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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itique] 그리고 남겨진 입면의 문제

최원준
사진
진효숙
자료제공
사무소효자동

건축가 서승모는 최근 자신의 작업에서 바닥을 강조한다. 평면을 우선적으로 계획하며, 매스나 입면은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것이라고 한다. 언뜻 르 코르뷔지에의 “평면은 생성원이다”와 같은 원론적 언급처럼 들리기도 하지만,▼1 그의 작품을 들여다보면 훨씬 구체적인 건축적 속성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오늘날 우리가 신발을 벗고 감각하는, 이제는 거의 유일한 건축 유형인 주택을 주무대로 활동하는 서승모는, 일상 속 우리의 삶과 감각적 경험을 상상하며 인공지반을 조정해간다. 바닥의 오르내림을, 꺾임을, 재료의 변화를 섬세하게 계획한다. 바닥에 대한 우리 건축계의 기존 이야기들, 이를테면 민현식이 일찍이 바닥판의 체계에서 비움의 정수를 찾고,▼​2 배형민이 수백당 이후 승효상의 작품에서,▼​3 김성홍이 최문규의 근작에서 ▼​4 지붕이나 벽에 앞서 건축을 규정하는 바닥을 발견했던 것과 비교할 때, 서승모의 바닥은 거대 담론의 맥락에서 벗어나 좀 더 친밀한 스케일로 다가온다. 일상, 삶, 시간, 기억 등 건축가들이 사용하는 개념어가 유사해진 오늘날, 중요한 것은 이를 실천하기 위한 건축적 전략이 얼마나 구체적이며 이를 얼마나 집요하게 성취해내는가이다.

바닥에 대한 이러한 관점에 동감하고 이를 통해 그의 건축 작품이 갖는 내부 공간의 독특한 속성에 주목하면서, 이 글은 그 평면 구성의 자연스러운 결과로, 건축가의 말을 따르자면 “툭 던져지는” 입면을 함께 생각해보고자 한다. 건축가의 손이 가리키는 방향에서 어긋난 곳을 굳이 보고자 하는 것은 입면의 문제가 더불어 이야기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바닥에 대한 관심은 입면에 어떠한 가능성과 제한을 부여하는가. 자율성을 획득한 입면은 무슨 문제 혹은 의미가 있는가. 우리는 바닥에 서지만 우리의 눈은 벽을 응시한다. 바닥은 건축의 내부를 누리는 소수가 경험하지만 외부 입면은 불특정 다수, 즉 사회를 향해 드러나는 부분이다. 건축계는 공간적, 시각적 체험 사이에 분명한 위계를 두고 있지만, 사실 우리는 대부분의 건물과 그 입면을 통해 시각적으로 소통한다. 무엇보다 입면은 건축가가 건축을 바깥세계와 관계시키는 지점이다.

흥미롭게도, 내부 공간에서 유사한 속성을 보여주는 그의 최근 주택 작품 4선은, 일단 외양 상으로는 다양한 입면의 양상을 보여준다.

 

 

J스튜디오하우스 

 

