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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다시 쓰는 여섯 가지 방법

이성제 기자
사진
서스테인웍스
자료제공
일민미술관
background

일민미술관에서 기획전 <불멸사랑>이 열리고 있다. 회화에서부터 가상현실까지 매체가 상이한 작업들을 선보이며 ‘동시대성의 조건 아래 역사가 어떻게 새로운 양식화를 이루는지’ 살펴보려는 전시다. 전시에 참여한 여섯 명의 시각예술가들은 기록되지 못한 사실을 불러내거나, 기록될 수 없는 것들에 대해 또는 문자 기록이 아닌 다른 방식의 역사 쓰기에 대해 이야기한다. 3・1운동 100주년,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은 올해, 이 같은 시도는 역사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고 다른 각도에서 역사를 바라보게 만든다.

 

뮤지엄에 일렁이는 신화 속 이미지

1층 전시장에 들어서면 벽면을 가득 채운 도상들이 관람객을 맞이한다. 눈 큰 개구리, 입 달린 버섯, 날개 달린 괴수 등 전래 동화에 나올 법한 이미지들이 울긋불긋 색을 입고 일렁인다. ‘신화적 모티브를 통해 인간의 존재와 역사를 탐구’하는 파비앙 베르쉐르의 ‘매일매일이 너의 생일’이다. 그는 전시장 벽면뿐만 아니라 한지, 책상, 풍선 기둥 등 곳곳에 그림을 그려 넣었다. 이번 전시를 준비하며 서울, 부산, 제주를 돌아다녔다는 것을 증명하듯, 화첩에는 교회 십자가, 돌하르방 등의 형상이 출몰한다. 그의 회화는 페이지가 허락하는 한 끝없이 펼쳐질 것 같은 인상을 준다. 이는 그리기 방식과 관련 있을 것이다. 작업 영상을 보면 붓놀림을 따라 형태들이 줄지어 피어난다. 민담 구술자가 정형구를 변주하며 이야기를 풀어내듯이, 파비앙 베르쉐르는 그의 도상들을 불러내며 화폭을 채운다. 이들의 배치는 전체 윤곽 내에서 사전에 계획됐다기보다 앞선 붓놀림에 의해 결정된다.

파비앙 베르쉐르의 회화는 이미지의 유사성에서 서용선의 작업들과 짝을 이뤄 볼 수 있다. 다만 두 작가가 역사를 대하는 태도는 상이하다. 전자가 근대적 역사 서술 방식에서 비켜있다면, 후자는 쓰인 역사에 틈입하고 이를 교란한다. 서용선은 ‘수많은 역사적 기억들과 신화적 상징을 그려오며 한국사의 단편을 들춰오고 재생’시켜왔다. 이번 전시에서는 미술관 건물 5층의 신문박물관을 전시장으로 활용했다. 그의 회화와 조각은 한국 신문사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박물관의 내러티브에 변형을 가한다. 1900년대 초 근대 신문을 보여주는 진열장에는 철모를 쓴 군인의 얼굴을 그린 그림이 나란히 놓이고, 현대사의 주요 장면을 포착한 보도사진들을 배경으로 역사적 사료라도 되는 듯 마고, 반고, 서왕모 등 신화 속 존재들이 등장한다. 박물관 입구에 자리 잡은 목상부터 1950~60년대 기자들의 책상을 재현한 섹션에 걸린 유화까지, 건조하던 박물관에는 감정이 물씬 피어 오른다. 서용선의 작업 속 왜곡된 사람 형상, 육박하는 색채들이 근・현대 한반도에서 벌어진 곡절들과 이 사건들이 빚은 집단적 정서를 건드리기 때문일 테다.

 

어제와 오늘의 타임라인

2층에 걸린 이우성의 작업들은 관람객을 동시대로 이끈다. ‘밤, 걷다, 기억’은 자신의 생활상을 손바닥만한 정사각형 종이에 그려 넣은 303개의 드로잉 기록으로 인스타그램에 남긴 그날의 사진 일기처럼 보인다. 드로잉은 벽면을 따라 한 컷씩 이어지는데, 누군가와 보러 간 바다, 어느 여름의 아파트 단지, 기념일 초를 꽂은 케이크 등 소소한 풍경들이다. 촛불집회와 탄핵심판 선고처럼 역사에 기록될 사건들과 꿈속에서 등장할 법한 이미지들 또한 곳곳에 자리 잡고 있다. 검은 펜으로 그린 세밀화라는 형식과 그 안에 담긴 일상적 모습 때문인지 아련하고 애틋한 감정을 자아낸다. 소셜 미디어의 타임라인을 따라 흘러가는 날들, 컴퓨터 알고리즘이 길어 올리는 3년 전, 5년 전의 추억들처럼 말이다. 이곳엔 상고시대부터 굽이쳐 내려오는 유구한 시간 흐름도, 미래를 향해 전진하는 역사적 운동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저 평범하고 단편적인 것들이 모여 생활의 작은 리듬을 이루고 있다.

