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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ries] 깨우는 건축 살아난 도시: 건축가 영웅일까? 시녀일까?

최순섭(국립한국교통대학교 교수)
자료제공
최순섭

개발보다 재생, 신축보다 리모델링으로 도시와 건축 사업 환경이 바뀌고 있는 최근 건축가의 역할을 다시 생각해보는 자리가 마련됐다. 한국건축가협회는 2018년 11월부터 매달 마지막 주 목요일 저녁 홍대 앞 청춘마루에서 총 6회에 걸쳐 도시재생 세미나를 개최한다. 지난 11월 29일 열린 첫 번째 시간에는 '건축가 영웅일까? 시녀일까?'를 주제로 4인의 전문가가 열띤 토론을 벌였다.  

 

패널

사회_김선아((주)SAK 건축사사무소 대표), 최순섭(국립한국교통대학교 건축학부 교수), 김은희(걷고싶은 도시만들기 시민연대 정책연구센터 센터장), 이주한(피그건축사사무소 대표)

 

 

건축가가 놓치고 가는 것 - 건축기획

최순섭(이하 최): 오늘 토론을 기획하면서 '건축가 영웅일까? 시녀일까?'라는 도발적인 질문을 던져보았다. 그리고 '기획의 기회로서 도시재생 바라보기'라는 부제를 정하였다. 이는 개인적으로 도시재생사업과 지역사업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다. 

먼저 던지고 싶은 주제는 건축가로서 건축하기 참 힘들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올해 초 하남시에 위치한 도서관 건축설계공모에 70개 업체가 현장 등록을 했고, 총 22개 작품이 제출됐다. 한편 신진건축사에게 기회가 주어진 소방서 설계공모에는 총 20개 작품이 제출됐다. 이러한 단면들을 볼 때마다 건축가의 수주방식이 한정되어 있음을 느낀다. 결과적으로 21개, 19개의 작품은 폐기되며 고스란히 우리 건축 설계산업의 기회비용이 된다. 공공을 중심으로 한 건축사업이 줄고 있는 상황에서, 한정된 수주 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두 번째 이슈는 건축기획의 문제이다. 최근 정부세종 신청사 국제설계공모 등 여러 공공건축의 과정에서 드러난 이슈들의 근본적인 문제는 건축기획의 부재와 부실이다. 이 단계는 건축가들이 그동안 간과했던 부분이며 지금이라도 반드시 챙겨야 할 부분이다. 첫 번째 질문으로 기획 단계에서 무엇을 결정하게 되는지 이주한 대표에게 묻고 싶다.

 

이주한(이하 이): 건물을 짓기 위한 모든 것들을 결정하는 단계가 건축기획이다. 먼저 대상지가 있어야 하고, 어떤 프로그램과 규모로 짓는지, 누가 사용하고, 누가 분양을 하는지 등 선별되어야 하는 사항들 대부분이 건축기획 단계에서 결정된다. 이 결정들이 구체적이고 탄탄할수록 다음의 계획설계, 기본설계 단계에서 일이 더 명확해진다. 그리고 기획은 전혀 생소한 것이 아니다. 설계 스튜디오 수업을 생각해보자. 예를 들어 박물관 프로젝트라고 한다면 땅을 정해주는 경우도 있고 땅을 정해오라는 경우도 있다. 학생들이 직접 프로그램을 결정하기도 한다. 조사를 통해 강의실이 많은 박물관인지, 전시실이 많은 박물관인지, 주요 방문자는 누구인지 등을 결정한다. 이렇게 설계 스튜디오 초반에 결정하는 과정들이 기획이다. 

 

최: 현실에서 건축은 누군가에 의해 끊임없이 기획되며 이를 통해 건축사업이 만들어진다. 보통 국토교통부 또는 문화관광부가 공공 건축사업을 주로 발주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해양수산부, 산업부, 농림부, 환경부, 여가부, 문화재청 등 다양한 부처가 진행하는 수많은 지역사업에서 건축사업이 발주될 수 있다. 그런데 사업 전면에는 건축이라는 단어가 없기 때문에 그동안 다른 누군가에 의해 기획된 내용과 틀을 건축가들이 받아 다음의 건축행위를 진행한 것이다.

