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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더더기 없이 도발하는 말들

이성제
사진
정희승
자료제공
아모레퍼시픽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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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바라 크루거는 광고 등 대중매체의 언어를 재조립해 메시지를 던져온 작가다. 초기에는 이미지와 텍스트를 병치한 작업들이 주목을 받았고, 1990년대 중반 이후에는 장소특정적 설치와 영상 등으로 활동 반경을 넓혔다. 그는 오래전 인터뷰에서 “오늘날 미디어는 사람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그 능력으로 어떤 사건이나 대상을 의미 없게 만든다”며 “나는 그러한 접근 능력을 취해서 의미를 만들어내는 일에 관심이 있다”▼1 고 밝혔다. 그의 표명처럼 대중매체를 향한 관심과 이를 활용한 작업은 작가의 이력과 연관된다. 그는 1965년 미국 뉴욕의 파슨스 디자인스쿨에 진학한 이후 디자이너로 잡지사에 취직해 십여 년간 사진 편집 등을 담당했다. 이때 습득한 대중매체의 표현 기법은 고유한 스타일을 만드는 근간이 되었다.

 

광고 기법을 차용한 ‘크루거 스타일’

바바라 크루거는 1969년부터 작업을 시작했지만 흑백 이미지와 붉은 직사각형 프레임, 간결하면서도 강렬한 텍스트가 결합된 스타일은 1980년대 들어 본격화되었다. 그의 스타일은 단순한 형식과 과감한 명암 대비로 눈길을 사로잡는다. 색상이 주는 매력을 포기한 대신 세 가지 색이 구성하는 단조로움으로 색 이외의 것, 다시 말해 메시지에 집중하게 만든다. 그가 즐겨 쓰는 푸투라와 헬베티카도 메시지를 객관적이고 명료하게 전달하는 데 중점을 두는 서체다.

초기에 그는 오래된 잡지나 사진도감 등에서 찾은 이미지들로 작품을 제작했다. 이미지를 잘라내거나 명암을 반전하여 가공한 뒤 그 위에 함축적 텍스트를 포개놓았다. 텍스트는 광고에서 가져온 진부한 문구들이었지만 작가의 비판 의식 아래 사회·정치적 메시지로 다시 태어났다. ‘Your comfort is my silence (너의 편안함은 나의 침묵)’, ‘You delight in the loss of others (너의 즐거움은 타인의 상실 속에 있다)’, ‘I shop therefore I am (나는 쇼핑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등 열 단어가 채 넘지 않는 말들은 이미지와 결합돼 깊은 인상을 남긴다.

‘무제(당신의 몸은 전쟁터다)’는 여성 인권운동과 관련해 회자되는 작업이다. 1989년 4월 미국 워싱턴 D.C.에서 낙태 금지법에 반대하는 대규모 여성 시위가 개최됐을 때 제작됐는데, 이 전단은 당시 거리 곳곳에 포스터처럼 부착되었다. 그로부터 30년이 흐른 지금, 머나먼 이국에서까지도 흑백이 대비된 이미지와 병치된 문구는 여전히 울림을 준다. 이는 낙태죄 헌법 불합치 판결이 올해 4월에서야 내려진 한국의 현실과 공명하기 때문일 테다. 그의 메시지들은 대중매체가 그리는 욕망과 소비주의 이외에도 젠더, 계급, 인종 등 사회적 이슈와 각종 정치권력을 둘러싼 문제들을 겨냥해왔다.

 

 

 

<바바라 크루거:포에버> 전시 전경 

 

바바라 크루거, ‘무제(영원히)’, 비닐 벽지 위 디지털 프린트, 570×2,870×1,830cm, 2017

 

시각과 청각을 자극하는 텍스트

이번 개인전에서 주목할 작품이자 전시 제목과도 동일한 ‘무제(영원히)’는 전시장 벽면과 바닥을 텍스트로 채운 설치 작업으로 건축과 공간에 대한 작가의 오랜 관심이 드러나 있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타원형의 볼록 거울 이미지 속에 거대한 크기의 ‘YOU’라는 글자를 마주하게 된다. 그 아래엔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 『자기만의 방』(1929)에서 인용한 글귀가 적혀 있다. 나머지 벽면과 바닥에는 조지 오웰의 소설 『1984』(1949)에서 인용한 문장이 채워져 있는데, 한 줄 한 줄 흑백이 교차·대비되며 시각 자극을 극대화한다. 커다란 글자들에 둘러싸이는, 영화 속에서나 마주할 법한 생경한 광경이다.

