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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대학 건축의 태도

최문규
사진
남궁선(별도표기 외)
자료제공
가아건축사사무소
background

공공 건축의 시작

20년 전 정한숙 기념관을 시작으로 2000년대 초반 파주출판단지와 헤이리에 건물들을 설계했고 2004년 쌈지길을 완공했는데 이들 대부분은 건축주가 개인이었다. 공공 건축 설계는 2009년 숭실대학교 학생회관이 사실상 처음이었다. 이후 2018년 설계공모에서 당선된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도서관에 이르기까지 10년간 여러 대학 건물들을 설계해왔다. 이 과정에서 대학 건축에 관한 작은 생각들이 만들어졌고, 공공 건축과 대학 건축의 대안에 대한 생각이 조금씩 모이면서 기회가 되면 이들을 묶어서 정리했으면 했다. 10여 년 전 이토 도요 선생이 내게 이제부터 공공 건축을 할 기회를 찾으라고 말했었다. 그 당시 말뜻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했는데, 이번에 소개하는 서울시립대학교 100주년 기념 시민문화교육관(이하 서울시립대 시민문화교육관)과 파리 국제대학촌 한국관(이하 한국관) 프로젝트를 통해 그 의미를 찾아보려고 한다.

서울시립대학교, 연세대학교, 숭실대학교 캠퍼스 등에 설계한 건물들은 위치와 규모, 프로그램이 제각기 다르다. 하지만 모두 대학 캠퍼스 내에 있는 건물들이다. 이러한 조건 때문인지 ‘대학은 어떤 장소인가?’, ‘어떤 장소일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서 설계가 시작되었다. 나는 대학에 입학한 1980년부터 학생으로 강사로 그리고 지금은 모교 교수로 같은 대학에서 40년 가까이 지내고 있다. 몇 군데 강의실과 도서관, 식당을 제외하면 다른 건물에 들어가본 적이 없는 듯하다. 그저 대학은 건물 사이의 길이자 공간,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로 기억에 남아 있다. 남북으로 곧게 뻗은 연세대학교 백양로의 벤치와 나무들이 대학이고 그곳에서 만난 친구들과 선배들, 복도에서 마주친 교수들이 나에겐 대학 생활이었다.

 

만남의 장소로서의 대학: 끝없이 갈라지는 길, 투명하고 깊은 공간들

앞서 말한 개인적 기억들은 숭실대학교 학생회관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대학 건축의 새로운 대안을 고민하고 ‘만나는 장소로서의 대학’을 설계하도록 했다. 특히 학생들과 교직원들이 사용하는 학생회관은 모든 구성원들이 서로를 발견하고 만날 수 있는 장소가 되었으면 했다. 이에 따라 건물 매스부터 계획한 뒤 그 안에 평면을 배치하는 일반적 방식이 아니라 대학 캠퍼스의 여러 곳에서 학생회관에 자연스럽게 접근할 수 있는 길을 만드는 데서 설계가 시작됐다. 세 개의 식당과 강당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담는 공간들을 입체적으로 배치한 다음 이를 내외부 동선으로 연결하는, 작은 도시와 같은 공간구성을 제안했다. 입구가 스물다섯 개가 있는 학생회관은 선택 가능한 여러 동선들로 이루어졌다. 이곳에서 건축은 물리적 공간이기도 하지만 우연적 만남을 유도하는 장소가 된다. 공간의 깊이와 투명성이 더해지면 서로가 서로를 볼 수 있고 대학 안의 다른 구성원들을 인식하게 되고 결국 대학 생활의 사람들로 남는다.

이러한 생각은 2018년 파리 국제대학촌 안에 완공된 기숙사인 한국관에서 일부 변주되고 발전되었다. 250명을 수용하는 한국관은 부대시설로 강당, 식당, 커뮤니티 시설들이 내부에 배치되어 있다. 국제대학촌 내 다른 국가관이나 다른 대학의 기숙사들을 살펴보면서, 부대시설이 아무리 좋더라도 일단 방으로 들어가게 되면 개인은 고립되고 다른 학생들을 만날 기회가 아주 적어진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파리 국제대학촌의 정신이 국가 간, 학생 간 교류인 점을 떠올린다면 너무 아쉬운 일이다. 개인의 프라이버시는 유지하면서 입구부터 방까지, 그리고 방에서 밖을 보면서 서로를 발견하고 만날 수 있는 동선과 공간을 계획해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다. 학생들이 수시로 만날 수 있는 투명한 로비와 공용 주방 그리고 외부 공간 등에서 단면에 깊이를 주고 시선을 안쪽까지 끌어들여 서로의 얼굴을 볼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생활 시간대가 다른 학생들이 자주 마주치면서 서로의 얼굴을 익히고 같은 공간을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교류는 자연스럽게 발생할 것이다. 이와 같은 ‘만남의 장소’에서 대학의 존재 이유를 찾았다.

