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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시대의 건축교육

황지은(서울시립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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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어디서나 가르치고 배울 수 있는 사회. 초연결시대를 맞이해 교육의 범위와 형식은 다채로워졌다. 디지털화된 지식은 쉽게 유통되고 이식되며 변이된다. 전문지식이 플러그인으로 소프트웨어에 장착되고, 누구나 몇가지 검색으로 순식간에 분야를 아우르는 정보를 찾을 수 있다. 디지털 정보 기술은 지식의 폭발적 증가와 확산을 가져오는 동시에 지식을 독점적으로 관리하는 권위를 무너뜨리고 개방형 체제를 작동하게 한다. 끊임없이 배우는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교육은 일방향이 아니라 다중의 관계망 안에서 이루어진다. 교육은 현장에 스며들고 있고, 참여적 학습은 복잡한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동력이 되고 있다. 건축 분야 또한 교육이 현장에 직접 관여해 적극적으로 관계를 맺고 사회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건축 교육은 언제나 건축의 사회적 역할을 강조해왔다. 자원고갈과 기후 변화 같은 환경문제,  윤리나 법규 등 현실에서 마주하는 문제가 모두 학습의 대상이다. 이제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환경에서 건축과 도시가 겪는 문제를 빠르게 해석할 수 있게 되었다. 온라인 항공지도로 전세계 지형을 관찰하고, 도시를 거닐며 스마트폰으로 정보를 바로찾아볼 수 있다. 같은 관심사의 사람들과 동시다발적으로 소통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빅데이터, 디지털 패브리케이션, 가상현실 등의 신기술을 자연스럽게 도입하게 된다. 교육의 과정은 더 이상 단순히 건축가가 되기 위한 직능 훈련이 아니다. 건축 교육이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실험의 장이 되고, 학생들은 실행 주체로 활동하게 된다.

 

건축자재 재활용센터인 컨스트럭션 정션에 자리한 ‘프로젝트 리_’ 입구 전경

 

상황 학습과 현장 실험 

모두가 방대한 정보에 접근가능하게 되면서, 정보 습득량 자체보다는 이를 통합하고 체화하는 능력이 더욱 중요해졌다. 학생들이 직접 기획하고 주도하는 참여형 교육 커리큘럼이 주목받는 이유다. 카네기멜론대학교 건축학과의 ’도시 디자인 빌드 스튜디오(Urban Design Build Studio)’에서는 학부 3학년 학생들이 직접 프로젝트의 계획과 시공 그리고 허가과정까지 참여한다.종합대학의 학제에서 매우 파격적인 구성이라 할 수 있다. 학교는 무대를 제공하고 학생들은 주인공이 되어건축가의 역할을 직접 수행한다. 이 과정에서 학생들은 지역 공동체, 자원봉사자 단체, 관공서와 시공업체 등 여러 관계자들을 만나며 다양한 각도에서 지역을 이해하고 실무 소양을 키운다. 카네기멜론은 또한 인공지능과 로보틱스 등 컴퓨터 과학분야의 연구를 선도하고 있는 대학으로서, 건축학과가 이러한 교내 다른 분야 전공 수업들과 연합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2015년 진행했던 ’프로젝트 리(Project Re)’에서는 건축자재 재활용 센터 내부 공간 구획을 건축학과 스튜디오에서 먼저 계획하고, 디지털 팹랩의 장비와 재활용 자재를 활용하여 가구와 내부 구조물을 직접 디자인하고 제작하는 과정에서 로봇 및 인터렉티브 미디어를 활용했다. 이 수업에서는 또한 가상현실 모듈과 에너지 감지 시스템을 공간 계획에 적용했다.  수업의 결과물이 세상에 아직 아무도 선보인 적 없는 최초의 사례로 실현되는 것이다. 