2011년 거창의 월천권역종합정비사업에 참여하면서 이러한 현실을 알게 됐다. 당시 지역자원의 조사, 주민들의 요구사항 조사, 요구에 대응한 공간 제안을 맡아 진행했다. 의견 수렴과 토론 과정에서 각 마을 이장들이 본인 마을의 나대지에 건물을 지어 달라고 요구하였는데, 결국은 옛 읍면 소재지였던 구역에 버려진 우체국, 마을회관, 경찰서, 나대지 등을 묶어 활용하기로 합의하였다. 대지와 프로그램이 결정되고 건축용역이 탄생할 수 있는 근거가 생긴 것이다. 이를 통해 '건축'이라고 명시되지 않은 사업에서 건축이 기획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건축자산들을 보존하거나 활용할 수 있는 기회가 여기에 있음을 알게 되었다. 

 

건축이 도출될 수 있는 잠재적 사업들(일부) 

 

국토교통부의 도시재생사업이 2014년부터 시작됐다. 2014년에서 2018년까지 총 213개의 도시재생사업 대상지가 정해졌고 각각 최소 100억 원 이상의 사업비가 투입되고 있다. 제가 참여했던 충주시 성내•충인동 도시재생사업도 건축사업 등 하드웨어 사업비가 100억 원 이상이었다. 그리고 2017년 말부터 진행되고 있는 도시재생 뉴딜사업을 통해 대상지, 프로그램과 재원이 제안된다. 이후 수많은 건축사업이 기획되고 조달청을 통해 용역으로 발주된다. 최근 한 달 동안 용역비가 최소 1억 5천만 원에서 최대 5억 원 이상인 80여 개의 수립용역이 발주되었다. 이처럼 도시재생사업은 건축이 기획될 수 있는 많은 기회를 포함하고 있으며, 용역수행에도 건축사사무소의 참여가 가능하지만 아직 참여는 저조한 상황이다.

 

2018년 11월 한 달 동안 발주된 도시재생 사업 관련 용역들 (자료_조달청 홈페이지)

 

도시재생사업에서 건축가의 역할과 참여

김선아: 이상의 내용을 바탕으로 도시재생사업에서 건축가가 어떻게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지 묻고 싶다. 

 

김은희: 우선 건축뿐만 아니라 관련 전문가들에게 공통으로 ‘도시재생사업이 필요한가’라는 질문이 필요하다. 주민들의 일상적이고 자연발생적인 생활공간에 전문가들이 들어와서 그것의 의미를 객관화하는 과정을 통해 마을의 새로운 미래를 함께 꿈꾸고 만들어 간다. 구체적으로 보이는 물리적인 공간의 변화 이전에 마을과 도시의 변화된 미래를 꿈꾸게 하는 것이 전문가의 큰 역할인 것 같다. 이런 측면이 기획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오해를 하는 것이 있다. 주민들을 많이 만나고 오랜 시간 워크숍에 참여하여 교육하는 것이 과연 주민참여인가? 이것이 전문가의 역할인가? 그렇지 않다. 이 사업은 어떤 형태든 사람이 살고 있는 공간을 다루기 때문에 이해관계가 있다. 전문가가 무엇을 그려오면 당장 반응이 나타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참여를 고민할 전문가라면 참여 기간은 큰 차이는 없다고 본다. 오히려 공간을 가꿔나가는 삶의 과정을 정교하고 깊게 보는 능력이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다. 그리고 주민이 요구하는 것이 절대로 다 필요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주민들의 요구가 모두의 필요에 어떻게 피드백되는지가 중요하다. 그런 측면에서 꼭 처음부터 주민들을 만나서 공동체를 만들고 협조를 구하고 교육하는 것을 참여라고 보고, 이 과정에 건축가나 전문가들을 참여시키는 것이 주민참여 디자인 개념이라고 하는 것에 문제가 있다. 오히려 전문가들 스스로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전문적인 경험과 가치를 주민참여라는 형식에서 평가 절하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100명의 주민이 모두 다르다. 주민은 하나로 통일할 수 없는 존재다. 다른 주민들을 하나로 모아 대응하고 협의하는 것부터 문제가 시작되는 것이다.  

