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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욕망을 위해 어디까지 갈 수 있는가?

윤영석 ×김금영 객원기자
자료제공
가나아트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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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금영(김): ‘애저농원’ 프로젝트와 비교해서 이번 전시는 전체적으로 작품의 비주얼이 얌전해진 것 같다.

윤영석(윤): 얌전해졌다기보다는 형식이 다양해졌다. 하지만 ‘인간은 욕망을 위해 도대체 어디까지 갈 수 있는가?’에 대한 관심은 여전하다. ‘애저농원’ 프로젝트의 바탕도 여기에 있다. 돈사에서 수퇘지에게 채취한 정액을 암퇘지에 주사기로 주입해 잉태시키는 모습을 보고 큰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암퇘지는 자기 몸 하나 움직이기 힘든 공간에 갇혀 끊임없이 먹여지며 출산이 아닌 생산을 반복했다. 인간의 경제적인 욕망을 충족하기 위해 만들어진 인위적인 상황에 충격을 받았다. 비단 돈사뿐 아니라 문제가 되는 개 사육 농장, 각종 애완견의 개종, 증식을 넘어서 이젠 아예 로봇개까지 만든다. 도대체 인간의 욕망은 어디까지고, 무엇을 위해 이렇게까지 욕망의 극점으로 치달아가는 걸까? 결국 인간은 무엇인가? 내 작업은 이 질문의 연장선에 있다.

 

김: 스스로를 이번 전시에서 ‘소피엔스’로 자처했다. 소피엔스란 무엇인가?

윤: 그리스의 궤변론자, 혹은 현자들을 지칭하는 ‘소피스트’와 현생인류를 의미하는 ‘사피엔스’를 조합해 내가 만든 조어다. 스스로의 욕망에 의해 문명을 발달시켰지만, 너무도 빠른 발달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여러 문제에 봉착한 현대인의 아이러니를 본인 스스로의 궤변에 빠진 소피스트에 빗댄 것이다.

 

김: 제1전시실에 우주인을 연상시키는 조형물 ‘아이오(AHIO)’가 등장한다. 아이오의 정체는 무엇인가?

윤: ‘인공적인 인간의 환상적 물체(Artificial Human Illusional Object)’의 약자로, 바로 현재 그리고 미래의 우리 모습을 상징하는 오브제다. 군대에 간 아들과 함께 거울 앞에 섰는데, 아들은 체격이 매우 건장했다. 반면 나름대로 열심히 관리하며 살았다고 생각한 내 팔다리는 매우 가늘어지고 신체도 왜소해졌더라. 디지털 문명을 좇으며 꾀만 늘어 머리만 비대해지고, 상대적으로 몸은 매우 나약해진 현대인, 현생인류, 사피엔스의 모습이 보였다. 이 지점에서 스케치를 시작했다. ‘아이오’의 사지 끝에는 각도가 기울어진 후사경을 설치했다. 디지털 문명의 발달로 개인이 경험할 수 있는 세계의 폭이 넓어진 것 같지만, 실상은 가장 가까이에 위치한 현실, 중요한 삶의 실체를 보지 못한다. 첨단 과학이, 문명의 발전이 과연 인간에게 어떤 것인지, 그 안에서 인간은 어떻게 변해가고 있는지 살펴보고 싶었다.

 

윤영석, ‘발레리노’, 마이크로 렌티큘러 모핑 렌즈, 110×110cm, 2018 


김: 제2전시실에 발레리노의 역동적인 동작이 담긴 ‘발레리노’와 인공지능 반려견 로봇의 모습을 담은 ‘아이보의 창’을 함께 설치했다. 인간적인 발레리노의 몸짓과 인공적인 반려견 로봇의 모습이 상반되게 느껴진다.

윤: 상반된 두 이야기를 은밀하게 충돌시켰다. 순수예술인 발레는 인간의 가장 인간적이고 아름다운 몸짓으로 완성된다. 계산되지 않은 순수한 예술에 헌신하는 인간의 노력은 아름답다. 이 가운데 다른 한쪽에서는 인간이 스스로의 욕망에 의해 비인간적인 세계를 창조한다. 인공지능, 4차 산업혁명에 대한 담론이 무수하고, 일본 전자회사 소니가 하품을 하고 애교를 부리는 로봇개까지 만들었다. 인간을 비롯한 생명복제에 대한 연구는 이미 진행 중이다. 지금 우리의 세계는 인간적인 것들과 비인간적인 이야기들, 아름다움과 섬뜩함이 공존하고 교차한다. 이런 세상의 극단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기보다 은연중에 느끼게 하고 싶었다.

 

김: 전시장 한쪽에 설치된 ‘네온 신(Neon GOD)’ 작업도 눈길을 끈다. 이 혼란스러운 세상에서 “오! 신이시여!”라고 구원을 부르짖는 건가?

윤: 이 작품은 가상과 현실세계 사이의 혼돈을 표현했다. 가상의 네온사인 ‘신’은 실제 조명 같아 손에 잡힐 것 같지만 착시 현상일 뿐 잡을 수 없다. 3D 렌티큘러 렌즈를 통해 구현한 화면은 전쟁게임 장면으로 우연히 동네 PC방에서 본 풍경에서 시작됐다. 어린 학생들이 온갖 욕설을 하며 사람을 죽이는 게임에 몰두하고 있었다. 뭔가에 미치지 않으면 견디기 어려운 현실을 가상의 세상인 온라인 게임이 해소해준다는 것, 또 그것이 현실 속 전쟁을 소재로 만들어졌다는 것이 혼란스러웠다.

