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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CE 학생기자 × 중소도시포럼] 서울건축학교와 여름 워크숍을 돌아보다 ④김영준

글
20기 SPACE 학생기자
사진
20기 SPACE 학생기자
진행
윤예림 기자
지원
중소도시포럼

 

인터뷰 모습.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차경원, 김영준, 이장환.

 

 

한국 중소도시에 대한 건축 담론은 중소도시포럼(「SPACE(공간)」 675호 참고) 이전에 서울건축학교(이하 sa)의 여름 워크숍이 있었다. 현재 당면한 과제를 풀어 나가기에 앞서 과거에 어떤 이야기가 오갔는지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어느덧 사반세기가 지난 sa 여름 워크숍을 돌아보기 위해 19기 SPACE 학생기자는 sa의 초기부터 끝까지 튜터로 함께한 건축가 민현식, 김인철, 김광수와 차례로 만났다. 20기 SPACE 학생기자가 그 뒤를 이어 sa 여름 워크숍에 참여한 또 다른 튜터 네 명과 세 번의 대담을 가졌다. 과거와 지금 중소도시의 패러다임은 어떻게 다른가? 당시 건축가의 시선은 어디를 향해 있었나? sa와 여름 워크숍은 역사 속에 어떤 의미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까? 다양한 물음에 대한 이들의 생각을 들어보았다.​ 

 

 

인터뷰 김영준 와이오투도시건축 건축사사무소 대표 × 이장환 중소도시포럼 공동대표, 어반오퍼레이션즈 대표, 20기 SPACE 학생기자 권혜주, 장소희, 차경원

정리 20기 SPACE 학생기자 권혜주

 

 

sa 워크숍, 도시를 함께 이야기하다​

학생기자: 한국 중소도시에 대한 도시건축 담론이 sa 워크숍을 매개로 형성된 적이 있다고 들었다. 김영준 선생님도 오랜 기간 sa 워크숍 튜터로 참여하셨는데, 당시 워크숍이 중소도시를 대상으로 삼게 된 배경과 그 안에서 공유되었던 문제의식은 무엇이었는지 궁금하다.

김영준: 현재 중소도시포럼이 소멸 위기에 맞닥뜨린 중소도시를 조사하고 있지만, sa 워크숍 당시에도 중소도시의 상황은 좋지 않았다. 중소도시에 대한 문제의식과 더불어 sa가 학교 스튜디오 교육 방식에서 여름방학 워크숍 체제로 바꾸게 되면서, 학생과 선생이 중소도시에 가서 밤새고 토론하는 형태가 되었던 걸로 기억한다. 각자의 과제만을 가지고 추구해나가는 건축가들이 공동으로 할 수 있는 이야기는 무엇인가 고민해 봤을 때, 도시에 관한 이야기로 수렴되었다. 당시 팀 X, 아키그램, 스튜디오 등의 건축가 모임은 있지만 도시에 대한 사고가 미진했다. 워크숍을 통해 현장에 가서 하는 이야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sa의 큰 목표는 건축과 도시의 지향점을 맞추는 것이었고, 내부적으로는 건축교육과 도시에 대한 학생의 관심 제고 혹은 현장 방문 등의 목표가 있었다. 약 10년간의 sa 워크숍을 통해 학생들 사이에 유대감이 생기는 등의 성과도 있었다.

 

학생기자: sa 워크숍은 그 시대의 필요성에 많은 이들이 공감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오늘날 중소도시가 직면한 문제는 과거보다 훨씬 긴급하지만, 당시와 같은 에너지와 공감대를 다시 만들어낼 수 있을지는 또 다른 문제로 보인다. 만약 워크숍이 다시 이루어진다면, 어떤 방향과 프로그램으로 구상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지?

