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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minar] 사람들은 왜 낡은 것에 열광할까?

김선아((주)SAK 건축사사무소 대표)
자료제공
김선아

한국건축가협회가 주최하는 도시재생 세미나 시리즈의 두 번째 시간이 지난 12월 20일 홍대 앞 청춘마루에서 열렸다. 도시재생의 사례, 특히 사람들이 낡은 것에 열광하는 최근의 현상을 중심으로 리모델링 건축이 도시에 개입하는 방식, 그리고 바람직한 리모델링 방향에 대한 구체적인 이야기가 오갔다. 

 

사회: 김경재(한국건축가협회 도시재생위원회 부위원장) 

발제: 김선아((주)SAK 건축사사무소 대표, 한국건축가협회 도시재생위원회 위원장)

토론: 조한(홍익대학교 건축학과 교수), 이주연(건축평론가), 조정구((주)구가도시건축사사무소 대표)

 

 

김선아: 이번 토론 주제가 “왜 사람들은 낡은 것에 열광할까?”다. 최근 도시 곳곳에서 보이는 ‘낡음을 감추기보다 드러내는 리모델링 건축’ 현상에 대해 세 분의 생각을 듣고 싶다. 

 

조한: 낡았냐 아니냐의 문제보다는 왜 사람들이 저런 곳에 끌리는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익선동뿐 아니라 사람들이 끌리는 곳들의 특징을 살펴보면 공통점이 있다. 하나는 진짜냐 아니냐의 문제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는 능력이 있다. 그리고 우리는 인위적인 것보다는 자연스러운 것에 끌리기 마련이다. 또 하나는 새로운 것이냐 아니냐의 문제이다. 진부한 것보다는 새로운 것에 끌리는 것 또한 인간의 본성이다. 결국 우리는 진짜에 끌리고 새로운 것에 끌리는 것이다. 익선동 역시 ‘진짜’이자 ‘새로운’ 곳이다.

그렇다면 왜 이전에는 이런 현상이 없었을까? 왜 사람들이 익선동에 열광하지 않았을까? 왜냐하면 이곳에 사는 사람들에게 익선동은 전혀 새로울 것이 없는 그저 삶의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이제 한 세대가 넘어가니 그들의 눈에는 새롭게 보이는 것이고, 또한 실제로 많은 사람이 살았던 곳이기 때문에 진짜인 것이다. 새롭고 진짜인 곳에 우리는 끌릴 수밖에 없다. 역설적이지만 낡은 곳이 우리에게는 새로운 곳이 되었다. 자본주의 시장의 관점에서는 블루오션 같은 상황이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새롭고 진짜인 곳들이 많이 사라지고, 오히려 그런 곳들을 찾아다녀야 하는 상황이라는 점이다. 이런 것이 문제가 아닐까 싶다.

 

이주연: 사람들이 낡은 것을 새롭게 좋아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토론에 앞서 발제에서 작은 규모 건축물로 이뤄진 도시 골목의 사례들을 봤다. 나는 그런 변화의 바탕에는 우리 몸 안의 DNA와 같은 개념이 자리하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어느 도시, 지역, 골목에 늘 있었던 삶의 질서와 같은 풍경이 사람들의 정서 안에 존재하고 있으리라고 생각하고, 그런 정서가 재생의 키워드로 작용하고 있다고 본다. 나는 그것을 DNA 같은 존재라고 생각한다. 말하자면 그 동네다운 문화적 정체성이라고 할까? 사람들은 그런 장소를 만나게 되면 자연스럽게 반응을 하게 된다. 늘 봐왔던 우리 동네가 아니라 낯선 장소여도 그 감성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시간을 이야기할 수 있다. 나는 재생의 개념을 회복이라는 단어로 표현하곤 하는데, 그것의 단서가 바로 시간을 끌어들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낡은 것, 옛것이 DNA의 개념과 맥을 같이 하고 있다고 보는 것도 이에 기인한다. 장소, 공간의 회복을 통해 지나온 시간을 공유하는 것, 시간을 끌어내는 것이 최근의 현상을 만들고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

 

