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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지금 여기, 건축으로 질문하기 | 최문규 + 가아건축사사무소

글
최문규
자료제공
가아건축사사무소
진행
방유경 기자

「SPACE(공간)」 2026년 9월호 (통권 706호) 

 

 

 



건축의 시작, 익숙함에 대한 질문들 

최근 여러 매체에 ‘국민주택규모’라는 말이 자주 보인다. 오래전부터 언제 이 말이 생겼나 궁금했다. 1973년이라고 한다. 정확한 결정 과정은 찾기 어렵지만 그 당시 가구당 평균 가족 구성원이 다섯 명이고 부부와 세 명의 자녀가 살 수 있는 최소 규모로 결정되어 지금까지 사용되고 있다는 게 정설이다. ‘국민’, ‘주택’, ‘규모’를 하나하나 나눠 읽으면,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마땅히 살아야 할 주택의 규모’로 읽힌다. 여기에서 질문들이 쏟아져 나온다. 김수영(서울대학교 교수)이 쓴 『필연적 혼자의 시대』(2026)에 따르면 2024년 기준 우리나라 가구 중 42%가 1인 가구라고 한다. 1973년 당시 성인은 결혼한 뒤 두세 명의 자녀와 함께 사는 것이 당연했다면, 오늘날 혼자 사는 42%의 사람들은 국민인가 아닌가? 법적 혼인을 하지 않은 비혈연 공동체와 반려동물이 삶의 중심에 들어온 삶은? 더 이상 집에서 밥을 하지도 먹지도 않는 아파트에서 왜 주방은 필수인가? 방 크기의 차이가 결국 가족 간 차별을 만드는 건 아닌가? 이렇듯 익숙한 아파트 평면을 두고 질문이 끊임없이 나온다. 문제는 지금 건축 담론에서 이런 질문들은 묻히고 건물의 외관과 공간의 새로움이 주인공이 된 상황이다. 국민주택규모가 담을 수 없는 새로운 현실 대신 3베이, 4베이라는 평면의 구성과 외장 재료, 주방 기구 디자인에 생각이 집중되고 ‘왜 거실과 주방, 세 개의 다른 크기의 방, 두 개의 욕실이 필요한가’ 하는 질문에는 눈을 감는다.  

 

 

 

 

 

다시 국민주택규모로 돌아가면, 주택의 규모가 공간이 아닌 제곱미터, 즉 면적이 기준인지도 궁금해진다. 층고를 얇게 더 얇게 만들어야 하는 경제성이 만든 건축. 어디를 가나 이유 없이 높은 1층과 반복되는 기준층 그리고 이유 없이 복잡한 단면을 발견하는 것이 불편하다. 이번에 발표하는 건물들은 익숙한 쓰임에 대한 질문이고 공간을 면적으로 생각하는 관행에 대한 질문들이다. 공원의 일부가 되는 대구간송미술관, 서로 다른 두 환경과 만나는 서울대학교 의학도서관, 그리고 각기 다른 전시를 담을 공간을 만든 박서보미술관은 ‘질문이자 건축적 제안’이다. 재료의 색이나 가구를 고르는 취향보다는 질문을 통해 새로운 프로그램과 건축을, 생각을 전달할 수는 없을까? 건축이 단순히 새로운 형태와 공간을 만드는 것에 머무른다면 새로운 세상은 영영 오지 않는다.  

 

 

 

 

 

 

 


건축의 조건: 대지

지구 밖에서도 건축이 가능하겠지만, 지금까지 건축은 지구와 중력이라는 조건 위에 만들어졌다. 인간의 조건 중 하나가 지구이듯 건축의 조건은 땅이다. 그 동안의 설계를 돌아보면 나는 땅 위에 건축을 하고 있었다. 너무 당연한 말이지만 나는 이 말이 가진 무게를 잊지 않으려 한다. 땅은 물리적인 실체이고 역사적 유산이고 사회적 의미를 갖는다. 인사동의 길들과 주변 상점들이 없었다면 쌈지길은 지금껏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한남동의 현대카드 뮤직 라이브러리에 남산에서 내려오는 경사와 한강 조망이 없었다면? 숭실대학교 학생회관을 비롯한 다른 건물에서 나는 땅에 뿌리내린 건물을 만들려고 했고 이를 위해 가능한 여러 번 대지를 찾아 땅의 모양과 주변과 역사적 흔적에 기댔다. 

 

 

 

 

 

 

 

이번에 발표하는 세 건물들도 땅의 모양과 역사에 대한 이해와 조망과의 대화 위에 지어졌다. 공원 속 대구간송미술관은 땅의 모양과 경사만큼 대구의 가장 중요한 산인 팔공산을 바라보는 것이 중요했고, 서울대학교 의학도서관은 작지만 중요한 숲과 역사적인 경모궁지에 대한 이해와 그 해석이 계획에 가장 중요한 바탕이 되었다. 박서보미술관은 인접한 박서보재단의 기지와 전면의 좁은 도로 그리고 3층에서 보이는 안산 자락이 건축의 단초가 되었다. 이렇듯 땅은 건축의 시작이면서 그 땅의 무엇을 어떻게 보는가 하는 질문의 영역이 된다. 설계의 중간중간 건물을 대지에서 떼어내서 다른 땅에 옮겨 보며 설계를 확인하는 건 땅이 그만큼 중요한 조건임을 믿기 때문이다.  

