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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 피라미드가 사라졌다

JR ×김금영 객원기자
자료제공
페로탕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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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리 피라미드가 사라졌다​ > 
페로탕 서울
17 January – 9 March, 2019

2016년 5월 파리 루브르 박물관 마당의 거대한 유리 피라미드가 사라졌다. 정확히는 사라진 것처럼 교묘하게 감춰졌다. 루브르 박물관의 전시 초대를 받은 사진작가 JR이 흑백 착시 이미지로 피라미드 전면을 뒤덮었기 때문이다. 그는 세계 각지의 도시와 자연 경관 속에 기념비적 사진 콜라주를 설치하는 작업을 진행하며, 우리가 미처 보지 못하는 풍경을 보여주는 데 집중하고 있다. 이번 서울 전시에서는 최근의 장소특정적 작업 11점을 선보인다.

©Jo Youngha

김금영(김): 1988년 루브르 박물관 정문으로 사용하기 위해 만든 I.M.페이의 유리 피라미드는 박물관의 상징과 다름없다. 이를 사라지게 만든 발칙한 아이디어의 출발이 궁금하다.
JR: 루브르로부터 전시 제안을 받고 매우 기뻤다. 어떤 작업을 해야 할지 고민하면서 피라미드에서 며칠 동안 시간을 보냈다. 그때 피라미드를 등지고 서서 셀카를 찍는 사람들의 모습을 가장 많이 발견했다. 왜 사람들은 힘들게 피라미드에 찾아왔는데 그 피라미드를 등질까? 그러면 차라리 피라미드를 없애보는 건 어떨까? 이런 생각을 바탕으로 진행한 작업이다. 관람객이 입구를 마주본 채 특정 위치에 서면 피라미드가 완전히 사라진 것처럼 보인다. 이 특정 위치를 찾아 기념사진을 찍기 위해 줄을 서는 사람들의 모습도 흥미로웠다. 피라미드 앞에 서서 셀피를 찍는 사람들의 모습들도 사진 작업으로 남겨두었다.​

김: 이번 전시에서는 루브르 프로젝트가 어떻게 이뤄졌는지 여정을 함께 가늠해볼 수 있는 도안 등도 함께 선보인다. 결과뿐 아니라 과정도 볼 수 있어 흥미롭다.​
JR: 결과물만 보면 쉬워 보일 수 있지만 결코 과정이 만만치 않았다. 참고용 이미지를 여러 가지 늘어놓고 수많은 조합을 거쳤고, 완벽한 착시 효과를 만들기 위해 어디쯤에서 이미지를 자르고 붙여야 할지 굉장히 고민했다. 고민하는 과정 또한 예술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전시에 선보인 몇 가지 도안을 들여다보면 비밀스러운 장치도 찾아볼 수 있다. 유리 피라미드에 부착한 루브르 박물관 사진에 약간의 조작을 가해두었기 때문이다. 사진을 자세히 보면 건물에 있는 몇몇 조각상들이 붓과 청소도구를 쥐고 있는 모습이 보일 것이다. 실제 건물 사진을 이용해 착시 효과를 만들고 있지만, 실제와는 이런 사소한 것에서 차이가 있다. ​

김: 설명하지 않으면 알아차리기 힘든 비밀을 작업에 넣은 의도는 무엇인가?​
JR: 난 작업이 끝나면 사인이 아니라 내 흔적을 남긴다. 비밀은 내 흔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비밀을 찾아나서는 사람들 덕분에 내 흔적은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 사람들과 공유하는 장치가 된다. 궁극적으로 소통을 목표하는 만큼 내게 이 과정은 중요하다. 루브르 박물관에서의 작업도 마찬가지다. 세계의 유명 관광지는 수많은 사람들이 만나는 장소인데 이들이 아무 소통도 없이 지나치는 건 재미없지 않은가? 상징적인 유리 피라미드가 사라진 걸 본 사람들이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재미있다’, ‘이건 무슨 프로젝트인가?’ 등 호기심을 갖고 스스로 많은 질문을 만들어보길 바랐다. 사진에 조작을 가한 몇 가지 비밀 장치는 소통의 매개가 될 것이다. 캘리포니아 데스밸리에서 주변의 산악 경관을 재현했던 프로젝트에도 비밀 장치를 숨겨뒀었다. 거대한 흑백 사진 설치물에 적힌 번호로 전화하면 숨겨둔 스피커를 통해 통화음이 사막에 울려 퍼지게 했다. 이 작업은 캐나다 인디 록밴드 아케이드 파이어의 앨범 ‘에브리띵 나우(Everything Now)’를 위한 커버 아트 협업이기도 했다. 앨범 발매시기에 퍼포먼스를 통해 사람들과 재미있는 소통을 시도해보고 싶어 진행한 프로젝트였다.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아 전화를 거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김: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뿐 아니라 베를린 브란덴부르크 문에서의 작업 또한 화제가 됐다. 여러 장소에서 작업을 제작하는 만큼, 베를린의 장소성에 대해서도 많은 고려가 있었을 것 같다.​
JR: 2018년 10월 3일 독일 통일을 기념하며 제작한 작품이다. 베를린의 브라덴부르크 문은 프랑스의 에펠탑이라고 불릴 만큼 중요성을 지니기에, 베를린의 역사적 성격을 작품에 담고 싶었다. 그래서 이용한 것이 1989년 11월 10일 베를린 장벽 붕괴의 순간을 담은 아리리스 헤세의 기록 사진이다. 사진에는 장벽의 붕괴를 기뻐하는 군중들과 할 일을 잃은 국경수비대원의 모습이 담겨 있다. 현재 벽은 없어졌지만 이 작품을 통해 당시의 희열을 현실로 가져오고 싶었다. 의도했던 것은 아니지만, 미국과 멕시코를 가르는 철제 장벽 위에서 국경 수비원을 내려다보는 거대한 꼬마의 이미지를 담은 ‘키키토(Kikito)’와도 공명한다.​

