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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성의 현대화를 위한 건축 제안

김성욱, 전유창, 한만경
사진
전유창
자료제공
에이디 랩
background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 캄보디아의 고유한 정체성이 현대적 가치를 수용할 수 있는 강력한 도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에 공감했다. 지역성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세계화라는 이름으로 부여되는 현대성과 효과적으로 절충하는 방법을 모색했다. 이 과정에서 지역 고유의 건축 어휘에 대한 연구와 분석이 이루어졌고, 현대 교육시설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공간구조를 지역 건축과 절충하는 방법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세계화, 그 미묘한 파괴​

세계화라는 개념에는 축적된 자본이 지역 단위를 넘어 세계로 확장된다는 의미가 내재돼 있다. 세계화의 진행에는 현대화된 제도와 문화가 빠른 속도로 다른 나라에 전파되고 섞이는, 이른바 혼혈 현상이 나타난다. 현대화된 교육시설은 자본주의 체계에서 정립된 프로그램으로, 서구식 교육 제도의 확산은 지역적 특성과 충돌을 일으킨다. 지역 고유의 문화 체계를 변형하고 더 나아가 전통문화와 생활양식의 해체로 이어지기도 한다. 스타 건축가와 서구의 대형 사무소가 이끌어온 건축 분야의 세계화는 건축물 자체를 일종의 상품으로 만들어 개발도상국에 수출하는 방식으로▼1 진행돼왔다. 기술력으로 확보한 우월한 지위를 토대로 이미지화된 상품으로서의 건축물을 각 지역에 수출하는 것이다. 이러한 건축 영업에서 지역 문화에 대한 이해와 포용은 취약하다. 전통 양식을 과장하거나 해당 지역의 상징적 이미지를 은유하는 수준의 접근이 주를 이룬다. 비판적 사고가 결여된 상태로 지역 문화를 차용하는 표피적 건축은 문화의 공존이라는 관점에서 지역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들은 해당 지역의 문화적 연속성을 유지하지 못하게 하고 미묘한 문화적 파괴를 일으킨다.

세계화에 대한 이전 논의들은 자본주의 확산이 어떻게 지역 문화를 잠식하는지 밝히는 것과 관련이 있었다. 현재는 지역성 구현 요소를 다층적으로 이해하고 이를 비판적으로 수용해 어떻게 절충해야 하는지에 대한 것으로 전환되고 있다.▼2 현대 교육시설은 자본주의 경제 시스템을 지탱하기 위한 노동 인력의 배출을 목표로 전 세계로 확산됐다. 세계화라는 측면에서 교육은 하나의 시스템으로 상품화되고, 학교라는 프로그램은 교실・행정실・체육관・강당 등 교육 과정상 요구되는 공간을 유형화하며 탄생했다. 이처럼 형식화된 프로그램과 유형화된 공간 구조는 세계화의 물결을 타고 다양한 지역으로 퍼져나간다. 지역성을 문화・풍토・사회구조의 발현으로 정의한다면, 현대적 교육 프로그램이 유입되면서 벌어지는 현대성과 지역성의 충돌은 필연적이다. 두 특성이 조화를 이루는 절충적 건축, 즉 양자택일이 아닌 양자공존의 설계 방법에 대한 이해와 공감이 필요한 이유다.

 

캄보디아, 지역성과 건축

“이 세상의 펜으로 묘사할 수 없는 웅장하고 뛰어난 건축물.” 1856년 포르투갈의 수도사 안토니오 다 막달레나가 캄보디아 앙코르와트를 방문하면서 느낀 감동은 현재 이를 경험하는 이들에게도 지나친 과장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크메르 제국의 건축적 성취는 복잡 다단한 역사 속에서 명맥을 잇지 못했다. 1953년 프랑스로부터 독립한 뒤 국왕의 지원과 건축가 반 몰리반▼3의 활약으로 이룬 ‘새로운 크메르건축’▼4이라는 짧은 번영을 제외하면, 1970년 쿠데타와 독재, 내전, 미국의 폭격, 크메르 루즈의 대학살 등 연이은 비극▼5은 캄보디아에 문화적 침묵을 낳았다. 현재 캄보디아에는 외국자본이 유입돼 지역 맥락과 다른 새로운 건축 지형이 형성되고 있다. 그러나 지역적 특성과 문화에 대한 이해가 결여된 채 경제 논리에 따라 급진적으로, 지역성의 해체를 초래하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이번 프로젝트를 계획하면서 새로운 건축관과 인위적 해법을 강요하기보다 전통적 맥락을 이해하고 존중하면서 미래지향적 교육 공간을 구성하려고 했다. 전통 크메르 건축, 콜로니얼 건축, 기후환경에 적절히 대응하기 위한 캄보디아 지역 건축 등에서 공간 개념을 찾고자 했다. 회랑과 비워진 중정, 외기와 직접 면한 복도, 깊은 외벽 공간을 통한 태양광 조절, 원초적 느낌을 주는 거친 표면, 최소한의 디테일, 지역 재료의 색상과 질감, 삼삼오오 무리 지어 활기찬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 등 아름답고 다양한 맥락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들을 종합해 전통과 현재, 미래의 가치가 공존하는 교육 공간을 창조하고자 했다.

