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ACE(공간)」 2026년 10월호 (통권 707호)

©Claus Troelsgaard
인터뷰 비야케 잉겔스 BIG 대표 × 김보경 기자
유토피아적 실용주의
SPACE: 건축가의 역할이 ‘세상을 꿈에 조금 더 가깝게 만드는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당신이 꿈꾸는 세상은 어떤 모습인가?
비야케 잉겔스(비야케): 우리의 건축 철학은 유토피아적 실용주의라고 표현할 수 있다. 유토피아는 너무도 완벽해서 오로지 소설이나 상상 속에서만 존재할 수 있는 장소다. 반면, 실용주의는 모든 불규칙성과 불완전성을 지닌 세상을 있는 그대로 다룬다. 이 두 가지를 결합하면, 무언가가 발생한다. 우리는 어떤 공간이나 장소를 설계할 때마다, 그 세상 속 작은 모퉁이를, 꿈꾸던 모습에 더 가깝게 만들려고 한다. 꿈은 항상 구체적이기 때문에, 우리가 서울에서 꿈꾸는 세상은 코펜하겐에서 꿈꾸는 세상과 매우 다르며, 마찬가지로 이탈리아나 뉴욕에서 꿈꾸는 세상과도 다르다.
SPACE: 세상을 꿈에 더 가깝게 만드는 건축가라는 말은 굉장히 환상적으로 들리며, 그래픽 노블 작가라는 당신의 어릴적 꿈과도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어떤 그래픽 노블, 애니메이션, SF 작품을 좋아했나?
비야케: 아시아 만화를 접할 기회는 많지 않았지만, 리베라토레, 우고 프라트, 그리고 밀로 마나라와 같은 유럽 작가들의 작품은 물론, 프랭크 밀러와 앨런 무어와 같은 미국 작가들의 작품도 많이 읽었다. 나는 주로 선화, 그림 그 자체에 매료됐다.
SF의 매력은 다른 세상을 상상함으로써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우리들의 세상을 되돌아보게 한다는 점에 있다. 마찬가지로, 우리들이 속한 사회와 건축을 이해하는 훌륭한 방법은,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이 다른 곳에서는 전혀 다르게 처리된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것이다. 덴마크 사람이라면, 자전거도로는 어디에나 있고 항상 자전거도로를 구분하기 위한 연석이 있다고 가정한다. 다른 나라에 가보면, 자전거도로가 제대로 통합되어 있지 않거나, 자전거도로의 높낮이 차이도 전혀 없는 경우를 발견하게 된다.
SPACE: 예전에 좋아했던 작품들을 여전히 즐겨 보나? 요즘에는 어떤 작품에 관심을 가지고 있나?
비야케: 그러고 싶지만, 두 살과 일곱 살짜리 어린 아들 둘이 있어서, 따로 책을 읽을 시간이 별로 없다. (웃음) 하지만 항상 전기에 관심이 많다. 두 아들의 이름이 다윈과 레오인데, 요즘 찰스 다윈과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전기를 읽고 있다. 사람들이 어떤 위치에 도달하기까지의 여정을 이해하고, 위대한 발전이 결코 갑자기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을 깨닫는 건 흥미롭다. 그 과정은 언제나 사람들의 상상보다 훨씬 더 점진적이고 끈기 있는 노력을 필요로 한다.
다윈의 적응을 통한 진화론은 부분적으로 그가 지질학에 가졌던 관심에서 비롯되었다. 우리는 적응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말 사육이나 꽃 재배를 통해 이미 알고 있었지만, 당시 생물학자와 박물학자를 포함한 사람들은 여전히 생물학적 시간의 관점에서 사고하고 있었다. 다윈은 지질학적 시간의 관점에서 사고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동시대 사람들이 이루지 못했던 개념적 도약을 이룰 수 있었다. 그의 도약이 ‘혁명’이라기보다는 사고의 ‘진화’에 가깝다는 점을 이해할 가치가 있다. 비록 덜 극적으로 들릴지 몰라도, 이는 그저 우리가 사물을 바라보는 방식의 점진적 변화에 불과하다.