 

이: 주민들을 만나는 빈도보다 사업특성이나 현장에 따라 필요할 때 만나야 하는 문제 같다. 마을의 미래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건축가 혹은 다른 전문가들이 어떤 역할로 사업에 참여하는 것이 좋다고 보는지 다른 분들의 의견이 궁금하다. 그리고 이런 유형의 사업에서 건축가들이 기획 단계에 참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는지 묻고 싶다.

 

최: 이런 종류의 사업에서 건축가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전문가로서 조사와 검토를 진행하고 미래의 건축물과 장소를 가시적으로 보여주었을 때 합의를 이끌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건축가들이 이런 사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나?

 

이: 일단 사업에 대해 잘 모르거나 관심이 없기도 하고, 건축가들이 참여해도 기획한 건축사업을 끝까지 할 수 있도록 보장되지 않는 점도 원인이다. 한편, 건축가가 기획에 참여했을 때 정당한 대가를 산정하는 기준이 모호하고 낮은 대가가 지급되어 참여를 더 저조하게 만드는 상황이다.

 

김은희: 정당한 대가를 언급하였는데 노동권이 확보되지 못한 것이 큰 문제다. 쉽게 이야기하면 돈은 더 적게 주면서 요구는 많아지고 있다. 이를 개별 건축가나 전문가가 대응할 수 없다. 선배, 원로들이 문제를 풀어주고 강하게 이야기해야 젊은 사람들이 같이 움직일 수 있는데 현실이 그렇지 못하다. 협회가 이익집단으로서 이 부분을 다루어야 한다. 이익집단이 개인의 이익을 추구하며 시스템을 만들고 이를 통해 사회적 이익을 어떻게 창출할 것인가 같이 고민해야 한다.

 

최: 실제로 대가에 대한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 행정부처에서는 일반적으로 수의계약 범위를 제시한다. 또 다른 문제는 기획에서 크레딧을 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기획자가 노출이 안 되기 때문에 안 하거나, 막 할 수 있다. 그리고 기획에 참여했을 때 끝까지 설계할 수 없다는 점도 건축가의 참여가 저조한 큰 원인이다. 그런데 최근 진행되고 있는 백의리 마을공유호텔 프로젝트(가제)에서는 건축가의 기획 참여가 실시설계까지 이어졌다. 기획에서 시작하여 실시설계까지 수행하는 용역이 탄생한 것이다. 이 프로젝트는 건축가의 수주방식의 다변화를 의미한다. 현상설계를 통해 계획설계의 결과물을 심사하고 작품을 선정하는 것이 아니라, 설계를 누가, 누구와, 어떻게, 어떠한 과정을 거쳐서 진행할 것인지 협업의 계획을 바탕으로 설계자를 선정한 후 계획설계와 실시설계를 진행할 수 있게 됐다.

 

도시재생사업과 '협력의 건축가'

김선아: 다음으로 협력에 대한 부분을 논의하고 싶다. 도시재생사업에는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가 필요하고 이들 간의 협력이 매우 중요하다.

 

김은희: 실제로 메인회사가 들어오면 나머지 회사들은 새끼 프로젝트를 한다고 이야기한다. 큰 회사가 작은 회사를 데리고 들어오는 수직적 구조다. 여기서 가장 큰 문제는 역할과 책임이 불명확하다는 것이다. 협력이 안 되는 이유가 서로의 역할이 무엇이고 어떻게 책임을 나누고 피드백을 조정할 것인지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정자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도시재생사업에서 총괄 또는 센터장을 맡는 사람들에게 이 역할이 부족하다. 

두 번째는 전문가 간에 담론 형성이 안 되는 것 같다. 건축, 도시, 문화 등 다른 세 집단이 앉아서 주민들에 관해 이야기를 하지만, 주민들의 이야기를 서로 달리 해석하여 엉뚱한 결과물을 만든다. 전문가들이 서로의 언어를 이해하는 과정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리고 꼭 처음부터 같은 팀으로 뛰어야 한다고 생각할 필요가 없다. 정확히 책임질 팀이 먼저 시작하고 후에 필요한 팀이 들어오면 된다. 축구에서 교체의 전략을 짜는 것처럼 협력의 선후 구조를 잘 짜야 한다. 그리고 처음에 참여한 팀들이 끝까지 같이 갈 필요도 없다. '팀플레이' 보다 '따로, 또 같이'라고 생각해야 협력이 가능할 것 같다. 