 

‘프로젝트 리_’에서 학생들이 설계하고 제작한 이동식 팹랩 

 

사회혁신의 실행 활력

보다 적극적으로 사회 문제에 집중하여 이를 실천적으로 해결하는 건축 행동주의의 접근에서도 교육활동은 중요하다. 전세계 전자제품폐기물(e-waste) 집하장이 있는 아프리카 가나 아보블로쉬에서 활동하고 있는 건축가 그룹 아보블로쉬 메이커스페이스 플랫폼(Abobloshie Makerspace Platform)은 도시의 환경 문제와 지역주민들의 생활상을 공론화하고 삶의 질 개선을 위한 활동을 수년간 벌이고 있다. 먼저 문제를 지역 안에서 자각하고 자생적인 해결점을 찾기 위해 교육프로그램을 기획, 운영하고 있다. 이 지역에서 정규교육 기회를 놓친 청년들이 자율적으로 공부할 수 있게 컴퓨터와 인터넷, 3D 프린터 등의  기본적인 디지털 기술 장비와 교육을 제공했다. 이를 위해 가까이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로 쉽게 지을 수 있는 가설구조물 ‘스페이스크래프트’를 설계하고, 스페이스크래프트에서 진행할 수 있는 워크숍의 자료를 오픈소스로 공개했다. 지역의 청년들과 인근 대학의 학생뿐 아니라 국제기구, 정부기관을 통해 온 전세계 학생들이 어울려 3D 프린터, CNC 등 디지털 장비 활용법을 배우고 사용하기 시작했다. 또한 재활용과 환경문제에 관해 지역주민들이 이해하기 쉬운 교육 자료를 만들어 배포하고, 전자 쓰레기 더미에서 사용 가능한 전자부품을 찾아내 온라인 목록화 하는 앱을 개발하는 등 자생적 개선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프로젝트 리_’의 가상현실 프로그램 시연 

 

지식정보 플랫폼으로의 진화 

셰필드대학교의 건축대학에서 주관하는 라이브 프로젝트에서는 1999년부터 현재까지 지역의 문제에 직접 참여하는 건축 프로젝트를 웹사이트에 기록해오고 있다. 세계 120여개의 프로젝트를 시공작, 공동체 조성, 창작 참여, 전시, 타당성 검토, 수리, 전략계획, 지속가능성 전략, 툴킷, 웹사이트 등의 항목으로 정리했다. 각 프로젝트를 실제 수요처의 관점에서 기록한 인터넷 정보 플랫폼이다. 

한편, 사회 공헌을 위한 참여형 건축교육을 표방하고 있는 일종의 대안학교도 최근 등장하고 있다. 대부분은 웹 사이트를 기반으로 운영하고 있다. 지역사회의 재활용, 에너지 문제를 직접 현장에 모여 해결하는  다국적 활동인 ‘크리티컬 콘크리트’, 영국의 후크파크 캠퍼스에서 진행하는’디자인+메이크’, 다양한 재료를 혁신적으로 실험해보는 ‘매트리어빌리티(Matriability)’ 등이 있다.

 

서울시립대학교 건축학과 학생들이 세운캠퍼스에서 진행한 세운베이스먼트 로봇 워크숍에서 건축 설계에 적용할 수 있는 로봇 기술을 학습하는 기회를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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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운 캠퍼스

세운상가 일대는 2016년부터 ‘다시 세운’이라는 이름으로 서울시 도시재생사업이 진행중이다. 메이커시티를 표방하는 이곳의 잠재력은 기존 세운상가의 제조업, 유통업의 기반과 도심지 입지를 바탕으로 한다. 다양한 부품을 쉽게 구할 수 있고, 특정 가공 공정 기능이 뛰어나고 경험이 풍부한 인력들이 포진해있는 세운상가 일대는 아이디어를 구현하려는 젊은 창업자, 창작자들에게는 거대한 실험제작실과 같은 곳이다. 최근 메이커 운동, 오픈소스 운동 등을 통해 창작자간의 네트워크가 쉽고 빠르게 형성되면서 그동안 진입장벽이 높았던 세운상가 일대에서 워크숍, 해커톤, 사회적협동조합 등 다양한 활동이 일어나고있다. 