조정구: 구가도시건축은 2000년부터 ’수요답사’를 진행하여 서울의 여러 지역을 조사하고 기록했다. 때문에 오늘 이 자리에 나오게 된 것 같다. ‘왜 낡은 것에 열광하는가’는 제가 보기에 매우 독특한 현상인 것 같다. 익선동이 낡았고, 낡은 것에 열광한다고 하면 익선동을 그대로 즐겨야 하는데 사실 사람들은 익선동을 그대로 즐기고 있지 않다. 한옥에 붙은 타일 벽을 뜯어내고 황동 프레임을 돌려 개화기 분위기를 내고 있다. 그런 현상을 보면서 사람들이 잃어버린 시간을 찾는다는 생각을 했다. 일본에 가면 개화기부터 내려온 가게들과 그들이 지켜온 문화를 도시 곳곳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일본인들은 그를 향유하면서 도시에 문화를 쌓아가고 있는데 우리 도시에는 그런 누적된 문화가 없다. 우리는 이제야 개화기를 다시 돌아보고 있지만 이전에는 부끄러운 역사, 가리고 싶은 역사였다. 그래서 시간을 꽂는 책장이 있다고 하면 지나간 시간의 책들을 사람들이 하나씩 찾아서 꽂고 있는 것 같다. ‘아, 이게 개화기구나’, ‘1984년, 80년대는 이렇구나’ 이렇게 우리는 시간 놀이를 하는 것이고, 놀이의 장소가 어느 세트장이 아니라 리얼한 도시의 장소인 것이다. 앞서 조한 교수의 지적처럼 시간이 분명히 거기에 존재했다. 그것에 대한 보존의 의미를 다 새기지는 못하지만, 어쨌든 얼추 그 근처에서 이런 시간이 있었으며 문화가 있었을 것이라는 상상과 기대를 하고 재미로 즐기는 것 같다. 사람들의 이러한 성향을 가게라는 매개체들이 빨리 흡수해서 문화적으로 생산하고 그걸 다시 사람들이 소비한다고 생각한다.

 

김선아: 내가 초점을 맞추고 싶은 부분은 수익성을 중요시하는 민간 주체의 소규모 재생 건물이다. 주요 소비층인 20~30대를 대상으로 수익을 올리기 위해 오래된 낡은 것을 도구화하는 것 같다. 의도적으로 과거의 기억이나 의미를 증폭하는 면이 있다고 본다. 

 

조한: ‘응답하라’ 시리즈가 굉장히 인기였다. 인기의 원인에 대한 분석 중의 하나는 우리의 향수를 자극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응답하라’ 시리즈에 열광하는 시청자의 극히 일부만이 향수를 갖고 있다. 이러한 현상을 구체적인 추억이나 기억으로 몰아가는 것은 어떻게 보면 본질을 보지 못하는 것이다. 오히려 우리가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기본적 욕구가 있고, 그 맥락에서 이 문제를 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개인의 추억과는 다르게 기억은 좀 더 사회적으로 공유되는 것으로 봐야 한다. 종종 우리는 기억의 내용에 관해서만 관심을 가질 뿐 정작 그 기억 자체를 갈구하는 것은 간과하는 경향이 있다. 

 

조정구: 나도 향수로만 바라보는 시각에는 반대한다. 우리는 스스로 어떤 순간을 향유하지 못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 같다. 손실된 문화적 DNA, 즉 우리 전체의 문화 속에 무언가가 비어 있고, 우리 전체의 시간 속에 공백이 존재한다. 다른 나라에서는 과거의 것들이 영화나 소설 등을 통해 잘 발현되어 나타나지만, 우리는 그러한 것들이 잘 나타나지 않다 보니 갈증이 생기고 새롭게 등장한 옛것에 열광하며 그 갈증을 하나씩 해소해가는 것이다. 한편, 이러한 것들이 단순한 유행으로 소비되고 말 것이라는 우려에 대해서 나는 그렇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오히려 이러한 것들이 더욱 공고히 자리를 잡아갈 것이다. 익선동에서만 개화기풍이 나타났다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개화기라는 시대의 책장이 열리면서 곳곳에서 그런 문화들이 발현되어 개화기에 관한 글을 쓰는 사람, 노래를 하는 사람, 영상을 만드는 사람,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모이는 곳들이 생길 것이다. 그런 방식으로 개화기, 근대, 80년대의 문화들, 원래 도시 속에 누적되어 있어야 할 문화의 층들이 늦게나마 도시 곳곳에 만들어질 것으로 본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 시간의 층을 발굴하듯이 새로운 곳을 찾아 퍼져갈 것이다. 

  

익선동(사진_메모리K)

 

김선아: 이런 현상이 과거를 유지 또는 복원하면서 활성화하고자 하는 도시재생의 흐름에서 발생하고 있다. 논의된 현상과 재생이라는 활성화의 목표가 어떻게 결합된다고 보는가? 

 

이주연: 조한 교수의 이야기와 연계해보면 사람들이 낡은 것, 그리고 그것을 적극적으로 증폭시키려는 경향은 자본주의 시장의 논리로는 어쩔 수 없는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것이 증폭이든 과장이든 혹은 또 다른 방향으로 진행되는 진화든 간에 그 장소의 성질에 맞지 않는 일시적 현상이라면 도태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당대의 일상 문화와 사람들의 감성에 맞지 않으면 지속성을 기대할 수 없는 것이다. 생명력을 지니고 오랫동안 지속되는 활성화를 만들어 가려면 그것을 재생의 틀로 예단하거나 단기간에 평가하지 말자는 것이 내 생각이다. 상황의 변화에 따라 그 안에서 어떤 충돌이 있든 간에 그 충돌을 통해서 자생적으로 정화되도록 기다리는 지혜가 필요하다. 

