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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장식: 고상함이란 상상력이 부족한 이들의 마지막 피난처다

김승덕
자료제공
르 콩소르시움, MAMCO 제네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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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턴과 장식의 부흥 

토마스 레니건-슈미트(Thomas LaniganSchmidt)는 “고상함이란 상상력이 부족한 이들의 마지막 피난처”라고 말했다. ‘스타일’ 혹은 ‘장식’은 20세기 후반 미술사의 필수불가결한 개념으로, 영화 제작자 듀오 장-마리 스트라우브(Jean-Marie Straub)와 다니엘 위예(Danièle Huillet)의 표현처럼 세상을 ‘양립할 수 없는’ 적과 아군으로 나누었다. 데 스틸과 장식주의의 충돌은 피에트 몬드리안(Piet Mondrian)과 앙리 마티스(Henri Matisse)를 서로 다른 역사에 편입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그러나 이런 이분법적 논의가 오늘날에도 유효할까? 아돌프 로스(Adolf Loos)의 주장처럼 장식이란 현대성과 맞지 않는 범죄일까? 현대성은 새로운 방식으로 해석되고 있다. 성별 유동성과 여러 비데카르트적 관점을 배경으로, 1970년대 유럽과 미국의 미술 및 디자인에 영향을 끼치고 여러 아트 페어에서 흥행을 거둔 패턴과 장식 운동(Pattern and Decoration movement)이 재조명되고 있다. 그 초석은 2007년 허드슨 리버 뮤지엄으로, 1975년부터 1985년 사이 미국 미술계의 이상을 보여주는 패턴과 장식에 관한 연구를 진행하여 『패턴과 장식: 미국 미술의 이상적 비전(Pattern and Decoration: An Ideal Vision in American Art)』(2007)을 발간했다. 글과 사진을 모은 120쪽의 자료집으로, 많은 작품을 한데 모아 비평, 분석, 대조를 시도했다. 그러나 시장의 반응이 없던 탓에 후속 연구로 이어지지 못했고, 이 시도는 근래에 발흥한 복고주의의 한 사례에 그치고 마는 듯했다. 그러나 최근 2년간 패턴과 장식이 전시를 통해 다시 주목받고 있다. 루드비히 포럼 아헨에서 열린 전시인 <패턴과 장식: 약속으로서의 장식(Pattern and Decoration: Ornament as Promise)>(2018-2019), MAMCO 제네바의 <패턴, 장식 그리고 범죄(Pattern, Decoration & Crime)>(2018-2019), mumok의 <패턴과 장식: 약속으로서의 장식(Pattern and Decoration: Ornament as Promise)>(2019), 르 콩소르시움의 <패턴, 범죄 그리고 장식(Pattern, Crime & Decoration)>(2019)이 순차적으로 열렸다. 또한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위치한 MOCA는 패턴과 장식 중 이제껏 주목받지 못한 예술가들을 집중 조명하는 전시를 계획 중이다. 

 

