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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제(이): 프로젝트를 시작하기 전에 기존 건물과 인접 광장의 상태는 어떠했나?
제이케이엠엠 아키텍츠(JKMM): 라시팔라치는 원래 핀란드의 젊은 건축가 빌조 레벨, 하이노 리이마키, 니일로 코코가 설계한 기능주의 양식의 건축물이다. 흥미롭게도 1936년 건설 당시에는 임시 사용 건물로 계획됐다. 식당, 가게 및 영화관을 갖춘 복합 용도의 다목적 파빌리온으로 1940년 개최 예정이었던 헬싱키 올림픽(1952년으로 연기)을 지원하는 시설이었다. 기술적, 건축적인 면에서 효율적으로, 오래 지속될 수 있도록 지어진, 동시대를 앞서가는 건축물이었다. 눈길을 사로잡는 네온등, 차양이 달린 큰 창문 등은 이러한 점을 잘 보여준다.
라시팔라치에 인접한 광장은 근대 헬싱키의 도시계획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헬싱키에는 1930년대 중반까지 제대로 된 버스 정류장이 없었다. 이 때문에 세 건축가는 라시팔라치 계획에 버스 승강장을 추가했다. 광장 한가운데에 굴뚝이 있고 난방센터와 변전소, 시계탑 등도 자리를 잡았다. 버스 정류장이 이전한 이후, 라시팔라치 광장은 다양한 행사를 개최할 수 있는, 일시적 속성의 열린 공간이 되었다. 1999년 이 건물의 리노베이션이 탈리 아키텍츠에 의해 진행됐다. 당시 리노베이션의 목적은 건물이 설계됐던 초기의 정신으로 되돌아가자는 것이었다. 이때 새로운 기능으로 미디어 센터가 추가됐다. 라시팔라치를 복원하는 이번 프로젝트의 시작 무렵에, 이 근대 건축물은 많은 변화를 겪어 건축적 명료함을 잃은 상태였다. 활용도가 높았기 때문인지 훼손돼 있었고, 초기 기능주의적 특성도 퇴색하고 있었다.
이: 과거와 현재를 잇는 작업에서 중점을 둔 부분은 무엇인가?
JKMM: 복원 작업의 주요 과제는 라시팔라치의 아름다움을 강화하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1930년대 건축의 단순미를 되살리면서 21세기의 미술관이 제공하는 새로운 활동을 담아내야 했다. 라시팔라치의 고유함을 되찾는 방법으로 전문 보존 기술자와 재건 기술이 동원됐다. 기존 건물뿐만 아니라 이전의 리노베이션 당시 추가된 복제품들도 가능하면 그대로 남겼다. 우리는 이번 개입에서 1930년대의 기술이 이룬 디테일, 정교함 등을 최대한 구현하고자 했다. 이러한 과정에는 건축 기술 및 규제와 관련해 실질적으로 고려할 것이 많았다. 새롭게 요구되는 사항들이 1930년대 건축물에 적절하게 적용될 수 있도록 균형을 맞춰야 했다. 수많은 협상과 논의가 진행됐는데, 이 과정이 이번 프로젝트에서 가장 어려웠다.
이: 라시팔라치는 핀란드 모더니즘 건축에서 중요한 건축물로 도코모모에도 등재됐다. 헬싱키 시 당국이나 도코모모 측에서 제시한 가이드라인 또는 준수해야 할 법규, 도시계획 등이 있었나?
JKMM: 도코모모 등재는 이번 프로젝트에서 특히 중요하게 작용했다. 2015년 라시팔라치는 헬싱키 도시계획에서 고려해야 할 대상으로 올랐다. 라시팔라치 광장의 굴뚝 부분과 건물 내외부 모두가 포함됐다. 헬싱키 도시계획에 따라 디자인 전반에 대한 명확한 지침이 내려왔고, 우리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헬싱키 시립박물관과 매우 긴밀하게 협력했다. 프로젝트의 시작부터 끝까지 설계에 대해 관계 당국에 주기적으로 설명하고 피드백을 받았다. 또한 많은 세부 사항들이 현장에서 면밀하게 검토됐다. 우리는 건물에 관한 역사 자료에서도 여러 가지 정보를 얻었다. 라시팔라치의 모습이 담긴 각기 다른 시기의 사진들은 우리가 작업 일지를 만들어온 것만큼이나 프로젝트의 다음 단계로 이행하는 데 매우 유용했다.
©Aarne Pietinen
이: 라시팔라치를 통해 지하의 새 미술관으로 들어가는 진입 방식이 독특하다. 기존 건물의 특성을 훼손할 수도 있는 접근법을 택한 이유가 궁금하다.
JKMM: 라시팔라치 광장은, 라시팔라치와 19세기에 건설된 신고전주의 병영 등 역사적 가치를 지닌 건축물들로 둘러싸인 열린공간이다. 이러한 특징은 새 미술관인 아모스 렉스의 주 출입구를 계획하는 데 영향을 주었다. 우리는 광장의 개방성을 유지하고 싶었기 때문에 미술관의 주 출입구뿐만 아니라 화재 비상구, 환기구를 기존 건물과 광장 중앙의 굴뚝 쪽에 배치했다. 또한 기존 건물을 거쳐 미술관에 진입하게 했는데, 이는 이 모더니즘 시대의 건물을 강조하면서 동시에 새 미술관과 통합하기 위함이었다.
