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옵세션: 기억, 연결 그리고 창작

이지윤
사진
김도균
자료제공
아르코미술관
background

2017년 6월부터 세운상가 내 ‘4트ㄱ004’에서는 작가 여섯 명의 개인전이 순차적으로 열렸다. “서로의 작업을 연결하면서 동시대를 살아가는 작가들의 공통분모와 공감대를 발견” 하고자, 전시의 내용 또는 형식을 발췌해 연결고리를 찾거나 이에 대한 리액션이 되는 전시를 하는 것이 조건이었다. 여섯 명의 작가는 기억의 되새김질을 다룬 ‘나의 창’(홍범)으로 시작해서 세운상가의 이미지를 수집해 세운상가와 이곳을 거쳐 간 사람들의 기억을 기록하고(‘스스로 서서’, ‘타인의 삶’, ‘뒤돌아보지 말고’), 이를 토대로 작가의 창작 또는 시간의 의미를 다루는(‘또는 뒤돌아보고’, ‘증식/ 분열’) 작업을 진행했다. 아르코미술관에서 열린 <옵세션>은 이 릴레이전의 마지막 참여 주자였던 큐레이터가 바통을 이어받아 앞선 여섯 번의 전시를 갈무리하는 전시다. <옵세션> 큐레이터인 이성휘는 전시의 배경이 되었던 ‘세운상가가 1968년에 준공됐고, 공교롭게 제일 연장자인 이배경 작가가 1969년생이며 이후 작가들이 해마다 차례로 태어났음’을 발견했고, 작가 개인이 세운상가와 공유하는 시간대의 접점에 주목했다. <옵세션>을 위해 작가들에게 주어진 여섯 개의 주제는 ‘화재를 진압하는 헬기’, ‘사막의 시몬’, ‘중력의 무지개’, ‘간다고 하지 마오’, ‘리볼버’, ‘사운딩스’, ‘8과 1/2’로 각각 1960~70년대의 산물인 예술품 또는 사건이다. 기획자의 표현에 따르면 “작가들과 기획자가 살아온 시간과 공간을 사유하기 위한 일종의 진입로”인 셈이다.

 

<옵세션> 설치 전경

 

기억: 화재를 진압하는 헬기, 사막의 시몬, 중력의 무지개

이영범(경기대학교 교수)은 “세운상가나 낙원상가와 같은 도심 주상복합의 실험을 근대성의 표현으로 볼 수 있다”고 이야기하며 “세운상가는 근대적 성장 기제의 도시적 상징이다”▼1라고 언급한 바 있다. 이후 점차적인 사회의 변화에 따라 쇠락하던 세운상가는 간신히 명맥을 유지하다가 서울시 도시재생 사업의 일환인 ‘다시·세운’으로 변모했다. 이성휘는 “우리는 2017년 여름 내내 서울시가 도시재생 사업의 막바지에 세운상가를 얼마나 빠르게 환골탈태 시키는지 목격했다”고 말하며, 여섯 명의 작가들과 함께 세운상가 내에서 근대적 성장 기제의 급격한 변화를 지켜봤음을 이야기했다. 전시 제목이기도 한 ‘옵세션’은 ‘강박이란 뜻으로 불안을 감소시키기 위해 지속적으로 하는 행동이나 사고’를 의미한다. 사회와 개인에게 영향을 미쳐 온 과거의 욕망이 급격히 그 모습을 탈바꿈할 때, 우리는 이 균열에서 발생하는 불안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지난 시간과 현재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전시는 우선 세운상가로 대표되는 1960~70년대 서울의 기억을 다루며 근대화의 가치가 현재에 어떤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지 조명한다.

이배경의 ‘사운드 워크’는 바람 소리를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변형시켜 만든 인위적인 소리다. 전시장 내부에서 귀 기울이면 화이트 노이즈처럼 낮게 깔린 소음을 알아차릴 수 있다. 작가가 받아든 소재는 세운상가가 준공된 지 얼마 되지 않은 1969년 3월 7일, 화재가 발생해 절반에 가까운 점포들이 불에 타고 2시간 만에 진화된 사건을 기록한 사진이었다. 화재를 진압하기 위해 투입된 헬기와 이를 올려다보는 군중의 모습은 오늘날 도시에서 발생하는 재난 현장의 모습과 닮아 있다. 작가는 바람을 가르며 나는 헬기 소리를 연상시키는 디지털 사운드를 만들고, 이를 전혀 다른 맥락을 지닌 공간에 설치함으로써 장소를 낯설게 지각하도록 한다. 역으로 이는 ‘세운상가’로 대표되는 삶의 기억이 현재 사회 전반에 각기 다른 방식으로 밀접하게 관계하고 있음을 상상하게 했다.

이전 작업에서 세운상가의 흔적과 기억을 담았던 권자연은 유년 시절의 기억을 바탕으로 한 작업을 보여준다. 주재원으로 파견됐던 아버지를 따라 1980년대 초반 중동 국가에서 보낸 경험에 바탕을 둔 ‘히(he)’는 사막과 낙타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은 회사원들, 이국적인 식물들 앞에서 포즈를 취하거나 놀고 있는 아이들의 사진 등을 배치한 작업이다. 개인의 사적인 추억을 담아놓은 사진첩 같지만, “대한의 장한 아들, 딸이 되어 귀국하겠다”는 아이들의 감사 편지, 문화외교관으로서의 역할을 강조하는 신문기사 등을 보면 개인적인 기억 뒤에 있는 국가의 정책, 이념 등을 떠올리게 된다. 대명사로 지칭되는 ‘히’는 집단 밖에서 타자처럼 존재하면서도 집단의 이념과 기억을 간직한 일원으로 존재할 것을 요구받은 개인과 집단의 관계에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이들의 기억을 공동의 기억으로 끌어왔다.