그리고 조정자는 조정을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서로가 갖고 있는 것들을 인정해주는 사람을 의미한다. 좋은 조정자는 우선 인정을 해준 다음 더 해야 할 일을 고민한다. 이는 각 분야의 전문가가 가진 장점들을 극대화하는 과정이다.

 

이: 협력을 위해 각 분야의 전문가들의 역할과 책임이 있고 그 구도를 잘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합당한 대가와 역할, 책임이 분명히 명시되어야 가능하다고 본다. 초기 단계라 명확하지 않아 더 해달라고 요청하거나, 건축 검토는 끝났는데 한 바퀴 돌아서 다시 그 일을 처음부터 해야 하는 경우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매번 이런 상황에서 비용을 정산하기도, 대가를 요구하기도 힘든 분위기가 되어 방어적인 자세로 변하게 된다. 그래서 '협력의 건축가'가 역량을 발휘하려면 대가, 권한, 역할이 확실히 정의되어야 한다. 

 

최: 협력의 관행적 틀을 깨려고 노력하고 있다. 충주시 성내•충인동 도시재생사업 총괄 코디네이터로서 나의 역할은 건축의 과정을 계획하는 건축가였다. 물론 그 안에서 기획과 설계를 하는 건축가와 협력을 하였다. 하나의 프로젝트에도 건축가의 유형이 나누어져 협력할 수 있다. 

그리고 공간을 먼저 구축하고 운영자를 유치하는 방식이 일반적이지만, 이 사업에서는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운영자들을 먼저 선정하고 운영자와 건축가가 같이 공간을 짜게 했다. 이 과정에서 필요 없는 부분이나 직접 만들 수 있는 부분 등 여러모로 절감할 수 있는 아이디어들이 많이 나왔다. 또한 몇몇 청년사업자들과 같이 공간과 운영 프로그램을 만드는데 협력했다. 도면을 그리고 시공을 하는 순차적 과정이 아니라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즉흥적으로 공간을 만들었다. 건축을 잘 모르는 사람들과 함께 법, 재료, 공간, 기물 등에 대해 실시간으로 고민하고 논의하여 만든 사례가 충주 목행동에 위치한 BTLM 1960이다. 

 

 

동시적 협력방식으로 조성한 BTLM1960 (사진_최순섭)

 

'이름 없는 영웅'으로서 건축가 

최: 다음으로 건축사업과 관련된 정책을 기획하는 건축가의 중요성을 이야기하고 싶다. 정책을 통해 수많은 사업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최근 내가 참여했던 제2차 경기도 광역건축기본계획을 통해 건축가들이 여러 지역사업에 참여할 수 있는 마중물 사업들이 만들어졌다. 

 

김은희: 사업에 들어갈 기회를 만드는 것이 정책을 기획하는 건축가일까? 의구심이 든다. 앞서 논의된 충주시의 사례는 현장에서 돌쇠처럼 막 나가는 주민 하나와 돌쇠처럼 막 나가는 건축가가 붙었기 때문에 실현된 것으로 보인다. 현재 시스템에서 일의 가능성을 판단하고 이를 객관화하여 무엇을 바꿔야 하는지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그래야 정책을 기획하는 건축가가 가능하리라 생각한다. 

 

이: 정책을 연구하는 단계에서 실질적으로 각각의 전문가들이 어떻게 효율적으로 협업할 수 있는지에 대한 시스템이 있으면 좋겠다.