근본적으로 활성화의 목표는 지속과 자생을 전제로 두어야 할 것이다. 목표를 두고 맞춰나가도록 개입이 필요한 부분도 있겠지만, 어떤 변화든지 간에 태생적으로 계속 이어져 갈 수 있는 것들이 분명히 존재할 것이다. 대상 지역의 규모와 무관하게 오늘의 이 재생 이슈는 민간에서 하는 재생만 가지고 이야기할 것은 아니라고 본다. 민간 주도 사업 역시 관의 제도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인 만큼 관을 비롯한 전문가의 역할도 중요하다. 예를 들어 종로 북촌의 경우, 서울시가 오랫동안 깊이 개입하여 이른바 한옥마을 재생을 통한 지역 활성화에 큰 역할을 했다. 하지만 그것이 사회적으로 지속 가능하고 자생할 수 있는지를 생각하면 부정적인 입장이다. 아시는 바와 같이 마을 활성화의 결과로 동네가 지나치게 상업화되어 주민들은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이는 목표와 현실이 맞지 않는 것을 보여준다. 주민들 스스로 꾸리는 공동체 안에서 북촌이 자생적으로 자라나도록 내버려 두는 시간이 필요했는데, 관 그리고 전문가들이 북촌의 정체성을 주민들과 함께 찾아가는 시간을 갖지 않고 개입해서 생긴 결과라고 본다.​ 

김선아: 익선동, 성수동, 홍대 등을 봤을 때 두 번째 포스트 모던이 시작되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건축이 가지고 있는 구축성을 거의 훼손하는 정도까지 건축의 모든 요소가 광고가 되었다. 저는 익선동의 건축을 '광고 건축'이라고 부른다. 익선동 한옥의 건축 요소들은 사람의 오감과 욕구를 자극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과연 그렇게 리모델링하고 재생하는 것이 맞을까? 시간을 살렸다고 하지만 그것이 맞을까? 

 

이주연: 사실 시간을 살린다는 것은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이곳의 문화, 사회적 환경에서 공유되는 시간이 어디에 닿아있는지를 생각하게 한다. 이 또한 앞서 이야기한 지속, 자생과 같은 맥락이라고 본다. 익선동의 건축을 광고 건축이라고 표현하셨는데 지나친 상업성을 염두에 둔 것으로 생각한다. 익선동의 광고 건축은 그 동네가 지녀온 시간의 켜에서 이 시대와 닿을 수 있는 것을 살린다는 생각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것도 일정 시간이 지나면 또 달라질 것이다. 그렇게 시간을 살리면서 변화하고 정화하면서 자생함으로써 활성화되는 것이 필요하다. 그 시간을 너무 성급하게 단정 지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관련된 사람들이 자생을 위한 인식을 공유하고, 또 방법을 찾아가는 과정이 많이 학습되어야 한다. 

 

김선아: 이 질문을 던진 것은 그사이에 우리가 지켜야 할 것, 남기고 싶은 것들이 사라져 감에 대한 문제 제기였다. 다음 질문은 상업건축에서 리모델링을 할 때 어떤 것은 남기고 어떤 것은 변화시킬 수 있는지, 그 경계는 어디인지 관한 것이다. 

 

조정구: 어떤 것을 남길 것인가 하는 기준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그것을 논하기 전에 나는 서울이 어떤 도시냐는 질문을 받으면 '가게들의 도시'라고 답한다. 가게가 다이나믹한 힘을 가지고 있는 도시이다. 미세한 힘을 모아서 도시재생을 하고 있는 것은 민간, 즉 가게들이다. 누가 가이드를 해준 것이 아니라 가게 스스로 장소를 찾고 개발해서 사람들이 찾아오도록 바꾼 것이기 때문이다. 작은 가게일수록 우리가 소비하는 시간과 기억, 문화를 세일즈 포인트로 하고 있다는 점이 매우 중요하다. 오히려 작은 가게들이 기존의 침체된 도시공간 속에서 새롭고 재미난 것들을 발굴하고 있다. 

