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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스크린을 통한 유기적 연결

조병수(BCHO 파트너스 공동대표)
사진
세르지오 피로네(별도표기 외)
자료제공
BCHO 파트너스
background

1994년 설계사무소를 개소한 이래 건축적 경험과 인식에 관심을 갖고 작업을 해왔다. 꾸준한 고민의 과정 속에서 ‘땅과 자연’, 그리고 ‘단순한 형태의 건물에서의 풍요로운 현상과 경험’을 구현하고자 했다. 땅과 자연을 통한 경험만큼 원초적이고 깊은 인식의 세계로 우리를 이끄는 것은 없다. 땅과 대지, 그리고 그것을 둘러싼 콘텍스트와 자연의 복잡하고 다양한 요소들을 더욱 드러내어 강한 경험과 인식을 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그곳에 들어설 건물이 무엇보다 단순하고 간결해야 했다. 하지만 그 단순한 건축적 제스처 혹은 배치는 종종 벽체, 지붕 외에 그들을 잇거나 분리하는 스크린과 같은 제3의 요소를 필요로 한다. 

스크린은 복잡한 형태를 하나로 엮어 정리해 주기도 하고, 빛을 투과하거나 걸러주면서 내부 사용자가 자연을 편하게 경험하도록 해주며, 때로 내부의 빛이 새어 나가게 하여 주변과의 조화를 이루기도 한다. 초기에는 구하기 쉽고 제작이 간편한 목재 스크린을 사용하여 밀집된 도심지역으로부터 프라이버시 확보와 풍요로운 자연을 경험할 수 있게 했다. 이후 다양한 실험을 통해 메탈 소재의 스크린을 건물에 적용하기 시작했다. 와이어 메시나 개비온 철망을 사용해 복잡한 프로그램과 형태를 간결하게 나타냈다.

최근 몇 년간은 알루미늄 익스팬디드메탈이나 타공메탈 등 좀 더 다양한 스크린을 적극적으로 실험하며 사용했는데, 이는 친환경적 입면 구성과 장기적 유지관리 측면을 고려해서다. 메탈 소재를 이용한 스크린은 투박한 목재를 이용할 때보다 좀 더 세밀하게 주변 상황과 자연환경에 맞춰 적용할 수 있다. 스크린을 통해 형태와 입면을 하나로 정리하는 기능을 하면서도 스크린의 투과율을 정밀하게 조절할 수 있기 때문에 높이에 따라 자연채광과 외부로부터의 시야 차단 효과를 함께 얻을 수 있다. 주간에는 빛을 투과하거나 차단하고, 야간에 는 내부에서 새어 나오는 빛으로 인해 건물은 은은한 라이트 박스가 된다. 스크린은 볼륨을 만드는 면이 되기도 하고, 다양한 각도의 패널이 되기도 하며, 접힘으로써 그 자체로 스크린 구조가 되기도 한다. 각 프로젝트마다 적합한 형태와 시스템을 갖도록 실험하면서 사용자에게 풍요로운 경험을 제공하고자 했다.

이렇듯 BCHO 파트너스는 일산ㄱ자집, 용인 솔마당집으로 시작해, 현재 설계 진행 중인 비상교육 사옥과 병산리 작은집까지 20여 년 동안 스크린이라는 건축 요소를 활용해왔다. 우리의 건축 개념이 스크린의 다양한 시도와 함께 성장해왔다고 말할 수 있다.​ 

 

용인솔마당집(1998) ©Kim Yongkwan

 

목재 스크린

1998년 지어진 용인솔마당집은 당시 다세대주택가에서 보이던 바람직하지 않은 주거 밀도에 대응하기 위해 마당을 중심으로 구성되었다. 충분한 채광과 자연 환기를 제공하며 다양한 가구가 어울릴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고자 했다. 도심에서 자연환경과 어우러진 쾌적한 주거 공간을 계획하고자 목재 스크린을 설치했다. 목재 스크린은 채광량을 조절할 뿐 아니라 건물로 접근할 때 마주하는 요소로서, 내부의 프라이버시를 보호하고 복도의 커다란 창이 그대로 드러나지 않게 하는 역할을 했다. 단순히 한 상자에 뭉쳐 사는 다세대주택이 아닌 쾌적하고 충분한 자연을 경험할 수 있기를 바랐다.