크기가 미터 단위로 측정될 이 글자들은 전달하려는 메시지보다 텍스트를 읽는 행위가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단행본, 잡지, 리플릿, 포스터 등 우리가 일상에서 접하는 인쇄물들은 대개 사람이 보기에 적절한 크기를 지닌다. 10pt 내외의 글자 크기, 이에 결부되는 자간과 행간 등은 눈동자가 움직이는 작은 범위에서 가독성을 높이는 체계다. 텍스트의 크기가 커지면 이러한 시스템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읽는 경험은 보는 경험에 가까워지고, 텍스트가 지닌 다른 면모가 부각된다. ‘무제(영원히)’의 텍스트들은 시각뿐만 아니라 청각을 자극한다. 읽혀진 말들이 내면에서 음성으로 전환되어 귀에 들리는 듯한 체험으로 이어지는데, 이는 월터 옹의 지적처럼 “텍스트를 ‘읽는’ 것은 음독이든 묵독이든 간에 텍스트를 음성으로 옮기는 일”▼2 이기 때문일 것이다. 음성은 사람마다 다르게 들리겠지만, 전시장에 입혀진 획일화된 패턴과 명암 대비는 명령조 또는 위압적인 어조를 상기시킨다.

글자가 말을 거는 듯한 생경함은 작품이 현실에서 떨어진 공간에 설치됐기 때문이기도 하다. 사실 우리는 일상에서 거대한 텍스트들에 노출돼 있다. 광고판, 현수막, 표지판 등에 적힌 커다란 말들은 우리에게 다가오더라도 스치는 풍경처럼 금세 사라진다. 이와 유사하게 바바라 크루거의 장소특정적 작업 중에서 길거리와 건물 외벽처럼 도시에 자리 잡은 유형은 상대적으로 주목도가 낮다. 한 가지 더 지적하자면, ‘무제(영원히)’가 주는 체험의 강도는 텍스트들이 ‘실재’한다는 점과도 관련 있어 보인다. 이는 텍스트 기반의 개념미술가인 제니 홀저의 작업과 비교해보면 두드러진다. 제니 홀저는 영사 방식인 ‘프로젝션’으로 건물 전면 등 공간에 텍스트를 입히는데, 바로 사라져버리는 빛의 속성을 글자들과 그 메시지가 물려받기라도 한 듯이 텍스트가 주는 감각은 상대적으로 약하다. 반면 벽면에 입혀져 고정된 크루거의 텍스트들은 현실에 존재하는 듯한 무게감을 지닌다.

물론 디지털 프린팅 된 글자를 단순히 벽면에 입힌 것이라고 치부할 수 있다. 다만 이러한 지적은 크기가 커질 때 발생하는 제작상의 문제들을 간과한 것이다. 설치 작업에는 접착력, 필름 무게 등 시공 요소뿐만 아니라 이미지 해상도와 같은 질적 요소가 개입한다. 바바라 크루거가 대규모 설치 작업을 시도할 수 있었던 배경에도 프린팅 기술의 발전이 있었다. 그는 어느 인터뷰에서 “관람 경험에 시각적으로 어떻게 개입해야 하는지 알기 위해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정확한 치수가 필요하다”며 “디지털 프린팅과 비디오 작업의 장점 중 하나는 거대한 환경에 개입할 기회가 있다는 것이고, 그것은 내게 엄청난 기회가 된다”▼3 고 말한 바 있다. 그는 초기 작업들에 대해서도 ‘콜라주’가 아니라 이미지들을 자르고 붙인 ‘페이스트 업’ 작업이라며 제작 방식을 강조한다. 

 

바바라 크루거, ‘무제(충분하면만족하라)’, 비닐 벽지 위 디지털 프린트, 600×2,170 cm, 2019

 

메시지가 겨냥하는 맥락

텍스트를 활용해 새로운 의미를 전달하는 시도들은 해당 텍스트가 사용되는 사회적 맥락과 동떨어지기 어렵다. 맥락을 짚어내면 메시지의 위력이 높아지지만, 반대의 경우 의미는 모호해지고 메시지는 수신되지 못한다. 바바라 크루거의 작업도 마찬가지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신작 ‘무제(충분하면만족하라)’는 한글을 이용한 설치 작업으로 소비지상주의와 욕망에 대한 그의 비판적 코멘터리 ‘Plenty should be enough’를 번역한 텍스트가 배치됐다. 높이가 6m에 달하는 이 수직 텍스트는 과녁에 닿지 못한 화살처럼 그 의미가 와 닿지 않는다. 다른 한글 작업인 ‘무제(제발웃어제발울어)’와 일부 영문 작업들도 메시지가 선명하지 않아 관람객들을 갸우뚱하게 만든다. 그런데 발신된 메시지들이 언제나 정확히 착지하는 세계였다면, 세상과 소통하려는 노력을 이처럼 기울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전시는 12월 29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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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W. J. T. 미첼 & 바바라 크루거, ‘바바라 크루거와의 인터뷰’, 「크리티컬 인쿼리」 Vol. 17, No. 2 (겨울호, 1991), p. 448.

2. 월터 옹, ‘언어의 구술성’, 『구술문화와 문자문화』, (서울: 문예출판사, 2018), p. 37.

3. 세다 파소리, ‘인터뷰: 바바라 크루거가 말하는, 디지털 시대의 예술과 새로운 설치 작업’, 콤플렉스, 8월 22일,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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