발제에서 유럽의 도시는 재생이라는 이름으로 큰 규모의 재개발을 하는데 우리의 재생은 리모델링으로 치우쳐 있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나는 그것이 우리의 자글자글한 도시조직에 잘 맞는다고 생각한다. 조선 시대부터 내려온 부정형의 필지 위에 한옥, 7~80년대 슬래브 건물이 뒤섞여 자리하고, 그 속에 다양한 가게들이 들어가 생태계를 이루는 조건에서는 개별적인 리모델링이 도시재생의 적합한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면 어떤 것이 적정한 기준이냐? 그 기준은 우리의 문화적 양식에 맡길 수밖에 없다. 문화적 양식 수준이 낮으면 익선동의 오래된 많은 것들을 부수고 ‘미스터 선샤인’이든 뭐든 원하는 것을 만들 것이고, 문화적 양식 수준이 높다면 가급적 부수지 않고 거기에 맞게 시간 놀이를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조한: 큰 틀에서는 어떤 디자인 매뉴얼도 역효과를 촉발할 수밖에 없다고 본다. 지자체가 추진하는 것들의 문제는 디자인 매뉴얼을 만드는 순간부터 생긴다. 디자인 매뉴얼이라는 것을 만든 순간 그것은 과거의 디자인 매뉴얼이 된다. 

우리가 인정해야 하는 것 중의 하나는 대한민국이 극단적인 자본주의 사회라는 것이다. 종종 우리는 공공성의 관점에서 국민의 의식 수준이나 문화 수준을 논하지만, 과연 우리가 공공성을 체험하고 학습할 기회가 있었는지를 묻고 싶다. 도시의 공공성이나 공공 공간 관련하여 유럽 사례를 많이 예로 들곤 하는데, 문제는 우리의 자본주의가 지나치게 미국식 자본주의라는데 있다. 공공성과 복지를 고려하는 유럽식 자본주의와 달리, 미국식 자본주의는 근본적으로 자유로운 시장을 방해하는 어떠한 간섭도 배격하려는 경향이 있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반드시 해야 하고, 나의 이러한 행위를 방해하는 어떤 것도 용납할 수 없는 것이 미국식 자본주의라고도 할 수 있다. 물론 머리로는 공공성의 의미나 가치를 이해하지만, 몸은 그것을 내켜 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국민 의식 수준의 문제나 공공성의 문제로 지적하기보다는 자본주의 시장의 속성을 제대로 파악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본다. 

자본주의 시장의 속성은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찾아내고 상품화하는 것이다. 누군가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면 귀신같이 찾아와 그것을 상품화하는 것이 자본주의의 대단한 능력이다. 하지만 상품성에는 항상 유효기간이 있다. 걱정하시는 바로 그 부분인데, 사람들은 상품성이 없어지면 그 상품을 버리고 또 다른 것을 찾아 나선다. 소비가 되려면 새로운 것이 지속해서 생산되어야 하고, 새로운 콘텐츠를 생산하는 것 중의 하나가 사는 사람들이다. 때로는 새로운 것을 기대하는 사람들의 욕구가 콘텐츠를 생산하는 데 중요할 때도 있다. 예를 들어 홍대 앞에 놀러 오는 사람들은 예술적이면서 새로운 것을 기대하고 온다. 독특한 예술적인 상품을 생산하던 아틀리에 가게들이 치솟는 임대료로 인해 이미 홍대 앞을 떠났음에 불구하고, 항상 새로운 것을 기대하고 오는 사람들 덕분에 시장 자체가 끊임없이 움직인다고 할 수 있다. 성수동의 경우 이미 분위기 달라졌다고 실망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아직도 가동 중인 공장들이 남아있다는 점에서 충분히 긍정적인 변화의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자본주의 시장의 움직임을 앞서가는 생산적인 메커니즘이 그 동네에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한 것 같다. 결국 익선동에서 그런 생산성을 어디서 찾을 수 있느냐의 문제다.

 

익선동(사진_메모리K)  

 

조정구: 서울시 자문회의를 하면서 상업한옥 지원에 관해 논의한 적이 있었다. 관이 지원하려 해도 기존 건축물이 건페율을 넘어서 쓰는 등 불법인데 어떤 지원을 할 수 있는가, 또 서로 다른 스타일의 상업한옥을 하나의 디자인 가이드라인으로 유도할 수 있는가 등의 문제가 있었다. 이에 대해 나는 단계적 지원을 제안했다. 전체를 5단계로 하여 한옥의 정체성을 많이 보존한 경우에는 최고인 5단계, 거의 없애고 기와지붕만 남겼다면 가장 낮은 1단계 지원을 해주는 방식이다. 이런 지원체계가 생기면 지역의 정체성을 지키는 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또한 문화적 양식의 문제로 돌아가서 가게 주인들이 모여 '우리 동네는 이런 것들은 좀 지키면서 고치자’ 의견을 모아야 하는 시기가 온 것 같다. 무작정 부수어 옛날에 있던 것보다 훨씬 더 못한 상태를 만들어 놓고 장사하는 경우도 많은데, 자발적인 틀 속에서 서로 지킬 것은 지켜야 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마당은 투명하게 덮자’, ‘지붕은 다른 재료가 아닌 기와지붕으로 하자' 등이 있을 수 있다. 

