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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적 대조와 대화: 주한 스위스 대사관

이성제
사진
헬렌 비네
자료제공
주한 스위스 대사관, 버크하르트+파트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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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종로구 송월동은 인접한 교남동, 평동과 함께 돈의문 바깥 성벽 아랫마을을 이루었다. 조선시대만 해도 무당, 점쟁이, 행상 등 빈민층 거주지였지만, 일제 식민지기 도시화가 진전되고 전차가 다니면서 선교사 등 외국인들이 이 지역으로 유입되었다. 도시형 한옥, 적벽돌 주택, 일본식과 서양식을 절충한 문화주택은 그 시절의 흔적이다. 이후 1950년대에는 미국의 원조로 2층 규모의 연립주택이 곳곳에 건설됐다. 사실상 근현대 서울의 주거사가 도성 밖 구릉지 위에 쌓여왔다. 주한 스위스 대사관도 1974년 송월동에 자리 잡으며 풍경의 일부가 되었다.

2003년 이 일대는 돈의문 뉴타운 대상지로 지정된다. 그리고 10여 년 뒤 과거의 기억을 말끔히 밀어낸 대지에 2,400여 세대의 고층 아파트와 오피스텔이 건설됐다.

 

재개발 이후의 대지

주한 외교 공관들은 근대건축물이 고유한 정서를 형성하는 중구 정동이나 1970년대 정부 정책으로 ‘대사관 군집 지역’이 된 용산구 이태원동·한남동에 대부분 자리 잡고 있다. 보안을 중시하는 특성상 높은 담장을 치고 내부를 보여주지 않는데, 주택을 매입해 관저로 삼은 경우 국기가 게양되지 않고 입구 표지도 없다면 이곳이 공관인지 눈치 채기 힘들다. 존재감을 지우고 대화에 나서지 않는 방식으로 기존 도시 조직과 조화를 이루는 셈이다.

주한 스위스 대사관도 과거 이러한 유형에 속했다. 하지만 주변이 뉴타운 대상지가 되면서 다른 상황에 놓였다. ㄱ자 모양의 대지는 한 면이 도로에 접하고 이외의 부분은 15층 아파트 단지와 공공공지(공원)에 둘러싸이게 되었다. 한국의 아파트 단지는 울타리를 친 채 단지 내부로 입주자 보행과 커뮤니티 활동을 집중시킨다. 주변과 연결을 거부하는 이러한 태도 때문에 재개발 사업에서 매입이 안 된 부지는 종종 ‘섬’이 되고 만다. 돈의문 뉴타운에서는 스위스 대사관과 맞은편 종교시설이 그런 처지가 됐다. 지역의 과거를 알지 못한다면 위성사진이나 지도상에서 아파트 단지 가운데 위치한 대사관의 모습에 의아할 것이다.

주한 스위스 대사관은 공간 부족 및 시설 노후를 이유로 2012년 기존 대지에 새 건물을 짓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국제설계공모를 열었다. 맥락이 사라질 대지 위에 새로운 건축물을 구상하기란, 제약 없는 운신이기보다 기댈 것이 없는 난처함에 가깝다. 새 건물은 규모 면에서도 무언가를 시도하기가 쉽지 않았다. 프로그램이 대사관저와 사무 공간 등에 불과해 체적이 크지 않았고, 실제로 지어진 건물도 연면적이 2,872m2에 그친다. 이러한 상황에서 설계공모는 건축물 외관이 주는 인상 또는 콘셉트를 설명하는 수사의 기발함을 대결하는 장으로 미끄러진다. 당시 출품작들을 살펴보면 지상층을 비운 타워 형태에서부터 개별 프로그램을 담은 건물군까지 형태와 논리 면에서 다양한 제안이 나왔다.

 

한옥의 재해석

새 대사관은 넓은 마당을 ㄷ자 단일 건물이 둘러싸는 형태다. 서쪽에서부터 완만하게 내려오는 지붕 아래에 상이한 프로그램들이 배치됐다. 대사관 입구에서부터 다목적 공간, 사무 공간, 휴게 공간, 대사관저 순서로 프로그램이 놓였고, 각각의 공간들은 가운데 마당을 시각적으로 물리적으로 공유한다. 다만 대사관저의 경우 경사지를 활용해 가족들이 머무는 개인 공간을 한 층 아래에 두어 프라이버시를 확보했다.

