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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공공의 의미와 공동체를 보여주는 새로운 흐름

이지윤 기자
자료제공
금호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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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가능성: 디자인과 사회

전시장에 들어서면 1층 벽을 따라 가지런히 배치되어 있는 수납장들을 마주하게 된다. 나무막대기로 짜여진 소위 ‘빼빼가구’라고 불리는 단순한 형태로 가라지가게에서 제작, 판매한다. 가라지가게 홈페이지에서는 스스로를 “쓰임새가 좋고, 모양새가 검소하며, 알맞은 가격의 좋은 수납가구들을 만들고 판매하는 가게”로 “자작나무 합판을 켜서, 막대기로 만들어 수납장, 책장, 의자, 테이블 같은 가구를 만들고, 남는 자투리 막대기로 소품들을 만든다”라고 소개한다. 여기서 돋보이는 것은 최소한의 재료로 최대한의 효과를 내겠다는 의도다. 다른 재료의 추가 없이 나무라는 단순한 재료를 남김없이 활용하면서 수납장의 역할을 최대치로 끌어낸다. 서동진(계원예술대학교 교수)은 이를 두고 “플라스틱 또는 폴리염화비닐처럼 미래 사회에 대한 가능성을 상징하는 신재료를 사용해 디자인했던 과거와는 다른 사회 관념을 보여준다. 우리에게 더 이상 미래가 없으니 지금 남겨진 재료를 이용해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를 지속하려는 움직임이다”라고 풀이했다. 최소한의 자재로 가구를 제작함으로써 폐기물도 최소화하여 지속가능한 사회를 꿈꾸는 것이다.

2층에 전시된 문승지의 ‘브라더스 콜렉션(Brothers Collection)’은 최소 재료의 최대 활용 방식을 이보다 더 과감하게 보여준다. 전시장에는 흰색 의자와 탁자가 놓여 있고 벽에는 한 장의 철판으로 의자를 만드는 과정을 보여주는 영상이 있다. ‘브라더스 콜렉션’은 버려지는 자투리 양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한 장의 합판을 재료로 제작했던 ‘포 브라더스(Four Brothers)’의 철판 버전이라고 할 수 있다. 문승지는 “의자 하나를 만들기 위해 그 의자만큼의 쓰레기가 버려졌다”고 말하며 “왜 애초에 쓰레기를 만들지 않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을까? 이것이 ‘포 브라더스’의 시작이었다”라고 말한 바(「SPACE(공간)」 611호 참고) 있다.

환경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찾는 작업은 지역의 지속가능성 문제와 연결되기도 한다. 공공공간이 전시하고 있는 ‘제로쿠션’은 소규모 봉제공장이 밀집된 창신동에서 생기는 자투리 원단으로 만든 것이다. 의류 공장이 대규모로 해외 이전한 후 창신동에 남은 봉제공장은 도매시장에서 주문하는 하청 작업을 주요 일감으로 맡게 됐고, 봄, 가을에는 일감이 줄어들었다. 이에 공공공간은 비수기 때에도 봉제공장들이 안정적으로 일감을 확보할 수 있는 경제구조를 만들고자 버려지는 원단을 최소화하는 ‘제로웨이스트 디자인’을 브랜드화 하고 지역의 소상공인들과 협력하는 구조를 만들려고 했다. 지하 전시장에는 공공공간에서 만든 ‘제로쿠션’ 외에도 ‘제로웨이스트’ 디자인으로 만들어진 옷, 창신동 봉제공장 간의 협업 관계를 보여주는 ‘관계지도’가 함께 전시되어 이해를 돕고 있다.

앞선 세 팀의 동기와 활동 방식은 조금씩 다르지만 여기에는 현재의 디자인과 생산 현상에 대한 문제의식이 전제되어 있다. 그리고 디자인의 역할을 미래에 대한 거창한 구호의 개진으로 보기보다는, 소비자가 물품을 구매함으로써 ‘지속가능한 삶’이라는 새로운 삶의 방식에 참여케 한다. 친환경적인 상품의 소비가 지역사회의 경제적 기반 확보와 같은 노력으로 이어지기도 한다는 점에서 착한 소비만을 강조하던 기존의 ‘착한 디자인’에서 진일보한 모습도 읽을 수 있다.

 

씨오엠, ‘커스텀-메이드’, 합판, 왁스 마감, 가변설치, 2018


관계: 생산자와 소비자의 공존

전시를 기획한 김희원(금호미술관 어시스턴트 큐레이터)은 “예전에는 소비자와 생산자가 명확히 구분되어 있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이제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와 다양한 매체의 발달로 소비자가 생산과정에 관심을 갖고 들여다보면서 과정까지도 소비하는 사회가 되었다. 전시는 이 ‘관계’가 발생하는 지점에 주목했다”고 설명했다. 서체디자인 스튜디오 ‘양장점’은 이전과는 다른 이 관계성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3층 전시장에는 3,286개의 글자가 바닥과 벽에 전시(글립스(Glyphs))되어 있다, 이 문자에 쓰인 서체는 오늘날 많이 사용하는 필기구인 펜의 특성을 살려 한글 서체를 영어의 이탤릭체와 같이 속도감이 느껴지는 서체로 개발한 ‘펜바탕 레귤러’다. 양장점은 서체 개발 과정에서 동료 디자이너들에게 프로토타입을 제공해 서체를 수정 및 보완했고, 미완성인 펜바탕 레귤러 서체를 텀블벅에서 공개해 사용자가 디자인의 개발 단계부터 후원을 통해 서체 제작에 참여하도록 했다.