 

김선아: 익선동의 잘 되는 가게들은 한 달 매출이 6~7천만 원이 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 가게는 지원금이 필요 없다. 오히려 지원금을 받아서 족쇄를 차느니 안 받고 알아서 하려 한다. 민간에서 보조금이 필요하지 않을 경우 보존과 변화에 대한 상황을 예측하기 어렵다. 

 

이주연: 보조금 지원 여부에 따라 기존 동네 정서를 지키거나 변형하는 것을 정하는 것부터 재고할 필요가 있다. 민간 개발이든 공공 주도 개발이든 그 동네의 시간을 기억할 수 있는 것이 최소한 존재해야 한다. 그래서 그 장소가 어떻게 변하더라도 시간을 이어가고 동시대에도 유효하게 공유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재생의 현장에서 연속성을 찾을 수 있으면 좋겠다. 어떤 집은 대문을 통해, 어떤 집은 벽면의 타일을 통해 연속성을 드러낼 수도 있다. 그것은 자연스럽게 장소와 장소가 간직한 시간의 아이콘이 될 것이다. 그러면 그것을 지키는 것에 관한 논쟁을 동네 사람들이 함께 고민할 수 있다. 앞서 매뉴얼 이야기도 나왔는데 저는 동네 주민들끼리 함께 지킬 수 있는 약속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또한 전문가의 몫도 중요하다. 동네의 변화와 주민들의 일상이 함께 할 수 있도록 전문가들이 주민들과 인식을 공유하고 현장에서 함께 활동해 주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지속적인 공공의 봉사, 관의 뒷받침도 필요하다. 

 

김선아: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바꿀 것인가에 관해 지역의 시간성을 상징하는 DNA 요소를 남겨야 하고, 주민들의 협의가 필요하다는 의견 같다. 그럼 리모델링 건축은 도시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을까? 

 

조한: 서울이라는 도시가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지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도시의 정체성에 관해 이야기를 시작하면, 서울의 정체성보다는 익선동, 홍대 앞, 가로수길, 성수동, 이태원 등 동네의 정체성을 이야기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과연 우리에게 ‘도시의 정체성’이 있을까? 오히려 정체성을 가진 수많은 동네로 이루어진 도시가 건강한 도시 아닐까 싶다. 도시에 집중하는 것은 인프라 차원에서 공공이 해야 하는 일이지만, 서울의 정체성에 관한 논의는 지금 이 토론에서는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동네의 정체성을 서울의 정체성으로 착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은 산의 도시고 산을 배경으로 하는 도시라고 주장하는 책도 있는데, 이 역시 서울의 정체성이 아니라 조선의 수도 한성의 정체성으로 볼 수 있다. 누구도 서울의 정체성을 명쾌히 정의하지 못하는 것은 서울이 현대 도시로서의 정체성이 없는 것일 수도 있다. 리모델링 건축이 도시에 어떻게 기여하는지는, 건축이 동네의 정체성에 어떻게 도움이 되는지로 바꿔 물어야 할 것이다.

익선동의 매력 역시 그 정체성에 기인한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익선동이 과연 자본주의 시장에서 지속해서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든다. 왜냐하면 단지 개개인이 기억하는 정체성이 아니라, 자본주의 시장에서 유효한 정체성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익선동은 현재 특별한 생산 없이 소비만 진행되는 공간이기에 어느 순간 그 소비의 유효기간이 지나가면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곳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홍대 앞에는 지속해서 예술적인 것을 생산하는 홍익대학교가 있다. 물론 학교가 지역 시장에 직접적으로 상품을 제공한다고 할 수는 없지만, 사람들은 홍익대학교라 하면 미술대학을, 홍대 앞이라 하면 예술적인 분위기를 떠올린다. 그런 기대감과 욕구가 홍대 앞의 새로운 분위기를 유지되게 한다. 뿐만 아니라 매년 홍익대학교에 입학하는 수천 명의 새로운 학생들의 영향 역시 무시할 수 없다. 즉 지속해서 생산자가 그곳에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하다. 익선동의 문제는 물리적인 환경밖에 없다는 것이다. 주민이 떠난 지 오래됐고, 조정구 대표님이 말씀하신 ‘미스터 선샤인’식의 시간 놀이마저 끝나면 무엇이 남을지는 모르겠다. 유일한 가능성은 주민과 상인들이 만나 만드는 협의체이다. 그 협의체를 통해 끊임없이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내야 한다. 

