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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완의 실천을 이어나가는 방법들: 리얼-리얼시티

이수민
사진
홍철기
자료제공
아르코미술관
background

전시를 공동 주관한 건축사사무소 메타의 대표 우의정이 말하듯 <리얼-리얼시티>는 “이종호를 위한 전시가 아니라 이종호가 했을 법한 전시”다. 전시 제목도 그가 사용하던 표현에서 착안한 것이다. 이종호가 말한 ‘리얼-리얼리티’는 “피상적인 리얼리티의 뒤에 숨어드는” 것이 아닌 “도시의 심층부를 흐르고 있을” 발견된 무엇▼1을 포착하려는 개념이다. 이종호는 이와 관련해 건축가의 현실 인식의 중요성을 논한 에세이▼2에서 다음과 같이 지적하기도 했다. “만일 우리가 (…) 리얼리티를 말하되 ‘진짜’ 리얼리티를 말하지 않고 있다면, 그리고 그것에 기반을 두지 않고 있다면, (…) 우리는 ‘리얼리티’의 이름으로 자신들의 ‘버츄얼리티’를 계속 생산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 전시 기획자들은 이 같은 문제의식을 이어받았다. 2000년대 이후 건축계뿐만 아니라 문화예술계와 대중문화 영역에서 강조된 일상에 대한 관심을 추적하는 것에서 전시의 실마리를 찾았다. 그리고 오늘날 무수하게 거론되는 도시의 일상과 현실로 인해 오히려 도달하기 힘들어진 ‘진짜’ 리얼리티를 짚어내려고 했다.

 

펼쳐지고 심화되는 그의 질문들

이종호는 국내에서 교육과정을 마친 뒤 김수근이 이끄는 공간그룹에서 1980년대에 실무를 익혔다. 1990년대에는 양남철과 함께 율전교회(1993), 바른손센터(1994) 등을 설계했다. 2000년대 들어 박수근미술관(2002), 노근리 역사평화박물관(2010) 등으로 작업을 이어가는 한편, 광주문화도시연구, 순천문화도시연구, 세운상가군 재생사업 등 도시와 공공연구로 활동 반경을 넓혔다. 이러한 이력은 그를 “세대의 변곡점, 의제의 변곡점에 종종 서 있던”▼3 이로 남게 했다. 다시 말해, 이종호는 1980년대 말부터 1990년대 초 한국 건축계가 관심을 가진 현실주의적 건축, 즉 한국 건축의 문제를 ‘지금 여기’에서 찾고자 했던 태도를 목격한 이로서, 우리 도시의 특수한 현실을 발견하고자 했다.

전시장 1층에 마련된 ‘아카이브룸’에는 그가 건축의 한계를 넘어서고자 고민한 흔적과 건축 및 도시에 관한 그의 태도를 보여주는 기록물들이 진열됐다. 그가 사용하던 노트북 컴퓨터에서부터 한국예술종합학교와 동료 건축가들의 소장 자료, 건축사사무소 메타와 국립현대미술관 아카이브 등에 남아있는 여러 기록물들이 선별·정리됐다. 이종호는 여러 담론들을 받아들이고 동료 건축가, 학자, 학생들과 함께 활동들을 펼치며 그의 이상을 만들어갔다. 그리고 그 이상을 한국 도시에 적용하려고 노력했다. 이는 그가 현실을 깊게 탐구하게 된 배경이기도 했다. 이종호를 비롯해 한국의 건축가들이 건축의 문제를 도시의 영역으로 확장하는 데 중요 계기가 된 서울건축학교에서의 활동,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교육자로서 학생들과 수행한 작업 등을 담은 ‘아카이브룸’ 자료들에는 한국 도시의 현실을 발견하기 위한 그의 노력이 담겨있다. 그런데 이러한 실천이 동료들, 학생들과 함께 진행됐다는 점에서 ‘아카이브룸’은 개인을 추모하는 공간을 넘어선다고 볼 수 있다.

‘아카이브룸’ 맞은편에서는 이종호가 탐구하고자 한 건축의 역할과 공공성에 대한 질문이 그의 학생이었거나 동료였던 이들을 통해 한 번 더 펼쳐졌다. 김성우(엔이이디 건축사사무소 공동대표)는 열악한 주거환경으로 꼽히는 소필지 주거지에 대한 고민과 이에 대한 건축적 해답을 ‘소필지 주거지의 기록’으로 보여줬다. 이 작업은 그가 이종호와 함께 진행한 일련의 연구를 확장한 것이다. 조진만(조진만건축사사무소 대표)은 고가 하부 공간처럼 분리된 도시조직에 개입한 프로젝트들을 소개하며 공공 영역의 확장을 도모하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종호와 25년간 작업해온 우의정은 ‘건축가 이종호와 공유한 시간들’을 통해 공유와 사유의 개념에 대해 질문하고, 이상진(건축사사무소 메타)과 함께 미술관 입구에 ‘마로니에 파빌리온’도 만들었다. 강관과 아크릴로 된 이 파빌리온은 인접하지만 관리 주체가 다른 두 공공 영역인 아르코미술관과 마로니에공원 사이에 통로 형태로 마련됐다. 도시의 보이지 않는 경계선을 가시화하는 동시에 엮어내려는 시도다. 

