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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기치 않은 공명: 아시아 현대미술의 접점들

이성제
자료제공
국립현대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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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눈뜨다: 아시아 미술과 사회 1960s - 1990s>는 아시아라는 지역 맥락에서 아시아 현대미술의 역사를 다시 서술하려는 취지로 기획된 전시다. 일본, 중국, 대만, 홍콩,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 아시아 13개국 주요 작가들의 작품 170여 점을 선보이며 각국의 미술사를 비교 분석했다. 프로젝트는 한국 국립현대미술관, 도쿄국립근대미술관, 싱가포르국립미술관, 일본국제교류기금 아시아센터 등 네 기관의 협력으로 진행됐다. 전시 기획자들은 공동 현지조사를 벌이며 비교 접근에 필요한 지식과 관점을 공유했다. 또한 각 나라에서 사용되는 용어의 미묘한 차이에도 주의를 기울였다고 한다. 전시 개막일에는 연계 포럼 ‘아시아 현대미술의 접점들’이 열렸다. 각 기관의 전시 기획자들이 직접 기획 의도와 조사 내용, 이번 전시에서 주목할 작품 등에 대해 이야기하는 자리였다.

 

사회적 이야기를 담은 구상 회화

첫 번째 발표자인 스즈키 카츠오(도쿄국립 근대미술관 큐레이터)는 ‘아시아 미술 서사의 부흥’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는 “사회적 리얼리즘과 실험적 예술 사이에 다리를 놓으려고 한다”며 아시아 현대미술을 두 경향만으로 이분하는 기존 접근법에 문제를 제기했다. 그에 따르면,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근대국가가 수립된 아시아 지역에서는 1960년대 들어 국가 정체성을 강조하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이에 따라 예술가들의 관심은 개인 작업에서 일상, 사회 등 주변으로 확대되고, 현실에 적극 개입하려는 열망도 갖게 됐다. 삶과 예술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예술가의 현실 개입을 중요하게 여기는 경향이 대두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회화의 서사성이 되살아났다고 스즈키는 말했다. 당시 아시아의 자유주의 국가에서는 유럽과 미국의 영향 아래 앵포르멜, 추상표현주의, 미니멀리즘 등에서 파생한 추상 회화가 미술계를 휩쓸고 있었다. 이에 대해 일부 작가들과 비평가들은 사회 현실과 유리된 예술이라고 비판하며 구상 형식에 눈을 돌렸다. 스즈키는 한국의 미술 동인 ‘현실과 발언’, 필리핀의 ‘카이사한’, <민중을 위한 장소>전에 참여한 인도의 예술가들을 사례로 들었다.

이들의 작업을 살펴보면, 한국 민중미술 회화에는 시골 및 전통을 암시하는 상징과 광고 이미지가 나란히 그려져 있다. 벽화 언어를 차용한 ‘카이사한’의 작업에서는 군대, 병영 등의 이미지, 다국적 기업 로고 등이 병치된 모습이 보이고, <민중을 위한 장소>에 출품된 그림들에는 한 화면에 다양한 시공간이 혼재한다. 그림들은 구상 회화로 보이지만 현실을 있는 그대로 그린 사회주의 리얼리즘 회화와 결이 다르다. 이미지들을 몽타주해 이야기를 새롭게 구성했기 때문이다. 근대화와 도시화를 겪으며 복잡다단해진 현실을 총체적으로 이해하려고 한 시도였다. 스즈키는 “이러한 측면에서 아시아의 구상 회화는 그 자체로 읽어낼 거리가 있는 개념적인 텍스트로 보인다”며 “구상 회화는 관람객의 참여(읽기)를 유도해 이들의 주체성을 회복하고, 예술 전반에서 서사의 부흥을 촉진했다”고 주장했다. 또한 “1960년대에서 1990년대에 사회 비판적 예술이 하나의 경향으로 부상하는데, 구상 회화에 등장한 시각적 기호들은 퍼포먼스, 설치 예술 등에서도 발견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어두운 시기의 아방가르드 예술

어델 탄(싱가포르국립미술관 선임 큐레이터)과 마스다 토모히로(도쿄국립근대미술관 큐레이터)는 중국과 필리핀의 사례를 중심으로 전위예술에 대해 논했다. 먼저 어델 탄은 ‘1989년에 대한 이해와 그 여파’에서 <중국/아방가르드 현대미술전>을 소개했다. 그에 따르면 <중국/아방가르드 현대미술전>은 중국 현대미술의 전환점으로 거론되는 전시로, 190여 명의 아티스트가 참여하고 300여 점의 작품이 출품되는 등 당시의 전위예술을 두루 살펴볼 수 있는 자리였다.