김영준: 현재 중소도시에 대한 이해와 문제의식은 과거보다 훨씬 심화되어 있지만, 당시 사람들의 욕구와 같은 에너지가 오늘날에도 다시 형성될 수 있을지, 이를 뒷받침할 여력과 충분한 동기부여가 존재하는지 등 여러 측면에서 쉽지 않은 상황으로 보인다. 4.3그룹, sa, 그 이후 학교 시스템은 시대의 필요에 사람들이 모두 공감했기에 진행되었다. 지금의 중소도시 문제는 도시적 혹은 건축적 사고로 해결할 수 있는 여지가 적은 문제라고 생각한다. sa처럼 교육으로 중소도시에 접근하려면 관심을 끌 수 있는 다른 프로그램의 구상을 모색하는 방법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

 

이장환: 2003년 새만금 워크숍에서 진행한 프로젝트에 대해 구체적인 설명을 부탁드린다. 지금의 새만금 개발 방향과는 어떻게 달랐나? 아울러 건축가가 왜 그러한 입장을 취하게 되었는지, 그러한 도시 작업이 건축가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도 궁금하다.

김영준: 당시 새만금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컸다. 물막이 논쟁이 일어나던 시점이었다. 새만금에 대한 높은 관심에 부응해 전 세계 대학 일곱 곳을 불러서 새만금 현장 워크숍을 진행했다. 당장 적용할 수 있는 설계안을 만든다기보다는 외국 대학과 교류하고 홍보하는 차원이 컸다. 각 대학의 제출안은 형태적으로 강조된 안이 많았고, 그다음으로는 땅을 만드는 방식이 현실과 동떨어진 안이 많이 제출되었다. 공통점은 새만금 사업을 결국 ‘땅장사’로 만들 가능성이 높았다는 것이다. 당시 새만금개발청의 의뢰로 내가 직접 작업했던 계획안이 2004년의 새만금 제안이다. 환형도시에 대한 아이디어가 속속 나오던 시기였다. 환형도시는 형태적이기만 한 제안은 아니다. 가령 네덜란드의 경우 지대가 낮기 때문에 중앙을 비우고 외곽에 도시를 두르는 환형도시를 기획했다. 결국 도시는 아이디어만으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땅을 읽는 방법에서 출발해야 한다. 새만금이 끝나고 참여했던 행정중심복합도시 계획안은 여러 고리와 구멍이 있는 형태로 아이디어 차원에서 신선함은 있었지만, 현실적인 방안은 아니었다. 결국 도시가 하나의 시스템을 차용하는 방식은 맞지 않다고 판단했다. sa 워크숍에서 나누었던 여러 사람의 생각들, 사회에서 나오는 여러 가지 이야기가 동기가 되었다. 도시 차원에서 건축가로서 할 수 있는 일은 현실적 대안을 만드는 방식이다. 그것이 가장 중요하다.

 

 

 

 

 

도시를 건축으로 옮기는 사고

이장환: 역사성, 지역성, 일상성에 관심을 두던 여타 스튜디오들과 달리, 선생님은 건축을 도시로 바라보고 도시건축의 ‘시스템’에 집중했다. 이러한 관점을 갖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김영준: 결정적 계기는 르 코르뷔지에의 근대 건축 5원칙에 대한 대학 수업이었다. 당시 르 코르뷔지에가 5원칙을 도입한 이유를 도시의 밀집성과 연결해 설명했다. 앞으로 지어질 대다수의 집이 도시에 밀집되기 위한 방식이 필로티를 통한 저층부 오픈, 숨통을 틔우는 옥상 정원, 옆집과 관계를 맺는 균질하게 정리된 창문 등으로 5원칙에 녹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건축은 도시에 대한 대응으로 형성되어야 한다는 인식이 생겼고, 도시에 대한 관심이 깊어지는 동시에 지금까지 우리가 도시를 지극히 건축가적 입장에서만 바라보고 있었다는 문제점을 깨닫게 되었다. 도시를 건축으로 변환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건축가가 많이 없다. 규모가 커지다 보면, 건축적인 접근의 아이디어로 파고들어갈 만한 여력과 상상력이 모자란 거다. 지역성은 그다음 문제고, 그 전에 건축가가 도시를 제안할 때 가져야 하는 무언가가 있다. 『집합 형태의 갈래』(2024)에 쓴 것과 같이 이전에는 빌딩 타입을 건물의 양식으로 바라봤지만, 사실 이는 도시에서 들어온 것이다. 건축적으로 대응해 보려고 노력한 것이 ‘매트(mat)’라는 개념이다.