 

도시의 이면을 가시화하려는 의지

이종호는 2013년 한 인터뷰에서 서울에서 진행되고 있는 도시의 변화를 ‘천이(遷移)’라는 개념으로 설명했다. 천이는 한 장소에서 시간이 흐름에 따라 군집이 변하는 현상을 가리키는 생물학 용어로, 이종호는 이를 건축·도시적 맥락으로 끌어왔다. 그리고 도시를 가만히 머물러 있는 대상이 아니라 각종 요소들의 상호작용을 통해 변화하는 일종의 생태계로 해석했다. 그는 “지금 서울에서 일어나는 천이는 그 주기가 5~6년 정도로 짧은 시간에 환경이 큰 폭으로 변화”한다며 “서울에서의 현상은 천이에 재천이가 거듭되고 있는 모습”이라고 말했다.▼4

전시에 참여한 작가들은 이종호가 제안한 천이의 개념으로 도시를 들여다봤다. 우선 영화감독 김무영과 건축사진작가 김재경, 작가 김태헌은 매체를 통해 저마다 도시의 천이를 기록했다. 김무영의 ‘동네 안 풍경’은 서울의 오래된 동네를 느린 호흡으로 담아낸 다큐멘터리로, 영상 속 정적인 동네 풍경은 그곳이 곧 사라질 것을 알린다. 장소의 철거 또는 소실을 감지하며 기록한 김무영과 달리, 김재경은 도시에서 이미 지워진 장소들을 카메라에 담았다. 전시장에서 3채널 비디오 형식으로 재배치된 470여 점의 사진들은 도시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배제의 서사와 이를 뒤따르는 망각, 현상의 반복 등을 보여준다. 김태헌은 성남에 관해 개인적으로 기록한 글과 사진을 ‘성남을 쓰다’라는 제목 아래 선보였다. 사적 층위의 이야기가 공적 층위로 발현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려는 작업이다. 정재호의 회화 ‘4구역’, 오민욱의 영상 ‘철길, 건축물, 부지, 화분’은 이전 작업에서 다룬 지역을 다시 방문한 것이다. 이 같은 재방문을 통해 도시 공간이 갱신되는 시간을 포착하고, 자본이 부추기는 도시 공간의 변화를 새로운 폐허 혹은 잔해의 모습으로 확인했다.

앞선 작업들이 도시의 천이를 들여다보는 데 우선했다면, 리슨투더시티와 황지은(서울시립대학교 교수)은 천이의 과정에 개입하려고 했다. 리슨투더시티의 ‘청계천 아틀라스’는 현재 청계천-을지로 일대를 둘러싸고 진행되는 재개발의 이면을 담은 영상물이다. 이들은 지속적으로 현장을 방문하고 재개발에 내몰리는 이들과 연대하며 도시계획의 방향에 대해 질문을 제기한다. 황지은은 서울시립대의 ‘세운캠퍼스’를 전시장에 불러냈다. 세운캠퍼스에서 건축교육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세운상가 일대의 산업생태계 및 공동체가 교류하는 모습을 영상으로 보여주고, 또한 그 과정에 제작된 스터디 모델을 전시장 한쪽에 설치했다. 이처럼 세운상가 일대에서 오랜 시간 누적된 경험과 첨단 제작기술이 만나는 과정 속에서 건축교육과 현장 사이의 접점을 찾으려고 했다.

6년 전 ‘천이’ 개념으로 도시 현상을 진단하던 이종호의 질문들은 2019년 현재에도 유효함을 잃지 않았다. 전시에 참여한 작가들은 도시의 천이에 대응 혹은 적응하는 과정을 저마다 고유한 방식으로 보여주며 문제를 제기했다. 이 모든 과정들은 우리의 도시에 대해 오랜 시간 누적된 관심과 그 이면을 가시화하고자 하는 의지를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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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김헌·이종호·정기용·조성룡, ‘리얼-리얼리티’, 『전환의 도시 목포』, SA 여름 워크숍, 2004.

2. 이종호, ‘확실치 않은 언어들 - 리얼리티Ⅰ’, 「C3」, 2005년 1월호.

3. 김성홍, ‘건축가 이종호와 서울그리드’, 『건축가 이종호』, (서울: 우리북, 2016).

4. 이종호, ‘공동체 그리고 소셜 코디네이터로서의 건축가’, 『공공도큐멘트 2 누가 우리의 이웃을 만드는가』, (서울: 미디어버스, 2013).

 


 


 


이수민
이수민은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미술이론과 건축역사이론을 전공했다. <이월토크 ewoltorque>(오뉴월이주헌, 2017)를 비롯한 다수의 전시를 만들었으며 목천건축아카이브의 ‘배기형과 구조사 아카이브’ 구축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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