서울시립대학교는 ‘다시 세운’ 프로젝트의 전략기관으로서 ‘시티캠퍼스’를 운영하는 파트너이다. 서울시립대 세운캠퍼스의 실체는 물리적 공간이라기보다, 세운상가 커뮤니티와 공유하는 공간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과 인적 네트워크를 포함한 추상적 개념이다. 확장된 학교의 모델로서 학교의 구성원에게 현장 밀착형 교육과 실증적 연구의 기회를 제공할 뿐 아니라, 세운상가 내 기술 장인과 메이커, 그리고 일반 시민들이 만나고 함께 작업할 수 있는 플랫폼으로 발전시킬 예정이다. 이를 통해 지역 내 잠재 학습 자원, 즉 제작 인프라, 지역기반 기술자, 신기술 기반 연구자, 창작자들을 발굴하여 교육의 생태계를 확장해 나가려고 한다. 교육을 통해 세대를 아우르는 소통의 장을 마련하고 기술을 승계하고자 한다.세운캠퍼스에서 실험적으로 진행하고 있는 건축교육은 디지털 사회혁신의 속성을 그대로 띠고 있다. 지난 일년간 진행한 로봇 패브리케이션 워크숍, 3D 프린팅 워크숍 등에서 신기술을 건축 재료와 공법에 적용해보며 미래의 기술에 대해서도 실증적으로 상상해보았다. 

건축 디자인 스튜디오 ‘다시 세운 다시 보기’에서는 디지털 건축교육이 도시 현장에서 공헌할 수 있는 가능성을 봤다. 학생들은 신선한 시각으로 지역을 관찰했고, 그들의 활동 자체가 지역에 활력을 더했다. 새로운 음식을 대접하며 현재 기존 주만들의 예민한 걱정을 청취하고 기록한 ‘세운간식연구소’ 프로젝트와 세운상가의 공간을 음식을 매개로 살펴본 ‘세운식탐’ 프로젝트는 학생들이 실행한 연구를 건축적 시각언어로 풀어냈다. 1930년대 소개도로에서 부터 현재까지 수많은 재개발 계획과 공모전 등의 아이디어를 모형과 웹 가상현실로 구현한 ‘세운온더웹’ 프로젝트에서는 세운상가의 도시, 건축 논의를 한눈에 비교할 수 있었다. 또한 ‘믐믐’ 프로젝트는 세운상가 건물군의 입면을 한 장의 긴 파노라마 사진으로 표현했고  앞으로도 드론을 통해 이를 지속적으로 촬영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했다. 기계식 시계를 만든 ‘오래된 미래’ 프로젝트는 예지동 시계수리 장인들에게 구체적인 조언과 도움을 받아 진행했다. 

학생들이 도시재생 지역에 머물면서 생기는 활력, 학생이라는 신분이 부여하는 관대한 사회적 허용들이 전통적인 교육을 뛰어넘는 새로운 차원의 도시 거버넌스를 가능하게 했다. 또한 디지털 패브리케이션 등 새로운 제조기법을 쉽게 익히고 구사하는 젊은 학생들과 한 가지 공정을 일생을 거쳐 손끝으로 연마해온 노련한 기술자들의 대화에서 도시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보였다. 학생들은 실제 현장의 거버넌스 실행자로서 역할을 수행하며 우리 도시를 배우고 바꾸고 만들어갈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고, 도시 현장은 학습의 장으로 다시 자리매김했다. 건축적 지식과 관점을 다양한 실행으로 발현하는 세운캠퍼스의 도전은 현재 확장되고 있는 도시재생의 현장 어디에서든 실험할 수 있는 의미있는 시도다. 

 

 

 

디지털 페다고지로 확장되는 새로운 교육은 사회혁신의 동력으로 작동하고 있다. 현장 기반의 교육은 예전부터 강조되어 왔지만,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창의와 상상을 직접 구현할 수 있는 힘이 개인에게, 학생에게 생겼다. 디지털은 더 이상 아날로그와 대비되는 가상의 존재나 기술적 용어가 아니라, 우리 삶을 지탱하는 실체다. <진행_김나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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