 

이장환: 선생님은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많은 다이어그램을 제작한다. 『집합 형태의 갈래』에서도 하나의 프로젝트를 여러 다이어그램으로 설명했다. 다이어그램을 매개로 건축과 도시의 스케일을 넘나들며, 무언가 생성하고자 하는 듯 보였다. 왜 그렇게 많은 다이어그램을 한 번에, 그리고 동시에 나열해 보여주는가? 다이어그램들을 통해 무엇을 전달하려 하는가?

김영준: 매트 이야기와 연결된다. 내게는 도시적 프로젝트의 가능성이 가장 큰 관심이었다. ‘매트 빌딩(mat-building)’ 중 처음으로 관심 갖고 본 프로젝트가 베를린 자유대학 현상설계안이다. 설계안에서 건축을 묘사하는 스케치보다 정교한 다이어그램을 우선하는 전개를 발견했다.

김수근 선생이 돌아가시고 난 다음에는 창고에 있던 스케치를 찾아 스케치집을 편집한 적이 있다. 스케치를 통해 커다란 형태를 만들어간 것은 결국 이미지다. 도시 차원에서 이미지로 무엇을 만들 수 있는지 궁금해졌다. 커다란 이미지보다는 그 안에서 생기는 또 다른 변수에 집중했다. 스케치집을 만들면서 고민했던 부분이 베를린 자유대학 현상설계안의 여러 다이어그램에 담겨 있었다. 무엇을 하고자 하는지 설명해 줄 수 있는 유용한 도구가 되겠다고 생각했다. 다이어그램은 정보다. 스케치가 보여주는 정보보다 훨씬 많은 설계에 대한 정보를 포함할 수 있다. 결국, 어떤 건물의 대표 이미지를 하나 만든다고 했을 때 다이어그램이 가장 적합할 것 같다.

 

학생기자: 『집합 형태의 갈래』를 통해 오랜 시간 지속해온 작업을 정리했는데, 특히 ‘유형화 작업’이라는 개념이 인상 깊다. 설계에 앞서 유형화를 통해 사고를 정리하고 방향을 설정하신다고 이해했다. 작업 초기 단계의 방대한 자료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유형화’가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는지 듣고 싶다.

김영준: 유형이라는 건 그 나름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유형과 또 따로 생각하는 것 중 하나가 양식이다. 유형은 모든 작업을 시작하는 데 있어서 처음으로 생각했던 고민이다. 하지만 유형화라는 것은 하나의 수단이지 ‘내 작업이 이런 유형이다’라는 생각은 없다. 도시를 유형화하면 매트일 수도 있는 거고, 두 가지 유형을 섞다 보면 프로젝트에 대응이 안 되는 것들도 많다. 두 가지가 섞이면 나눠서 정리하는 분류 방법도 필요하다.

 