 

조정구: 우리의 도시조직은 자생적, 자율적이다. 나는 이를 자글자글한 도시조직으로 표현한다. 누군가 계획해서 만든 도시조직이 아니고 지형에 바탕을 두고 길이 나고 비정형의 필지 속에 한옥, 초가집, 근현대식 건물을 지으며 지금이 됐다. 가게들이 모여 특색 있는 거리나 골목을 만드는 것이 요즘 생겨난 현상으로 보이지만, 옛 자료를 보면 작은 골목 단위로 비슷한 가내수공업 장인들이 모여 골목을 형성했음을 알 수 있다. 조한 교수도 언급한 동네의 정체성이 이미 우리 도시 안에 오랫동안 내재되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봉제, 금은세공과 같이 도시조직과 맞는 산업 형태를 띠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제까지는 ‘도시는 이런 모양이어서는 안 된다’는 편견으로 도심재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을지로나 익선동의 사례처럼 하나하나의 작은 필지에 대응한 가게들이 그곳을 바꿔 내는 현상, 가게들이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문화를 통해서 소통하는 것 자체가 과거로부터 우리 도시의 정체성을 이어오며 지금의 도시를 다시 되살리고 있다고 본다. 

시간 놀이는 트렌드에 관한 이야기고, 그보다는 그런 것들이 지속될 수 있는 가게 혹은 문화적 매개체, 즉 정박할 곳이 필요한 것 같다. 예를 들어 개화기 때에 있던 찻잔만을 다루는 가게 같은 곳이 도시 속 어딘가에 정박해야 하는데 지금은 젠트리피케이션이나 임대료 인상으로 오랫동안 자리를 잡기 어려운 조건이다. 문화가 얼마나 성장하고 지속되느냐는 우리가 짜놓는 틀과 관련이 있다. 도시 속에 이러한 문화매개체가 생태계를 형성하고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 우리 도시는 기로에 서 있고, 매우 위험해 보인다. 무언가 생산되어 남아 있을 수 있는, 말하자면 ‘펄'이 있어야 한다. 임대료가 덜 올라야 10년, 20년 개화기 찻잔을 팔고, 그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 커뮤니티를 만들고, 그들 나름의 콘텐츠를 만들어 갈 것이 아닌가. 그런데 2, 3년 있다가 떠나야 한다면 그 문화 자체가 사라지고 만다. 그렇게 여러 가게가 들어왔다가 나가게 되면 도시는 아무것도 살지 않는 황량한 갯벌이 되고 말 것이다.

 

성수동(사진_김선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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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아: 도시재생에 있어 소규모 사업지역에 들어가는 것을 소규모 개발업자라고 하자. 이전까지 재개발은 주로 대규모 개발업자의 대규모 자본으로 진행되었다. 대규모 개발업자에게는 상당히 많은 공공성을 요구해왔는데, 자본의 크기에 따라 공공성에 대한 요구 여부가 결정될 수 있는 것인지 묻고 싶다. 소규모 개발업자도 수익성이 목표인 도시개발자라는 점에서 이들에게도 기존 개발업자들에게 요구했던 공공성에 대한 요청을 시작해도 되지 않을까?

 

조한: 나는 그 공공성을 지속가능성으로 바꿔서 이야기하는 것이 더 옳다고 생각한다. 수익의 지속가능성, 이는 매력의 지속가능성과도 같은 말이다. 오히려 그런 자본을 지원할 때 지속가능성을 판단 기준으로 삼아야 할 것 같다. 문제는 그것을 사업자에게 말하는 것이 효과가 있냐는 것이다. 많은 사람에게 공공성이라는 단어는 특별한 의미가 없는 그저 굴레이자 쇠사슬로 느껴질 뿐이다. 나도 학교에 있지만 공공성이라는 단어가 불편하다. 무언가를 공유하는 것은 좋게 생각하지만, 공공성이라는 단어는 이전 세대가 강요한 대의 중의 하나같다. 중요한 것은 공공성이라는 단어가 내포하고 있는 가치를 소규모 개발업자나 젊은 기획자들과 공유할 수 있는 언어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런 언어 중 하나가 매력의 지속성일 수 있다. 매력을 지속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공공성을 가진다. 왜냐하면 매력은 같이 공유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주연: 자본의 크기와 공공성의 문제가 반대의 대응 관계는 아니라고 본다. 개발 사업의 규모가 크고 작음에 따라 가늠할 것이 아니라, 거기에 어느 정도 다중을 위한 공공성이 개입되었느냐 또는 집단 이기주의 같은 상업성에 노출되었느냐 하는 상황을 봐야 한다. 어느 경우든 이익과 성과를 공유해야 함은 물론이고, 또한 어느 경우든 시민사회와 도시환경을 위한 공공성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요소가 되어야 한다. 공공성을 지킴으로써 동네의 문화를 만들고, 그것을 다시 공공의 가치로 함께 나누는 것이 중요하게 인식되어야 할 것이다.