전시는 1989년 2월 5일 중국국립미술관에서 열렸다. 정치적 긴장이 고조되던 시기, 정부 허가를 받고 개최된 전시는 시작한 지 2시간여 만에 막을 내렸다. 고지 없이 퍼포먼스가 행해졌다는 이유로 공안부에서 작품을 철수시키는 등 해프닝이 발생했는데, 무엇보다 루 샤오의 퍼포먼스 ‘다이얼로그’가 주원인이 됐다. 이 퍼포먼스는 남녀의 모습이 각각 그려진 두 대의 전화부스를 향해 불법 취득한 총을 발포하는 행위로 구성됐다. 퍼포먼스에 동원된 물건들과 방아쇠를 당긴 행위가 지닌 의미는 불분명했지만, 정부는 체제에 대한 항거로 받아들여 예술가를 구금하고 전시장을 폐쇄했다. 이는 전위예술이 기성 예술에 대한 반항, 새로운 개념 추구에 머물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준다. 다시 말해, 1960~1990년대 아시아에서는 전위예술에 사회 정치적 성격이 뒤따른다는 것이다. 어델 탄은 “당시 전위적 예술 활동은 정부의 허가를 받지 못해 대부분 고지 없이 게릴라식으로 행해졌다”며 “예술가들은 갤러리에서 작품을 전시하기보다 도시 공간으로 나와 작업 너머의 무엇인가를 전달하려고 했다”고 말했다.

마스다 토모히로는 필리핀의 음악인류학자이자 작곡가 호세 마세다에 주목했다. 필리핀 마닐라에서 태어난 호세 마세다는 미국에서 피아노, 작곡 등을 공부하고 음악인류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필리핀국립대학교에서 동남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등의 민속음악을 연구했다. ‘카세트 100’(1979)은 그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퍼포먼스 아트다. 페르디난도 마르코스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기 일 년 전 발표됐으며, 필리핀 문화센터의 로비에서 퍼포먼스가 진행됐다. 마세다는 100명의 연주자들에게 카세트 플레이어를 들고 로비를 돌아다니게 했다. 카세트 플레이어에는 토착악기와 사람 목소리 등을 녹음한 음악이 들어 있었는데, 음악은 퍼포먼스가 시작될 때 동시 재생돼 30분 후 멈췄다. 이 작품에 대해 마스다 토모히로는 “무대와 객석이 구분되는 음악 공연의 관습적 형식과 달리 카세트 플레이어를 재생한 연주자와 관객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새로운 경험을 하게 했다”고 설명했다. “서구 아방가르드 음악 형식을 따르면서도 필리핀의 토착음악을 활용하는 등 매우 실험적이었다”고 덧붙였다.

작업을 둘러싼 시대 상황을 고려하면 작품에 대한 평가는 복잡해진다. 공연이 상연된 필리핀 문화센터는 대통령 영부인의 후원으로 건립됐다. 이곳에서는 국가 정체성을 통합하려는 독재 정권의 지원 아래 콘서트, 연극, 무용 등 공연이 상연됐다. 그런데 그의 작업에서는 이러한 정치 상황에 대한 비판과 저항적 면모 또한 발견된다. 마스다 토모히로는 “호세 마세다의 작업은 모순적이고 복합적인 맥락을 지닌다”며 “예술에 대한 그의 접근 방식과 태도는 다른 장소, 다른 시기를 살았던 예술가들의 작업과 연결되는 지점이 있다”고 말했다.

 

공통의 경험으로 그리는 궤적

구상 회화에서부터 실험 예술에 이르기까지, 1960~1990년대 아시아 현대미술은 국가별로 상이하게 진행됐다. 하지만 유사한 정치사회적 경험 속에서 생산된 작업들은 어딘가 닮아 있다. 예술가 개인 또는 집단 간 교류가 있던 게 아닌지 궁금해지는 이유다. 셍 유진(싱가포르국립미술관 선임 큐레이터)은 “직접적 만남, 작품 간 교류 등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유사한 사회적 경험에서 나오는 예기치 않은 공명은 분명 목도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한 “필리핀의 예술 집단 카이사한의 선언문을 보면 레닌, 마르크스, 마오쩌둥 등의 사회주의 아이디어를 받아들이고 공유한 흔적이 보이는데, 이러한 방식의 상호작용, 역사적 측면의 연계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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