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ACE(공간)」 2026년 10월호 (통권 707호)
2023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의 공동 예술감독을 역임했던 박경(1955~). 그의 활약이 40여 년 전 스토어프론트(StoreFront for Art and Architecture)▼1에서 출발했다는 사실은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다. 건축을 전공한 그가 20대 후반 설립해 16년간 이끌었던 뉴욕의 대안적 전시 공간인 스토어프론트는 건축을 통해 도시를 사유하고 사회적 문제를 공론의 장으로 끌어올리는 역동적 실험실이었다. 1980~1990년대 주목받기 시작한 국제적 건축가, 예술가, 기획자들과의 다층적인 협업을 통해 선보인 전시와 결과물들은 일회적 이벤트를 넘어 사회적 영향력을 지닌 활동으로 인식됐다. 특히 박경이 스토어프론트에서 축적한 실천적 큐레토리얼 방법론은 여러 국제 비엔날레를 통해 세계 무대로 확장되면서, 건축이 전시라는 매체를 통해 도시 현실에 어떻게 개입하고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지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이 과정을 아카이빙하고 연구한 신은진(큐레이터)과임동우(홍익대학교 교수)는 박경과 스토어프론트의 초기 서사를 입체적으로 복원하고, 그 활동이 건축계에 남긴 유산이 무엇인지, 지금 우리에게 던지는 유효한 질문이 무엇인지 짚는다.▼2 편집자

스토어프론트에서 열린 〈Detroit is Everywhere: Post-Urban Landscape〉(1995) 전시 전경 Image courtesy of Storefront for Art and Architecture
1982년 스토어프론트가 시작된 뉴욕은 어떤 한 방향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도시였다. 1975년 재정위기의 충격은 여전했고, 산업과 인구가 이탈하며 도시가 방치된 흔적이 남아 있으면서도 동시에 금융과 부동산을 중심으로 다시 자본이 유입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불안정은 문화의 생산방식에도 영향을 미쳤다. 1980년대 뉴욕은 이미 더 키친, 아티스트 스페이스, P.S.1과 같은 대안 공간들이 미술관과 상업 갤러리 밖에서 전시와 공연, 작업과 만남을 실험하고 있었으며 실무의 기회가 충분치 않았던 건축계 역시 이러한 활동들이 활발하게 발생하던 시기였다. 피터 아이젠만이 30대에 설립한 IAUS는 1970년대와 1980년대에 걸쳐 10년 넘게 「Oppositions」를 발행하며 이론과 비평이 대안 활동으로 주목받기 시작했고, 스티븐 홀과 윌리엄 스타우트가 그들이 30대였던 1978년 시작한 「Pamphlet Architecture」 역시 기존 잡지나 저널에서 잘 다루지 않던 젊은 건축가들의 실험을 담아내는 출판물이었다. 또한 현재까지도 북미지역에서 건축가들의 등용문처럼 여겨지는 ‘Young Architects Forum’ 역시 1981년 재정되며, 당시 뉴욕은 젊은 건축가들을 중심으로 출판, 전시, 강연과 교육을 통해 건축을 생산하는 문화가 활발해지고 있었다. 건축은 더 이상 건물을 설계하고 짓는 행위만으로 설명되지 않았다.
스토어프론트는 바로 이런 환경에서 등장했다. 1982년 박경은 맨해튼 프린스 스트리트의 작은 상점 공간을 빌려 스토어프론트를 설립했고, 첫 행사로 예술가 로버트 셀트먼, 아린 슐로스와 함께 ‘Performance A–Z’를 기획했다. 대학이나 미술관, 전문기관에 기대기보다 스스로 장소와 프로그램을 만들고, 젊은 건축가와 예술가들이 작업을 발표하고 서로의 생각을 교환할 수 있는 독립적 장을 마련하려는 시도였다.
그러나 스토어프론트는 곧 다른 대안 공간들과 구별되기 시작했는데 단지 새로운 작업을 소개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전시와 공연, 공모와 출판을 통해 도시문제를 직접 질문하고, 그 과정에 다양한 참여자를 끌어들이며 건축이 사회와 관계 맺는 방식 자체를 실험했다는 점에서 스토어프론트는 하나의 갤러리라기보다 새로운 건축적 실천의 형식에 가까웠다.

〈Detroit is Everywhere: Post-Urban Landscape〉 전시를 위한 설치 작업(1995) Image courtesy of Park Kyong
프로토콜 실험실
스토어프론트의 첫 공식 프로그램인 ‘Performance A–Z’는 이러한 태도를 비교적 선명하게 보여준다. 1982년 9월부터 스물여섯 명의 예술가와 음악가, 퍼포머에게 알파벳 한 글자씩을 배정하고 26일 동안 매일 한 명씩 공연하도록 했다. 모든 공연은 무료였고, 갤러리 내부뿐 아니라 쇼윈도와 보도, 거리까지 이용했다. 스토어프론트 아카이브는 당시 10×21피트(약 3×6.5m)의 작은 공간과 큰 유리창 때문에 공연자와 관객, 보행자, 거리와 갤러리의 관계가 계속 변화했다고 기록한다. 흥미로운 것은 프로그램의 내용보다 그 규칙이다. 스토어프론트가 만든 것은 알파벳과 날짜, 시간이라는 최소한의 틀이었고, 그 안의 내용은 참여자들이 채웠다. 즉 큐레이팅은 무엇을 보여줄지를 완전히 결정하는 일이라기보다, 서로 다른 행위가 발생할 조건을 만드는 일이 되었다.
여기서 스토어프론트가 다룬 ‘커뮤니티’를 조금 다르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 오늘날 커뮤니티 프로그램이라고 하면 특정 지역주민을 대표하거나 주민의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을 쉽게 떠올린다. 스토어프론트의 방식은 그것과 조금 달랐다. 이미 존재하는 하나의 공동체를 대변했다기보다, 프로그램을 매개로 평소 만나지 않던 사람들이 임시적으로 만나는 방식을 통해 유동적으로 대중들과 소통하는 방식을 취했다. 스토어프론트가 만들어낸 것은 고정된 커뮤니티가 아닌, 하나의 이슈를 중심으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공동체였다. 커뮤니티가 먼저 존재하고 스토어프론트가 그것을 담았다기보다, 사건과 참여의 형식을 통해 소통의 관계가 만들어진 것이다.

프랑스 오를레앙에서 진행된 〈24260: The Fugitive House〉의 유럽 순회전(2001) Image courtesy of Park Kyong
같은 해 열린 ‘Gowanus Canal Redefined’에서는 이러한 참여 방식이 도시의 문제로 확장된다. 당시 고와누스 운하 일대는 산업시설과 저이용 공장, 운하와 공원, 주거지가 복잡하게 뒤섞여 있던 지역이었다. 스토어프론트와 고와누스 메모리얼 아트야드는 이곳을 대상으로 건축공모를 열었지만, 목적은 하나의 좋은 개발안을 고르는 데 있지 않았다. 공식 설명에서도 이 프로젝트는 예술가와 지역사회 사이의 상호작용을 만들고, 지역의 지리적·경제적·사회적 조건에 대한 분석을 촉진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보통 건축공모에서는 발주자가 문제를 정의하고 건...
▲ SPACE, 스페이스, 공간
ⓒ VMSPAC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