 존재하는 기계, 그리고 그 기계가 가상성으로 대체된 상황에서 어느덧 인간이 배제된 상황을 맞고 있다. 영화 ‘아이 로봇’에서 스푸너 형사가 로봇 소니를 취조하면서 로봇이 교향곡을 작곡할 수 있냐, 로봇이 사람을 감동시키는 그림을 그릴 수 있냐고 다그친다. 소니는 태연하게 맞받아친다. “그럼 너는 할 수 있어?” 이 장면은 인공지능의 현주소를 정확하게 대변한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수준에 도달하거나 인간을 초월하는 상황에는 아직 미치지 않았다. 그러나 현재의 인공지능은 적어도 특정 전문 분야에서는 인간을 월등히 앞지른다. 

건축의 생산에 있어서 로봇의 역할은 점점 커지고 있다. 제대로 된 조적공은 부르는 게 값이 되어버린 건설인력난은 그동안 미뤄왔던 로봇 시공 기술의 개발에 현실성을 부여하고 있다. 3D 프린팅 기술과 결합된 로봇 기술이 건축의 생산 체계를 혁신적으로 바꿀 수 있을 것이다. 근본적으로 습식인 생산방식을 프리패브화, 모듈화, IoT 통합화를 할 때 이러한 혁신은 실제로 가능해질 것이다. 건축 분야에서 이것이 더딘 이유는 건축을 생각하는 방식, 만드는 방식, 유통하는 방식에 대한 근본적인 변화 없이 기존의 방식을 그저 편하게 하는 기술만을 개발해왔기 때문이다. 

오티스가 1853년 엘리베이터를 최초로 소개한 이래 건축물의 로봇화는 급속하게 진행되어 왔다. 건축물에서 차지하는 비용 중 보이지 않는 부분에 들어가는 비용 즉 통신망, 배관, 센서 네트워크 등에 들어가는 비용의 비중은 놀라우리만큼 커졌다. 이미 주요 건축 엔지니어링 회사들은 에너지 하베스팅 기술이나 바이오 연료 생산기술이 결합된 신소재 외피 재료, 식량 생산기술이 결합된 외피 시스템을 제시하고 있다. 건축은 인간의 라이프 스타일과 기후환경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기계에 가까워지고 있다. 또한 스마트 도시의 통신 및 에너지 인프라에 쉽게 연결될 수 있는 구조가 될 것이며, 자율주행차를 포함하는 미래 도시 모빌리티 기술에 대응하여 그 모습이나 구조가 달라질 것이다. 건설시공 공정이 모듈화, 프리패브화된 건축시스템과 결합함으로써 건축물의 유지관리 및 운용이 기계나 로봇 수준으로 고도화될 것이다. 이러한 로봇 건축은 신종의 이질적인 재료와 물리적 특성을 고려한 형상과 구조, 운용에 대한 실험과 창의적 활용을 필요로 한다.

 

자료제공: 김성아

 

건축의 디지털화

2년 전 미국의 코버 사는 설계비 단돈 250불, 설계에 사흘, 시공 제작에 12일밖에 걸리지 않는 주택 설계 및 제작 서비스를 내놓았다. 디지털 설계도구들은 가상성이라는 인터페이스를 제공하고, 이러한 가상성은 설계의 주요 과정을 자동화하고 건축가의 개입을 최소화하는 동시에 건축가나 건축설계 회사의 설계 전략과 지식을 알고리즘화한 로봇으로 진화한다. 산업 분야에서 뜨거운 키워드인 디지털 트윈은 그저 실제 장비나 건축물을 디지털 모델로 관리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결국 무게 중심은 디지털 모델로 옮겨가게 될 것이고 가상과 실제와의 경계가 허물어질 것이며, 이 과정에서 인공지능이 건축가나 기술자의 역할을 더 맡게 될 것이다. 