 

아클레다 경영대학교 - 지역화된 현대성

아클레다 경영대학교 캠퍼스는 90×56m 규모(회랑 포함)의 중정을 중심으로 계획됐다. 2019년 현재 캠퍼스 설립 1단계가 완료돼 본관, 교육동A, 교육동B, 도서관 등 네 동의 건물이 중정을 둘러싸고 있다. 추후 2단계에서는 중정 공간을 한 겹 더 둘러싸는 건물 네 동과 운동장 뒤쪽 기숙사동이 건설될 예정이다. 서쪽으로 열린 진입, 중정을 둘러싸는 회랑, 중정의 비례 등은 앙코르와트에서 발견되는 건축적 특징을 참고한 것이다. 캠퍼스는 스케일이 각기 다른 외부 영역과 프로그램들이 조화를 이루도록 계획됐다. 우선 정문으로 들어오면 주차 및 의전을 위한 외부 공간을 지나 본관 건물을 거치게 된다. 행정・사무 공간, 학생 식당 등으로 구성된 본관 건물에는 가운데 21×26×9m 크기의 보이드를 뒀다. 하늘로 열린 보이드는 볼륨을 나누고 건물에 깊이감을 주며 빛과 바람을 들인다. 경사가 진 지붕은 본관이 캠퍼스 관문임을 드러내도록 디자인했으며, 지붕과 슬래브 사이를 띄워 일사에 따른 열기를 적절히 받아내도록 했다. 또한 서쪽 입면은 타공 메탈 패널로 된 흰색 루버를 달아 기후환경에 대응하면서 입면 요소로 활용했다.

본관을 지나면 중정을 마주하게 된다. ㅁ자로 된 중정은 휴식과 상징의 공간이자 교류 공간이다. 중정 가장자리를 따라 교육동과 도서관 등 주변 건물을 연결하는 회랑이 이어지는데, 회랑의 규칙적 기둥 배열이 이곳에 정적인 분위기를 더한다. 편안한 스케일의 공간감이 부여되도록 주변 건물의 높이와 비례도 조절했다. 주변 건물들의 보이드가 중정을 향하도록 해, 중정과 보이드 공간 사이에 입체적이고 시각적 교류가 일어나도록 유도했다. 비, 바람, 햇빛의 변화를 자연스럽게 담아내도록 중정을 비우고 조경도 최소한으로 했다.

교육동과 도서관의 ‘입체적 보이드로 구성된 다양한 교류 공간’(이하 보이드 공간)은 이 프로젝트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건축적 특징이다. 회랑, 복도, 보이드 공간들은 유기적으로 중첩되고 연결되어 학내 다양한 활동의 접점으로서 그 역할을 수행한다. 내외부 구분이 모호한 보이드 공간들은 지상에서, 또 건물의 각 층에서 캠퍼스 중정과 긴밀하게 엮여 있다. 테라스 형태의 보이드 공간은 세미나, 수업 준비, 휴식 등의 복합적 용도로 설계됐다. 비형식적 교육 공간이 중요해진 현대 교육에서 융합 교육 공간으로서 소규모 커뮤니티를 활성화하기 위한 시도다. 교육동은 전통적 색채와 질감, 확장된 보이드 공간, 빛과 그림자의 활용 등을 고려해 설계됐다. 루버와 보이드 공간으로 외벽에서 깊이감과 리듬감이 느껴지도록 했다. 도서관은 대칭을 이루는 팔각 형태에 테라스를 비대칭적으로 조합한 외관으로 중정의 정적인 분위기에 변화를 준다. 발주처 요청에 따라 불교에서 ‘깨달음으로 가는 완성단계’를 뜻하는 팔각형을 조형에 반영했다. 내부는 여러 보이드들을 엇갈리게 배치했다. 도서관이 공공 공간으로 자리매김해온 경향과 정보 접근성을 높이려는 측면을 고려한 것이다. 캠퍼스 중정이 형성하는 공간의 공공적 성격은 도서관 내부의 보이드 공간을 따라 3층 테라스까지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내부의 서고는 엇갈린 오픈 보이드 공간을 마주하며 시각적으로 펼쳐지도록 했다. 상부에는 수평 천창을 두어 햇빛이 보이드를 따라 도서관 내부에 확산되도록 했다. 