탈위계적, 페미니즘적 움직임의 시작 

패턴과 장식은 1970년대 중반 뉴욕에서 활동한 예술가 집단으로부터 시작됐다. 그들은 스튜디오에 모여 작품에 대한 감정과 개념을 공유했는데, 패턴 또는 장식 요소로 구성된 그들의 작품을 세상에 내보내기 전에 그 작품들을 공식화하고자 한 시도다. 미리암 샤피로(Miriam Schapiro), 발레리 조동(Valerie Jaudon), 토니 로빈(Tony Robbin), 조이스 코즐로프(Joyce Kozloff), 로버트 자카니치(Robert Zakanitch), 마리오 이리사리(Mario Yrissary), 로버트 쿠쉬너(Robert Kushner)가 주축이다. 예술가이자 비평가인 애미 골딘(Amy Goldin)도 그들과 합류해 무엇이 탈위계적, 페미니즘적, 행동주의적, 민주적 운동으로 귀결될 수 있을지 논의했다. 또한 골딘은 동료 예술가들의 작품이 효과적으로 홍보될 수 있도록 자주적 조직과 전략을 수립하고 공식 성명서를 작성했다. 자칫하면 친상업주의적 운동으로 비쳐질 수 있는 이들 그룹의 움직임을 깊이 있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전시 기획자는 그룹 내 예술가들을 중심으로 하되 때로는 특별히 다른 예술가들도 초청하여 패턴과 장식 전시를 열었는데, 이는 전국 각지로 퍼져 나갔고 해외까지 진출했다. 대안공간 98 그린 스트리트의 전 디렉터이자 갤러리스트인 홀리 솔로몬(Holly Solomon)은 다수의 계약을 맺고 단독 전시 기회를 제공했다. 그룹 전시는 특히 브뤼셀, 아헨, 니스, 베를린, 옥스포드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고, 취리히와 파리의 딜러들이 작품의 판매자이자 수집가로 활약했다. 루드비히 가문은 직접 예술가와 교류하며 최신작을 확보했고, 패턴과 장식 전시에 발맞춰 일관된 컬렉션을 구축했다. 이러한 움직임 때문에 지나치게 상업적이라는 비판적 시각도 존재한다. 하지만 그룹의 민주적, 탈위계적 구조는 특정 예술가만 주목받거나 노출되는 경우를 사전에 차단했다. 혈연관계까지 포함한 형제자매 같은 집단 형태로 유지되었기 때문에 홍보, 전략, 향후 계획 등을 구상하기가 어렵기도 했다. 패턴과 장식에 대한 분석 및 비평 글 또한 개별 예술가보다 전시를 기획하고 그룹을 지원한 비평가들의 생각을 더 많이 언급하고 있다. 또 한 가지 주목할 점은, 패턴과 장식 예술가들이 19세기 후기의 역사를 윌리엄 모리스(William Morris)와 미술공예운동을 중심으로 새롭게 구성하여 대중에게 알린 것이다. 산업화 이전의 시대적 특성을 지닌 공예, 모든 형태를 포함하는 공예의 장식적 역할, 다양한 기능을 가진 공예품,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응용 예술품 등에 주목했다. 당시 공예는 가정적이고 여성적이라는 인식이 강했고 제작자가 누구인지는 중요하게 다루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패턴과 장식 예술가들은 공예와 응용예술이 패턴, 장식, 그래픽 제작에 있어 영감의 원천임을 상기시키며 격하된 위상을 높이고자 노력했다. 

 


패턴과 장식 운동을 이끈 예술가들 

발레리 조동은 이슬람의 건축용 타일, 스터코, 직물에 사용되는 비서구적 공예와 패턴에 영감을 받아 두꺼운 선적 요소를 교차시켜 작업했다. 수평적 수직적 요소가 조금씩 뒤틀려 리듬을 만들고 금색과 은색을 사용해 빛에 따라 작품이 다르게 보이는 효과가 있다. 조이스 코즐로프는 포르투갈풍 아줄레주와 이슬람풍 별무늬 그리고 페르시안 양탄자의 특성을 차용한 일련의 모티프와 패턴을 거대한 캔버스에 섬세하게 조합했다. 손으로 작업한 작품은 물감의 유동성이 강해 그림의 연필선이 그대로 드러난다. 직관적이고 여러 패턴이 나란히 펼쳐져 있어 기호표 또는 분류표처럼 보이기도 한다. 미리암 샤피로는 콜라주, 전사, 직물을 사용해 작업 활동을 이어가며 가사노동으로만 여겨졌던 수공예적 작업을 예술의 영역으로 끌어 들여 패턴과 장식에 페미니즘 이슈를 들여오는 데 주요 역할을 했다. 또한 주디 시카고(Judy Chicago)와 함께 1972년 우먼하우스(Womanhouse)를 설립했으며 캘리포니아 인스티튜트 오브 더 아츠에 페미니스트 아트 프로그램을 개설했다. 신시아 칼슨(Cynthia Carlson)은 인접한 두 벽체에 녹색과 노란색으로 그러데이션을 칠한 뒤, 착색 실리콘과 청동으로 만든 꽃을 걸고 잡초와 야생화를 표현한 수묵 그림자를 곁들였다. 이 작품은 아뜰리에에서 작품을 완성한 뒤 전시장에 옮긴 것이 아니고, 칼슨이 직접 현장에 가서 장소에 맞춰 작품을 새롭게 제작한 것이다. 장소특정적 예술이기 때문에 칼슨은 자신의 초창기 그림 벽지 작품의 이전 문제를 걱정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티나 지루어드(Tina Girouard)는 1970년대 초 뉴욕 소호에서 직물 작업과 배우의 퍼포먼스를 결합하여 대안적 행동주의에 깊게 관여했다. 지루어드의 직물 작업은 연필과 물감을 덧입힌 여러 천 조각을 꿰맨 것으로 공연에 이용한 후 작품으로 전시했다. 개별 예술가의 행보와 더불어 젠더 이슈를 통해서도 이들 그룹을 살펴봐야 한다. 토니 로빈, 토마스 레니건-슈미트, 로버트 쿠쉬너, 킴 맥코넬(Kim McConnel), 브레드 데이비스(Brad Davis), 네드 스미스(Ned Smyth), 로드니 립스(Rodney Ripps), 리처드 칼리나(Richard Kalina)를 비롯한 남성 예술가들은 여성 예술가들과 동등한 위치에서 활동에 참여했는데, 이는 당시 예술계의 상황을 고려했을 때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패턴과 장식의 재발견 