학생기자: 저서에서 스토리와 구분되는 개념으로 ‘플롯’이라는 개념이 나온다. 플롯이 도시의 정책이나 구조를 넘어 정체성이 되어야 그 도시만의 고유한 장소성이 형성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조성될 신도시에서는 어떤 방식으로 플롯을 찾아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혹은 지역 브랜딩을 통해 고유의 플롯을 찾으려는 중소도시에서는 어떤 방향으로 재구성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김영준: 누군가 계획을 하고, 플롯을 짜고, 정리했을 때는 이해하기 쉽겠지만, 오랜 시간에 걸쳐 증축하고 다시 덧붙이고 부수고 만들어진 것을 바라볼 때는 어떠한 기준이라든지 관점이 있어야 한다. 플롯을 이야기하려면 프로젝트를 부분으로 쪼개야 한다. 그 부분들이 서로 합쳐지는 방식, 그리고 그것들이 어떤 식으로 조직화되어 있느냐를 만드는 게 플롯이다. 플롯을 통해 프로젝트를 다변화시킬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영화와 소설 만드는 방식도 그렇지 않나. 플롯을 고려하면 도시를 만들 때 훨씬 도움이 된다. 결국 도시라는 것이 큰 덩어리를 쪼개야 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행정중심복합도시 계획안에서도 플롯을 생각했더라면, 사이사이 덩어리들 하나하나가 조금씩 다른 관점을 가질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전에는 쪼개기 자체에 급급했기에 하나하나의 성격을 주기 위한 노력이 모자랐다. 주택 하나를 만들더라도 그 안을 여러 공간들의 집합들로 쪼개서 각각의 특성을 부여해 준다면, 그만의 가치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건축을 플롯으로 바라보는 관점은 무언가 더 생각해 볼 여지가 되고, 그 생각들을 발전시킬 수 있다.

 

이장환: 렘 콜하스는 ‘싱가포르 송라인(Singapore Songlines)’에서 후미히코 마키를 언급하며, 싱가포르에 끼친 일본 메타볼리스트(Metabolists)의 영향을 이야기한다. 2000년대 초반, 선생님 사무실 서재에 마키의 『집합형태에 관한 연구(Investigations in Collective Form)』(1964) 복사본이 꽂혀 있던 것이 기억난다. 마키의 이론은 선생님의 도시건축 이론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도시계획가가 아닌 건축가가 도시에 개입하는 방식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도 궁금하다.

김영준: 나의 작업에서 후미히코 마키의 이론이 결정적 계기가 된 것은 맞다. 마키의 책에서 소위 집합형태를 만들어내기 위한 빌드업 과정이 단지계획 같다. 책에 나온 프로젝트들이 현재 내가 진행하고 있는 작업과 일치하지는 않지만, 중요한 점은 문화의 전파나 건축적 흐름 과정은 사라지고 결국 최종적인 형태만이 남게 된다는 것이다. 개념을 이론화해야 다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베이스를 찾아낼 수 있다. 이러한 흐름으로, 건물을 만드는 데 혹은 도시를 만드는 데 있어 마키의 책이 생각을 다지는 계기를 준 것이다.​ 

 

 

 

 

 

축소하는 도시에서 건축가가 할 수 있는 일 

학생기자: 원도심과 신도심의 분리 현상 속에서 건축가는 어떤 전략을 세워야 하는가? 특히 이미지와 상상력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김영준: 원도심이 쇠퇴하는 이유는 신도시 개발이 상대적으로 쉽고 비용도 적게 들며, 사람들의 선호와 요구에 부합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북촌은 현재 많은 사람이 방문하는 대표적인 장소지만,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개발 제한으로 인한 민원이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공공이 개입해 한옥보존지구 지정, 높이 제한 등의 조치를 취하면서 정체기를 거쳤고, 시간이 지나며 지역의 가치가 회복되었다. 모든 구도심이 북촌처럼 부활할 수는 없다. 그런 변화는 시대의 흐름, 사람들의 인식 변화, 공간에 대한 새로운 상상력이 결합되어야만 가능하다. 더 이상 신도시만을 개발할 수 있는 여유도 없으며, 다음 세대를 위한 공간 전략도 필요하다. 현재의 단지계획 중심 개발은 수요자가 모든 비용을 부담하는 구조로 인해 행정적으로는 효율적이지만, 도시의 지속가능성 측면에서는 바람직하지 않다. 반면 구도심 개발은 공공 재원이 필수적이기에 더욱 어렵다. 현실에서 건축가는 상상력과 전략을 통해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콤팩트 시티’ 개념처럼 구도심 내 밀도 높은 삶의 구조를 도입하거나, 공공시설이 선도적으로 도심에 안착하는 방식을 설계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 시청의 경우, 이러한 문제에 도심 내 다양한 건축군을 엮어 시청 기능을 분산시키는 방식으로 접근했다. 혹은 기존 저층부를 유지하고 고층부를 띄우는 방식도 대안이 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실험이 제도 변화로까지 이어지는 선순환을 만들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도시 리서치가 단순히 센스와 조형에 머물러서는 안 되며, 실질적이고 구조적인 제안이 필요하다. 건축가는 도심의 본질을 해석하고, 그것이 정책적 수단으로 확장될 수 있도록 하는 리서치 기반의 실천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이장환: ‘콤팩트 시티’ 개념은 본래 주변을 비우면서 중심으로 모으는 전략이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비우는 일은 사라지고 모으는 개발 논리만 남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경향을 어떻게 보는가?