2016년 기준, 미국 가정에 약 520만 대의 아마존 에코가 보급되었다. 이 스피커들은 오늘의 날씨와 같은 단순한 질문에 대한 대답부터 분위기에 맞는 영상 및 음악 검색, 상품 구매 등을 도와주는 홈 어시스턴트의 역할을 한다. IoT 플랫폼에 탑재된 인공지능 기술은 이러한 데이터 거대기업이 고객의 요구를 더 잘 파악하고 보다 맞춤형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해준다. 이 스피커들은 520만 가정에서 발설되는 온갖 이야기를 다 들으면서 사람들의 행태와 은밀한 욕망을 분석한다. 아마존은 사람들이 무엇을 하는지, 무엇을 원하는지, 그리고 무엇을 할지를 예측하게 되는 것이다. 이미 건축주가 아키데일리나 핀터레스트에서 본 주택이나 인테리어처럼 집을 지어달라고 아예 사진을 출력해서 설계사무소에 들고 오는 사례가 빈번하다. 인공지능 스피커가 우리의 욕망과 취향을 읽어내서 아키데일리 플랫폼에서 적합한 사례들을 검색, 조합해내고 이를 코버 사 플랫폼이 설계와 제작으로 연결해서 완성된 주택의 스마트 열쇠가 고객의 스마트폰 앱으로 설치되는 상황을 가정해보자. 이러한 주택이 고급 주택 시장까지 모두 장악하지는 못하겠지만 대부분의 주택시장을 대체할 수 있지 않을까? 미국에서는 사용자가 스마트폰 앱을 통해서 맞춤형 주문을 하고, 고도로 모듈화된 주택은 손쉽게 다른 플랫폼에 연결될 수 있으며, IoT 디바이스와 OS를 항상 업그레이드 할 수 있는 새로운 주거 상품의 개념을 제시하는 스타트업도 등장했다.

 

스마트 환경과 건축가의 역할

아마존은 AI 패션 디자이너를 고용해서 의류 산업에 본격 진출했다. 패션 디자이너는 건축가 못지않게 창의적인 집단임을 자부하지 않았던가? 소수의 오트 쿠튀르 건축가는 존재하겠지만 대부분의 건축가들에게 그렇게 반가운 상황은 아니다. 건축설계의 산업화를 저해한다고 개탄하던 조악한 건축자재 생산 및 조달 체계, 열악한 시공과 감리 수준, 인허가의 비합리성이 어쩌면 인공지능 건축가로부터 인간 건축가들을 지켜주는 마지막 보루가 될지도 모른다. 건축 구성 요소가 부품화, 모듈화되고 고도로 산업화된다면 우리는 아마존이나 구글이 제공하는 주택과 도시, 즉 디지털 감옥에서 생활하고 그들에게 데이터를 갈취당하면서 그들이 원하는 생활을 할지도 모른다. 아마존 고와 같은 인간이 배제된 고도의 맞춤형 서비스 공간은 이미 일상화되어 있다. 내비게이션 앱은 우리에게 최단 동선을 제공하지만, 어느덧 우리는 주위 환경과의 접촉을 잃고 도시는 출발점과 도착점만 존재하는 사이버스페이스화 되었다. 

건축은 이렇게 왜곡된 스마트 환경에 대한 일말의 책임이 있다. 기술을 보이지 않게 만들고 사람이 환경과 혹은 사람들과 더 친근하게 접촉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은 결국 건축가들의 몫이다. 그러나 건축가들이 기술을 회피하는 것은 곤란하다. 더구나 건축의 품질은 여전히 스마트하지 않다. 건축 하드웨어나 시공의 품질은 여전히 열악하며 상품이나 유통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다. 그러한 실체에 IT 디바이스나 껍데기를 씌우는 것은 건축을 스마트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스마트해 보이게 하는 역할을 한다. 이러한 건축물들은 이내 키치로 전락하며 사람들은 스마트 건축의 조악한 민낯을 경험하게 된다.

재료와 상황에 직관과 경험으로 대응하는 암묵지는 건축가가 인공지능의 시대에 내세울 수 있는 무기일 것이다. 그저 예술적 자부심만으로 건축을 하는 시대는 지나갔다. 누군가의 어깨너머로 배운 건축으로 대가의 흉내를 낼 수 있는 시대도 아니다. 인공지능과 자동화, 어설픈 스마트로 포장된 도시환경에 대한 책임은 건축가에게 있지만 유사 인문학적 태도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다. 

건축 교육의 현장에선 교육이 설계 사무소의 일상을 그대로 이식한 크리틱 위주의 설계 스튜디오 중심으로 흘러가는 문제에 대한 반성이 필요하다. 학생들이 배우고 익혀야 할 새로운 지식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설계 회사의 조직도 새로운 인적 자원의 통합을 필요로 한다. 설계 프로세스는 연구가 통합되고 프로토타이핑이 근간을 이루는 새로운 업무 흐름 없이는 인공지능이라는 새로운 기차에 탑승하기 어려울 것이다. 인공지능 시대의 건축가는 최신 기술을 이해하고 그것을 건축환경에 보이지 않게 이식하는 다학제적 전략가의 역할을 해야 한다. 인공지능 시대의 스마트 공간은 그저 알고리즘에 의해서 생성되기는 어렵다. 이러한 통합적 융합적 접근은 더욱더 중요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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