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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적 실험에서 도시적 실천으로: 박경과 스토어프론트 ①건축이 전시가 될 때

글
신은진
자료제공
박경, 스토어프론트
진행
방유경 기자

「SPACE(공간)」 2026년 10월호 (통권 707호) 

 

 

2023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의 공동 예술감독을 역임했던 박경(1955~). 그의 활약이 40여 년 전 스토어프론트(StoreFront for Art and Architecture)▼1에서 출발했다는 사실은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다. 건축을 전공한 그가 20대 후반 설립해 16년간 이끌었던 뉴욕의 대안적 전시 공간인 스토어프론트는 건축을 통해 도시를 사유하고 사회적 문제를 공론의 장으로 끌어올리는 역동적 실험실이었다. 1980~1990년대 주목받기 시작한 국제적 건축가, 예술가, 기획자들과의 다층적인 협업을 통해 선보인 전시와 결과물들은 일회적 이벤트를 넘어 사회적 영향력을 지닌 활동으로 인식됐다. 특히 박경이 스토어프론트에서 축적한 실천적 큐레토리얼 방법론은 여러 국제 비엔날레를 통해 세계 무대로 확장되면서, 건축이 전시라는 매체를 통해 도시 현실에 어떻게 개입하고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지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이 과정을 아카이빙하고 연구한 신은진(큐레이터)과임동우(홍익대학교 교수)는 박경과 스토어프론트의 초기 서사를 입체적으로 복원하고, 그 활동이 건축계에 남긴 유산이 무엇인지, 지금 우리에게 던지는 유효한 질문이 무엇인지 짚는다.▼2 편집자 

 

 

 

뉴욕 켄메어 스트리트에 위치한 1993년 당시 스토어프론트의 전경. 스티븐 홀과 비토 아콘치의 공동 설계로 완성된 파사드가 눈에 띈다. Image courtesy of Paul Warchol​

 

 

1988년 뉴욕에서는 성격이 뚜렷이 다른 두 건축 전시가 잇달아 열렸다. 6월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서 개막한 〈Deconstructivist Architecture〉는 필립 존슨이 마크 위글리와 함께 프랭크 게리, 자하 하디드, 렘 콜하스 등 일곱 건축가의 작업을 ‘해체주의 건축’이라는 범주 아래 병치하고, 조화와 통일성에서 벗어난 새로운 형식적 감수성을 가시화한 전시였다.▼3 그해 11월, 다운타운의 전시 공간 스토어프론트는 한반도 비무장지대를 다룬 〈Project DMZ〉를 열었다. MoMA 전시가 서로 다른 건축가들의 형식 실험을 하나의 주제로 묶었다면, 스토어프론트 전시는 군사적 경계와 냉전의 지정학을 건축적 상상의 대상으로 삼았다. 즉 미술관이 건축을 완성된 형식으로 제시하는 자리였다면, 스토어프론트는 건축을 도시와 사회의 현실을 읽는 수단으로 다루었다. 이 차이는 창립 디렉터로서 1998년까지 스토어프론트를 이끈 박경의 실천을 이해하는 출발점이 된다.

 

​박경은 1955년 한국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미국으로 이주했고, 미시간대학교에서 건축을 공부했다. 1970년대 말에는 뉴욕 건축도시연구소(이하 IAUS)의 교육과정에 참여했다.▼4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은 1982년, 그는 소호 프린스 스트리트의 작은 상점 공간에 스토어프론트를 열었다. 이 무렵 다운타운에서는 공장이 떠난 뒤 남은 로프트와 낡은 건물이 작업실이자 거주지, 전시 공간으로 바뀌고 있었다. 로어이스트사이드에서는 빈 건물을 점거해 직접 수리하며 함께 쓰는 공간으로 되살리는 움직임도 이어졌다. 박경은 당시 작은 회사에 다니며 번 돈으로 월 250달러의 임대료를 부담했고, 주변에서 교류하던 예술가와 건축가들이 초기 프로그램을 함께 꾸렸다고 회고했다.▼5 1982년 9월에 시작된 개관 프로그램 ‘퍼포먼스 A‐Z’는 상점의 물리적 조건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26일 동안 매일 퍼포먼스가 하나씩 이어졌고 거리와 맞닿은 진열창은 공연과 관객을 잇는 무대가 되었다. 좁은 실내와 보도의 경계를 전시 공간으로 활용한 이러한 방식은 ‘스토어프론트’라는 이름에도 담겨 있었다.▼6 훗날 박경은 스토어프론트를 만든 것이 자신이 아니라 당시의 도시와 공동체, 문화였다고 말했다.▼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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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켄메어 스트리트에 위치한 1993년 당시 스토어프론트의 전경. 스티븐 홀과 비토 아콘치의 공동 설계로 완성된 파사드가 눈에 띈다. Image courtesy of Paul Warchol​

 

 