 

 

 

 

 

 

 



한국의 건축, 서울의 건축

내 작업은 파리 국제대학촌 한국관(「SPACE(공간)」 618호 참고)을 빼면 모두 한국에 지어졌고, 대구간송미술관 등 몇 가지를 제외하고 모두 서울과 근교에 지어졌으니 나는 서울 건축가다. 지금 같은 국제화, 정보화 시대에 서울이나 한국성을 말하는 것이 시대착오로 보일 수도 있지만, 확실히 한국적 상황과 서울에서 쉽거나 어려운 건축이 있다고 생각한다. 지구 반대편에 설계를 하면서도 같은 재료, 비슷한 건축 언어를 사용하는 건축가도 있겠지만, 나는 여기서 가능한 재료와 시공, 구조의 가능성을 탐구하고 이를 건축화하는 데 시간과 노력을 들였다. 매일 길에서 만나는 혼란스럽고 다양한 건축과 도시를 건축 학교라 생각했다. 외국의 유명한 건물이나 디테일이 실린 책을 보고 따라 짓기보다는 지금 서울의 다양한 재료와 구조를 살펴 그 크기와 시공법을 익히는 것이 서울의 건축이 가야 할 방향일지도 모른다. 작은 건물이나 증축에 사용되는 혼합구조(박서보미술관, 서울대학교 의학도서관), 기둥 대신 사용한 철골 멀리언(서울대학교 의학도서관, 대구간송미술관), 한옥에서나 쓰는 큰 단면의 목재 기둥(대구간송미술관)을 철골구조처럼 사용하는 것. 이처럼 자주 쓰이는 재료의 크기(대형 유리, 동판)와 시공 방법(나무 기둥, 유글라스)을 익혀가며 새로운 방법을 찾았다. 

재료와 구조만큼이나 서울의 도시적 상황과 우리에게 필요한 공공성에 대해서도 쌈지길을 설계할 때부터 생각을 이어가고 있다. 열린 건축은 주변에 대한 배려와 사람에서 시작되고 마무리된다. 대지 주변으로 높은 벽을 만들고 내향적이고 배타적인 자신의 공간을 만드는 대신 느슨하고 열린 외부 공간들이 많아질 때 서울의 도시환경과 사람들의 삶은 조금 더 풍족해질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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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성의 미약한 실천

이번에 발표하는 대구간송미술관과 서울대학교 의학도서관은 공공이 발주한 건물이다. 즉 공공이 설계를 발주하고 설계공모를 통해 설계자가 선정된다는 뜻이다. 건축은 시공과 감리를 거쳐 비로소 완성되는데, 최저가 입찰이라는 경제 논리에 좌우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공사 규모나 건물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고 시공자와 감리자가 입찰을 통해 결정되면 사실상 지어지는 과정은 설계자의 손을 떠나게 된다. 그나마 설계의도구현 제도가 있어 설계자가 공사 중 시공자나 감리자와 상의할 수 있지만, 설계와 다르게 지어져도 관여하기 어려운 구조다. 한국에서 좋은 공공 건축이 실현되지 못하는 이유다.  

 

 

 

 

 

 

 

당선되기 어렵고, 당선되어도 좋은 건물을 짓기 어렵다고 불평하고 공공 건축에 참여하지 않는 건 쉬운 변명이다. 공공 건축이 중요한 이유는 공공이 사용해서가 아니라, 건축으로 공공성을 실천할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민간이 경제 논리로 움직일 때 공공 건축은 우리가 어떻게 함께 살아갈 수 있는가를 생각해볼 단초를 제공하고, 물리적으로 구현해낼 수 있는 장이기 때문이다. 공원 안에 지어진 대구간송미술관은 미술관이 문을 닫아도 공원의 일부로 작동하도록 했고, 서울대학교 의학도서관은 대학병원으로 올라가던 좁은 보행로를 넓히고 바로 옆에 인접한 역사적 유적(경모궁지)의 배경을 만든다는 생각에서 출발했다. 박서보미술관은 건물 앞의 도로와 모서리를 열고 꽃과 나무를 심어 밝은 동네로 만들려고 했다. 투명하고 깊은 내부 공간과 건물과 건물 사이의 외부 공간이 사람이 사람을 만나는 기회를 준다고 믿기 때문이다. 자연스레 타인을 환대하는 공간을 만드는 일은 이미지가 모든 것을 삼키는 ‘스펙터클의 사회’에서 건축이 지켜내야 할 미덕 중 하나다. 건축가 개인의 건축적 정체성, 시각적 감각과 취향을 드러내고 이미지에 집중하는 시대에, 잠시 멈추고 건축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 설계공모에서부터 실시설계 그리고 설계의도구현에 이르기까지, 비록 그 결과가 미약하더라도 남에게 책임을 떠넘기지 말아야 한다. 실패가 예정된 길이라도 가야 한다. 

 

 

 

 

 

 

 

월간 「SPACE(공간)」 706호(2026년 09월호) 지면에서 더 많은 자료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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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문규
최문규는 연세대학교 건축공학과와 컬럼비아 건축대학원을 졸업했다. 이토 도요 건축사사무소, 한울건축에서 실무를 했으며 1999년부터 가아건축사사무소를 운영했다. 2026년 8월까지 연세대학교 건축공학과 교수로 재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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