설계를 담당한 니콜라 보셰(버크하르트+파트너 선임건축가)에 따르면 새 대사관은 ‘한옥’을 모티브로 삼았다. 그는 “한옥의 형태와 공간구성에서 영감을 받았다”며 “기능적으로 구획된 공간들이 앞마당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공간구성을 적용하려고 했다”고 밝혔다. 한옥의 재해석이 ‘신선한 시도’는 아니지만 마케팅 측면에서는 유효한 제스처가 될 수 있다. 사실 어떤 형태든 가능한 건축물이라면, 주재국의 문화를 포용한다는 외교적 수사에 가점이 붙을 것이다.

넓은 마당을 매개로 각 실이 연결되는 한옥의 공간 구조는 각종 외교 및 문화 행사를 개최하는 대사관의 활동을 적절히 받아낸다. 개관을 맞아 기자간담회, 워크숍 등이 같은 날 동시에 진행됐을 때에도 마당에 설치된 차양 그늘 아래로 사람들이 오고 가는 가운데, 한쪽에서 점심 케이터링이, 다른 편에서 건축 투어가 진행되었다. 별다른 충돌 없이 각 활동들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소셜미디어에 올라오는 대사관의 다른 이벤트 사진들에서 행사 참석자들이 한데 어우러지는 공간으로 가운데 마당을 적극 활용하는 모습도 눈에 띈다. 이러한 활동들은 설계공모에 포함되지 않았으나 잠재돼 있던 프로그램이 건축의 도움으로 발현된 결과다.

공간구성은 한옥에서 차용했지만, 공간감과 분위기는 보다 가볍고 쾌적하다. 저층이지만 최고 높이가 12m에 이르고 기둥과 들보 등 부재의 스케일이 커서 오밀조밀한 한옥보다 열주가 늘어선 사찰 공간이 연상된다. 유리로 마감돼 건물의 구조 체계가 명료하게 읽히고 군더더기 없이 접합된 부재들이 정적인 분위기를 더한다. 커다란 전창으로 주변 풍경과 자연광이 건물 안으로 유입된다. 이러한 개방감 덕분에 건물 내부는 전반적으로 가볍고 시원하게 느껴진다.

 

대사관을 둘러싼 콘크리트 담장

개방감과 투명함은 담장 안에서만 작동한다. 대사관의 대지 경계를 따라 콘크리트 벽이 세워졌기 때문이다. 출입문을 제외하면 약 3m 높이의 담장 벽은 개구부 없이 면으로 줄곧 이어진다. 콘크리트 벽 표면에는 목재 거푸집의 나뭇결이 입혀져 있고 이외의 장식은 최소화되었다. 거리에서 보이는 대사관 모습은 콘크리트 벽과 철제 출입문, 붉은 스위스 국기 그리고 벽 위로 솟은 콘크리트 매스다. 헬렌 비네가 촬영한 사진들은 이 외벽의 존재를 담지 않았는데, 건축사진을 먼저 접하고 대사관을 찾은 이들이라면 도로 변의 서먹한 인상에 잠시 당황할 수 있다.

잘 마련된 내부와 달리, 외따로 존재하는 이 외벽은 설계공모 사항이었다. 보안상의 이유로 포함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당선작을 포함해 출품작 대부분이 담장을 건축적 요소로 여기지 않은 듯하다. 도면이나 렌더 이미지 상에서 가느다란 선 또는 면으로 표현되었고 이에 관해 설명도 마련되지 않았다. 건축물에 대한 경험은 내부뿐만 아니라 외부를 포괄한다. 대사관 주변을 거닐며 도시를 경험하는 이들까지 이용자에 포함된다는 점을 떠올린다면 아쉬운 대목이다.

다른 국가의 대사관들도 보안을 이유로 담장을 두르고 철문을 설치한다. 하지만 일부 대사관은 지상층을 띄워서 시각적 관입을 허용하고 파사드를 강조해 보행자들의 눈을 즐겁게 한다. 사람들은 건축물의 이러한 대응과 방법상의 차이를 비교하며 건축가 또는 건축주의 성격을 짐작한다. 주한 스위스 대사관에서는 내부의 개방성과 대비되는 경계에 대한 단호함이 느껴진다. 물론 아파트 단지에 둘러싸인 처지를 감안해야 한다. 또한 담장 주변에 심은 조경수들이 충분히 자라지 않았는데, 수목이 자라면 외벽이 주는 긴장감은 조금이나마 누그러질 것이다. 가로의 인상과 분위기는 자연뿐만 아니라 인간 활동에 의해서도 좌우된다. 주거지 복판에 자리 잡은 대사관이 앞으로 어떤 활동을 펼쳐나갈지 궁금해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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