 

최: 마지막으로 이 토론회의 주제인 '건축가 영웅인가? 시녀인가'라는 질문으로 돌아가겠다. 사무소를 운영하는 지인들은 대부분 건축가가 시녀라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웅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박지성 선수를 두고 소위 '이름 없는 영웅(Unsung hero)'이라고 한다. 그럴 자격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찬양받지 못하는 영웅이라는 것이다. 호나우두처럼 골을 잘 넣는 선수만 영웅이 아니라, 그 골을 어시스트하고 수비하는 숨은 역할을 한 선수들도 보이지 않는 영웅이다. 아름다운 축구를 위해서는 여러 역할의 영웅들이 팀을 이루어야 한다. 하나의 좋은 건물을 만들기 위해서도 설계를 잘하는 건축가는 물론 '이름 없는 영웅'으로서 기획에 관심이 있는 건축가, 운영에 관심이 있는 건축가, 정책에 관심이 있는 건축가, 심판을 잘 보는 건축가 등이 필요하다. 또한 이들의 역할이 적절히 분담되고 각자의 역할이 매끄럽게 연결되어야 한다.

 

청중들과 질의응답

청중 1(나권희 엠플래닝건축사사무소 대표): 도시재생에서 클라이언트는 주민들이 될 것이다. 클라이언트가 개인일 때는 소수의 의견을 계속 피드백하면서 건물을 짓지만, 공공일 때는 그런 부분들이 원활하지 않다. 이에 대한 고민도 부족하다. 그러다 보니 건축가의 역할이 어떠한 과제를 주면 그것을 해결하는 식으로만 수행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그래서 오늘 토론회의 내용이 크게 공감이 된다.

 

김선아: '건축가가 영웅일까? 시녀일까?' 이런 질문을 한 의도가 무엇인지, 왜 이런 주제를 정한 것인지 알고 싶다. 

 

최: 영웅이 되려는 욕망과 꿈으로 대학교에서 공부를 하고 실무를 거쳐 건축가가 되었을 때, 과연 아직도 영웅이 되려 하는지 물으면 대부분 큰 간극을 느끼는 것 같다. 둘 중 답을 정하기보다 이런 공존, 전환, 그리고 바람의 상황을 중의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김선아: 그렇다면 최순섭 교수와 이주한 대표에게 영웅이란 무엇을 의미하나? 

 

최: 비전, 관점으로 사람들을 이끌어 갈 수 있는 사람인 것 같다. 사업에 참여하여 역할을 수행하는 측면에서 봤을 때 더욱더 그러하다.

 

이: 흔히 영웅이라고 하면 르 코르뷔지에와 같은 거장 건축가를 생각하지만, '이름 없는 영웅'처럼 나름의 역할을 다하고, 전문가로서 성취감을 느낀다면 그도 영웅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누군가 나에게 영웅인지 묻는다면 영웅이라고 답할 수 있다. 

 

김선아: 이렇게 건축가가 영웅이라고 얘기하는 것에 대해 김은희 센터장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고 싶다.

 

김은희: 슈퍼맨처럼 현실의 문제의 답을 주는 사람이 영웅인 것 같다. 그런 측면에서 건축가가 영웅일 수 있다고 본다. 다만 본인 스스로가 영웅을 자처하지만 않으면 된다. 역사나 시민들이 인정을 해주어야 한다.  

 

청중 2(문정석 소셜디자인랩 대표): 나도 비슷한 일을 하면서 기획은 일정 부분 담론적 매개를 통해서 진행된다고 느꼈다. 그 담론적 매개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건축가는 이것을 하려 하고 문화기획자들은 다른 것을 하려 해서 일이 올바른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는 상황들이 있었다. 이럴 경우 어떻게 극복하는지 알고 싶다.

 

최: 항상 고집부리지 말자고 생각한다. 대신 전문가로서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에서 최대한 작업하여 가시적으로 사람들에게 보여주려고 노력한다.

 

김선아: 김은희 센터장에게 묻고 싶다. 건축가의 참여가 엔지니어링 회사의 참여와 무엇이 다르며 기대하는 점이 있는지 궁금하다.

 

김은희: 없다. 왜냐하면 현장에서 추상적이고 막연한 희망들을 구체화하고 현실화하는 역할을 모든 전문가가 해주고 있다. 건축가냐 아니냐보다 얼마나 전문성을 가지고 현장을 이해하고 좋아하여 변화시키려 하는가가 나에게는 크게 느껴진다. 