 

현대화된 지역성을 위해 

아클레다 경영대학교 캠퍼스는 물리적 환경에 대한 대응뿐만 아니라 지역의 문화, 역사를 통해서 형성된 사회적 조건을 형상화하는 과정이었다. 다양한 배경을 지닌, 국가와 지역의 이해 집단들이 협의하고 의견을 절충하며 캠퍼스는 구현됐다. 이 과정에서 대지와 새 프로그램에 내재된 사회・문화적 의미를 고려하는 중재자로서 건축가의 역할이 요구됐다. 현대화된 지역성의 구현은 지역 건축이 형성해온 독특한 가치를 이해하고 받아들일 때 가능하다. 소수의 전문가가 건축을 독단적으로 제안하고 이를 무분별하게 수입・수용하는 시대는 지나가고 있다. 지역성에 대한 존중과 이해를 통해 세계화의 흐름 속에서 지속가능한 문화의 토대를 건축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지가 핵심이다. 현대화된 지역성의 실현은 개념의 명료함보다 절충의 풍부함을 택하는 공존의 태도로 이루어져야 하며, 이는 시대와 장소를 넘어 지속가능한 건축이 담아야 하는 가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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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최근 세계 각지에 만들어지고 있는, 투명한 유리박스의 애플 스토어는 건축의 상품화를 보여주는 사례다.

2. 대표적인 두 관점으로, 우선 케네스 프램튼은 『The Anti-Aesthetic: Essay on Postmodern Culture』에서 비평적 지역주의 관점을 견지하며 건축의 결정적 요소로 환경을 강조한다. 재료 사용, 체험의 감각적 표현, 지역 건축의 전통적 표현 방식, 그리고 시각・촉각・청각 등 감각 체험을 지역성을 드러내는 중요 요소로 본다. 반면 스티븐 무어는 『Technology, Place, and Nonmodern Regionalism』에서 기술과 장소 개념을 이해하는 방식 그리고 이를 정치적・생태적 관점에서 지역 건축으로 수용하는 방식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지역적 특성에 대한 내부적 자각과 세계화에 대한 경계, 자성의 목소리가 공존한다.

3. 반 몰리반(1926~2017)은 캄보디아에서 새로운 크메르건축을 선도한 대표 건축가로 전통과 현대적 원리를 결합한 많은 건축물을 남겼다. (「New York Times」, 2017. 9. 28)

4. 당시 왕자였던 노로돔 시하누크(Norodom Sihanouk, 1922~2012)의 전폭적인 지지하에 1953년(독립)부터 1975년(크메르 루즈 집권)까지 일어났던 문화운동으로 신재료 사용, 전통건축기술 참조, 자연환기와 그늘 응용, 전통부조 사용 등을 특징으로 한다.

5. Michael Falser, Cultural Heritage as Civilizing Mission: From Decay to Recovery (New York: Springer International Publishing, 2015), p. 150.

 


 


 


 


 


 


 


 
 


 

 


 


김성욱
홍익대학교에서 건축학을 공부한 뒤 예일대학교에서 건축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스미스그룹, 라파엘 비뇰리 아키텍츠에서 프로젝트 아키텍츠/디자인 매니저로 실무를 수련했으며, 2004년 미국건축사 자격을 취득했다. 주요 수상경력으로 제13회 대한민국 건축대전 대상, AIA/AAF 스콜라스틱 어워드 등이 있다.
전유창
인하대학교 건축공학과를 용마루상을 받고 졸업한 뒤 미국 컬럼비아대학교에서 건축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1999~2007년 뉴욕의
미첼/지아골라 아키텍츠에서 디자이너 및 이사로 재직했으며 제35회 일본 센트럴 글래스 공모전 대상을 받았다. 다수의 국제 공모전에서 수상했다. 현재 서울시 공공건축가로도 활동 중이다.
한만경
인하대학교 건축공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 대학원 졸업하였다. 원도시건축, 건축사사무소 유에이디에서 실무를 경험하였다. 러시아,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캄보디아에 지사를 두고 있는 에이치에스앤케이건축사사무소의 대표로, 다국적 건축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다. 대표작으로 인하공업전문대학 기초실습관(2009), 주 우크라이나 대한민국 대사관 관저(2014), 사마르칸트 직업 훈련원(2015), 우즈베키스탄 한국문화의 집(2015), 카자흐스탄 아스타나 복합시설(2016)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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