홍범은 더욱 적극적으로 개인의 기억을 집단의 주거 환경이라는 공동의 기억에 대입시킨다. ‘0과 1 사이의 포물선’에서 계속해서 전환되는 집의 이미지는 어린 시절 부동산 투기 열풍으로 급격히 변한 주거 환경을 반영한다. 무채색의 단순한 구조물들의 이미지는 점점 더 빠른 속도로 전환되다가 정점에 이르러 다색의 프리즘으로 변화하고 이내 로켓이 하강하듯 이미지는 산산조각으로 부서진다. 다중적 공간을 계속해서 표현하며 과학기술의 폐해를 그려내는 소설 『중력의 무지개』(토마스 핀천, 1973)를 한국의 현 상황에 맞게 번안한 이 작업은 자유의지라는 이름 아래 치솟는 자본주의와 현실이라는 중력을 교차시킨다.

 

이소영​4:09’, ​2채널 비디오, 각 12분, 17분 35초, 2018​ 

 

창작: 간다고 하지 마오, 리볼버, 사운딩스, 8과 1/2

1960~70대에 제작됐던 창작물을 되짚어 오늘날의 작품과의 영향 관계를 보여주고 창작의 의미를 묻는 작업도 있다.

사이키델릭은 환각제를 복용한 뒤 생기는 것과 같은 일시적이고 강렬하며 환각적인 도취상태를 표현하는 예술로 1970년대에 한국에 들어왔다. 김수영은 국내 최초 사이키델릭 여자 보컬리스트 김정미의 ‘간다고 하지 마오’를 다시 번안했다. 작가는 사이키델릭 음악을 기타 코드와 숫자로 치환해 그러데이션을 배정했다. 몽환적이고 환각적인 분위기를 자아냈던 사이키델릭에 반해 김수영의 ‘마크 넘버 1’은 건물의 표면을 보는 듯 기하학적인 미학 요소를 지니고 있다. 크고 작은 네모 창문의 실루엣과 히피문화를 연상시키는 듯한 전시장 내부의 화려한 미러볼의 대비는 반문화적이면서도 이상을 좇았던 히피문화의 부재를 더욱 크게 느끼게 한다.

전자모터로 돌아가는 ‘리볼버’(1967), ‘사운딩스’(1968)는 예술과 과학 기술의 통합을 꿈꾸던 작가 로버트 라우센버그의 작업으로서 전자모터로 돌아가거나 인터랙션을 보여주는 작업이다. 주로 건축물의 구석진 부분을 촬영해 기하학적 구성을 회화적으로 드러내 온 김도균은 지금까지의 작업을 3D 프린터를 이용해 3차원으로 프린트했다. 회화적 가치를 지니던 작품을 3차원 입체물로 바꾸는 제작 과정은 예술과 기술의 통합적인 관계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이들의 작품은 지난날 사회문화의 빈자리를 드러내 보이기도, 또는 지난날의 과학기술에 대한 시도가 어떤 식으로 이어지는지를 보여주기도 한다.

이소영의 ‘4:09’는 더 나아가 포괄적으로 릴레이전에서 작가와 작가, 큐레이터 간의 관계를 지속적으로 연결시켜 온 형식이자 1960년대부터 현재까지를 매개하는 ‘창작’에 대한 개념을 다룬다. ‘4:09’는 창작의 고독과 모순을 담은 펠리니 감독의 영화 ‘8과 1/2’(1964)를 모티브로 삼은 것으로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에는 늦고 하루를 마감하기엔 이른” 애매한 경계의 시간을 의미한다. ‘4:09’에서 다루는 여러 편의 단편 영상은 작가와 기자의 인터뷰, 이벤트 기획자의 독백, 시나리오 작가와 배우의 대화 등을 교차시키며 ‘작품의 진정성’, ‘좋은 기획의 조건’ 등 창작 과정에서 발생하는 여러 상념과 고독감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런 여러 상념들의 결론은 결국 ‘창작자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에 대한 고민으로 관람자를 이끈다.

‘과거에 한 행동을 지속적으로 확인’하는 것이 강박의 한 증상이라면, 이제는 ‘환골탈태’한 세운상가를 배경으로 기억을 소환하고, 그 시대의 작품을 다시 번안하는 등의 창작 행위는 또 하나의 강박적 행위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시도는 단순히 동어반복적인 과거의 회고나 박제에 머무르지 않는다. 전시 간의 ‘연결’로 시작했던 이들의 시도가 빠르게 소멸해버리는 집단의 기억과 현재를 연결함으로써 과거가 우리에게 주는 의미를 묻고, 이들을 반추하는 창작 행위의 의미를 다시 물음으로써 오히려 시선을 오늘, 여기에 두기 때문이다.​ 

 

<옵세션> 설치 전경

 

1. 김성우, 이영범, 제프 헤멀, 케이스 크리스티안서 외 15인, 『세운상가 그 이상: 대규모 계획 너머』, 공간서가, p. 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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