 

청중 3(건국대학교 산림조경학과 학생): 설계는 건축가가 하는 일이 맞는다고 생각하지만, 정책이나 기획은 다른 전문가와 분업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또한 지속가능하게 만들어가는 주체는 시민들이고 마을을 가꾸어 나가려면 그들을 교육하고 양성하는 일이 필요한데, 이는 지역활성화센터나 공동체 지원센터 전문가들의 역할이다. 

 

최: 내가 '협력의 건축가'라고 주장한 것이 그런 부분을 표현한 것이다. 건축가가 모두 잘할 수 있다는 것이 아니라 공간과 건축에 관련된 부분은 처음부터 건축가들이 참여하여 다른 분야와 협업을 통해 같이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청중 4(홍익대학교 건축학과 학생): 골목식당을 아주 재미있게 보고 있다. 백종원 씨는 운영 전문가인데 인테리어도 하고 골목을 재생시키는 일까지 한다. 건축가도 그렇게 될 수 있다는 말에 매우 동의한다. 김은희 센터장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건축가들이 열정이 많은데 그런 에너지를 이용하여 건축가의 영웅 심리를 북돋을 수 있을 것 같다. 토론 중에 돌쇠라고 표현을 하였는데 건축가가 적극적으로 돌쇠가 되게 하는 방법이 없는지 궁금하다.

 

김은희: 객관화가 필요하다. 무엇이 바뀌어야 하는지에 대한 논쟁과 고민이 많아져야 하는데 실제로 도시재생 관련 세미나를 가보면 다들 사례 얘기만 한다. 전문가인 건축가들이 남의 사례만 나열하지 말고 객관화하여 논쟁을 만들고 프로세스를 어떻게 바꿀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청중 5(김태훈 목포대학교 건축학과 교수): 학생들에게 건축가로서 넓은 스펙트럼이 있다는 걸 가르치고 미리 준비하도록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우려되는 것은 금전적인 부분이다. 일로써는 만족하지만 거기에서 오는 보상에 대한 기대는 충족되지 않는 것 같다. 도시재생을 통해 얻을 기회에서 이익이 적은 부분이 많기 때문에 걱정이 된다. 또한 도시재생에 예산이 몰려 일자리가 집중되는 상황이 다른 악순환을 만들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다. 정책적인 준비가 필요하다고 본다. 그리고 건축가들이 돈이 벌리는 방향을 찾아서 옮겨 다녀야 하는 일들이 벌어질까 기대도 되고 걱정도 된다. 

 

최: 도시재생사업이 2014년부터 진행되고 있는데 최근 여러 정책을 통해 건축가들을 참여시키기 위한 노력이 나타나고 있다. 근래 서울시의 마을 건축가제도도 이러한 움직임의 하나로 볼 수 있다. 이는 많은 사업에서 공간, 건물, 장소 만들기가 필수로 포함되기 때문에 이전과 달리 체계적으로 건축가들을 참여시키려는 것이다. 하지만 과정, 권한, 역할, 대가가 명확하게 제시되지 못한 상태다. 우려가 되지만, 그럼에도 건축가의 역할에 대한 수요가 있다는 점은 확실하다. 그리고 나는 사업적 측면에 관심이 크기 때문에 건축가들의 용역 참여가 활발했으면 좋겠다. 설계공모에서 우리끼리 경쟁하는 것에만 집중하지 말고, 다양한 영역의 전문가들과 협업하고 경쟁하여 다양한 사업에서 많은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학교는 이런 역량을 가진 건축가들을 배출할 수 있도록 커리큘럼을 만들고, 협회는 이들이 건축 분야를 대표해 현장에서 뛸 수 있도록 정책을 지원하고 대가의 개선에 대한 노력을 해주어야 한다. 

 

김선아: 최순섭 교수는 굉장히 젊은 교수다. 이런 분들이 앞으로 건축가를 위해 많은 정책이나 제도를 만들 것이라고 기대한다. 오늘 참여한 두 패널에게도 많은 응원을 부탁드린다. 이상 참여해 주신 모든 분께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진행_오주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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