김: 루브르 박물관, 브란덴부르크 문 등 유명한 건축물을 작업 대상으로 삼았다. 특별히 매력을 느끼는 건축물의 조건이 있나?​
JR: 사실 내가 더 관심을 갖고 보는 것은 사람들이다. 건축물도 결국 사람이 지은, 사람의 이야기가 들어 있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건축물을 소재로 하지만 건축물이 위치한 도시를 살펴보고 사람들의 삶을 읽는 게 중요하다. 사람이 사는 도시환경에 작업으로 관여하고 싶다.​

김: 한국에서 매력을 느낀 건축물이 있었는가?​
JR: 아쉽게도 구체적인 장소는 보지 못했다. 내 작업은 사람들을 알아가는 과정이기에 천천히 시간을 갖고 도시를 둘러봐야 한다. 다시 서울에 올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면 주의 깊게 도시 구석구석을 돌아보고 싶다.​

김: 컬러풀한 도시를 배경으로 두고 여기에 흑백 이미지로 개입하는 방식이 돋보인다. 작업에 주로 흑백 이미지를 사용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는가?​
JR: 최초의 작업이 흑백 사진이었다. 사실 금전적인 이유 때문이었는데, 지금은 내 시그니처가 돼버렸다. 더불어 도시환경에서 흑백 사진이 주는 힘이 있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거리에는 수많은 컬러풀한 광고 사진이 붙어 있는데, 비슷한 컬러 이미지로는 차별성을 가지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난 사람들이 내 이미지를 광고사진이 아닌 예술 작품으로 인식하길 바랐다.​​

김: 담벼락이나 건물, 자연 등 현장에서 작업을 하는 탓에 스트리트 아트 작가로 일컬어지기도 한다.​
JR: 내가 18살이던 2005년 프랑스에서 큰 폭동이 일어났다. 당시 폭동으로 인해 불타던 차의 이미지를 찍었는데 이것이 내 작업의 시작이었다. 의도치 않은 이미지나 이슈로부터 영감을 받아 사진을 찍는다. 길거리가 내 작업과 떼어놓을 수 없는 건 당연하다.​

김: 길거리나 전시장뿐 아니라 SNS 같은 디지털 공간에서도 작업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JR: SNS는 내가 상상하지 못한 일을 가능하게 했다. 언젠가 ‘키키토(Kikito)' 작업을 SNS에 올렸는데, 이때 설정해둔 위치 덕분에 미국과 멕시코 양쪽의 사람들이 이 작업을 궁금해 하고 관심을 보였다. 사람들끼리 정보를 공유하는 등 소통 과정이 저절로 일어나는 모습이 신기했다. SNS 역시 사람들의 상호작용을 만들어내는 공간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내가 인터넷이 발달된 이후 작업을 했다면 작업 방향도 많이 달라졌을 것 같다. 지금은 개인 작업을 SNS에 올리는 정도에 그치지만, 계속해서 내게 주어진 수단과 순간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싶다.

김: 대형 사진 콜라주 작업을 꾸준히 이어올 수 있었던 원동력이 대단하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이어질까?​
JR: 솔직히 사진 콜라주라는 틀에 작업을 한정하고 싶지는 않다. 어떤 매체나 방식보다는 전통적 코드를 전복시키는 시도에 관심이 많기 때문이다. 새로운 매체, 장소에 도전하고 싶다. 작가는 신이 아니기에 실패할 수도 있다. 그리고 실패를 해봐야 발전할 수 있다고 믿는다.​

JR, ‘자이언트_데스 밸리의 광고판’, 사진, 플렉시 유리, 알루미늄, 나무, 105×170cm, 2017

JR, ‘자이언트_브란덴부르크 문’, 사진, 플렉시 유리, 알루미늄, 나무, 100×160cm, 2018


JR
JR은 독학으로 예술계에 입문해, 지난 15년 동안 세계 각지의 도시와 자연경관 속에 기념비적인 사진 콜라주 작업을 진행해왔다. 자신의 작품을 통해 세상의 시선이 잘 미치지 않는 곳을 조명하고, 평범한 사람들 혹은 우리가 듣거나 눈치채지 못한 대상에게 관심 가지기를 원한다. 2018년 파리 유럽사진미술관에서 대규모 개인전 <모멘텀, 사건의 역학>을 열었다. 또한 지난해 4월에는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에서 대형 디지털 프레스코 벽화 ‘샌프란시스코 연대기’를 공개했다. 올해 가을 뉴욕 브루클린 미술관에서 열리는 대규모 전시회에도 참여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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