 

김선아: 공공건축에 관해서는 그동안 건축계가 꾸준히 노력해 왔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민간의 소규모 상업 시설 재개발에 건축가가 개입하는 경우는 거의 없는 듯하다. 그렇다면 건축가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하며 이 분야는 건축가가 개입할 수 없는 것인지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조한: 우선 이런 상업 시설의 매력을 끌어낸 장본인이 젊은 기획자와 개발업자라는 것을 인정해야 이야기를 건설적인 방향으로 이어갈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전통적인 의미의 건축가가 할 수 있는 것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나도 종종 학생들에게 물리적 환경을 구축하는 것만이 건축가의 일은 아니라고 말한다. 오히려 물리적인 것의 집착에서 벗어나면 새로운 가능성이 보일 것 같다. 

 

이주연: 이 자리에 오기 전 SNS에서 오늘 세미나를 안내한 포스팅에 달린 댓글을 봤는데, 어느 중견 건축가의 “건축가 없는 건축”이란 짧은 댓글이 눈에 들어왔다. 그분은 지금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도시재생의 현상을 그런 개념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그것이 긍정의 언어인지 비판의 언어인지는 가늠하지 못하겠다. 나는 건축가의 역할이 꼭 공간 환경 디자인으로 개입되는 것이 전부는 아니라고 본다. 전문가의 몫이 필요하다는 것은 결국 현장성을 말하고자 한 것이다. 즉 ‘건축가의 개입은 여기까지다’라고 정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라는 것이다.

 

조정구: 건축가들이 준비해야 한다. 우리 도시 속에 있는 보편적인 건축에 관한 공부와 이해가 필요하다. 도시 한옥도 슬래브 집도 사실은 그 구조와 구성이 단순하다. 건축가들이 조금만 더 관심을 가지면 프로젝트를 하면서 충분히 소화할 수 있는 것들이다. 이 세상에 없던 새로운 건축을 하겠다는 마음만 먹기보다는 우리 도시와 삶에 맞는 재미있고 의미 있는 건축을 하겠다는 마음을 가지면 훨씬 잘 될 것 같다.

 

청중과의 대화

형형칠(홍익대학교 건축학과 박사): 도시재생을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낡은 것과 시간 이야기를 하셨는데 시간의 거짓과 진실, 그러니까 진짜의 시간만을 진정한 시간으로 말씀하신 것 같다. 건축가의 역할은 진짜의 시간과 가짜의 시간을 다 조율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작년 통계에 따르면 약 2천만 명의 인원이 전주 한옥마을을 방문했다. 그 한옥 건축이 진짜의 시간이 아니라 가짜의 시간, 가짜의 한옥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계속해서 온다. 사람들이 그곳에서 어떤 정서적인 감흥을 얻을 수 있느냐 하는 측면에서 볼 때 한옥마을은 가짜의 시간을 하고 있지만, 그것을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짜로 조작된 시간인 익선동이나 유사한 장소 또한 그런 면에서 평가 절하하고 싶지는 않다. 그 자체로 건축가들이 가짜의 시간과 진짜의 시간을 잘 섞어서 스토리텔링을 통해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낼 수 있지 않을까. 

 

이상암(게스트하우스 남현당 대표): 아까 말씀하신 소규모 개발업자다. 사람들은 낡은 것에 열광하는 것이 아니고 낡은 것을 재해석한 것에 열광한다. 재해석했다는 점에서 처음 그 가치를 볼 줄 아는 사람은 사실 사업가다. 문제는 사업가가 혼자 할 수 있냐인데 그렇지 않다. 거기에는 디자이너의 역할이 많이 필요하다. 그동안 사업성을 이야기할 때 디자이너들이 했던 일 중의 하나가 면적에 대한 집착이다. 이런 관점이 서울의 흉물을 만든 점이 없지 않다. 그런데 시대가 바뀌었다. 면적이 작고 볼품없고 오래된 건물들이 리모델링을 통해 도시재생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이 활기를 불어넣는 것도 사실 사업가들이 하고 있다. 즉 돈이 되니까 하는 것이다. 

그럼 건축가들이 여기에 얼마나 준비되어 있고, 얼마나 따라갈 수 있고, 얼마나 습득할 수 있는지를 묻고 싶다. 성수동, 익선동의 예를 드셨는데 저는 익선동에 10년째 살면서 변화하는 사진을 찍어왔다. 이것이 오래 갈 것이냐 아니냐 토론을 했지만,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희소성이다. 서울에 희소성이 중요하게 작용하고 있고, 입지적인 요소 같은 것을 본다면 오래 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의 모습으로 오래 갈 것이라고는 보지 않는다. 상당 부분 진화하고 있으며 그 진화 속도는 생각보다 빠르다. 이 부분에서 디자이너가 방향을 제시해주고 정체성을 부여해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김선아: 조한 교수와 사전미팅에서 장소, 건물의 재해석에 관한 이야기를 했었다. 미래의 건축가들은 그것에 대해 얼마나 준비하고 있을까? 

