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ACE(공간)」 2026년 11월호 (통권 708호)
THEME 1. 공간과 구성
세계 건축의 경향은 한국적 맥락과 어떻게 만나는가?
한국 현대건축이 지나온 60년의 역사를 돌아볼 때, 한국 건축가들이 주체적으로 서구 건축을 수용하고 확장한 논의 못지않게, 한국에 해외 건축가들의 작업이 남긴 의미를 짚어볼 필요가 있다. 이화 캠퍼스 콤플렉스(2008, 지하 도시 개발),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2009, 현상학적 공간 경험), 아모레퍼시픽 사옥(2017, 고층빌딩의 새로운 유형)은 높은 완성도뿐 아니라, 세계 건축 경향이 한국적 맥락 안에서 어떻게 실현되고 변주될 수 있는지 가능성을 제시한다는 측면에서 조명될 가치가 있다.
한편 이러한 작업들이 국내에서 실현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중반에 걸쳐 진행된 ‘설계 시장 개방’이 중요한 계기가 됐다. 제도적, 법적 변화를 근거로 해외 건축가들의 한국 시장 진출이 본격화되면서 국내 건축산업 생태계에도 지각 변화가 일었다. 민간과 공공 영역 전반에 걸쳐 국내 건축가들이 해외 유명 건축가들과 경쟁하게 되었고, 한쪽에서는 한국 건축가들이 글로벌 경쟁력을 쌓아야 한다는 비판을, 다른 한쪽에서는 설계 시장 과열에 따른 부작용과 해외 건축가 특혜라는 비판으로 응수하며 대립각을 세웠다. 이러한 구도는 현재까지도 크게 달라지지 않은 듯하다.
급속한 글로벌화에 발맞춰 설계 시장 개방과 함께 쟁점이 되었던 또 하나의 사건은 건축교육제도의 재편이다. 세계 무대에서 경쟁할 수 있는 건축가를 배출한다는 목적 아래, 5년제 건축학 인증제도가 2002년 시범 도입을 시작으로 10여 년 사이 전국의 대학으로 빠르게 퍼져나갔다. 물론 여기에는 부작용도 뒤따랐다. 인증을 받기 위한 시스템 구축에 매몰되어 실제 현장에서 설계교육의 질적 개선이 부족했던 것은 아닌지, 설계 과목에 치중한 나머지 건축교육의 다양성이 훼손되는 것은 아닌지 우려와 비판을 총체적으로 짚었던 548~549호(2013년 7~8월) 특집의 진단은 지금도 유효하게 다가온다.
5년제 교육이 가져온 뚜렷한 변화 중 하나는 해외 설계 유학을 떠나거나 국내 대학원에 진학하는 수가 감소하고, 해외 설계사무소에 바로 취업하거나 국내에서 실무를 시작해 비교적 이른 나이에 독립, 개소하는 사례가 늘어났다는 점이다. 특히 해외 대형 설계사무소의 경우 국내 상황에 익숙한 한국인 직원을 담당자로 두는 경우가 일반화되면서, 한국 설계 시장에서 국내사와 해외사의 차이가 조금씩 희미해지고 있는 추세다. 해외 건축과한국 건축의 사이 시간차를 논하는 관점 또한 60년 전과 비교할 때 공간론이나 설계방법론에서 제도나 산업생태계 쪽으로 이동했음을 감지할 수 있다. 해외 건축가가 설계한 대표적인 국내 프로젝트로 꼽히는 동대문디자인플라자(2013)의 경우, 자하 하디드의 해체주의 건축이라는 개념적 틀보다는 3차원 비정형 건축을 국내에서 실현한 기술적 혁신을 보다 중요하게 평가해 ‘공간과 구성’이 아닌 ‘구조와 기술’에서 다뤘다.
P013 이화 캠퍼스 콤플렉스 |
Q013 땅 아래 공간을 어떻게 다루는가? |
P014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 |
Q014 현대건축은 어떻게 직선에서 해방되는가? |
P015 아모레퍼시픽 사옥 |
Q015 고층빌딩의 전형을 어떻게 넘어서는가? |
P013 이화 캠퍼스 콤플렉스(2008)
도미니크 페로 아키텍처(도미니크 페로)+ 종합건축사사무소 범건축
Q013 땅 아래 공간을 어떻게 다루는가?
건물을 지상으로 높이 올리는 대신 땅을 가르는 거대한 계곡 형태의 지하 공간을 조성했다. 대학 정문에서 본관으로 이어지는 강력한 길(축)을 따라 캠퍼스 전체도 새롭게 재편됐다. 지상부는 녹지 공원으로 조성하고, 길 양옆으로 거대한 유리벽을 설치해 내부 깊숙한 곳까지 자연채광과 환기가 유입되도록 했다. 한편 텅빈 계곡, 즉 실체가 없는 건축이 캠퍼스 중심에 들어서며 기존 대학 건축물들이 지녔던 장소성이 파편화됐다는 비판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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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014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2009)
알바로 시자+카를로스 카스타네이라+ 건축사사무소 핸드(김준성)
Q014 현대건축은 어떻게 직선에서 해방되는가?
설계는 몸을 웅크리고 있던 고양이가 기지개를 켜고 일어나며 하품하는 모습의 스케치에서 시작됐다. 필요로 하는 다양한 크기의 전시 공간을 하나의 매스에 수용하면서도, 단조로움을 극복하기 위해 중앙의 코어 공간을 사이에 두고 양편에 긴 전시 공간을 배치했다. 내부는 기둥 없이 유선형의 벽으로만 이루어져 있는데, 인공 조명을 최소화하고 곡면의 천장과 벽을 타고 유입되는 은은한 자연광의 변화를 활용해 내부 공간에 역동성을 부여했다. 관객들이 안과 밖을 거닐며 신체로 경험하는 현상학적 공간감이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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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015 아모레퍼시픽 사옥(2017)
데이비드 치퍼필드 아키텍츠(데이비드 치퍼필드)+ 해안종합건축사사무소
Q015 고층빌딩의 전형을 어떻게 넘어서는가?
데이비드 치퍼필드는 도시 풍경에 기여하면서도 회사가 추구하는 이념을 드러낸다는 목표 아래, 화려한 유선형 고층빌딩에서 벗어난 절제된 정육면체 건물을 제안했다. 건물의 중간층들을 비워 공중정원을 배치하고 도심 풍경을 건물 내부로 적극적으로 끌어들임으로써 건물 자체가 도시로 열린 창문이자 틀이 되도록 했다. 넓은 아트리움으로 조성한 1층 로비는 사방으로 문을 내 지역 주민들에 개방했다. 유리 파사드의 외관에는 알루미늄 무광 루버 2만여 개를 설치해 눈부심을 막고 열 부하도 줄였다.
▲ SPACE, 스페이스,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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