MAMCO 제네바와 르 콩소르시움에서 열린 연계 전시는 앞서 언급한 담론들을 확대시키고 몇몇 예술가들을 전략, 어휘, 개념적 기반, 세대 등의 측면에서 재조직할 수 있음을 증명했다. 클로드 비알라(Claude Viallat), 시몬 한타이(Simon Hantaï), 마크 카밀 차이모비치(Marc Camille Chaimowicz), 알란 쉴즈(Alan Shields), 린다 벵글리스(Lynda Benglis), 제니퍼 세세레(Jennifer Cecere), 앨빈 D. 러빙(Alvin D. Loving) 등의 작품은 자유로운 형태와 강렬한 색채로 관람객의 경험을 극대화했다. 전시 기획은 연대순 구성을 따르지 않았고, 작가 개개인의 특성을 드러내기보다는 패턴과 장식의 전체 흐름을 보여주는 방식으로 구성했다. 회화성 및 물질성, 패턴, 형태적 서사 등 색상과 형태의 주요 주제에 따라 작품을 전시했다. 루드비히 포럼 아헨의 전시는 루드비히 가문의 컬렉션에 기반을 두고 패턴과 장식 역사상 주요 인물들의 대표작을 선보였다. 다만 학문적이고 교육적인 전시 성격 탓에 패턴과 장식 특유의 자유로움과 개성을 다소 희석한 듯하다. 패턴과 장식 전시가 최근 유럽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열리고 있는 이유는 예술 사조의 경계가 해체되고 과거를 살펴보는 움직임이 잦아진 데서 찾아볼 수 있다. 미술시장이 다시 패턴과 장식에 주목할지는 확실하지 않으나, 이들 전시에 대한 관람객과 비평가의 반응은 뜨거웠다. 여성 해방운동과 그 후속 운동에 영향을 받은 페미니즘 이슈도 주목받았다. 여전히 장식은 죄악일까? 결코 그렇지 않다. 장식과 패턴은 영원할 것이다. 

 






김승덕
김승덕은 유럽에서 거주하며 삼성문화재단(현 삼성미술관 리움) 자문 큐레이터(1993~2000)와 파리 퐁피두 센터 소장품 부서 객원큐레이터(1996~1998)를 지냈다. 2000년 프랑스 아트센터 콩소르시움 뮤지엄(구 르 콩소르시움)에서 국제 전시기획 감독을 시작으로, 현재 공동 디렉터이다. 플라워 파워 문화수도 릴 전시(2004), 발렌시아 비엔날레(2005), 안양 공공예술 프로젝트(2007), 야요이 쿠사마 순회전(2008~2009), 린다 벵글리스 순회전(2009~2011) 등 다양한 국제 전시 프로젝트의 공동 커미셔너이자 큐레이터로 활동하고 있다. 2013년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커미셔너를 맡았고, 2011년부터 2013년까지 카타르 도하 도시개발 공공미술 마스터플랜 프로젝트 디렉터로 활동했다. 2011년부터 2015년까지 파리 팔레 드 도쿄의 프로그램 자문위원을 맡았으며, 2014~2016년 아시아문화전당에서 공용 공간의 예술감독으로(후랑크 고트로 감독과 함께 르 콩소르시움 팀으로)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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