양장점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활용해 생산과 소비의 새로운 관계를 보여주었다면, 공간디자인 스튜디오 ‘씨오엠’은 클라이언트의 요구와 공간의 제한된 조건에 최적화된 가구를 제작했다. 씨오엠이 제작한 다양한 가구들이 전시되어 있는 모습(‘커스텀-메이드’)은 언뜻 보면 특이한 형태의 조각품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가구들의 형태는 제작 과정을 알아야만 이해할 수 있다. ‘고양이가 거주할 수 있는 환경’, ‘매장으로 쓰기엔 애매하고 그냥 두기엔 비어 보이는 복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구’ 등 클라이언트의 요구를 조율하는 과정에서 탄생한 것이기 때문이다.

양장점의 펜바탕 레귤러와 씨오엠의 ‘커스텀-메이드’에서는 소비자가 소비라는 수동적인 역할에만 머무르지 않고 생산 과정에도 참여하고 있다는 점에서 제작 과정에서 생산자와 소비자가 공존하는 새로운 양태를 보여준다. 여기서 디자이너는 급진적인 디자인 실험을 주도하는 실험가이거나 또는 대량생산을 위한 설계자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와 직접 만나고 그들의 의견을 기꺼이 수용하고 협업하는 커뮤니케이터의 역할을 한다.

 

가라지가게, '가라지가게 작업실', 혼합매체, 360 x 1,360 x 680cm, 2018

 

문화매개체: 개별 주체들을 잇는 디자인

문화를 반영하는 디자인의 속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작업도 있다. 인테리어 디자인 스튜디오 ‘플랏엠’은 전시장 곳곳에 각기 다른 형태의 장을 배치하고 둔촌 주공아파트에 관한 자료를 비치해 장이 주거 방식에 따라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불과 몇 십 년 전만 해도 보편적인 주거 양식이었던 주택의 거주자들이 원목으로 제작한 독립된 형태의 장을 주로 두었다면, 오늘날 아파트에서는 좁은 공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합판으로 제작한 빌트인 장이 사용됨을 주목한 것이다. 이런 식으로 플랏엠은 공동체와 공공의 작은 단위인 가정의 주거 양식에 대한 기억을 다양한 장의 형태로 보여줌으로써 디자인이 어떻게 이들과 연관을 맺고 생활양식의 매개가 되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6699프레스’는 사회에서 발언권을 갖지 못했던 탈북 청소년과 성 소수자, 여성 디자이너와 같은 소수자들의 이야기를 책으로 출판하는 그래픽 스튜디오 겸 독립출판사다. 이들이 전시하는 ‘6699’는 지금까지 출간된 10권의 책을 읽는 퍼포먼스다. 전시장에 있는 세 개의 채널 중 한 채널에서는 한 명이 자신이 쓴 자서전적인 이야기를 낭독하고 나머지 두 채널에서는 각각 이를 경청하는 사람, 발화되는 문장을 보여주는 영상이 상영되고 있다.

이 두 프로젝트는 문화매개체로서 작동하는 디자인의 역할을 보여준다. 또한 6699프레스는 소수자들의 이야기를 함으로써 잘 보이지 않는 작은 목소리까지 살피고 인지할 때 공공의 의미를 발언할 수 있고 공동체의 형성이 가능함을 은유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디자인과 공동체’라는 주제 안에서 전시가 선보이는 일곱 팀의 작가들이 공공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방식, 그리고 그들의 디자인을 통해 감지할 수 있는 공동체는 어떤 특성을 지녔을까? 양장점의 펜바탕 레귤러 제작에 참여하는 후원자들은 서로를 알지 못할 확률이 높다. 6699프레스의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은 책을 출간한 이들과 직접적인 관계를 맺지 않는다. 이러한 점에서 전시가 주목하는 공동체의 구성원들은 개인화되어 있다. 그리고 이들은 본질적으로 소비와 생산이라는 구조 안에 위치해 있으며, 상품화되어 판매되어야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영리적이다. 그러나 지역에 닥친 문제 해결을 고민하며 지속가능한 대안을 제안하는 각각의 작품은 ‘공공’이라는 주제 아래 디자인을 매개로 개개인의 참여를 이끌어낸다는 점에서 느슨하게 연대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혹자는 이들의 방식이 결국 물건을 더욱 매력적이고 소비의 과정을 정당하게 보이도록 해 더 많은 판매 수익을 올리기 위한 전략이 아닌지를 의심하고, 그들이 보여주는 공공과 공동체의 진정성에 대해 질문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어떤 형태를 하고 있든 이들의 디자인이 단지 매력적인 오브제로서만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관계’를 발생시키는 문화의 매개체로서 존재하고 있음은 분명해 보인다. 전시가 주목한 디자이너들이 공공의 의미를 보여주는 방식을 단지 상품화된 행위로만 치부하기 어려운 이유이기도 하다.​ 

 

플랏엠, ‘슬라이딩 도어 캐비닛’, 나왕 합판, 왁스 마감, 85×97×70cm,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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