©Phaidon
SPACE: 정말 다윈을 좋아하는 것 같다. (웃음) BIG를 ‘건축적 생물다양성의 아카이브’에 비유하며, 다윈의 이론을 빌려 당신의 사무소와 설계 방식을 설명해오기도 했다. 그렇다면, 그 과정에서 당신의 디자인 의지는 어떻게 반영되는가?
비야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우리가 소위 표준적인 해결책이라고 부르는 데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모더니즘의 보편적 양식이 가진 문제는, 모든 것에 대해 완벽하고 보편적인 해답이 존재한다는 생각에 있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각각의 장소에 따라 질문이 늘 다르기 때문에, 올바른 답 또한 상황마다 매우 다르게 나타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설계할 장소나 공간을 이해할 때, 그곳의 불완전성과 특수성까지도 포함해서 그곳과 사랑에 빠지려고 노력한다.
나쁜 것은 표준이 되지 못한다. 오히려 특정 비용으로 특정 품질을 아주 훌륭하게 제공하기 때문에 표준이 되는 것이다. 우리가 하려는 일은, 특정 사례에서는 표준적인 해결책만으로 충분하지 않음을 파악하는 것이다.
SPACE: 낡은 페리를 고친 당신의 집, 그리고 항만 부두의 끝에 위치한 BIG HQ처럼 스스로 클라이언트가 된 작업들은 모두 입지나 형식 면에서 독특하고 표준에서 벗어나 있다. 어쩌면 스스로의 이상이 가장 잘 반영된 프로젝트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비야케: 건축은 예술 형식으로서 일종의 초상화라고 생각한다. ‘모나리자’를 예로 들어보자. 이 작품은 예술가로서의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표현일까, 아니면 그 여인 자체, 그녀의 외모, 성격, 영혼을 표현한 것일까? 정답은 둘 다이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다른 클라이언트를 위해서 설계할 때, 우리에게 설계를 의뢰한 대상의 중요한 요소와 더불어 BIG와 나 자신의 요소도 담겨 있다. 우리 자신을 위해 설계할 때 그것은 곧 자화상이 된다.
나에게 있어, 그 중심에는 바다가 있다. 정말로 영혼 속에 자리 잡고 있다. 덴마크는 선원들의 나라 아닌가. 또한 관대함이라는 개념도 있다. 모든 것을 과도하게 결정짓지 않고, 열린 마음과 유연함을 유지하는 것이다.

BIG New York City Office ©Max Touhey
스토리텔링
SPACE: BIG의 작업을 설명하는 데 스토리텔링은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건축을 이미지로 보여주는 차원을 넘어 스토리텔링은 당신에게 어떤 의미인가?
비야케: 우리는 인생에서 경험을 통해 배운다. 이야기는 경험에 따른 대가를 감내하지 않고도 어떤 경험을 할 수 있게 해준다. 건축에서도 경험이 중요하다. 건물이 지어지고 나면, 건물은 스스로 말하기 시작한다. 여러분은 그곳에 직접 가서 보고, 경험해 볼 수 있다. 그것이 마음에 들든 안 들든, 제대로 작동하든 안 하든 상관없이 말이다. 하지만 건축은 비용이 아주 많이 들기 때문에, 수많은 규제의 대상이 되며, 어느 순간 부적합하다고 판단되면 결코 지어지지 못한다. 그렇더라도, 건축가로서 우리는 건물이 실제로 지어지기 전까지 그 특정한 아이디어의 가치와 장점을 옹호하는 챔피언이 되어야 한다.
SPACE: BIG는 약 5년을 주기로 책을 발간하며, 건축을 설명하는 방식을 매번 달리해왔다. 각 책의 주제와 편집 방식을 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비야케: 우리의 첫 번째 책인 『Yes Is More』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직후인 2009년 1월에 출간됐다. 2008년 9월 전 세계 경제가 붕괴되며 비관적인 분위기가 감돌던 시기였기에, 『Yes Is More』가 일종의 낙관주의 선언문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스토리텔링의 정신에 따라, 이 책을 마치 강연을 책으로 옮긴 것처럼 만들자는 아이디어였다. 그동안 강연과 발표를 통해 수많은 담론을 쌓아왔지만, 글로 적어본 적은 없었다. 그래서 첫 번째 시안 작업 때, 내가 사용했던 모든 슬라이드를 가져와서, 각 슬라이드 옆에 평소 말하던 내용을 포스트잇에 적어 넣었다. 책이 말도 안되게 두꺼워졌지만, 그 순간 우리는 깨달았다. 이게 바로 그래픽 노블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이 건축-만화(archi-comic), 『Yes Is More』를 만들었다. 당시에는 완공된 건물이 거의 없었지만, 그래픽 노블의 형식 덕분에 아이디어의 스토리텔링에 집중함으로써 완공된 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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