말랑말랑한 감성적 공간 옆으로 하얀 천 위에 흙덩이를 집어 던진 조은지의 퍼포먼스 설치물 ‘땅, 땅, 땅, 흙이 말했다’가 놓여 있다. ‘시간의 수행행위’에 주목해온 조은지는 ‘집단의 폭력뿐 아니라 그 폭력에 대한 기억의 집단화에서 소외되는 개인의 모습과 현실을 마주하게’ 하는 작업을 진행해왔다. 이번 전시에서는 앞서 언급한 퍼포먼스 설치 이외에 ‘검정 우산을 쓴 여인의 초상’도 선보이고 있다. 이 작품은 인도네시아의 대학살에서 살아남은 한 여성에 대한 비디오 초상화다. 도입 부분에서 인터뷰이의 전신을 보여준 뒤 손, 다리, 한쪽 얼굴 등 신체의 일부만을 비춘다. 인터뷰이의 구술에는 번역이나 해석이 달리지 않았다. 중간중간 컨테이너 박스를 배경으로 무용가들의 무언극이 삽입돼 있다. 영상 속 신체의 떨림, 격렬한 몸짓들은 분명 무엇인가를 증언하고 있는데, 단어와 문장으로 그 의미가 정리되지 않는다. 몸에 새겨진 폭력의 기억은 온전히 언어화되기 어렵다. “언어로 발화되는 기억보다 신체의 움직임으로 새겨진 기억을 더 신뢰한다”는 작가의 표명은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데이터로 산화되는 개인

이제까지 언급한 작업들은 회화, 조각, 몸(퍼포먼스) 등 고전적 매체를 활용했다. 그런데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는 디지털 기술을 기반에 둔다. 일상은 물리적인 현실뿐만 아니라 스마트폰으로 매개되는 인터넷 공간에도 있다. 동시대성의 조건 아래 ‘역사의 양식화’를 살펴보려면 디지털 기술에 대한 탐구가 필요하다.

가상현실을 작업의 매체로 활용해 ‘현실과 가상의 양가적 관계’를 탐구해온 권하윤은 ‘489’와 ‘새 여인’을 선보인다. 이번 전시에서 ‘새 여인’은 화면에 영사되고 있지만, 원래 두 작품 모두 관람객이 가상현실 기기를 착용한 채 가상공간을 체험하도록 한다. 중력이 느껴지지 않고 공중을 떠다니는 듯 시점이 변하는 세상. 이곳에서 사건은 입력된 프로그램에 따라 자동 재생되거나 관람객의 위치에 맞춰 나타나고 사라진다. 게임 속과 유사한 시공간 경험이다. 역사의 주체로서 개인이 게임 속에서 플레이어가 된다면, 사건들을 직조한 역사는 플레이어가 풀어야 하는 일종의 ‘퀘스트’가 되는 것인지 궁금해진다. 적어도 이와 같은 조건에서는 작가가 탐구하는 ‘역사나 사실의 왜곡’이 진지한 문제로 수용되기 어렵다. 그래도 역사를 다시 쓰는 비판적 활동이 일종의 놀이가 된다면, 엄숙함이 옅어진 자리에 새로운 가능성이 발생할 수도 있을 것이다.

강이연은 컴퓨터 코드, 알고리즘을 활용한 프로젝션 설치 작업 ‘연속체’를 선보인다. 장막을 걷고 어두컴컴한 전시 공간에 들어서면 세 대의 프로젝터에서 영사되는 이미지들을 마주하게 된다. 이미지들은 큐브, 도넛, 기둥, 선 등 도형 요소들로 구성됐는데 특정한 의미, 논리 관계가 읽히지 않는다. 도형들은 그저 끊임없이 변한다. 거대한 큐브가 쪼개지면서 작은 파편이 되어 구름 덩어리를 이뤘다가 원형 도넛으로 탈바꿈하는 식이다. 한쪽 벽면에서 반대편으로 급격하게 이동하기도 하는데, 현란한 움직임은 전시장 바닥을 채운 거울판에 반사되어 전시 공간에 일종의 환영을 만들어낸다. 벽면에 영사되는 이차원 이미지가 마치 삼차원처럼 보이는 것이다. 관람객은 전시 공간에서 이미지들에 휩싸이고, 지각 능력을 넘어서는 움직임에 마비된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시스템에 매몰되지 않는 우리 자신이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공감하기가 어렵다. 우리를 둘러싼 기술들은 압도적일뿐더러 우리는 이미 거대한 데이터가 생성・수집되는 시스템의 한부분을 이룬다. 상하좌우의 공간도, 어제오늘의 시간 흐름도 감각되지 않는 ‘연속체’의 시공. 이곳에서 주체적으로 움직이는 것은 멍 하니 바라보는 관람객이기보다 무수히 반복, 확장, 재생산을 거듭하는 연속체의 이미지, 이를 만드는 시스템이 아닌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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