 

김: 꾸준히 작업에 렌티큘러를 사용해왔다.

윤: 마이크로 렌티큘러 렌즈는 내게 ‘본다’는 시각예술의 본질을 건드리는 중요한 매체다. 인간의 두 눈 사이엔 약 6~7cm 거리가 있는데 왼쪽 눈이 보는 거리 값과 오른쪽 눈이 보는 거리 값이 다르다. 양안시차라고 하는데, 사람은 이로 인해 거리감, 입체감을 느낀다. 렌티큘러는 양안시차를 이용해 실제로는 없는 깊이감과 거리감을 입체적으로 느끼게 한다. 감각의 교란을 일으키는 렌티큘러는 자신이 본 것만이 진실이라고 믿으려는 인간의 태도가 얼마나 불완전한 것인지도 깨닫게 했다. 렌티큘러 작품을 보는 사람들의 태도도 재미있다. 일반적으로 전시된 그림 및 동영상과 달리, 렌티큘러 작품의 경우 화면의 움직임을 느끼려고 사람들이 스스로 움직이며 본다.

 

윤영석, ‘네온 신’, 3D 마이크로 렌티큘러 렌즈, 각 140×110cm, 2018 

 

김: 제1, 2전시실이 사회적인 맥락에서 이야기를 풀어낸다면 제3전시실은 굉장히 개인적인 공간이다. 젊은 시절 사고로 얻게 된 이명에 관한 자전적 이야기를 설치 작업으로 풀어냈다.

윤: 이 시대에서 가장 관심을 끄는 거대 담론과 이슈, 그리고 매우 사소하거나 개인적인 사건을 대비시키고 동시에 등장시키는 방식으로 작업을 이어나간다. 의사가 “사실 이명은 고칠 수 없다. 익숙해지려고 노력하고 견뎌야 한다”고 해 절망했다. 이명이 30년 동안 진행되다 보니 꿈에서 무슨 풍경이 만들어지는 것처럼 귓속에서도 풍경이 만들어지는 느낌이다. 이명은 실제 존재하는 소리가 아니라 신경이 끊어져서 나타나는 신체적 착각이다. 실재하지 않지만 내게는 분명한 현실처럼 느껴지는 부분이 내 작업의 주제와 일치됨을 느꼈다. 이 느낌을 형상으로 스케치해 전시장에 귀 안의 풍경, ‘이·내·경(耳·內·景)’을 구현했다. 아주 작은 개인적 이야기를 거대하게 증폭시켜 세상에 꺼내놓고 관객들의 반응을 보고자 했다.

 

김: 돈사, 목욕탕, PC방에서의 경험과 이명의 고통까지 작업들이 대부분 주로 직접 보고 느낀 경험에서 시작된다.

윤: 나는 세상에서 벌어지는 거대한 사건들과 아주 개인적인 것들 속에서 가장 나를 가슴 떨리게 만드는 일들에 반응한다. 인상 깊었던 경험이 있다. 독일 유학 시절에 이스라엘에 혼자 찾아갔다. 거친 사막으로 난 도로를 따라 버스를 갈아타고 가면서 한국에서는 볼 수 없었던, 마치 달이 땅에서 뜨는 것 같은 풍경을 봤다. 매우 이국적이고 선명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또 하나는 독일에서의 경험이다. 베를린에서 슈투트가르트까지 12시간을 운전해서 다녔다. 칠흑같이 어두운 밤, 속도 무제한의 도로에서 백미러에 작은 불빛이 보이는가 싶더니 몇 초 안 돼서 바로 뒤에 따라붙은 고급 스포츠카들이 신호를 깜박거렸다. 눈에 안 들어오던 백미러의 문구가 새삼 각인됐다. ‘사물이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 있음’. 이 문구는 당시 오브제 작업을 시작하던 내게 매우 중요했다. 실제로 보는 것 이면에 다른 개념이나 담론이 있을 수 있음을 깨닫게 한 문장이었다. 이 경험은 ‘아이오’의 사지에 설치된 후사경을 통해 조금 언급되기도 한다. 이처럼 무언가를 실제로 경험하는 것과 그 실제를 통해 느끼는 내용들은 내 작업에서 매우 중요하다.

 

김: 추후의 작업에선 어떤 이야기들이 전개될까?

윤: 최근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와 『호모 데우스』를 흥미롭게 읽었다. 인간의 존재와 인간이 어디로 향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계속 끌어가고 싶지만 방식은 정해두지 않았다. 인간이 볼 수 없었던 착시 현상의 극점까지 도달해보고 싶다는 작가적 욕망이 있다. 이 욕망이 내가 불안해하는 인간의 문명에 대한 과욕과 어떤 관계에 놓이게 될지 보고 싶다. 나는 과거에 해놓은 작업을 반복 생산하는 방식을 쓰지 않는다. 내일, 내년, 그 이후의 미래에 내가 무엇을 깨닫고 느끼며, 어떻게 반응할지 궁금할 뿐이다. 미시와 거시의 틈, 그 사이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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