사례 1. 주어진 입면: 서촌 M 게스트하우스

서촌 골목 깊숙이 위치한 2층의 벽돌마감 집을 주거 겸 게스트하우스로 전환한 프로젝트다. 골목길에서 건물내부로의 진입은 너무 급작스럽게 이루어지지만, 현관을 들어서는 순간 독특한 중간 영역이 나타난다. 귀가라는 반복적인 일상에 건축가가 제안하는 소소한 의례를 담은 공간으로, 건축가의 최근작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며 바닥의 레벨 차를 통해 다른 공간들과 구분된다. 이로부터 반 층 올라 1층의 거실과 주방이 하나의 공간으로 펼쳐진다. 그런데 주공간임에도 불구하고 구석의 작은 창 두 개를 제외하고는 사방이 막혀 있다. 건축가가 기존 건물의 다소 폐쇄적인 벽돌 입면을 그대로 유지했기 때문이다. 다만 이 공간이 전혀 갑갑하게 느껴지지 않는 것은, 상부 바닥을 일부 비워 2층 창(역시 기존 건물의 개구부다)으로부터의 빛과 조망을 끌어들인 덕이다. 외부를 향해 넓은 창을 내 개방감을 확보하는 일은 쉽지만, 적당하게 닫아 아늑하면서도 답답하지 않은 공간을 조성하는 것은 훨씬 어려운 일이며, 빽빽한 도심 속에 건축하는 건축가에게 요구되는 중요한 능력이다. 서승모는 이 리노베이션 프로젝트에서 골목길의 정취를 보존하고자 기존의 입면을 받아들임으로써 내부 공간구성에 훨씬 큰 제약을 스스로에게 부여했다. 대신 새로운 얼굴을 구성해야 한다는 부담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고, 다층의 평면 조직으로 주거와 게스트룸의 프로그램적 요구 사항들을 훌륭하게 풀어냈다. 주어진 껍데기 속에서 건축가는 바닥의 높낮이를 조정하고 일부는 비워내면서 내밀하고 평온한 방들을 만들어냈다.

 

사례 2. 거의 주어진 입면: 서촌 J 한옥리노베이션

서승모는 바닥에 대한 관심을 우리의 전통적인 가구식 목구조의 구성 방식과 연결하기도 한다. 한옥에서 건축가는 바닥을 설계하며, 이에 따라 조성된 구조체 사이에 벽을 삽입하면서 입면이 자연스럽게 형성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작품은 리노베이션이기에, 입면과 관련된 서승모의 작업은 구조적으로 불안정했던 채를 해체 후 다시 결구하면서 입구와 창호의 위치를 바꾸고 일부 수평재들의 위치를 조정하는 것에 한정되었다.

여기에 더해 도시형 한옥의 입면은 더욱 제한적이다. 모서리 등 특수한 입지가 아닌 이상 양 옆과 배면으로 이웃집 담을 향해 바싹 붙기에, 외부 세계에 드러나는 유효한 입면은 정면 하나다. 드러나지 않는 나머지 방향은, 땅속에 묻혀 내부적 필요만으로 형성될 수 있었던 고대로마의 카타콤이나 렘 콜하스의 보르도 주택 1층 후면과 같은 상황이다. 이를 이용해 건축가는 거실 내부의 마감면에 맞춰 벽장을 뒤로 자유롭게 밀어냈고, 방별로 내부의 필요에 따라 벽을 기둥 앞에, 혹은 뒤로 배치했다. 기와지붕이 하늘을 향한 또 하나의 입면이라면, 그 안에 레벨을 삽입하여 건축주의 낮은 침실을 드러나지 않게 조성하기도 했다. 외부를 의식하지 않으며 내부를 조직한다는 것은 건축가에게 잘 주어지지 않는 기회다. 여기서 건축가는 다시 한 번 입면을 잊고 바닥의 섬세한 조정을 통해 내부 공간의 구축에 전념할 수 있었다.

 

M 하우스​

 

사례 3. 드러내 만든 입면: 하남 M 하우스

그러나 한옥이 아닌 신축 프로젝트에서는 입면의 디자인을 피할 방법이 없다. 전체를 전면유리로 처리해 단면을 그대로 드러낸다면 혹 가능할 지 모르겠지만, 주거지 내 프라이버시나 환경적 측면을 고려할 때 적합한 선택이 아니며, 특히 적정한 어둠의 공간을 실험하는 서승모의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

비슷한 규모의 신축 건물들이 들어선 하남 신도시의 택지개발지구에서 건축가가 선택한 전략은, 복층 건물의 가장 기본적인 사실, 즉 적층의 구조를 드러내며 그 이상의 입면 구성을 ‘거부’하는 것이었다. 각 층마다 프로그램과 위치에 맞는 저마다의 평면 구성과 심지어 구조방식을 부여한 후, 그 연계는 적층이라는 투박한 정황만 의도적으로 강조한 것이다. 몸통을 이루고 있는 2층은 동일한 목재를 마감재와 루버로 사용하여 내부 구조를 감추고 하나의 덩어리로 추상화시켰다.