같은 해 지어진 일산ㄱ자집 역시 충분한 마당을 확보하는 것이 주요 디자인 방향이었다. 당시 해당 지역의 법규제한으로 담 높이 제한규정(70cm)이 있었기 때문에 정면에서 해당 규정을 준수하면서 외부에 노출되지 않는 가족들만의 평화로운 공간을 만들고자 했다. 양옆으로는 2층 높이의 콘크리트 가벽을 설치하고 그 사이를 연결해 사각 콘크리트 프레임을 만들었다. 또한 인접한 주택에서 마당 내부가 들여다보이는 것을 방지하고 자연채광을 조절하기 위해 투박한 목재 스크린을 설치했다. 그로써 ㄱ자 형태의 평면 구성 속 마당이 소박한 공간으로 자리 잡게 됐다. 스크린을 통해 건축과 주변 환경을 유기적으로 연결하고자 한 초기의 두 작품이다.​

 

세 상자 집(2004) ©Kim Jongoh

 

초기 메탈 스크린

헤이리의 카메라타 황인용 음악 스튜디오・갤러리・주택은 주택과 음악감상실이라는 서로 다른 영역의 두 개 매스가 극명하게 분리되어 있는 건물이다. 자연스럽게 남북 축으로 흐름을 담아내는 사이 공간이 만들어졌고, 이는 건물의 방향을 따라 2층 수정원까지 이어졌다. 뒤를 돌아보면 남쪽 면으로 설치된 메탈 스크린 위에 녹색 담쟁이가 뜨거운 여름 햇살을 막고 그늘을 만든다. 겨울에는 잎이 떨어진 틈으로 햇살이 들어온다. 건물의 디자인 의도가 외부로 드러나지 않고, 두 개의 매스가 메탈 스크린으로 연결되어 담백한 상자가 되길 원했다. 당시 스크린을 저렴하게 제작할 수 있는 곳을 찾던 중 카페테리아 납품용 컨베이어 벨트에 들어가는 메탈 스크린 생산업체를 발견했다. 업체와의 실험과 협력을 통해 넓은 스크린 제작에 성공했고, 본래 의도대로 하나의 상자로 완결했다. 또한 조명의 반사 효과로 보는 각도에 따라 느낌이 변하는 흥미로운 입면을 만들 수 있었다.​

세 상자 집은 세 개의 상자로 이루어진 주택 프로젝트다. 두 개의 콘크리트 상자는 땅에 굳건히 서 있고, 나머지 하나는 가벼운 메탈 기둥으로 지지됐다. 세 개의 상자, 그리고 낮은 마당, 높은 주변 차도 등은 수평・수직적으로 상호 대응하고 있다. 땅과 프로그램에 다르게 대응하는 세 개의 콘크리트 상자는 세심하게 떠 있는 목재 스크린을 통해 하나로 통합된다. 북측, 서측 그리고 남측에 설치된 이 목재 스크린은 창호의 차폐 기능과 시각적 투과성을 동시에 가진다. 나머지 동측에는 채광을 고려하고 거실 공간에서의 조망을 위해 와이어 스크린을 사용했다. 

 

금곡동 CDA 리노베이션(2017)

 

익스팬디드메탈 스크린 

키스와이어 F1963, 금곡동 리노베이션, 그리고 창성동 온그라운드 스튜디오에서는 익스팬디드메탈을 사용하여 앞서 소개한 작품들과는 조금 다른 조건의 환경과 건축을 유기적으로 연결하고자 했다. 키스와이어 F1963은 고려제강이 사용하던 공장을 복합문화 공간으로 재생시킨 프로젝트다. 공장으로 사용할 당시에는 효율성을 고려해 북측으로 차량 진출입구를 배치했는데, 문화 공간의 진입로로 사용하기에는 빛이 들어오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또한 박공지붕으로 틈 없이 나열된 건물의 깊숙한 내부에는 자연채광이 불가능했다. 이에 가운데 볼륨을 들어내어 중정을 만들고, 북측에서 진입하는 보행자의 쾌적한 환경을 위해 새로운 볼륨을 덧댔다. 북측 진입 공간의 입면과 지붕에 익스팬디드메탈을 사용하여 빛의 반사를 통해 충분한 채광이 가능하도록 했다. 지붕에는 렉산을 더해 비를 막고 입면에는 스크린만 설치해 자연 바람이 통하는 진입 공간을 만들었다. 밤에는 조명이 스크린을 타고 은은하게 퍼져 나온다. 