 

조한: 일단은 준비를 계속하고 있는 단계가 아닐까 싶다. 희망적으로 보는 것은 두 가지다. 학생이 새롭게 들어온다는 것 자체가 희망이다. 사고방식이 다른 학생들, 그리고 미디어를 해석하는 능력이 남다른 학생들이 이끌어 갈 건축이 어떤 것일지 기대가 된다. 교육 서비스를 제공하는 차원에서 학교 역시 이런 학생들의 재능과 욕구를 수용하는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그런 맥락에서 다양한 미디어를 해석하는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구체적인 결과를 보기 위해서는 시간이 좀 더 필요할 것 같다. 또한 나는 건축교육의 목적을 건축업에 종사하는 전문인을 만드는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직업 교육적 부분도 있지만 그것은 일부에 불과하다. 건축교육은 다양한 미디어를 통해 정보를 수집하고, 그 정보를 분석하여 숨겨진 패턴이나 구조를 발견하고, 이를 바탕으로 미래를 예측하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물리적인 제품, 즉 건물로 서비스해야 한다는 강박이나 집착만 버린다면 건축가가 할 수 있는 일이 정말 많다고 생각한다.

 

김선아: 희소성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재해석함으로써 희소성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낡은 것을 재해석하는 이유를 생각해보면 앞으로 올 미래는 많은 가능성이 열려 있기 때문에 희소성을 장담하지 못하지만, 이미 흘러간 시간이 담긴 유일한 장소에는 희소성이 담보되어 있다고 보는 것 같다. 

 

이석일(목도 양조장 대표): 시골에 작고 오래된 양조장을 하나 가지고 있다. 그런데 마을에서도 도시재생이라는 말을 쓰기 시작했다. 특히 정권이 바뀌면서 그렇다. 그냥 가만히 두면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은데 문화기획자가 나타나고, 알지 못하는 예술가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지원금을 받을 수도 있고 정체된 마을이 살아날 것 같지만, 몇 년 후 정권이 또 바뀌면 어떻게 될까 하는 걱정이 앞선다. 오늘 논의된 것들이 우리하고도 멀지 않다고 본다. 

한편에서는 몇 개의 앵커시설을 중심으로 예산을 따려고 하는데, 앵커가 되는 조건은 공공적인 기능을 요구한다. 공공성을 강조하면서 오랫동안 지켜온 역사와 전통에 대해 희생을 요구하는 것이 보여서 상당히 걱정된다. 이를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하다. 

 

김선아: 이번 정부에서 '도시재생 뉴딜'이라는 사업으로 일자리 창출형 도시재생을 하면서 전국적으로 속도전이 되어버렸다. 우려하시는 상황을 비롯해 많은 사람이 그 문제점을 인지하고 있다. 국민들이 정부한테 속도를 늦춰 달라고 문제를 제기하는 것 외에는 딱히 해결책이 없다고 생각한다. 정부가 사업을 시작한 지 2년 차에 접어들었고 남은 기간 계속해서 진행할 것이다. 사업 전체를 되돌리는 것은 어려운 시점으로 보인다. 

 

조정구: 청중 중에 한 분이 가짜 시간과 진짜 시간을 말씀하셨는데 전주 한옥마을에서 어떤 것은 가짜 시간, 어떤 것은 진짜 시간으로 보기는 어려운 것 같다. 어쨌든 새로운 것들도 지속돼 온 기존의 시간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옥이 새로 지어졌다는 이유로 가짜 시간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실 건축가가 도시재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은 시간의 질서를 구축하는 것이다. 먼 시간으로부터 이어져 온 과거와 다양한 요구를 반영하는 현재, 그리고 변화 속에 지속해 나가야 할 미래라는 세 가지 시간의 질서를 어떻게 구축하느냐가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건축가는 공간의 질서를 만드는 사람이지만, 혼란한 이 시대의 도시 속에서 바라보면 시간의 질서를 구축하는 것이 우리 건축가가 해야 할 일 같다.

 

김선아: 이 자리를 준비하면서 빠르게 진행되는 시간 흔적의 소비, 소모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자 했는데 토론을 들으며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그렇다고 해서 이 토론을 종합해서 결론을 내리고 싶은 마음은 없다. 토론자들이 제시한 많은 키워드를 가지고 여러분들이 생각을 확장하는 시간이 되었기를 바란다. 참석해주신 모든 분께 감사 인사 드린다. <진행_오주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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