적층의 표현을 통한 간소한 입면 분할은 K 팬션(2013년), J 스튜디오 하우스(2014년), G 하우스(2014년)와 같은 전례에서도 사용된 바 있다. 층의 구분을 외장재만으로 처리하는 것은 화장에 지나지 않는 터라 내적 구조의 차별화도 함께 고민했을 것이며, 따라서 내부와 외부는 서로를 형성하는 기폭제로 작용하였다. 그러나 이전 작품들에서는 상하 각각 단일한 구조재/마감재만으로 수직적 경계를 형성한 반면, M 하우스에서는 30cm의 슬래브를 극명하게 드러내 적층의 형식을 우선적으로 강조했다.

흥미로운 것은, M 하우스가 본 글에서 주목한 네 개의 주택 작품 중 레벨의 변화가 가장 적다는 점이다. 입면의 자의적 구성에서 벗어나고자 설정한 곧고 두꺼운 슬래브가, 오히려 내부 공간의 다양한 구성에 제약으로 작용한 것일까. 1층 현관에서 문방으로 내려가는 하나의 단, 그리고 3층 거실에 툇마루와 같은 높이의 단이 있을 뿐이며, 3층의 부분적 레벨 변화는 2층 천장에 어떤 영향도 주지 않고 독립적으로 존재한다.

 

사례 4. 감춰 만든 입면: 서촌 O 하우스

이와 달리 바닥의 조정이 위와 아래층 모두에 유기적으로 결합된 예가 O 하우스다. M 하우스가 신도시의 단독주택단지에 위치한 데 반해 O 하우스는 서울 옥인동의 복잡하게 얽힌 골목 안 작은 대지에 입지하여 상대적으로 공간을 집약시켜야 하는 조건이었다. 그 결과 다단계의 내부 구성이 완성되었다. 복도는 이곳저곳으로 골목길처럼 레벨을 달리하며 이어지며, 그 사이에 방들이 여기저기 걸쳐지면서 (자녀 침실 두 개를 제외한 모든 방들이 레벨을 달리 한다) 최종적으로 최상층 거실에 이른다. 우리 몸의 움직임에 율동을 주는 이러한 단의 설정을 달가워하지 않을 이는 무릎이 좋지 않은 노인과 로봇청소기 정도가 있을 것이다. 800mm의 복도 폭은 우리의 몸을 감싸고 있고, 구조적 논리가 아닌 직립한 인간의 형상에 맞춘 아치형 문이 사용되기도 했다. 그의 건축은 딱 아늑할 정도로 우리의 몸을 조였다가 순간순간 풀어준다.

다양한 레벨의 공간구성은 20세기 초 아돌프 로스가 라움플랜이라는 개념으로 구축했던 비엔나, 파리, 프라하의 주택들을 떠올리게 한다. 로스는 밀도 높은 도심의 주택을 설계하면서 다양한 층고의 방들을 3차원적으로 솜씨 있게 조합했고, 그 결과 다채로운 단면이 형성되어 방과 방 사이 레벨 차이와 개구부를 통해 동선과 시선의 흐름을 조성했다. 다만 입면은 순수한 입방체로 최대한 간단하게 처리하면서, 때로는 자유롭게, 때로는 분명한 질서 하에 개구부를 배치했다.