이번 프로젝트에서 라시팔라치 1층에 위치한 바이오 렉스 영화관의 입구, 파사드, 창문, 출입구, 내부 마감 등은 1930년대의 고유한 특징을 지니도록 복원됐다. 새로운 주 출입구의 로비는 세 군데의 기존 상업 공간을 결합해 만들어졌다. 이를 위해 철저한 계획과 신중한 굴착 작업은 물론 건설 과정에서 기존의 내력벽 구조와 기초를 지지하는 작업을 했다.
이: 새 미술관의 천창은 햇빛과 주변 풍경을 건물 내부로 끌어들인다. 천창의 개수, 위치, 방향 등을 설정하는 데 있어 어떤 점들을 고려했는가?
JKMM: 천창은 이번 프로젝트의 설계 개념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광장에서 일어나는 도시적 활동과 광장 지하의 새 미술관은 천창을 통해 연결된다. 도시 생활과 예술적 풍경 사이의 대화를 만들어내고 싶었다. 천창은 방문자가 건물 내부에서 자신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게 도와주며, 동시에 전시 공간에 자연광을 들인다. 미술관의 갤러리는 높이와 크기가 다른 세 개의 돔으로 덮여 있는데, 연속되는 이 공간들은 시퀀스를 형성한다. 각각의 돔 공간에는 각기 다른 방향으로 천창이 하나씩 나 있다. 돔 공간의 첫 번째 천창은, 라시팔라치의 중요한 랜드마크인, 광장 한가운데 오래된 굴뚝을 보여준다. 나머지 천창 두 개는 미술관 로비에 있다. 로비는 천창으로 햇빛이 들어오는, 순백의 가벼운 공간으로 지하 공간과 대비를 이룬다. 그리고 로비의 또다른 천창은 여전히 사용 중인, 기능주의 양식의 외부 계단을 보여준다. 바이오 렉스 영화관의 기계실로 이어지는 이 계단은 라시팔라치가 지닌 기능주의적 성격을 잘 드러낸다.
이: 이번 프로젝트로 광장에 인공적인 지형이 생겼다. 시민들이 즐길 수 있는 도시 공원이 형성됐지만, 한편으로는 구조물 때문에 광장을 더 이상 과거와 같은 방식으로 사용할 수 없게 됐다. 다시 말해 인공 지형이 생기면서 광장이 사라진 셈이다.
JKMM: 도시적 랜드스케이프를 형성하는, 아모스 렉스의 지붕은 다양하고 새로운 활동, 사건과 여가를 위한 플랫폼을 제공하면서 동시에 광장이 지닌 원래 용도를 유지한다. 아모스 렉스가 들어서기 전에 이 광장에는 라시팔라치의 레스토랑과 카페에 딸린 테라스가 있었다. 하지만 이 시설들이 다른 활동에서 적극적으로 사용되지는 않았다. 프로젝트 이후에도 레스토랑과 카페의 테라스는 여전히 존재한다. 여기에 더해 사람들이 자유롭게 시간을 보내고 이용할 수 있는, 언덕과 같은 새로운 풍경이 생겼다. 이 인공 언덕은 회의 장소, 피크닉, 야외 콘서트나 미술 전시장으로 사용될 수 있다. 아이들은 언덕을 오르거나 뛰어다니며 놀 수 있고, 십대 청소년들은 이 위에서 스케이트나 자전거를 탈 수 있다.
이: 천창으로 빛이 들어오는, 돔형 구조의 미술관 전시실은 일반적인 화이트 큐브 전시 공간과 다르다. 공간 자체가 강한 인상을 준다. 어떠한 성격의 전시 공간을 만들려고 했나?
JKMM: 현대미술은 전시에 방해가 되는 내력벽이 거의 없는, 가변적 대형 공간을 요구한다. 현대미술은 크기, 모양, 색상 및 기술적 정교함 등에서 형식에 제한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앞으로의 트렌드와 예술계의 요구를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자 했다. 돔 구조는 넓은 공간을 확보하는 자연스러우면서도 오래된 방법이다. 앞서 말했듯이 주 전시실은 세 개의 돔 공간으로 구성됐다. 이 연속적인 공간은 필요에 따라 바닥 구조와 통합된 칸막이 벽, 연결점 시스템을 통해 작은 공간으로 분절된다. 일본의 예술가 그룹 팀 랩의 개막 전시가 보여준 것처럼 공간의 색상과 구분을 다양하게 조정할 수 있다.
이: 돔 구조 내외부 마감이 인상적이다. 외부는 원형 또는 클로버 모양의 타일로 처리했고, 내부 천장은 원형 패널로 빼곡히 채웠다. 패턴 등 마감 방식을 결정하면서 어떤 점을 고려했나?
JKMM: 외부에 사용한 타일의 모양과 패턴은 광장에 형성된 언덕의 굴곡을 고려해 신중하게 설계됐다. 3D 컴퓨터 모델링과 실물 크기로 모형을 제작해보면서, 타일과 접합부 및 모르타르 연결부의 상세를 실물 크기로 제작・시험했다. 전시 공간의 내부 천장 패널은, 연속적인 표면을 만들기 위해 치수를 정해 설계했다. 다공판은 음향판 역할을 하면서 조명 트랙 및 스프링클러 등 기계 장치 설비를 가리는 역할을 한다. 이 다공판에는 촉감이 좋은 흰색 직물 덮개가 씌워져 있다. 직물 덮개는 다른 색깔의 천장 면이 필요한 경우 벗겨낼 수 있으며, 중앙 로비의 실내 천장에도 적용됐다. 나선 모양의 직물 갓 300개가 중앙 로비의 천장을 덮고 있다. 나선형 직물 갓 속에는 컴퓨터 프로그래밍으로 밝기를 조절하는 조명 장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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