저렴한 공간과 자생적인 예술가 공동체가 새로운 실험의 가능성을 열어주던 한편, 같은 다운타운에서는 도시의 불평등도 빠르게 심화되고 있었다. 1975년 재정위기 이후 뉴욕은 긴축과 민간 개발을 중심으로 재편되었고, 젠트리피케이션과 주거 불안, 노숙 문제가 갈수록 두드러졌다. 스토어프론트의 초기 프로그램은 이러한 현실을 전시 바깥의 배경으로 남겨두지 않고 주요 의제로 삼았다. 〈Homeless at Home〉(1985~1986)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박경과 글렌 와이스가 공동 디렉터를 맡은 이 다년 공공 프로젝트는, 노숙인의 삶을 담은 사진전에서 출발해 거리의 스텐실 작업과 네 차례의 공개 세미나를 거쳐 1986년 2월 대안 주거 제안전으로 마무리되었다. 건축가와 예술가뿐 아니라 노숙인 당사자도 참여했으며, 폐선된 항공모함을 노숙인 주거로 전환하는 안을 비롯해 여러 제안이 모였다. 이 프로젝트는 모든 시민에게 주거를 보장하는 헌법 수정안을 제안하며, 노숙 문제를 주거권의 관점에서 다루었다.▼8 여기서 전시는 완결된 결과를 내보이는 자리가 아니라 문제를 공론화하는 과정이었고, 건축은 건물을 짓는 기술을 넘어 도시의 조건을 읽고 사회적 대응의 형식을 조직하는 실천으로 확장되었다.

 

​동시에 스토어프론트는 대형 미술관과 기존 건축 기관이 아직 주목하지 않은 실험 건축을 먼저 소개하는 거점이기도 했다. 1987년 딜러+스코피디오의 첫 개인전 〈Bodybuildings〉가 스토어프론트의 자체 출판물 「FRONT」 창간호 발간과 함께 열렸고, 1988년에는 레비우스 우즈, 쿱 힘멜블라우, 가와마타 다다시, 피터 쿡과 크리스틴 홀리의 전시가 잇따랐다.▼9 그중 쿱 힘멜블라우의 전시는 미국에서 열린 첫 갤러리 전시였으며, 그 해 6월 MoMA는 이들을 ‘해체주의 건축’의 일곱 참여자 가운데 하나로 호명했다. 사회적 의제와 형식 실험 가운데 어느 하나를 택하는 대신, 새로운 건축 언어가 도시의 현실과 만날 자리를 마련한 것이 스토어프론트의 차별성이었다.

 

 

 

​제2회 광주비엔날레 〈지구의 여백〉 가운데 〈공간(火)〉 섹션에 전시된 아라타 이소자키의 ‘Mirage City’(1997) Image courtesy of Park Kyong, Gwangju Biennale Foundation

 

 

그리고 이 두 흐름은 그해 11월 〈Project DMZ〉에서 한층 직접적으로 교차했다. 스토어프론트의 디렉터 박경이 전시를 총괄하고 실무는 캐슬린 크랩이 맡았으며, 백남준이 명예위원장으로 이름을 올렸다. 국제적으로 이름이 알려진 한국계 거장을 명예위원장에 둔 것은, 뉴욕과 한국을 잇는 상징적 교두보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세대와 문화가 다른 참여자들이 낸 쉰아홉 점의 제안은, 비무장지대를 없애는 단일한 해법 대신 그 군사적 영토를 달리 점유하는 방식을 상상했다.▼10 백남준은 격자 종이에 쓴 ‘DMZ Must Become A Tiger Farm(DMZ는 호랑이 농장이 되어야 한다)’에서 비무장지대를 생태 낙원이자 관광지로 바꾸는 안을 내놓았고, 폴 비릴리오와 아방 트라보 스튜디오는 그곳을 접근할 수 없는 공항으로 덮어 한반도의 분단을 베를린·베이루트·벨파스트의 경계와 나란히 놓았다. 레비우스 우즈는 인간과 자연이 상호작용하는 ‘제2의 자연’ ‘Terr...

 
*기사 원문은 월간 「SPACE(공간)」 707호(2026년 10월호) 지면에서 더 많은 자료와 함께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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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진
신은진은 큐레이터이자 연구자이다. 런던 골드스미스 대학교에서 미디어 커뮤니케이션을 공부하고,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에서 미술사를 수학했다.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서 영상커뮤니케이션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3년 〈관계〉전으로 전시기획을 시작했으며, 2007년과 2010년 아트센터 나비 미디어아트 페스티벌 전시팀에 참여했다. 2012년부터 2018년까지 서울시립미술관 큐레이터로 재직했고, 이후 2019 아티언스대전, 타이포잔치 2021, 2022년 일민미술관 등에서 초청 큐레이터로 활동했다. 비판적 큐레이팅의 관점에서 전시사를 연구하며, 미디어·건축·음악 등 장르 횡단적 실천과 도시, 공공성의 문제에 관심을 두고 있다.
임동우
임동우는 홍익대학교 건축도시대학원 교수이자 프라우드 건축사사무소 공동대표다. 2013년 뉴욕건축연맹 젊은건축가상을 수상했으며, 2017년 〈평양전-평양살림〉 감독과 2019년 서울건축도시비엔날레 도시전 큐레이터, 2023년 대구글로벌스튜디오 감독을 역임했다. 대표작으로는 순천시 신청사, 수헌정 등이 있으며, 저술로는 「AD」 ‘Production Urbanism’, 『A Language of Contemporary Architecture: An Index of Topology and Typology』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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