김영준: 콤팩트 시티가 개발 논리에 치우치는 것은 결국 자금 확보의 문제와 행정의 효율성 추구 때문이다. 중소도시는 인구가 줄어들고 주거가 분산되어 있어 인프라 유지에 막대한 비용이 소요된다. 이는 장기적으로 공공서비스의 질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 따라서 일부 지역은 비우고, 일부 지역은 집중시키는 전략이 필요하다. 이러한 방식은 단기간에 완료될 수 없으며, 다양한 지역 간 특성을 반영한 다층적 전략이 병행되어야 한다. 도시 차원에서 공공투자 방향성과 인프라 절감 효과를 고려한 구조적 접근이 필요하다. 중소도시 내부에서도 규모와 성격이 다양하다. 대도시부터 전주·익산 같은 중간도시, 인구 2만 미만의 군 단위 도시까지 각기 다른 도시 구조와 수요를 가지고 있다. 행정 통합이 추진되는 것도 이러한 지역 차이에서 비롯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함이다. 건축적 대응 역시 각각의 규모에 맞는 전략이 필요하다. 도시계획·건축·인프라가 유기적으로 연결된 모델이 요구되며, 이를 위해서는 현실에 기반한 아이디어와 실천 모델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이러한 작업은 개인의 자비로 수행하기 어렵기 때문에, 공공 재원을 투입해 리서치와 실험을 병행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서울도시건축전시관 개막전을 위해 8억 원의 예산을 투입했던 ‘슈퍼그라운드’ 프로젝트처럼, 유휴지를 활용한 건축적 실험은 공공기관의 지원 없이는 불가능하다. 공공이 투자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대안은 학교다. 리서치를 통해 중소도시 문제에 대응할 수 있는 실질적 전략을 도출할 수 있을 테고, 그것이 도시 전반의 제도와 정책으로 연결될 수 있어야 한다.

 

학생기자: 중소도시의 도시재생에서 지역성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 도시재생 사업은 어디에 초점을 맞춰야 하는지, 실제로 도시재생 사업에 참여하는 건축가가 신경써야 할 부분은 무엇인지 조언할 수 있는가?