O 하우스의 입면도 마찬가지다. 색채는 익숙하나 비례는 낯선 적색 유광타일이 단아한 형태의 매스를 덮으며 하나의 단일체를 형성했고, 여기에 1350x1350mm으로 규격이 통일된 창들이 내부의 필요에 따라 무심한 듯 분포되어 있다. 형태와 마감이 단순한 매스에 동일한 크기의 창 만을 배치하는 전략은 2011년의 아산 C 주택에서도 나타난 바 있는데, 다만 창이 입면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이제 현저히 줄어든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적절히 닫아주면서도 아늑한 공간을 만드는 것으로 내부 공간의 목적이 바뀌었고, 자칫 폐쇄적인 실내를 만들 위험도 있는 그러한 작업에 건축가가 자신감을 갖게 되었음을 보여준다. O 하우스의 창들은, 답답할 수 있는 계단길의 시각적 도달점, 거실에서 먼 산을 바라보는 방향 등 내부의 필요에 따라 그 위치가 잡혔다. 다만 각기 다른 목적과 위치에도 불구하고 그 크기가 균일한 점은, 적정한 조도를 통해 내부 공간의 질을 조정하고자 하는 건축가에게는 궁금한 선택이다. 입면에서 임의적인 구성의 문제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스스로 부여한 제한으로 읽히는데, 디자인의 자의성은 벗어나려 해도 완전하게는 벗어날 수 없는, 탈피하고자 할수록 그것이 하나의 집착이 돼버리는 그런 것이 아닐까. 

 

지금까지 살펴본 네 작품에서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것은, 다양한 레벨로 조성된 바닥이 만들어내는 내부 공간과 그것이 제안하는 독특한 생활 양식, 그리고 입면 구성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의지다. 많은 건축가들이 입면 구성을 난제로 이야기한다. 최문규는 설계과정에서 “입면을 그린다는 것”이 가장 어렵다고 하면서 “디자이너의 직관력 또는 감각으로 입면을 구성하는 것에 대해 아직도 스스로 확신을 갖지 못하고 있다”고 이야기한 바 있다.▼​5 구체적 프로그램에 대응하며 공간을 형성하는 내부 구성이 아니라, 면을 나누고, 색을 지정하며, 비례를 조정하는 입면의 일은 실로 건축설계에서 가장 2차원적이고 회화적인, 자의적인 디자인의 영역이다. 이러한 어려움은 오늘날 우리에게 입면의 기율로 삼을만한 것이 거의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내부의 투영과 관계된 이야기들 외에, 우리가 입면의 구성에서 기댈 수 있는 게 무엇이 있을까.

로스로 돌아가자면, 내부와 외부의 이원성은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 삶과 예술, 일상과 표상의 간격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내부는 개성을 드러내는 영역이며, 외부는 개성을 숨김으로써 도시적 삶의 고단함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는 방어막이었다. 당대 문명과 문화에 대한 로스의 다층적인 대응들이 극도의 이원성에 담겨있다. 이것이 저것의 결과가 아니라, 스스로의 목소리들을 지닌 것이다. 둘 사이의 긴장이 메시지이다. 구성에 대한 거부감으로 거리를 두기에는, 입면이 하고 있는,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너무나 많다.

 


O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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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르 코르뷔지에, 『건축을 향하여』, 62~81쪽,이관석 역, 동녘, 2002. 

2. 민현식, 『땅의 공간-땅의 형국을 추상화하는 작업』, 74~97쪽, 미건사, 1998. 

3. 배형민, 『감각의 단면, 동녘』, 202~297쪽, 2007. 

4. 최문규, 김성홍, '상황과 조건의 특수해', 46~53쪽, 「SPACE(공간)」 572호. 

5. 앞의 글, 48쪽.

 


최원준
숭실대학교 건축학부 부교수로 건축사와 건축 이론 및 설계를 가르치고 있다. 서울대학교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건축역사 및 이론 전공)를 받았다. 이로재에서 실무를 익혔으며, 뉴욕 컬럼비아대학교 건축・계획・보존대학원 연구원으로 박사 후 연구를 진행하였다. 현재 목천건축아카이브에서 한국 근현대건축 아카이브 구축 작업에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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