금곡동 리노베이션은 1980년대에 지어진 주택 두 채를 하나의 사옥으로 변신시킨 프로젝트다. 익스팬디드메탈 스크린을 통해 두 건물을 엮어 하나의 상자로 완성했다. 건물의 입면과 평행하거나 직각으로 열린 스크린은 입면상에서 창호의 위치와 적절하게 교차 배치되어 각 실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자연을 경험할 수 있다. 종로구 창성동 온그라운드 갤러리(커먼빌딩) 뒤에 새로 지어진 온그라운드 스튜디오에서는 박스 형태의 건물에 입체감을 불어넣고자 했다. 메탈 스크린으로 입면에서 변화를 주어 다소 구석진 대지에서 건물의 존재감을 조심스럽게 드러냈다. 야간에는 내부 조명이 반사되어 외부로 흩뿌려져 골목길 안의 은은한 라이트 박스가 되도록 계획했다. 보다 먼저 설계된 온그라운드 입면 리노베이션 프로젝트는 서촌의 기존 상업 건물 입면 재생을 통해 거리의 복잡한​ 이미지를 좀 더 간결하게 정리해 도시 보행자가 쾌적한 가로 풍경을 즐길 수 있게 했다. 

비상교육 사옥은 과천지식정보타운 지구에 신축되는 대형 오피스 프로젝트다. 15층 규모의 건물은 사옥으로서 상징성을 가지며, 사무실 내부로 자연채광이 가능하고 주변 자연환경을 조망할 수 있도록 계획 중이다. 이를 위해 다양한 크기로 타공된 메탈 스크린을 이용한 더블스킨을 검토 중이다. 사용자가 원할 때 더블스킨 사이의 테라스 공간에서 휴식이 가능하게 했다. 

병산리 작은집은 양평의 산자락에 지어질 30평 규모의 작은 단독주택 프로젝트다. 산자락에 있어 앞으로 산이 펼쳐지지만 그 사이에 복잡하게 개발된 마을들이 그 조망을 방해하고 있었다. 또한 주변보다 높은 대지에 내리 쬐는 강한 햇빛을 일부 걸러줄 필요가 있었다. 한편 눈높이에서는 타공의 크기를 넓혀 자연 경관을 충분히 조망할 수 있도록 계획했다. 

 

키스와이어 F1963 

 

자연 그리고 주변과의 유기적 연결

그동안 우리가 추구해온 ‘자연과의 유기적 연결’이라는 건축 본연을 위해 하나의 장치로서 스크린을 다양한 재질과 형태로 적용해왔다. 시각적 연결 측면에서는 조망을 선택적으로 확보하고, 외부에서의 시선을 적절히 차단하면서 안정감을 부여하고자 했다. 한편 강한 자연광은 차단하면서도 바람을 내부로 받아들이고, 낮과 밤, 계절에 따른 자연의 다양한 변화를 풍요롭게 경험하도록 했다. 또한 스크린을 통해 형태와 현상에 담긴 건축 의도를 조심스럽게 감추는 담백한 상자를 만들고자 했다.

연결이란 직접적 맞닿음을 넘어 적절히 서로를 막고 열어줌으로써 지속가능한 것을 의미한다. BCHO 파트너스에서 진행한 최근 작품 중 이번에 소개되는 현대자동차 천안글로벌러닝센터 1차(교육동), 기지, 구기동 주택, 그리고 헤이리 D-24 또한 자연 그리고 주변과의 유기적 연결을 찾아가는 과정이었다. 이렇게 건축의 경험적, 인식적 측면을 탐구하는과정에서 각각의 스크린은 프로그램과 대지의 특성에 따라 다양하게 개발되고 적용되었으며, 이러한 실험들을 통해 우리는 건축과 그 속에서의 삶을 좀 더 풍요롭게 경험할 수 있겠다는 확신을 가지게 된다.​ 


조병수
조병수는 1994년 건축연구소를 개소한 이후, ‘경험과 인식’, ‘존재하는 것, 존재했던 것’,‘ㅡ자집과 ㄱ자집’, ‘현대적 버내큘러’, ‘유기성과 추상성’ 등의 테마를 가지고 활발히 활동해왔다. 하버드대, 독일 국립대 카이저스라우테른과 연세대, 몬태나대 등을 포함한 여러 대학에서 설계와 이론을 가르친 바 있으며 2014년에는 덴마크 오르후스 대학교 석좌교수를 역임하였다. 대표작으로는 키스와이어 센터, 키스와이어 F1963, 남해 리니어 스위트 호텔, 퀸마마 마켓, ㅁ자 집, 트윈트리 프로젝트, ‘땅집’ 등이 있으며, 한국건축가협회상, 아천상, 김수근 문화상, 다수의 미국건축가 협회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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