김영준: 도시재생에서 핵심은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강화할지 명확히 판단하는 데 있다. 과거 이화동에 사무실을 두었을 때, 인근 학교 담장을 허물어 열린 공간을 조성할 수 있다고 보았으나, 도시재생 사업이 개입되면서 오히려 담장을 강화하고 조형물과 벽화를 추가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이는 도시재생이 없애야 할 대상에 오히려 힘을 강화한 사례로, 흔히 예쁘게 꾸미면 사람이 온다고 생각하는 기본적인 가정이 본질을 오해한 결과다. 도시재생의 본질은 모든 문제를 직접 해결하기보다 다양한 일이 자연스럽게 벌어질 수 있도록 여지를 만드는 것이다. 서울로7017 사업에서는 각 골목길을 책임지는 골목건축가 제도를 통해 공공 영역에서 투자하면서 주변도 변화할 수 있는 조건이 조성되었다. 이러한 방식은 기존 자산을 존중하면서도, 공공투자를 통해 자생적 변화를 유도하는 대표적인 사례다. 결국 도시적 수단은 건축가 혼자 다 할 수 없는 것이다. 다른 일이 벌어지게끔 뭔가를 만들어내는 시도가 필요하다.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에서 건설 쪽이 차지하는 비율이 13~14% 정도 된다. 이 같은 비율의 나라들은 도산하는 게 일반적 상황이다. 우리는 개발 과정에서 팽창의 시대를 거치면서 점차 규모가 커졌는데 이를 계속 지키려고 하는 게 건설산업의 속성이다. 결론적으로 수요, 투자, 건축가 수, 건설사도 줄어들 것이니 이에 대한 대안을 만들어야 한다. 팽창의 시대가 지났으니 소규모 단위의 분절된 작업이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건축가는 이러한 복합 전략을 현실화할 수 있는 실험을 통해 비현실적 대안이 아닌 실행 가능한 모델을 고민해야 한다. 따라서 전면 철거와 전면 보존 사이의 절충안이 필요하다. 현대의 지역성은 우리의 조건들을 좀 더 다른 방향으로 끌어갈 수 있는 아이디어를 만들어 주는 것이다. 그것이 또 건축가의 역할이고, 시스템이고, 리서치다.

 

이장환: 선생님은 도시적 관점에서 건축에 접근하는 한국의 대표적 건축가라고 생각한다. 나 역시 선생님의 생각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그런데 지금은 과거와 달리 제도가 고도화되면서, 건축은 점점 좁은 영역의 전문가 개념으로 축소된 듯하다. 도시와 건축 전체를 조망하고 통찰하는, 보다 넓은 의미의 건축가 개념은 잊혀지고 있다. 오늘날의 건축가에게 도시는 중요한가? 중요하다면 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가? 

김영준: 건축가의 본령이다. 건축가가 되는 것의 좋은 면 중 하나는 관심 있는 영역으로 자기의 분야를 만들 수 있다는 거다. 그 측면에서 나는 도시에 관한 사고들을 건축적인 대응 방식으로 발전시킨 것일 뿐이지, 모두가 이렇게 할 필요는 사실 없다. 그러므로 건축에서 도시가 중요하다고 이야기하는 것도 한계가 있는 얘기다. 

 

학생기자: 선생님께서는 건축이 다른 분야와의 협력이 필요하다고 말씀하셨다. 건축은 기획부터 설계까지 전 과정을 아우르기에 자신만의 서사가 중요한 것 같다. 건축을 어떻게 나의 것으로 만드는지 궁금하다.

김영준: 건축가를 무엇으로 보느냐에 달린 것 같다. 그 안에서의 자기 길을 잘 찾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가 30년 전에 생각했었던 건축가 모델과 지금 시대의 건축가 모델은 조금씩 달라져야 할 것이다. 건축은 시대의 거울이라고 많이 이야기하는 이유는 시대에 맞는 방법을 찾아내야 하기 때문이다. 르 코르뷔지에의 작품이 후기로 가면 형태가 바뀌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근대 건축 5원칙과 전쟁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정교한 것을 만드는 것보다 조금 틀려도 눈에 잘 안 띄고, 브루탈하게 만드는 게 더 맞는 시대가 된 것이다. 디자인은 그렇게 계속 바뀌어야 한다. 그럼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어떤 디자인이 필요한지 계속 생각해 봐야 하는 것이다. 매트가 형태가 아니라고 이야기하는 것도, 매트는 뭔가의 베이스일 뿐이기 때문이다. 매일 달라지기란 쉽지 않지만 변화의 폭을 가질 수 있는 아이디어가 작은 사무실의 역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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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준
김영준은 서울대학교 건축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1995년부터 공간에서 건축실무를 시작, 런던 AA 스쿨에서 수학한 후 로테르담의 메트로폴리탄 아키텍처 사무소에서 경험을 쌓았다. 1998년 서울로 돌아온 후 와이오투도시건축 건축사사무소를 설립했다. 대표작으로 자하재, 허유재 병원, 행정중심복합도시 계획안, ZWKM 블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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