 

파리 국제대학촌 한국관 ⓒHerve Abbadie

 

지역과 대학 건축의 관계: 열린 건축의 가능성

‘만남의 장소’에 관한 생각은 연세대학교 국제캠퍼스 진리관(이하 연세대 진리관)과 서울시립대 시민문화교육관을 설계하면서 캠퍼스 공간으로 확장되었다. 대학 건물들은 대부분 한두 곳의 입구로 캠퍼스와 관계를 약하게 맺고 외부와 단절하는 경우가 많다. 이에 비해 숭실대학교 학생회관은 건물과 외부의 경계가 불명확하다. 학생회관의 어느 층에서든 주변 건물과 건물 밖으로 공간이 연장되고 있어 단일 건물이면서도 캠퍼스의 일부가 되었다. 이 아이디어는 연세대 진리관 프로젝트에서 여러 입구들을 통해 내부가 외부로 다양하게 펼쳐지는 공간으로 발전되었다. 진리관 1층에서 외부와 접하는 부분에는 기둥이 배치되지 않았다. 그 결과 내부 공간이 중앙 광장으로 넓게 연장되어 경계가 인식되지 않는다. 2층에서는 한 면에 넓은 계단을 두어 건물이 외부로 연장되면서 주변 조경과 자연스럽게 만나도록 했다.

이번에 소개하는 서울시립대 시민문화교육관은 ‘대학 건물이 지역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로 생각을 넓힌 프로젝트다. 대학 캠퍼스는 학교 구성원이 주인인 공간이지만 공공의 시설이기도 하다. 항공사진으로 보면 대학은 커다란 도시 공간이자 지역사회의 오픈스페이스이며 녹지다. 학기 중에야 사용 빈도가 높지만 이렇게 커다란 도시 공간이 방학이나 주말이 되면 텅 비어버린다. 제대로 된 공공 오픈스페이스가 거의 없는 서울시립대학교 주변 지역의 경우 녹지가 풍부한 캠퍼스는 중요한 도시 공간으로 사용될 수 있다. 이러한 배경에서 대학 건축이 지역사회에 지금 무엇을 해야 하고 앞으로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가를 고민하면서 열린 공간으로서 캠퍼스의 일부가 되는 도시적 해법을 제안했다. 건물이 완공되는 순간 내부와 외부로 나뉘고 주변과 단절되는 것이 아니라 열린 도시 공간의 역할을 하는 대안을 제시한 것이다. 이러한 열린 건축은 스스로를 드러내기보다 주변 건물과 잘 어울리면서 어디서든 내외부가 열린 태도를 가져야 한다. 또한 수업이 끝난 후나 주말에는 시민들이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공간구성을 지녀야 한다고 믿는다.

 

연세대학교 진리관

 

대학의 일부인 녹지

연세대학교 법인본부는 조금 다른 조건에서 설계가 진행되었다. 대학 건물이지만 공공의 사용보다 사무 공간으로 사용되는 프로그램이어서 앞서 말한 공공성에 대한 입장이 사뭇 달랐기 때문이다. 우선 캠퍼스의 자연환경과 기존 건물들을 보존하면서 새 건물이 땅에 잘 정착할 수 있도록 했다. 건물들로 둘러싸인 도시와 달리, 숲속 오래된 건물에 인접한 법인 사무동의 설계는 기억을 존중하고 나무를 존중하듯이 땅의 모양을 섬세하게 이해하면서 주어진 프로그램을 해결해야 하는 과정이 요구되었다. 주변을 지나는 대학 구성원들에게 배타적인 건물이기보다 건물 내부까지는 아니어도 시각적으로 안에서 밖으로, 밖에서 안으로 서로 열린 공간을 제안했다. 이는 한국과학기술연구원의 숲속 어린이집에서 보이는 것처럼 땅 위의 나무와 길을 존중하고 그 위에 프로그램을 연결하는 과정과 밀접히 관련된다.

 

시간을 견디는, 캠퍼스 안의 건축

대학 건축은 매일 새로움을 요구하는 자본주의의 파도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지만 얼마만큼은 벗어나 있을 수 있다. 그래서 새로움을 쫓고 유행을 따르기보다 시간을 견디는 힘이 있어야 하며 교육 환경의 빠른 변화를 받아들일 수도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건축가는 대학 건축에서 자신을 드러내기보다 캠퍼스의 역사와 주변을 이해하면서 이를 존중하고 변화를 담아내는 융통성 있는 계획을 수행해야 한다. 시간을 이겨내는 공공재로서의 대학 건축을 생각하며, 파리 국제대학촌 한국관과 서울시립대 시민문화교육관 그리고 연세대학교 법인본부가 천천히 캠퍼스에 스며들 50년 뒤의 모습을 그리면서 설계했다.​


최문규
최문규는 연세대학교 건축공학과와 동 대학원, 컬럼비아 건축대학원을 졸업하였다. 이토 도요 건축사사무소, 한울건축, 시건축에서 실무를 쌓았으며 1999년부터 가아건축사사무소를 운영하였다. 현재 연세대학교 건축공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제11회 베니스 건축 비엔날레 한국관 큐레이터, 제9회 베니스 건축 비엔날레 국제관, 제7회 상파울루 건축 비엔날레, 심천-홍콩 BI-CITY 비엔날레에 초청되었다. 미국 프로그레시브 아키텍처 어워드, 아키텍처럴 레코드 디자인 뱅가드, 한국건축문화대상, 한국건축가협회 특별상인 엄덕문 건축상, 한국건축가협회상, 서울시 건축상을 수상하였다. 대표작으로는 정한숙 기념관, 쌈지길, 숭실대학교 학생회관, 연세대학교 국제캠퍼스 진리관, 현대카드 뮤직라이브러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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